LIFESTYLE

서윤정 작가에게, 집이란?

아름다운 그림이나 멋진 자연 경관을 보고 나면 그 전후로 시야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새로운 심미적 경험은 말 그대로 우리를 ‘눈뜨게’ 만든다. 집도 마찬가지다. 서윤정 작가의 집을 보고 난 후 변화한 아름다움에 대한 시선.

프로필 by 이진선 2024.12.06
자택에서 서윤정 작가.

자택에서 서윤정 작가.

예술을 할 때 사람들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목적 없는 행위를 한다. 그래서 예술을 ‘무소위이위(無所爲而爲)’라 한다.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목적 없는 행위에 도달하기 위해 산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목적 없는 행위에 위로받는다. 세상 모든 일, 모든 물건, 모든 행동이 ‘목적’이라는 틀에 갇혀 있는 세속적인 현대 사회에서 이 집의 의미는 남다르다. 시카고와 런던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서윤정 작가는 점, 선, 면, 수직, 수평 요소를 활용해 페인팅을 비롯한 디자인 오브제 작업을 하고 있다. 5살 아이의 엄마인 그녀에게 “아이가 있는데도 집이 이렇게 유지가 돼요?”라며 온갖 예쁜 것들이 가지런히 장식된 커피 테이블과 뽀얀 화이트 소파 앞에 서서 묻는 건 정말이지 ‘세속적’이었다.
“이 집에 이사 온 지는 1년 반 정도 됐어요. 원래 외할아버지가 사시던 집인데 돌아가시고 나서 저희 가족이 들어오게 됐어요.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할 때 일단 하얗게, 다 하얗게 칠해달라고 했어요.”
서윤정 작가가 직접 만든 타일로 꾸민 미니 세면대.

서윤정 작가가 직접 만든 타일로 꾸민 미니 세면대.

빈티지 숍에서 구매한 포도 모양 장식품.

빈티지 숍에서 구매한 포도 모양 장식품.

임정주 작가의 스테인리스스틸 커피 테이블과 제르바소니의 화이트 소파가 놓인 거실.

임정주 작가의 스테인리스스틸 커피 테이블과 제르바소니의 화이트 소파가 놓인 거실.

미국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3층짜리 단독주택은 뭔가 색달랐다. 현관을 들어서자 카펫이 깔린 긴 계단이 보였다. 푹신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이 집의 메인 공간인 2층 거실과 응접실이 나온다. 높은 층고에 부서지는 햇살, 그리고 눈이 닿는 곳마다 아름다움이 박혀 있었다. 아름다움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새삼 와닿는다. “사실 제가 원래 하던 작업들을 보면 알록달록한 컬러가 많아요. 제 삼청동 작업실 분위기도 그렇고요. 근데 이 집은 화이트 바탕에 파스텔 톤이 많죠. 저기 벽에 보이는 작품이 제가 학부 마지막에 그렸던 건데 저 그림의 컬러에서 인테리어의 방향을 잡았어요.” 그림이 걸린 공간은 남편의 서재로 유난히 텅 비어 있다. 그곳은 물건이 아닌 정서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정리 벽이 있는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집의 면면들.

정리 벽이 있는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집의 면면들.

정리 벽이 있는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집의 면면들.

정리 벽이 있는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집의 면면들.

정리 벽이 있는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집의 면면들.

정리 벽이 있는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집의 면면들.

정리 벽이 있는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집의 면면들.

정리 벽이 있는 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집의 면면들.

“어렸을 적부터 이상하게 집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희 엄마도 집을 꾸미고 이런 것보다 그냥 집 자체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자연스레 이사도 자주 다니고, 집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죠. 그러다 19살 때 유학을 가면서부터는 쭉 저만의 공간을 제가 꾸미는 것에 익숙해졌죠. 예전에 외할아버지가 이 집에 사실 때 놀러 오면 혼자 매번 상상했어요. 저 창가엔 뭘 놓고, 조명은 뭘로 하고. 사실 어딜 가든 그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영국 유학 시절 그녀는 리빙 매거진에서 인테리어를 촬영할 때 홈 스타일링을 보조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의 심미적 경험은 아름다움에 대한 그녀의 시선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었다.
아름다움이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는 남편의 서재 공간.

아름다움이 반듯하게 정렬되어 있는 남편의 서재 공간.

매끈한 타일 바닥으로 된 1층은 아이와 엄마의 공간이다. 영감을 주는 서적이 가득한 책상 앞에 작가의 타일이 덧대진 작은 세면대가 있다. 세면대가 이렇게 예쁜 존재였던가? “여긴 아이랑 제가 그림도 그리고 함께 노는 공간이에요. 그래서 자주 손을 씻을 수 있게 세면대를 놓아두었어요. 아이에게 작은 수영장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1층 욕실에는 큰 타일 욕조를 두었고요.” 앙리 마티스의 판화와 작가의 타일,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아트 서적, 여기에 군데군데 자리한 아이의 물건들. 이 모든 게 흐트러짐 없이 세팅된 느낌이다. 마치 갤러리처럼! “약간 병처럼 느껴질 정도로 조금이라도 어지럽혀 있거나 물건이 세팅해 놓은 것에서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에요. 에어컨이나 집에서 안 예쁜 가전은 다 문을 만들어 숨겨뒀죠.” 내후년쯤 북촌의 작업실로 이사를 계획 중이라는 작가는 이미 다음 집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을 얘기할 때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한 그녀의 마음이 엿보였다. “북촌 집은 한옥과 양옥이 합쳐진 형태라 좀 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의 모더니스트 빌라 E-1027를 너무 좋아하는 데 그 집의 요소들을 다음 집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해요. 그 집이 너무 예뻐서 질투가 난 르 코르비지에가 낙서를 해놨다는 일화도 있잖아요.”
미국 건축가의 손길이 닿아 일반적인 한국 주택 구조와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를 낸다.

미국 건축가의 손길이 닿아 일반적인 한국 주택 구조와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를 낸다.

작가가 직접 만든 카펫과 욕조 타일, 꾸준히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이 모든 미감이 이 집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만든 카펫과 욕조 타일, 꾸준히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이 모든 미감이 이 집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만든 카펫과 욕조 타일, 꾸준히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이 모든 미감이 이 집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만든 카펫과 욕조 타일, 꾸준히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이 모든 미감이 이 집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만든 카펫과 욕조 타일, 꾸준히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이 모든 미감이 이 집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만든 카펫과 욕조 타일, 꾸준히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이 모든 미감이 이 집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만든 카펫과 욕조 타일, 꾸준히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이 모든 미감이 이 집을 완성한다.

작가가 직접 만든 카펫과 욕조 타일, 꾸준히 모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이 모든 미감이 이 집을 완성한다.

누군가에게 집은 충전의 공간이고, 누군가에겐 가족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토록 집이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서윤정 작가에게 스스로가 생각하는 집의 정의를 묻자 그녀는 의외로 머뭇거렸다. “이렇게 집을 꾸미면서 집에 대한 작업도 하고, 집에 대한 생각도 엄청 많이 했는데 막상 ‘나에게 집이란 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에겐 집에서 쉬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집의 메인은 아닌 것 같아요. 근데 단 한 가지, 제가 시각적으로 엄청 만족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그건 확실한 것 같아요.” 이 집은 아름다움을 숭고하게 좇고 있었다. 삶을 아름답게 영위하려는 주인의 순수한 소망이 담긴 집. 우리가 갈구하던 그 심미적 갈증이 무엇이었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집. 이 집은 왠지 모르게 여운이 길게 남는 공간이었다.

Credit

  • 글&인터뷰/ 김민정(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김상우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디자인/ 진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