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김성윤이 프리즈 LA에서 솔로 쇼를 선보인다

“현대미술에서는 꽃이 이상하고 희한하게 그려지죠. 하지만 저는 아름다운 꽃은 아름답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성윤은 고전주의 기법으로 꽃을 그리는, 꽤나 희귀한 동시대 정물 화가다. 그가 2월 29일 열리는 프리즈 LA에서 솔로 부스를 선보인다. 한국을 막 떠나기 전, 김포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꽃더미 사이에서.

프로필 by 손안나 2024.02.19
프리즈 LA에서 공개되는 김성윤의 솔로 쇼는 2019년 개인전 «Arrangement»에서 보여준 ‘예술가의 꽃꽂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응축된 시공 안에서 꽃잎이 터지고 부서지고 떨어지고 날린다. 균열이 생기면 그만큼의 가능성도 거기에 깃드는 법이다. 세잔의 ‘사과성’이 그렇듯, 꽃을 매개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세계를 여러 개의 레이어로 분해해볼 수 있다. 나는 무엇보다 새로움이 주류인 현대미술 안에서 정물을 그리는 작가의 예술적 확신이란 얼마나 단단한지 궁금하던 차였다. “현대미술은 제도화된 위반이니까요. 예수상을 만들면 오줌통에 빠뜨려야 하는 거고 성모상을 그리면 코끼리 똥을 발라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런 게 재미없어요.” 그날의 대화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우리는 파격을 위한 파격은 지루하다는 데 동의했다.


하퍼스 바자
2019년 개인전 «Arrangement»에서 17세기 정물화의 양식을 차용하여 현실에선 결코 같은 시공간에서 개화할 수 없는 꽃들을 한데 모아 꽂았죠. 올해 프리즈 LA에서 선보이는 솔로 부스는 이런 시도의 확장판입니다. 꽃잎이 터지고 화기의 유약이 흘러내리면서 생동감이 더해졌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김성윤
꽃의 이름을 외우게 됐습니다. 빨강이라는 단어가 없는 부족은 빨강을 봐도 어떤 색인지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요. 언어가 시각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꽃 이름을 외우게 되면서 꽃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제 그림은 레이어의 총합이고 제 목표는 레이어를 설득력 있게 잘 쌓아서 괜찮은 그림을 만드는 겁니다. 그림 속 리시언더스나 달리아가 하나의 레이어인 것처럼, 물감이 튀거나 꽃이 부서 지는 것 역시 하나의 레이어죠. 말하자면 이미지가 계속 덧붙여지고 있는 건데, 꽃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서 화면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개인적으로 다행인 부분은 그림이 늘었다는 거예요. 제 나이가 이제 마흔인데 아직 그림이 늘고있다는 점에서 어떤 희망 같은 걸 느낍니다. (웃음)
Flowers in the Neo-Buncheong Bottle with Mouse Design in Underglaze Iron Brown, 2023, 116.8 x 91 cm,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Buncheong Bottle with Mouse Design in Underglaze Iron Brown, 2023, 116.8 x 91 cm,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Celadon Bottle in the Shape of Coca-Cola P.E.T Bottle, 2023, 145.5 x 97 cm,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Celadon Bottle in the Shape of Coca-Cola P.E.T Bottle, 2023, 145.5 x 97 cm, Oil on linen.


하퍼스 바자
구글링을 통해 꽃 이미지를 수집하는 본인의 방식을 ‘구글 꽃꽂이’라 명명한 바 있어요. 꽃 이미지는 어떤 과정으로 채집하나요?
김성윤
가끔 우스갯소리로 저를 온·오프라인의 통합을 추구하는 작가라고 말하곤 해요. 구글에서도 찾고 스탁 사이트에서 구입하지만 매주 화요일 밤, 수요일 새벽엔 꽃시장에 방문해요. 시장에서 사온 꽃을 도자기에 얼추 꽂아놓고 촬영하고 보정하고 거기에 온라인에서 채집한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더하고 또 더하죠. 온라인 사진 수집은 거의 ‘노가다’예요. 수만 가지 키워드로 검색하다가 하나 얻어 걸리는 거죠. 이미지를 찾는 일은 언제나 시간과 수고로움을 동반해요. 길을 걷다가 우연히 꽃을 발견하는 일이 그런 것처럼요. 중요한 건, 삶 속에서 쌓인 레이어가 가장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하퍼스 바자
플로리스트는 당신의 꽃꽂이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김성윤
꽃꽂이를 한 번 배우긴 했는데 제 작업과 크게 달랐어요. 저는 꽃의 앞면만 그리지만 플로리스트들은 꽃의 옆면과 뒷면까지 구성하니까요. 오히려 회화보다 조각에 가깝죠. 화가는 꽃이 아닌 붓질로 여백의 공간을 채워야 하니까 완벽한 꽃꽂이를 해서도 안 되더군요.

하퍼스 바자
작업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김성윤
붓질이 잘될 때가 제일 짜릿해요. 매일 잘되는 게 아니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남자와 여자를 그릴 때 골격 차이가 드러나잖아요. 그런데 꽃은 품종에 따라 그만큼 달라요. 아이슬란드포피의 경우엔 꽃잎이 습자지처럼 얇고 주름이 많아서 다른 꽃과 조화롭게 그리기 어렵더라고요. 아무리 그려도 안되는 꽃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어요. 이게 될까? 반신반의한 꽃이 잘 그려지면 그날은 무언가 귀한걸 하나 얻은 듯한 기분이 듭니다.
Flowers in the Neo-White Porcelain Jar with Grapevine Design in Underglaze Iron Brown and Cobalt Blue, 2023, 193.9 x 112.1 cm,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White Porcelain Jar with Grapevine Design in Underglaze Iron Brown and Cobalt Blue, 2023, 193.9 x 112.1 cm,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White Porcelain Jar with Grapevine Design in Underglaze Black, 2024, 193.9 x 112.1 cm,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White Porcelain Jar with Grapevine Design in Underglaze Black, 2024, 193.9 x 112.1 cm,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White Porcelain Jar with Peach Design in UnderglazeCobalt Blue + Gems, 130.3 x 80.3 cm, 2023,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White Porcelain Jar with Peach Design in UnderglazeCobalt Blue + Gems, 130.3 x 80.3 cm, 2023,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 and Clouds Design in Underglaze Cobalt Blue + Gems, 2024, 193.9 x 112.1 cm, Oil on linen.

Flowers in the Neo-White Porcelain Jar with Dragon and Clouds Design in Underglaze Cobalt Blue + Gems, 2024, 193.9 x 112.1 cm, Oil on linen.


하퍼스 바자
동시대에 정물을 그리는 창작자의 태도가 궁금했는데, 정물화의 가능성을 서부영화에 빗댄 당신의 발언이 힌트가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서부라는 공간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갱신되며, 감독들이 서부라는 낡은 토대 위에서 현재의 시점에도 유효한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있는 것처럼 종교화나 역사화, 정물화에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김성윤
들뢰즈는 장르 또한 굉장한 사실 중에 하나라고 말했어요. 장르라는 건 사람들에게 관습화되고 이미 그렇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하나의 사실이라는 것이죠. 김기덕 같은 작가주의 감독의 영화 안에서 왜 작중 인물이 그렇게 행동하는지 저로서는 납득할 수 없어요. 반대로 봉준호의 영화는 철저하게 장르적 틀 안에서 움직입니다. 케이퍼 무비를 즐겨봤던 사람이라면 <기생충>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죠. 우리 모두 공통의 기억을 갖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의외성을 넣으면 균열이 생깁니다. 차이가 크면 사람들의 공감대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차이가 작으면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도 비슷해요. 정물화는 수백, 수천 년의 역사적 토대 위에서 발전했습니다. 저는 정물화를 통해 차이를 벌릴 생각이 없습니다. 보통 현대미술에서는 꽃을 이상하고 희한하게 그리죠. 하지만 저는 아름다운 꽃은 아름답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퍼스 바자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도 예술 작품으로는 아름답게 표현해야 할까요?
김성윤
그런 유미주의자는 아니에요. 단지 대상의 결에 맞게 그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건 아름다워야 하는 거고, 비참한 건 비참해야죠.

하퍼스 바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혁신가를 기억해요.
김성윤
피카소 처럼요. 큰 차이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일 수록 자아가 큰 것 같아요. 어떤 대상을 보고 내 식대로 필터링해서 캔버스에 옮기는 행위엔 그 세상을 내 방식대로 바꿔버리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피카소가 그린 아프리카에는 특유의 우월적인 시선이 들어 있어요. 마티스의 꽃 그림을 보면 그가 실제로 무슨 꽃을 보고 그림을 그린 건지 절대 맞출 수 없죠. 색이나 붓질로 원래 대상이 가진 속성을 지웠기 때문이고 거기엔 약간의 폭력적인 시선이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런 쪽과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멀어요. 제 관심은 차이를 크게 만드는 게 아니라 차이를 분명하게 만드는 겁니다.

하퍼스 바자
전통 혹은 과거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모더니스트들에게 과거는 부정해야 되는 안티테제로 다가오지만 나에게 과거는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물 같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김성윤
미술사의 도상을 사진으로 연출하는 제프 월은 "현대미술은 위반이 제도화된 시스템"이라고 말했어요. 현대미술에선 위반이 일반적이고 제도가 위반을 강요한다는 거죠. 그의 말이 지금까지도 와닿습니다. 1900년대 이전의 모든 화가들은 인류가 몇 천 년 동안 했던 것들을 오마주하면서 살았어요. 루벤스가 그랬고 심지어 마네도 그랬죠. 사람들은 마네가 전통미술과 단절하고 혁신하고 싶었던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르누아르를 주축으로 한 낙선전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계속해서 살롱에 들어가고 싶어했어요. 당시 파리의 일상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면서 마네가 선택한 방식 또한 전통적인 도상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마네도 전통과 과거를 존중했던 사람인 겁니다. 마네처럼 과거의 유산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는 것은 중요해요. 새로움에 너무 강박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요즘은 90년대 음악을 새롭게 고치기도 하잖아요? 과거는 무궁무진해요.

하퍼스 바자
19세기 존 싱어 사전트의 초상화나 아두아르 마네의 정물화가 당신의 다음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죠. 요새 흥미롭게 들여다보는 과거의 유산은 무엇인가요?
김성윤
다음은 종교화를 시도하지 않을까 싶어요. 현대미술에서 종교는 무조건 해체해야 하고 배격해야 하는 존재죠. 한마디로 모두가 리처드 도킨스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웃음) 현대미술은 제도화된 위반이니까요. 예수상을 만들면 오줌통에 빠뜨려야 하는 거고 성모상을 그리면 코끼리 똥을 발라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런 게 재미없어요.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한 개인이 쉽사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그걸 현대에 맞게 갱신하는 것이겠죠. 진심과 사력을 다해 신과 종교를 탐구해보고 싶어요.

하퍼스 바자
어쩌면 당신은 요즘 같은 초미래 사회에 가장 반동적인 인물일지도요.
김성윤
기술이 발전하고 챗gpt 같은 게 생겨난다고 해서 세상이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윈의 말처럼 진화가 진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튼 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입니다. 큰 사람 둘이 싸우는 게 제일 싫어요. 여러 사람들이 서로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하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이고 희망적이겠죠. 제가 현대 미술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다양성에 있어서 그 어떤 세계보다 열려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저 하나쯤은 새로움을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일은 그게 아니에요.

Credit

  • 사진 / 갤러리현대 제공 김형상
  • 어시스턴트 / 조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