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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오징어 게임' 시즌 2로 돌아온 양동근

과거에도 지금도 그 자체로 자유로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온 배우이자 뮤지션. 묵묵한 시간을 추진력 삼아 양동근은 지금 가장 설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4.11.22

RAW & WILD


레더 재킷은 Thug Club. 안경은 Cartier. 목걸이는 모두 Tikoonz. 이너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아까 유튜브 촬영을 할 때 옷과 소장품들 하나하나 어떤 의미인지 얘기하는 게 묵직하게 와닿더라고요.
양동근 긴 시간 나를 증명하려고 살아왔는데, 음악도 연기도 못하고 있을 때 일상에서 나를 보여줄 수 있게 해준 게 옷이었거든요. 시간과 돈. 두 개를 들이면 끝난 거잖아요. 음지에서 정말 혼자 좋아하던 게 패션이었어요. <바자>가 최초의 패션지라고 하던데, 알아봐주니 위로가 되는 거죠. 오늘 졸업장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하퍼스 바자 춤추고, 샤우팅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마지막 컷이 끝나는 순간까지 화보 촬영을 즐기던데요. 아역 배우 시절부터 40여 년 가까이 일을 해왔는데, 자기 안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게 신기했어요.
양동근 20대에 화보 인터뷰를 했을 땐 너무 어려웠어요. 이제는 저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요. 집에서든, 밖에서든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자주 없거든요. 옷, 사진, 헤어와 메이크업. 저를 생각하며 고민한 흔적들을 맞이했을 때 너무 행복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음악 선곡이, 그냥 끝났어요. 쓰리아웃 체인지. 만루홈런. 다른 데 가선 ‘스읍’ 그러고 이렇게 못할 때도 있죠.(웃음)
하퍼스 바자 핍티 센트, 닥터 드레부터 시작해 쭉 선곡을 맡은 사진가에게 고맙네요.(웃음) 우선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새 멤버로 합류한 소식 축하해요. 지난해 캐스팅부터 올해 내내 촬영을 하면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했어요.
양동근 가장 지배적으로 붙잡고 있던 마음은 들뜨지 않고 잘 다스려야겠다는 거였어요. 김칫국을 대신 마시며 축하해주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미 세계적인 흥행을 한 배에 올라탄 건 처음이니까, 0에서부터가 아니라 100을 찍고 하는 시작이라 조심스러웠어요. 촬영은 여느 때처럼 힘들었죠.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있어서 와이프에게 고맙고 미안했어요. 공개 시기까지 이렇게 기다린 적이 20대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땐 ‘빨리 개봉해 극장에서 보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런 기분이 참 오랜만이죠. 한 달 남은 지금 내 생에 이런 질감의 행복은 못 느낄 것 같아서 즐기고 있습니다.

레더 집업 점퍼, 팬츠는 Lu’udan. 부츠는 Timberland. 티셔츠, 목걸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시청자로서 <오징어 게임> 시즌 1을 봤을 땐 어땠어요?
양동근 잔인한 걸 잘 못 보거든요.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순수하게 시청자로서 즐겁게 못 봐요. 어떻게 찍었을까, 분석하고. 직업병이죠. 저는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이 작품은 인문학이 아닐까. 인간의 욕망에 대한 것을 여과 없이 매체를 통해 잘 보여주고 접근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전 세계 사람들에게 통하는구나, 싶었죠.
하퍼스 바자 올해 초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나는 생계형 배우”라 말했죠.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양동근 예술가에서 기술직으로 바뀌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죠. 예술가는 자기 세계에 맞지 않는 건 거부하고 타협을 찾지 않을 때가 있죠. 내 필모그래피를 채우겠다는 생각을 할 뿐. 반면 기술직은 이 기술이 필요한 곳엔 어디든 가는 거죠.
하퍼스 바자 <오징어 게임>과 전작 <무빙>을 통과하면서 그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궁금했어요.
양동근 10대, 20대, 30대에는 결코 갖지 못했던 마음가짐으로 이런 작품들을 만나게 된 게 하늘이 도운 거겠죠. 버티고 버텼더니 기회가 오는구나. 20대에서 서른이 되면서 변화가 컸어요. 서른에서 마흔은 더 컸고요. 30대에는 완전 바닥을 쳤다 생각했고 자주 우울했거든요. 주인공만 맡아왔는데 계속 우정 출연이나 단역만 하고 나를 찾는 역할이나 내가 설 무대가 없는 것 같았어요. 예술가가 아니라 아빠, 남편, 가장인 배우는 뭘 위해 연기를 해야 할까. 그 질문을 하다 보니 180도 다른 모습으로 개조가 되어버렸어요. 다시 영혼을 추스르면서 연기보다 삶이 우선되는 시간을 가진 거죠. 나 역시 별다를 것 없는 사람이구나, 돌아보게 되고요. 기회를 가지려고 갈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전에 저에겐 그런 기회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왔었으니까요. 어릴 때 봤던 30~50대 선배들의 마음이 그랬구나, 헤아려보기도 했죠. 새로운 마음, 새로운 접근. 그 시간이 되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이 작품, 저 작품 오는 대로 열심히 하다 보니 다시 기회가 온 거예요.

재킷은 Martine Rose by BOONTHESHOP. 무테 안경은 Cartier. 티셔츠,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무빙> 속 북한군 정준화의 절제된 연기는 짧지만 인상적이라 계속 보고 싶더라고요. 하늘을 나는 냉혹한 킬러.
양동근 저에겐 진짜 특별한 작품이에요. 어릴 때 꿈이 슈퍼맨이었는데, 40년이 지나 한반도 정서에 맞는 날아다니는 캐릭터가 돼서 연기를 한 게, 제 연기 인생 40여 년을 꿰뚫는 순간이었죠. 그날 촬영장에 아이들이 놀러와서 제가 날아다니는 장면을 찍을 때 봤거든요. 그걸 아이들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니까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어요. 사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게 다거든요. 뭘 보여주냐가 아이를 성장시키니까요. 정작 아이들은 저만큼의 온도가 아니었지만 자부심이 엄청났어요. 배우는 죽으면 장면으로 기억되잖아요. 제겐 그 장면이 아닐까.
하퍼스 바자 <네 멋대로 해라>를 찍던 스물두 살 무렵엔 예술가형 배우에 가까웠던 거겠죠.
양동근 혈기로, 혼으로 불태워버리면서 연기했어요. 다 타서 내가 없어져서 방전되고, 고갈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게, 그냥 연기로 해낸 거였다면 안 그랬을 거예요.

트레이닝 세트업은 Willy Chavaria by BOONTHESHOP. 레더 타이는 Deadwood. 셔츠, 스니커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9살 때 아역 배우로 연기를 시작해 스물넷에 YDG로 음악을 시작하고 나서도 계속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죠. 처음 연기를 시작하던 때, 어린 동근은 연기의 어떤 점에 매료된 건가요?
양동근 호기심이었어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같은 마음. 아역 배우를 모집한다는 걸 신문에서 보고 엄마를 졸라 현장에 가게 됐죠. KBS 드라마 초대석 <시인과 촌장>의 이종한 감독님이 저를 잘 봐주셔서 거기 써주신 게 화근이 된 거예요. 잘 가르쳐주셨고 저, 곧잘 하더라고요. 계속 다음 작품을 했는데 그만큼 권태도 빨리 왔어요. 엄마도 신이 나서 계속 시켰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10대 때 이미 과부하가 걸렸어요.
하퍼스 바자 사춘기에 번아웃이 왔던 거네요.
양동근 부모님이 맞벌이이셔서 혼자 밤에 택시 타고 드라마 찍으러 지방에 가고, 어른들 옆에 붙어 자고.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참 힘들었는데 한창 예민할 때라 중간에 연기를 2년 정도 쉬기도 했어요.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데 그때 확 몰아 하니 끝에서 몇 등이다가 졸업할 때는 반에서 10등 정도는 했죠. 일하는 아이 말고 또래랑 똑같은 인생을 산 게 그때였어요. 그러다 20대에 다시 연기를 시작했는데, 기술은 다 형성이 되어 있었으니 빵 터진 거죠.

패딩 재킷, 레더 팬츠는 Kamigin. 모자, 티셔츠,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뉴 논스톱>, <네 멋대로 해라>까지.
양동근 생전 만질 수 없는 돈도 만져보고, 인기도 누리고. 거만해질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었죠. 해소하듯 춤을 추다 힙합을 시작했고요. 제 안에 쏟아낼 게 많았어요. 10대 때는 내 안에 그렇게 쏟아낼 게 있는지 몰랐는데 성장 과정에 있어서 쏟아낼 것들이 남아 있으니 연기나 음악으로 20대 때 내보인 거예요. 근데 그 에너지가 너무 세다 보니까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죠. 쏟아는 냈는데 컨트롤이 안 되니까 팽개쳐진 것 같아요. 그래서 30대를 0으로 다시 시작했죠.
하퍼스 바자 배우는 작품을 기다려야 하지만 뮤지션 YDG는 매해 싱글을 낼 만큼 성실히 작업을 해왔죠.
양동근 연기를 업으로 여긴다면 음악할 때는 자유를 느끼나 봐요. 배운 게 도둑질이니 어떻게든 음악을 해왔죠. 그런데 점점 설 무대가 없어지더라고요. 트로트를 하려고도 했어요.(웃음) 힙합을 너무 사랑하지만 탈힙합을 시도한 것도 그때부터였죠.

레더 재킷은 Deadwood. 팬츠는 Gallery Dept. by Mue. 선글라스는 Balenciaga.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커넥트> OST를 부른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든 곡이라고 했죠.
양동근 전처럼 ‘나 힙합이야’ 하면 못해요. 하지만 그 감각만 살려서 기회를 최대한 즐기려 했죠. 옛날에는 나를 어떻게든 표현해야 하고 원하는 음악만 고집했다면, 음악을 대할 때 태도나 접근도 달라졌어요.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걸 즐기는 대로 두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미공개 곡이 엄청 많아요. 누군가 제 연기나 음악을 보면 ‘양동근, 하던 대로 계속하는구나’ 할 수 있지만 제 중심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접근이 달라지니 결과물도 달라졌고요. 제 마음 상태가 어떤지가 가장 큰 중심이고 제 에너지인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인터뷰 오기 전에 YDG의 노래를 들었는데 ‘Jajaja’의 가사가 유독 기억에 남더라고요. 제 나이거든요. 오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서른넷의 양동근의 일기장 같은 가사였네요. 마흔여섯의 양동근을 보여주는 한 구절의 벌스가 있다면 어떤 문장이 될까요?
양동근 “이젠 두렵지 않다. 행복해.” 오늘 주어지는 것이 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오지 않은 내일이 어떨지 생각 안 하고.

Credit

  • 사진/ 장덕화
  • 스타일리스트/ 이종현(뉴오더콥)
  • 헤어/ 최은영
  • 메이크업/ 이아영
  • 프롭 스타일리스트/ 김태양
  • 어시스턴트/ 정지윤, 양준석(뉴오더콥)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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