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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고래와 나>를 촬영한 김동식 감독이 마주한 바다

SBS 다큐 <고래와 나>를 촬영한 김동식 수중촬영 감독은 바다가 변했다고 말한다. 지난 40여 년간 바다의 현재를 담아온 그의 눈에는 지금 어떤 것이 보일까?

프로필 by 고영진 2024.02.01
하퍼스 바자 <고래와 나>가 있기 한참 전부터 고래를 쫓아왔다. 수중촬영 경력만 40년이 넘는다고. 고래와의 첫 만남은 언제였나?
김동식 처음 만난 건 2003년, 하와이 마우이섬에서다. 그땐 촬영 허가를 받는 일이 워낙 까다로워 촬영감독이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몸을 배에 최대한 밀착시켜 엎드린 채 카메라만 물속에 담가 찍었다. 이름도 모르는 고래 두 마리가 카메라 앞으로 성큼 다가왔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압도감을 느꼈다. 논리적으로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그냥 그 순간부터 푹 빠진 것 같다. <고래와 나>의 촬영을 함께한 임완호 촬영감독도 나와 같은 부류다. 고래를 짝사랑하는 인간.(웃음) 올해 3월 말쯤 우리는 고래를 찍기 위해 또 한 번 모리셔스로 향한다. 세팅도 이미 끝났다.
하퍼스 바자 지금껏 주로 인간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자연 생태를 담아온 것에 비하면 <고래와 나>는 사뭇 다른 행보로 읽힌다.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
김동식 임완호 감독과 나는 사람 다루는 이야기는 배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다큐에는 사람이 여럿 등장한다. 언뜻 보면 고래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만큼 고래를 쫓는 ‘사람’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고래에게 벌어지는 일은 곧 우리에게 벌어질 일이나 다름없다. 이큰별 PD의 연락을 받았을 때, 그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퍼스 바자 자연을 촬영할 땐 어떤 상황에서도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위험에 노출된 야생의 고래들에게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이 이는 순간이 많았을 것 같다. 이를테면 모리셔스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를 해파리 같은 해양 생물로 착각하고 먹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향고래를 볼 때처럼 말이다.
김동식 사실 향고래를 찍기 전부터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비닐봉지들을 여러 번 발견했었다. 보이는 족족 수거하면서도 고래들이 먹잇감으로 착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향고래를 촬영하는 날에도 버젓이 떠다니고 있었다. 고래들끼리 그 봉지를 먹으려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찍는 몇 초 동안 수없이 고민했다. 원칙대로라면 개입하지 않는 것이 맞지만, 새끼 고래까지 싸움에 합세하는 것을 보고서는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비닐봉지가 고래 주변을 살짝 벗어났을 때 재빨리 수거했다. 지금 그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진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하퍼스 바자 전 세계 20개국을 다니며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희귀한 장면들을 여럿 담았다.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나?
김동식 모리셔스에서 향고래의 다양한 모습을 찍었다. 키스하는 두 마리의 고래, 새끼가 어미의 젖을 먹을 모습. 모두 쉽게 보기 힘든 장면이다. 서서 자는 향고래는 꼭 보고 싶었는데 운이 좋게도 담을 수 있었다.

하퍼스 바자 대왕 고래를 포착하러 간 스리랑카에서는 아무것도 찍지 못한 채로 돌아와야 했다.
김동식 그땐 완전 패잔병이 된 기분이었다.(웃음) 그렇게까지 아무것도 찍지 못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쪽 바다에서 플라스틱 원료를 싣던 큰 배의 사고가 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기름이 대량 유출되어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방송에 나온 장면처럼 바다 표면에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광경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하퍼스 바자 오랜 시간 바다를 촬영하며 피부로 느끼는 변화도 있을 것 같다. <고래와 나>를 찍는 동안 어떤 것이 보였나?
김동식 제주도 용머리 해안은 군인 시절 훈련을 받던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데, 그땐 둘레길처럼 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에 다 잠겨서 걸을 수가 없다. 2100년쯤에는 그 지역 해수면이 1m 가량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단다. 작년 8월에는 독도 표층 수온이 30도까지 올랐다. 2005년부터 독도 수중촬영을 한 것만 따지면 1,200회가 훌쩍 넘는데 지금껏 그토록 따뜻한 물은 처음이었다. 십여 년 전과 비교해 보자면 물의 맑기부터 다르다. 제주에서는 최근 3~4년간 열대성 해양 생물인 바다뱀이나 남태평양의 따뜻한 물에 사는 파란 고리 문어가 심심찮게 보인다. 반박할 여지 없이, 바다는 정말 많이 변했다.

하퍼스 바자 환경 다큐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동식 <고래와 나>를 찍으며 또 한 번 느꼈다. 시청률을 떠나 지구 환경에 관심을 촉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더 많이, 자주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지구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늦출 수는 있다. 아주 작은 관심과 행동으로도 가능하다는 걸 얘기해 줄 수 있는 게 환경 다큐고.
하퍼스 바자 그 마음이 지난 30여 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고래를 쫓도록 만들어줄 동력이기도 하겠다.
김동식 그렇다. 나는 가능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카메라를 내려놓을 때까지 앞으로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른다. 어쩌면 죽을 때쯤이 되어서야 끝이 날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아 보여주는 것도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계속하려 한다.


Credit

  • 사진/ <고래와 나> 스틸컷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