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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바자>

시간이 지난 뒤 달리 읽히는 말들이 있다. <바자>의 창간 28주년을 기념하며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의 말을 좇았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는, 그땐 맞았지만 지금은 아닌 문장에서 어떤 영감을 얻게 될지도.

프로필 by 고영진 2024.08.02
인생은 뭘 고를 만큼 여유가 없어. 시간이 없어. 계속, 계속 해야지. 사람들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잘못 알고 있어요. 성공이라는 걸 생각할 때 우리는 로켓이 쫙 올라가고 스매싱 쫙 들어가고 그런 걸 성공이라고 보잖아. 왜 그럴까? 인생이 로켓도 아니고 배드민턴도 아닌데. 사람들은 성공에 대해 잘못된 은유를 갖고 있어요. 사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사랑이라는 건 그냥 만나서 이렇게 보다가 ‘당신이 거기 계셔서 난 참 좋아요’ 하는 거예요. 그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나를 터치 하건 말건 섹스를 하건 말건 존재 자체를 감사히 여기는 것. 그게 사랑이야. 성공, 완성, 사랑, 행복 등등에 대해 사람들은 잘못된 은유를 대비시키며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힘이 들지. 부질없는 짓이에요.
- 2013년 7월호, 영화 <닥터> 개봉을 앞둔 김창완
이 리스트는 무한히 써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소한 것, 언뜻 무용해 보이는 것, 스스로에게만 흥미로운 것을 모으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삶을 훨씬 풍부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집가만큼 즐거운 생물이 없지요. 그리고 수집가의 태도는 예술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예술가가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는 곳을 매일 여행지처럼 경험하는 사람들 말예요. 길에 갑자기 주저앉아 사진을 찍는 게 처음엔 부끄러웠습니다. 이제는 크게 부끄럽지 않아요. 언제나 바쁘고 쫓겼던 마음이 그 순간 평온하고 즐겁게 전환되는 걸 느낍니다. 부디 멋진 취미를 찾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 2016년 11월호, 작가 정세랑이 취미에 대해 기고한 글

보따리는 굉장히 심플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물건이지만 이를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런데 보따리의 잠재력과 수많은 의미들, 미술의 형식적인 요소들을 다시 예술로 던져두었더니 많은 분들이 일상으로 받아들이더군요. 난 작가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무엇을 변형하여 새로운 걸 만든다기보다는 있는 요소들, 인간과 자연을 어떻게 새롭게 바라볼까 하는 게 내 화두입니다.
- 2019년 2월호, 10년 만에 고국에서 개인전을 연 보따리 작가, 설치미술가 김수자

여자가 당당하게 살려면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야 하고, 현실 감각도 있어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야 한다고 봐요. 제가 가장 무시하는 사람이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이에요. 여자건 남자건 자기 인생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말이죠. 난 출연작을 고를 때도 내 역할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지 살펴요. <국희>에서처럼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스타일이 좋아요.
- 2000년 10월호, 독립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한 배우 김혜수

이런 호시절이 과연 언제까지 갈까…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바보 같은 짓인 걸 알지만 그런 생각을 해요. 제가 비관주의자인가요? 어느 순간 이게 뚝 끊긴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을 때, 난 어떻게 할까… 짐작할 수 없는 그런 일들에 심적으로 대비도 하고 준비도 합니다. 그럴수록 내가 날 가꾸어야 한다는 부담도 점점 커지죠.
- 2009년 6월호, 영화 <마더>를 촬영한 배우 원빈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거든요. 사랑과 일과 인생을 생각할 때면 늘 좋은 생각만 했었어요. 하얀 생각. 꿈과 설렘이 가득 찬 하얀색요. 그런데 영화 <해피 엔드>를 하면서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한두 단계 내려선 기분이에요.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보는 눈이 생긴 거죠. (중략) 머릿속을 맴도는 최고의 고민은 사랑이에요.
- 1999년 12월호, 영화 <해피 엔드>를 촬영한 배우 전도연

내가 여자라고 더 봐줄 것도 없어. 맞짱 뜨자. 나한테 특혜를 주려고 하지 마. 똑같이 해보자. 이게 제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태도였어요. 전 여자들이 스스로 여성임에 갇혀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이 먹으니 다 똑같아요.(웃음) 마흔다섯 넘어가면 사람과 일, 실력이 더 중요하니까요. 나의 여성성을 드러낼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냥 ‘난 인간이야’라고 선언하고 다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실 일상적인 말로는 좀 쑥스러워요. 대신 제 가사에 다 들어 있지 않나요? ‐ 이상은

<벌새>가 지연된 데는 재정적인 어려움, 시나리오 수정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제가 제 자신을 미워하느라 소비했던 시간도 많았어요. 나를 못 믿으면서 남도 못 믿고. 그러면서 일이 어그러지곤 했죠. 제 주변만 해도 남자 작가들은 자기 시나리오가 되게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 작가들은 좋은 시나리오를 써도 만족을 못해요. 물론 그게 창작자한테 필요한 태도라고는 생각해요. 너무 빨리 만족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밀고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괜찮은데도 나 자신을 믿지 못했던 시기가 저에게도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여자들에겐 건강한 자뻑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이 얘기가 자기계발서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돌이켜보면 저도 제 가능성이 가장 두려웠거든요. 여자들이 자기 자신을 작게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크고 더 밝게 빛날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 김보라
- 2019년 12월호, ‘여자’라는 키워드로 모인 가수 이상은과 영화 <벌새> 감독 김보라

1 2021년 7월호, 포토그래퍼 표기식이 촬영한 화보집.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 영감받아 포착한 서울 곳곳이 담겼다.
2, 3, 4, 5, 7, 9 2006년 <바자> 코리아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별책.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셀러브리티의 말과 사진을 아카이빙했다.
6 2007년 <바자>가 만난 20명의 신진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소개된 킴 존스. 8 <바자> 코리아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25인의 사진가와 함께 커버를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정호연과 박희정의 얼굴.

Credit

  • 사진/ 김래영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