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패션계의 대대적인 리셋’이라 할만하다. 로빈 기한이 본 지금 런웨이 위에서 벌어지는 격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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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SON OF CHANGE
이번 시즌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패션계의 대대적인 리셋’이라 할 만하다. 유서 깊은 하우스 가운데 무려 10여 곳이 넘는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데뷔전을 치르며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과연 무엇을 바꿀까? 정말로 모든 것을 바꾸게 될까? 미국을 대표하는 저명한 패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로빈 기번(Robin Givhan)이 지금 런웨이 위에서 벌어지는 격변을 들여다본다.
패션에 대해 글을 써온 지난 시간 동안, 나는 한 시즌도 빠짐없이 독자(대개 남성)에게서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아왔다. 왜 런웨이 모델들은 그렇게 무표정하냐는 것이다. 왜 웃지 않느냐고. 때로 그 질문 속에 숨어 있는 미묘한 여성 혐오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도 있다. 왜 이 젊은 여성들이 당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웃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모델은 컬렉션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또 디자이너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인함이나 긴장감, 혹은 힘일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 체셔 고양이(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에 등장하는 가공의 고양이) 같은 미소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때로 훨씬 단순하다. 요청에 맞춰 자연스럽게 웃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니까. 우리의 어색한 가족 사진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지 않나.
그러나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데뷔 쇼에서 마지막 워킹을 장식한 모델 아와르 오디앙의 표정은 진지하면서도 반짝이는 생동감이 있었다. 남수단계 캐나다 모델인 그녀는 파리의 그랑 팔레 안에서 마지막 원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펼쳤다. 반짝이는 화이트 블라우스는 몸을 따라 부풀어 올랐고, 바닥을 스치는 스커트는 마치 색종이 폭죽 같은 축제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감동했고 나 역시 그랬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비즈니스가 움직이는 긴장된 데뷔 순간, 그리고 세상이 점점 광기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이 시기에, 한 젊은 흑인 이민자 여성이 거리낌없는 기쁨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대담했다. 블라지의 첫 샤넬 컬렉션에는 하우스의 상징인 부클레 수트를 떠올리게 하는 가벼운 재킷, 셔츠 브랜드 샤르베와 협업한 오버사이즈 셔츠, 그리고 남성복풍의 루스한 트라우저가 등장했다. 하지만 그 어떤 드레스보다 1910년에 탄생해 오늘날 여성성의 신화와 글로벌 산업의 궁극적인 결합체가 된 샤넬의 새로운 시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 것은, 그녀의 미소였다. 그 미소는 마치 단단히 잠겨 있던 아카이브의 문이 열리며, 한 줄기 바람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 것만 같았다. 샤넬의 모든 요소는 그대로였지만, 훨씬 젊고 신선한 방식으로 소구하는 듯했다. 그것은 특정 세대를 위한 옷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고, 유효하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은 모든 여성들의 보편적인 욕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샤넬은 시작에 불과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파리의 거대 럭셔리 하우스부터 21세기 초 뉴욕에서 탄생한 신생 브랜드까지, 약 15개 패션 하우스가 2026년 봄 시즌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야말로 패션 수도 전반에 걸친, 격변의 순간이었다. 지반은 분명 흔들렸다. 하지만 어떻게? 얼마나 깊이?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 많은 이들은 이미 익숙한 얼굴이다. 발렌시아가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 디올의 조너선 앤더슨, 로에베의 잭 맥컬로 & 라자로 에르난데스, 구찌의 뎀나. 사실 이들에게 변화란 단지 지리적 이동일 뿐이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은 놀라운 영감을 낳기도 한다. 새로운 ‘동네’로 이주한 이들의 대부분은 남성, 대개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대다수가 백인이다. 패션계가 다양성과 포용을 이야기하고, 2020년 ‘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수많은 검은 사각형을 SNS에 올리며 연대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이러니하지만, 결국 산업은 익숙한 인물들을 다시 선택했다. 물론 그들은 모두 재능 있는 디자이너다. 아, 여기 예외도 있다. 보테가 베네타의 루이스 트로터는 여성이고, 피치올리 또한 백인이지만 58세이므로 밀레니얼 세대는 아니다. 이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뉴욕에서는 자메이칸 여성인 레이첼 스콧이 프로엔자 스쿨러에 안착했고, 지난 10월 에르메스는 남성복 컬렉션의 디자이너로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를 정식 기용, 내년 F/W 데뷔를 알렸다. 웨일스 보너의 임명은 의미심장하다. 자메이카계 아버지를 둔 그녀는 유럽의 전통적인 럭셔리 하우스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된 첫 흑인 여성이다.
우리는 그들 덕분에 내일은 어제와 똑같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또 기대한다. 적어도, 뭐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모든 디자이너는 자신의 일부를 작품 속에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X세대, 여성성, 혹은 흑인 디아스포라(Diaspora, 본국을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의 경험을 가진 이들의 작은 조각이 그동안 패션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느꼈던 누군가에게 가 닿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는 늘 작은 결정과 행동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모여 문화의 방향을 바꾼다는 걸 보여주었다. 파괴적인 글로벌 전쟁, 소수자 우대 정책, 피임약의 등장은 수백만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이끌었고, 결국 ‘직장인 여성복’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탄생시켰다. 힙합, 서핑, 스케이트보드 문화는 럭셔리 스트리트 웨어를 만든 공신이다. 그런가 하면 기술과 팬데믹은 사람들이 럭셔리를 어떻게 사게 되고, 얼마를 지불하며, 나아가 ‘럭셔리란 무엇인가’를 재정의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디올 런웨이에 넘쳐난 데님은 럭셔리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베르사체에서 다리와 사타구니 라인을 강조한 다리오 비탈레의 팬츠는, 이전 세대보다 성관계가 줄어들고 그와 함께 불안과 우울이 증가하고 있다는 20대, 특히 남성들의 연구 결과와 어떤 상호작용을 가지게 될까? 안타깝게도 비탈레는 데뷔 두 달 만에 베르사체를 떠났다. 아마 역사상 남을 만한 기록일 것이다. 우리에겐 그의 컬렉션을 충분히 소화할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시선을 붙잡았고 고개를 돌리기보다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패션은 늘 사람들에게 예의와 친절로 다가갔다. 이민자들이 지닌 풍요로움, 다양성, 그리고 여성성의 가치를 어떻게 찬미할 수 있는지 더 넓은 문화적 측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추함은 과감히 찢겨졌다.
이번 시즌 어디에나 등장한 프린지는 또 어떤가. 나는 특히 보테가 베네타에 등장한, 눈이 부실 듯한 노랑과 오렌지의 유리섬유 프린지를 좋아했다. 마치 루이스 트로터가 오래된 컴퓨터 메인보드 더미를 파쇄기에 넣어 만든 것 같았다. 발렌시아가의 프린지는 더 섬세했는데, 케이프 주위를 감싸며 결을 이룬 흰 구름 같았다. 디자이너들은 지금 무언가를 찢고 싶은 기분인 걸까. 삶의 크고 작은 좌절은 그런 충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까. 이 순간은 1997년을 떠올리게 한다. 그 해에도 패션 하우스들은 새로운 디자이너를 대거 영입했다. 마크 제이콥스는 핸드백과 러기지로 잘 알려졌던 루이 비통에 영입되어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진두지휘했고, 마이클 코어스는 셀린에 기용되었으며, 나르시소 로드리게즈는 로에베에 스카우트 되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클로에에 데뷔했고,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낙점되었다. 그리고 뉴욕에서 랄프 로렌은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이 시기는 좋은 아카이브만 있다면 어떤 브랜드든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낸 때였다. 그리고 모든 패션 하우스는 한계 없는 성장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클수록 좋다는 논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1997년 럭셔리 비즈니스는 주식 시장에서 석유와 자동차와 함께 거래되는 기업적 상품이 되기 시작했다. 그사이 힙합은 미국 문화의 거대한 흐름으로 성숙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럭셔리 브랜드와 그것이 암시하는 개인의 경제적 성공, 사회적 지위에 강하게 매혹된 문화였다. 한편 패션계에서는 비쩍 마른 모델과 헤로인 시크(1990년대 중반 창백한 피부, 다크서클, 각진 얼굴, 무심한 헤어 등 마치 약물 중독자처럼 보였던 스타일), 미니멀리즘이 불러온 대대적인 백인 중심화를 지나서 다양성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빌 클린턴이었고, 그는 패션 산업이 마약 중독을 미화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살해됐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패션은 영향력과 그림자를 모두 안은 채 대중문화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게 됐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보는 변화도 그러한 맥락 속에서 바라볼 만하다. 우리는 지금 젠더, 이민, 인종을 둘러싼, 때로는 거칠고 비문명적이기까지 한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남성으로서 특권과 권력을 지닌 채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극우 진영 일각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백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성의 신체적 자기 결정권이 여전히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지금,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경험일까. 전 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패션계에서, 미국과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고개를 드는 민족주의와 고립주의적 기류는 어떤 함의를 지닌 걸까. 그리고 이 모든 현실 속에서, 순수하고도 본능적인 기쁨을 찾아내고 그것을 마음껏 만끽하려 한다면, 과연 우리 자신은 얼마나 대담해야 할까.
나는 피치올리가 선보인 발렌시아가의 여유로움에 매료되었다. 또 동시에 전임자 뎀나가 구축해온 세계를 곧장 허물어 버리지 않았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업에는 품위와 우아함이 깃들어 있었다. 하우스의 상징적인 드레스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옷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뎀나 특유의 부풀린 실루엣을 참조하는 제스처도 잊지 않았다. 우아한 보호막처럼 몸을 감싸는 벌룬 재킷에 벨벳 플립플롭의 선택지까지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성 고객에게 선뜻 내주지 않는 가장 큰 선물, 주머니를 빼놓지 않았다! 그의 옷은 여성의 편에 선 옷이자 예의를 갖춘 지금 시대의 옷처럼 보였다. 한편 뎀나는 구찌 데뷔 컬렉션에서 런웨이 쇼라는 형식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사진과 더불어, 데미 무어가 출연한 단편영화 <타이거>, 그리고 프리미어를 기념하는 브라운 카펫(레드가 아닌)을 통해 구찌에서의 작업을 공개했다. 컬렉션은 구찌의 1960~70년대 젯세터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커다란 리본 장식 드레스, 플라워 프린트, 마라부 트림(marabou trim), 대나무 손잡이 핸드백 같은 요소는 그 시절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영화는 한 가문의 여성 가장과 비즈니스, 뒤틀린 가족 관계, 그리고 미디어를 둘러싼 이야기로, 패션을 동시대 사건처럼 풀어낸 서사였다. 보테가 베네타에서 트로터는 젠더 스펙트럼을 둘러싼 논쟁, 전업 주부에 대한 담론, 그리고 브로 컬처(브로맨스)에 대한 문화적 공방에서 한 발 비켜설 수 있는 신중한 제안을 내놨다. 런웨이 위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섰고, 서로 대화를 나누듯 연결되면서도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옷을 입고 있었다. 여유로운 실루엣의 팬츠와 날렵하면서도 볼륨감 있는 블레이저는 누구라도 환영할 만했다. 드레스는 어깨에서 은근하게 흘러내렸고, 누구나 멋진 핸드백을 고를 수 있었다. 반면, 디올에서 앤더슨은 약간의 혼돈을 불러일으켰다. 아주 작은 바(bar) 재킷, 미니멀한 플리츠 스커트, 카고 쇼츠를 연상시키는 파니에(pannier)까지. 컬렉션은 마치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가 디올 아카이브를 손에 넣은 듯했다. 과거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고 미래 역시 그에 종속될 필요는 없다는 듯이. 비탈레가 선보인 베르사체가 섹시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 대신 기묘하고 유쾌하며, 꽤나 즐거운 쇼였다는 생각은 든다. 어쩌면 포스트 #미투 시대, 섹슈얼리티와 성이라는 복잡한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 20대에게는 이런 정화수 같은 웃음이 꼭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베르사체 쇼는 우리에게 어깨의 긴장을 풀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럼 다시 샤넬 런웨이 위 그 미소로 돌아가볼까. 오디앙의 표정을 향해 쏟아진 환호는 사람들이 지금의 정치적 유혈의 장이 남긴 정신적 상처를 달래줄 숭고한 기쁨을 얼마나 절실히 필요로 했는지를 말해준다. 어쩌면 그 미소는 이번 시즌을 오래도록 설명할 이야기의 주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패션은 늘 사람들에게 예의와 친절로 다가갔다. 이민자들이 지닌 풍요로움, 다양성, 그리고 여성성의 가치를 어떻게 찬미할 수 있는지 더 넓은 문화적 측면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추함은 과감히 찢겨졌다. 그리고 이에 사람들은 언제나 응답했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오늘 세상에는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은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Credit
- 글/ Robin Givhan
- 번역/ 이민경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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