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다큐 <고래와 나>를 만든 사람들
SBS 창사 특집 다큐 <고래와 나>는 전 세계 20개국 30여 곳의 지역을 다니며 그간 국내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고래의 면면을 포착했다. 시작점은 달라도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점에서, 환경 다큐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그 시작을 고래에서 찾은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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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스 바자 <고래와 나>는 어떻게 시작된 기획인가?
이큰별 고래는 지금껏 국내에서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다뤄진 적이 없는 동물이다. 한국에서도 이만큼 찍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부터 환경 다큐를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촬영을 하다보니 고래는 결국 인간의 활동과 그로 인한 지구의 변화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하퍼스 바자 환경의 변화로 인해 달라진 고래 생태계의 현주소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를테면 지구온난화로 먹잇감을 잃은 북극곰이 급기야 벨루가(흰돌고래)를 사냥하는, 뒤엉킨 먹이사슬 같은 것 말이다. 인간에 의해 질서가 망가진 자연의 모습을 목도한 기분은 어땠나?
이큰별 북극곰이 벨루가를 사냥한다는 건 자연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수많은 예 중 하나다. 벨루가는 정말 예민해서 한번 위협을 당하면 1~2시간 동안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북극곰은 바위 위에서 그저 넋 놓고 벨루가를 기다리는데 그 모습이 참 슬펐다. 몇 날 며칠을 보고 있자면 바다 위 빼꼼 고개를 내민 바위가 지구고 그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곰이 인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 쓸 도리 없이, 망망대해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인간. ‘생각 없이 살다가는 우리 모두가 결국 저렇게 죽겠구나’ 싶었다. 그 장면을 찍으려고 고군분투한 날 저녁엔 숙소로 돌아가 아프고 불편한 감정을 삼켜야 했다.

이큰별 자연은 역치가 높아 웬만해서는 티가 잘 안 난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된다. 북극곰과 벨루가의 먹이사슬을 촬영한 곳은 북극 툰드라 지역의 영구동토층(permafrost)이다. 2년 이상 영하의 온도를 유지한 땅인데, 고대의 메탄가스가 언 채로 묻혀 있다. 문제는 기온이 높아지면서 이 땅이 녹고 있다는 것이다. 잠들어 있던 메탄가스는 대기 중으로 방출되고, 온난화는 더 심해진다. 실제로 가보면 말도 못할 정도로 모기가 많다. 카메라가 돌지 않을 땐 모두 머리에 방충망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북극에서. 그 모습을 보는데 지구가 한계를 넘어섰구나, 생각했다.
이은솔 나에겐 3화에서 다룬 죽은 보리고래 에피소드가 시사하는 바가 컸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고래인 데다 평균 70년 수명을 가진 종인데, 죽은 고래는 고작 1살이었다. 부검을 해보니 온갖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였고 장에서는 닳지도 않은 대만산 플라스틱 컵 뚜껑이 발견됐다. 그때부터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 같다.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지구 안에서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고, 고래의 현재를 보여주는 일은 그래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은솔 환경 다큐를 만들며 무력감을 느낀다면, 몇 달간 고생해 만든 게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고래와 나>를 만들며 느낀 건 좀 달랐다. 그런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현실들이 공포스러울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두려움은 뭐라도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생분해되는 옥수수 수세미를 쓰는 일이라도 일단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거다. 이걸 보며 누군가 나와 같은 걸 느꼈다면 우리 역할은 다한 것 아닐까.
하퍼스 바자 환경 다큐멘터리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은솔 <고래와 나>의 시청자 후기를 보면 ‘웨일 와칭(Whale Watching)’을 하고 싶어졌다는 반응이 많다. 그걸 보면서 다큐도 호기심과 욕망을 부추기는 콘텐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심을 갖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경험을 원하는 건 분명 다른 얘기다. 시간이 지나면 그 욕망이 어떤 행동을 불러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선순환을 기대해볼 수 있는 장르라는 건데. 이것만으로도 오래 지속되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하퍼스 바자 4부작으로 구성된 <고래와 나>는 다큐 중에서도 비교적 긴 호흡이다.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 라인은 어떻게 설정했나?
홍정아 사실 기획한 대로 되는 다큐는 정말 못 찍은 거다. 다큐 제작진들은 새로운 프로그램 시작에 앞서 늘 이런 말을 한다. “이 끝이 어디에 가서 닿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처음 기획과 마지막 결과물을 비교해보면 항상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담고 진짜 현장의 사람을 쫓아다니는 일이니 살아있는 생물을 다루는 일이나 다름없어서 그렇다. 그럼에도 아주 뚜렷한 목표는 하나 있었다. 고래를 좋아하게 만들자는 것. 사람은 좋아하는 게 있을 때 움직인다. 사랑에 빠지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목숨을 걸 기세로 파고든다. 일단 고래를 좋아하게 되면 뭘 해야 하는지 느끼게 될 거란 생각이었다. 그게 곧 환경을 살리는 일이고. 도덕적, 윤리적 이유를 찾는 거 말고 그냥 좋아서 하는 것. 가장 확실한 동기다.
하퍼스 바자 고래만큼이나 고래를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어떤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나?
홍정아 25년간 IMF 부국장으로 일한 경제학자 랄프 차미(Ralph Chami)가 그랬다. “우리는 이미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알고 있고, 그저 실행에 옮길 엄두가 나지 않을 뿐”이라고. 맞다. 만약 내 친구와 가족이 고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걸 본다면 지금 당장 뭐라도 할 거다. 그 대상이 고래가 됐으면 좋겠다.

홍정아 만들 때마다 늘 반복되는 딜레마다. 모든 제작진이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무조건 죽은 고래는 찍자”는 거였다. 그래야 사람들이 집중을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살아있는, 아름답고 위엄 있는 고래의 모습도 담아야겠지만 그 장면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역할을 해낼 순 없다. 하지만 죽은 고래에게는 눈길을 준다. 잔인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가뜩이나 재미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데다 웬만해서는 자발적으로 찾아 볼 일이 잘 없는 환경 다큐는 더 그렇다. 그러니 충격과 자극이 될 장면을 먼저 보여줘서라도 관심을 끈 뒤에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펼쳐 놓자는 생각이다. 일단 보기만 한다면 누구나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뭐라도 행동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 거라는 확신은 있다.

홍정아 자연 다큐를 만든 지 20년도 더 됐다. 그때도 지금도 자연 훼손과 오염이 심각하다 느껴지는 건 같다. 환경 문제는 새롭게 생겨나는 게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늘 있어왔으니까. 어느 한 문제가 크게 보이기보다 이제 모든 것이 다 환경 문제와 얽혀 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 굳이 희망적인 부분을 찾아보자면 깨어 있는 젊은 세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요즘 20~30대는 이대로 가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의 영화에서 보던 그 시대를 살 날이 머지않았다는 위기감. 랄프 차미의 말처럼 우리는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아질 수 있다.
하퍼스 바자 환경 다큐멘터리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홍정아 우리 같은 ‘방송쟁이’들에게 환경 다큐는 절대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시청률도 안 나오고, 제작비는 많이 드는 데다가 고생은 또 얼마나 하나. 딱히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웃음) 하지만 환경은 곧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계속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라는 거다. 삶의 어떤 것도 생존권을 앞설 순 없다. 이 기본적인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환경 다큐다. 앞으로 환경은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언제든 우리 모두에게 직면한 가장 큰 화두일 테니까. 자연스레 드라마나 영화, 예능에서도 환경을 다루는 시도들이 많아질 거라고 본다. 다큐도 꾸준히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Credit
- 사진/ <고래와 나> 스틸컷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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