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에디터라는 직업 탓에 늘 트렌드의 파도 안에 머물고 있지만, 솔직히 때로는 그것이 주는 지나친 속도와 전환, 강한 자극에 피로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늘 클래식과 베이식에 목마름을 고백한다. 개인주의적 취향을 중요시하는 나노 사회에서 레트로와 올드 머니 룩의 인기가 지속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터. 패션계를 이끄는 대모, 미우치아 프라다가 몇 시즌째 푹 빠진 ‘어글리 시크’ 아이템이 있다. 프라다와 미우미우 컬렉션은 물론 스트리트까지 점령한 주인공은 바로 폴로셔츠. 미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켄 번즈는 “우리는 모두 그 물건, 그 소재에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정의하기 어려운 ‘무언가’죠”라고 폴로셔츠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지닌 이 아이템은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세기 중반 인도에서는 승마 선수들이 말에 올라타 있는 동안 칼라가 잘 고정될 수 있도록 버튼 다운 칼라의 롱 슬리브 셔츠를 착용했다. 영국의 식민지 개척자들이 이 스타일을 영국 본토로 가져와 유행시킨 것이 그 시초다. 지금의 폴로셔츠와 비슷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은 1926년 테니스 선수였던 르네 라코스테에 의해서다. 코튼 피케 소재의 숏 슬리브 칼라 셔츠를 직접 디자인하여 US 오픈에서 착용한 것. 르네 라코스테는 셔츠의 체스트에 본인의 별명을 의미하는 악어 로고를 더했고, 은퇴한 1933년 이후 셔츠를 만들어 팬들에게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같은 대통령을 비롯해 빙 크로스비, 밥 호프, 아놀드 파머, 윈저 공작 등의 인사들이 폴로셔츠를 착용했고, 동시에 폴리에스터 소재의 아이비 리그 셔츠 역시 프레피 룩의 대명사로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 1967년 미국 뉴욕에서 출발한 폴로 랄프 로렌이 그 인기에 힘을 실었다.
1972년 실용적이고 관리가 쉬운 인터로크 코튼 소재의 폴로셔츠가 출시됐다. 이는 곧 스포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아메리칸 클래식 스타일의 상징이 된다. 시대와 유행을 거듭하며 꾸준히 사랑받아온 폴로셔츠는 미우치아 프라다를 필두로 2024 S/S 시즌 런웨이의 키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따뜻한 봄에 힙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다면 해답이 되어줄 것이다. 먼저 이 트렌드의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미우미우부터 살펴보자. 남성용 보드 반바지부터 주름진 테니스 스커트와 스포티한 폴로셔츠를 대충 구겨 넣은 스타일이 대거 등장했다. 코튼이 아닌 니트 소재의 폴로셔츠도 눈에 띈다. 구찌의 포인트 칼라 폴로셔츠나 지방시의 모던한 블랙 니트 폴로셔츠는 보다 포멀하게 연출가능하다. 드리스 반 노튼과 디스퀘어드2에서도 키 피스 역할을 하며 컬렉션을 주도한다. 드리스 반 노튼이 보다 여성스러운 무드인데, 박시한 핏의 폴로셔츠는 비즈 장식의 시스루 스커트, 테일러드 재킷과 매치되어 반전 이미지를 꾀한다. 디스퀘어드2는 전형적인 라이프스타일 웨어를 보여준다. 카고 팬츠에 티셔츠 안에 레이어링한 스타일링은 90년대 학창 시절이 떠오르는 추억 어린 룩이다. 브라운과 핑크 컬러 배색이 산뜻한 롱 슬리브 폴로셔츠에 와이드 진을 매치한 MSGM 역시 동시대적인 감성을 대변한다. 오토링거 컬렉션에서 선보인 스윔웨어가 더해진 변형된 홀터넥 폴로셔츠는 여름을 위한 키 아이템으로 눈여겨볼 만하고, 듀런 랜팅크의 크롭트 피케 셔츠는 리아나의 임산부 룩을 떠올리게 했다. 와이드 데님 팬츠에 임신한 배를 자신감 있게 드러내고 폴로셔츠를 크롭트로 연출해 화제를 모았던 스타일 말이다. 로에베의 스트라이프 피케 셔츠를 데님과 빈티지한 레더 블루종으로 쿨하게 연출한 헤일리 비버의 90년대 스타일도 기억해두자. 이번 시즌 폴로셔츠를 입고 싶다면 자유로움만 장착하면 된다. 90년대 스타일로 무심한 듯 쿨하게, 미니 드레스나 시스루 스커트와 매치해 페미닌하게, 때로는 복서 팬츠로 스포티하게, 그 어떤 아이템과도 어우러지며 단숨에 트렌디해 보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