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오트 쿠튀르 쇼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에 갔다. 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에너제틱한 분위기를 풍겼다. 줄지어 이어진 스케줄, 더군다나 때 이르게 찾아온 여름 더위에 지쳐갈 즈음 하이주얼리의 메카, 방돔 26번가에 위치한 부쉐론 부티크를 찾았다. 온통 블랙으로 뒤덮인 행사장에 들어서자 전시장에 온 듯 커다란 액자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상쾌함이 몰려오는 듯했던 이 작품은 포토그래퍼 얀 에릭 바이더(Jan Erik Waider)가 촬영한 것으로 아이슬란드의 원초적인 자연, 그중에서도 물을 주제로 하고 있었다. 얼음의 땅이라 불리는 아이슬란드의 다양한 물, 즉 폭포, 파도, 빙하, 얼음 동굴 같은 것들 말이다. 작품 옆에는 또 하나의 작품이 병치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바로 부쉐론의 2024 까르뜨 블랑슈 ‘오어 블루’ 하이주얼리 컬렉션. 두 작품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메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Claire Choisne)이 말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강렬하고 원초적인 아이슬란드의 물에서 영감받았습니다. 쏟아지는 폭포는 다이아몬드 네크리스가 되었고, 넘실대는 파도는 숄더 주얼리가, 빙하의 중심부에서 흐르는 물은 록 크리스털의 브레이슬릿으로 탄생했죠.” 클레어가 덧붙인다.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인 물에 대한 헌정이자 물에 대한 추억을 기념하는 찬가입니다.” 색감부터 텍스처, 흐름, 반사됨, 투명함 등 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26피스의 하이주얼리는 미술관에 걸어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얀 에릭 다이더가 촬영한 아이슬란드의 얼음 동굴.
그리고 지난 11월 11일, 파리에서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이벤트가 서울에서 열렸다. 입구에 들어서자 아이슬란드를 탐험 중인 클레어 슈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10분 남짓한 영상에 담긴 원초적이고 경이로운 아이슬란드의 자연 풍경은 마치 미지의 행성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듯했다. 고요하게 어둠이 깔린 행사장부터 사진 작품, 그 옆에 전시된 26피스의 하이주얼리, 아이슬란드 파도 소리와 자연의 리듬을 소재로 한 프랑스 음악가 몰레큘(Molecule)의 사운드 트랙까지 모든 것이 몇 달 전 파리를 떠올리게 하는 현장이었다. 다른 점 한 가지는? 마지막에 등장한 ‘콰트로 5D 메모리’ 링. 이 반지는 ‘불멸의 저장 장치’라 불리는 디지털 데이터 광학 저장 프로세스 ‘5D 메모리’를 삽입한 오디오를 담은 피스다. 메종의 혁신을 담당하고 있는 이노베이티브 컬렉션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는데, 자세한 내용은 <바자> 11월호에 담긴 클레어 슈완과의 인터뷰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빙하를 닮은 아콰마린이 돋보이는 ‘크리스토’ 네크리스를 건 한소희.
이정재의 선택은 거친 파도를 형상화한 ‘바그’ 브로치.
이벤트의 전야제로 소수의 게스트만 초대된 프라이빗 갈라 디너도 열렸다. 부쉐론의 앰배서더인 배우 한소희와 이정재는 ‘오어 블루’ 하이주얼리 컬렉션을 착용하고 자리를 빛냈다. 한소희는 컬렉션 이름에 걸맞게 빙하의 블루 컬러를 담은 ‘크리스토(Cristaux)’ 네크리스를 착용했다. 육각형 록 크리스털 내에 24개의 아콰마린이 세팅된 디자인으로 특히 맨 아래에 달린 5.06캐럿의 다이아몬드는 분리해 반지로 착용 가능하다. 한편 이정재는 물의 힘에 경의를 표하는 ‘바그(Vague)’를 선택했다. 호쿠사이(Hokusai)의 목판화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The Great Wave off Kanagawa)>에서 영감을 받은 티아라 아카이브(1910년)를 연상시킨다. 거친 파도 형상을 재현한 바그는 브로치와 헤어 주얼리로 연출 가능하다. 강렬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지닌 물, 그 찬란한 아름다움을 노래한 ‘오어 블루’ 하이 주얼리 컬렉션. 그 속에 담긴 특유의 장인정신과 혁신은 단순히 물에 대한 찬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부쉐론은 언제나 그랬든 이상,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파동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