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조용한 럭셔리가 가고, 이것이 온다!

화려한 낭만의 시대, 로코코 스타일의 부활.

프로필 by 이진선 2026.05.21

BONJOUR, ROCOCO


화려한 낭만의 시대여 다시 오라!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의 열풍을 잠재울 로코코 스타일이 런웨이에 회귀했다.


 Saint Laurent

Saint Laurent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조용한 럭셔리’의 고요함에 질린 걸까? 미니멀리즘과 실용주의적 워크웨어 혹은 날것의 세기말(Y2K) 감성에 권태감을 느낀 디자이너들이 그에 대한 해방책으로 가장 화려하고 장식적인 시대의 미학을 소환했으니. 바야흐로 18세기 로코코 스타일의 귀환! 그로 인해 2026 S/S 시즌 몇몇 런웨이는 베르사유 궁전의 연회장을 연상케 하는 역사적 장엄함과 정교한 공예미, 우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로코코로의 회귀는 단순한 트렌드의 순환이 아니다. 끊임없는 디지털 소음과 알고리즘의 지배 속에서 정서적 풍요로움과 장인정신의 미학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의도적인 반격’이라 할 수 있겠다. 팬데믹 이후 지속된 미니멀리즘의 건조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서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옷’을 원하게 된 것. 여기에 불확실한 시대 상황도 한몫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중은 오히려 견고한 과거의 질서나 압도적인 우아함에서 심리적 안정과 품격을 찾기 마련이다.

 Giambattista Valli  Max Mara  chanel  Erdem  Vaquera  Carolina Herrera

잘 알려져 있듯 로코코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된 매우 장식적인 예술 및 문화 양식으로, 이름은 조개껍데기나 자갈 양식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카유(rocaille)’에서 유래되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우아함과 화려함, 그리고 유희(遊戱). 또 바로크 시대의 대칭성과 엄격함에 정면으로 맞섰던 양식이었으며 아낌없는 탐닉과 과잉의 시대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숨김 없이 낭만적인 실루엣, 다채로운 소재를 활용해 수작업으로 완성되는 화려한 장식이 로코코 시대의 패션을 대변한다.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도 로코코 스타일이 과거의 아이디어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Simone Rocha  Antonio Marras  Simone Rocha  Dior  Meruert Tolegen  Balenciaga  Caroline Hu  Giambattista Valli

“구조와 실루엣의 감각은 현대 여성의 옷장에도 아름답게 녹아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르뎀을 이끄는 에르뎀 모랄리오글루의 말이다. 19세기 영매(靈媒)이자 예술가인 엘렌 스미스(H´el`ene Smith)로부터 영감을 받은 2026 S/S 컬렉션을 선보인 그.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에르뎀은 하이퍼 미니멀리즘의 물결에서 벗어나, 복잡하고 정교한 옷차림이 선사하는 ‘존재감’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다. 에르뎀을 비롯해 오늘날의 로코코 스타일은 오트 쿠튀르에 가까운 정교한 텍스처와 과장된 실루엣, 빅토리안풍의 보태니컬 프린트, 달콤한 파스텔 컬러로 발현된다. 이번 시즌에 참고하면 좋을 컬렉션은 디올, 생 로랑, 시몬 로샤, 막스마라, 안토니오 마라스, 발렌시아가, 캐롤라인 후, 지암바티스타 발리, 바퀘라. 특히 디올, 시몬 로샤, 캐롤라인 후 쇼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파니에(panier, 18세기 드레스 실루엣을 부풀리는 속치마 틀)의 활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발견으로는 LVMH 프라이즈와 CFDA/보그 패션 펀드의 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뉴욕의 디자이너 메루에르 톨레겐(Meruert Tolegen)을 꼽을 수 있겠다. 로코코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인 프라고나르(Fragonard)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대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림 자체와 그림 속 의복에 깃든 숙련된 기술에 매료된다고. “그 옷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순 없지만, 복잡한 자수와 비즈 장식에 얼마나 정교한 기술이 들어갔는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됩니다.” 메루에르의 2026 S/S 컬렉션 역시 런던의 V&A 박물관에서 재조명될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을 연상케 했는데, 이번 로코코 트렌드가 흥미롭게 다가온 이유도 런웨이를 넘어 박물관과 스크린에서도 이를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올해 2월,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의 개봉 20주년을 맞이해 런던 V&A 뮤지엄에서 열린 전시 «마리 앙투아네트: 스타일, 신화, 그리고 스크린(Marie Antoinette: Style, Myth and the Screen)»은 큰 화제를 모으며 패션계에 로코코의 부활을 일으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마고 로비와 제이콥 엘로디가 주연을 맡은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폭풍의 언덕>, 넷플릭스의 <브리저튼> 시리즈, 1880년대 뉴욕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 HBO 드라마 <길디드 에이지>의 인기가 18세기와 19세기의 미학을 우리의 옷장에 전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인기를 모은 코케트코어(coquette core, 요염한 여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코케트’에 스타일을 뜻하는 ‘-코어’가 결합)나 발레코어 같은 마이크로 트렌드가 한층 성숙해지고 정교해지면서 그 최상위 층에 있는 로코코 복식에 힘을 실어주게 된 것이다.

2026 멧 갈라에서 디올의 섬세한 레이스 드레스를 선택한 조이 크래비츠. 스텔라 매카트니의 커스텀 드레스를 입은 케이티 페리. 범선을 형상화한 드라마틱한 헤드피스가 인상적이었던 마돈나. 어맨다 사이프리드는 프라다의 클래식한 핑크 볼 가운을 선보였다. 로코코 회화에서 영감을 받은 베르사체 드레스로 주목을 받은 블레이크 라이블리.

“패션은 개인적인 연극이다. 그중 18세기는 우리에게 가장 풍요로운 의상 창고를 제공한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소설가, 의상 연구가인 제임스 레이버(James Laver)가 남긴 말처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정교하게 제작된 옷만큼 사치스러운 건 없는 듯하다. 때문에 그것이 1980년대 로큰롤의 재현이든, Y2K에 대한 헌사이든 눈에 보이는 화려한 장식이 대세로 돌아온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우리는 ‘패션은 예술이다(Fashion is Art)’를 주제로 한 2026 멧 갈라 레드 카펫을 통해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 로코코 시대의 부활은 불안한 경제상황 속에서 패션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판타지이자 ‘해독제’가 아닐까 싶다.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다시 로코코를 찾는 것도 차가운 디지털 시대에 지친 이들에게 그때의 낭만적인 풍요로움을 다시금 선물하고 싶어서가 아닐는지.


Credit

  • 사진/ Getty Images, Launchmetrics
  • 디자인/ 이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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