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다큐 <고래와 나>를 촬영한 김동식 감독이 마주한 바다
SBS 다큐 <고래와 나>를 촬영한 김동식 수중촬영 감독은 바다가 변했다고 말한다. 지난 40여 년간 바다의 현재를 담아온 그의 눈에는 지금 어떤 것이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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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처음 만난 건 2003년, 하와이 마우이섬에서다. 그땐 촬영 허가를 받는 일이 워낙 까다로워 촬영감독이 물에 들어갈 수 없었다. 몸을 배에 최대한 밀착시켜 엎드린 채 카메라만 물속에 담가 찍었다. 이름도 모르는 고래 두 마리가 카메라 앞으로 성큼 다가왔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압도감을 느꼈다. 논리적으로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그냥 그 순간부터 푹 빠진 것 같다. <고래와 나>의 촬영을 함께한 임완호 촬영감독도 나와 같은 부류다. 고래를 짝사랑하는 인간.(웃음) 올해 3월 말쯤 우리는 고래를 찍기 위해 또 한 번 모리셔스로 향한다. 세팅도 이미 끝났다.
하퍼스 바자 지금껏 주로 인간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자연 생태를 담아온 것에 비하면 <고래와 나>는 사뭇 다른 행보로 읽힌다.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
김동식 임완호 감독과 나는 사람 다루는 이야기는 배제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다큐에는 사람이 여럿 등장한다. 언뜻 보면 고래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만큼 고래를 쫓는 ‘사람’의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고래에게 벌어지는 일은 곧 우리에게 벌어질 일이나 다름없다. 이큰별 PD의 연락을 받았을 때, 그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김동식 사실 향고래를 찍기 전부터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비닐봉지들을 여러 번 발견했었다. 보이는 족족 수거하면서도 고래들이 먹잇감으로 착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향고래를 촬영하는 날에도 버젓이 떠다니고 있었다. 고래들끼리 그 봉지를 먹으려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찍는 몇 초 동안 수없이 고민했다. 원칙대로라면 개입하지 않는 것이 맞지만, 새끼 고래까지 싸움에 합세하는 것을 보고서는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비닐봉지가 고래 주변을 살짝 벗어났을 때 재빨리 수거했다. 지금 그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진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하퍼스 바자 전 세계 20개국을 다니며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희귀한 장면들을 여럿 담았다.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나?
김동식 모리셔스에서 향고래의 다양한 모습을 찍었다. 키스하는 두 마리의 고래, 새끼가 어미의 젖을 먹을 모습. 모두 쉽게 보기 힘든 장면이다. 서서 자는 향고래는 꼭 보고 싶었는데 운이 좋게도 담을 수 있었다.

김동식 그땐 완전 패잔병이 된 기분이었다.(웃음) 그렇게까지 아무것도 찍지 못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쪽 바다에서 플라스틱 원료를 싣던 큰 배의 사고가 난 적이 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기름이 대량 유출되어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방송에 나온 장면처럼 바다 표면에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광경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하퍼스 바자 오랜 시간 바다를 촬영하며 피부로 느끼는 변화도 있을 것 같다. <고래와 나>를 찍는 동안 어떤 것이 보였나?
김동식 제주도 용머리 해안은 군인 시절 훈련을 받던 곳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데, 그땐 둘레길처럼 돌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에 다 잠겨서 걸을 수가 없다. 2100년쯤에는 그 지역 해수면이 1m 가량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단다. 작년 8월에는 독도 표층 수온이 30도까지 올랐다. 2005년부터 독도 수중촬영을 한 것만 따지면 1,200회가 훌쩍 넘는데 지금껏 그토록 따뜻한 물은 처음이었다. 십여 년 전과 비교해 보자면 물의 맑기부터 다르다. 제주에서는 최근 3~4년간 열대성 해양 생물인 바다뱀이나 남태평양의 따뜻한 물에 사는 파란 고리 문어가 심심찮게 보인다. 반박할 여지 없이, 바다는 정말 많이 변했다.

김동식 <고래와 나>를 찍으며 또 한 번 느꼈다. 시청률을 떠나 지구 환경에 관심을 촉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더 많이, 자주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지구의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늦출 수는 있다. 아주 작은 관심과 행동으로도 가능하다는 걸 얘기해 줄 수 있는 게 환경 다큐고.
하퍼스 바자 그 마음이 지난 30여 년간, 그리고 앞으로도 고래를 쫓도록 만들어줄 동력이기도 하겠다.
김동식 그렇다. 나는 가능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카메라를 내려놓을 때까지 앞으로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른다. 어쩌면 죽을 때쯤이 되어서야 끝이 날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아 보여주는 것도 누군가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계속하려 한다.

Credit
- 사진/ <고래와 나> 스틸컷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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