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최재은, 새로운 삶을 꿈꾸며

최재은의 작업은 삶에서 발현한다. 긴자 메종 에르메스 르 포럼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새로운 삶»은 평생 생명과 순환을 이야기해온 그녀가 자연에 보내는 연가(戀歌)이다.

프로필 by 손안나 2024.01.25
오키나와의 백화된 산호를 소환한 대규모 설치작품 <하얀 죽음>과 최재은 작가.

오키나와의 백화된 산호를 소환한 대규모 설치작품 <하얀 죽음>과 최재은 작가.

요즘 현대미술가 최재은은 어디를 가더라도 이름 모를 들꽃과 들풀을 들여다보고, 수집하고, 이름을 찾는다. 미미하거나 가엾은 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 지구상의 존재들을 호명하고 기억함으로써 새롭게 발견한다. 나는 이것이 그녀가 세상의 당연한 이치와 질서, 즉 순리를 되새기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긴자 메종 에르메스 르 포럼에서 2023년 10월 13일부터 2024년 1월 28일까지 열리는 그녀의 개인전 «새로운 삶(La Vita Nuova)»을 둘러보면서, 문득 오래 전에 메모한 백남준의 문장이 떠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생태학은 정치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 경건한 세계에 대한 관념이다. 그것은 세계의 기획, 전지구적 순환, 인간행동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에 두고 있다. 너 혹은 나로부터 너와 나로의 변화로…”(<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공동시장>(1974)). 생태학을 통해 그가 선언한 것은 바로 ‘자연을 향한 새로운 감수성’이었다.
그런 점에서 회고전 형식의 이번 전시는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겸허한 태도 및 감수성이 어떻게 최재은의 작가적 삶을 견인하는지를 감각하고 이해하는 전시로 기억될 것이다. 에르메스 재단이 마련한 두 개의 전시 «Ecology: Dialogue on Circulations» 중 첫 번째 대화이자 거대한 주제를 여는 화두로서, 최재은의 전시는 오늘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다 직관적으로 인식하도록 이끈다. 게다가 비슷한 기간에 모리 미술관의 20주년 전시 «Our Ecology: Toward a Planetary Living»와 연계해 열린다는 사실은 세계 미술계가 생태의 문제를 대하는 시급성과 중대성을 시사한다. 요컨대 연초부터 해외 토픽을 장식한 지구촌 곳곳의 폭우와 한파 소식이 다름아닌 ‘우리의 이야기’라고 말이다. 그러나 내노라 하는 작가들이 합류한 모리 미술관의 전시가 새된 외침이라면, 최재은의 전시는 고요한 읊조림 혹은 짧은 탄식에 가깝다. 이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건 그것이 삶에서 비롯된 실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의 첫 발걸음을 이끄는 <시인의 아틀리에(A Poet’s Atelier)> 프로젝트는 작가 자신이 스스로를 정의하며 누구인지 보여줄 뿐만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도 이러한 감각의 의식을 제안하는 섬세하고도 조심스러운 제스처로 읽힌다. 2023년 2월부터 8월까지 길가에서 만난 143종의 들꽃들을 액자화해 각각의 이름을 적어 둔 작업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When We First Met)>는 이른바 수많은 야생화들의 초상화다. 어디선가 본 듯하나 소리 내어 불러본 적 있었나 싶은 생경한 이름들이 입 안에서 맴돈다. Dianthus longicalyx(슬패랭이꽃), Sisyrinchium rosulatum(등심붓꽃), Erigeron annuus(개망초), Coreopsis lanceolata(큰금계국), Gompherena globosa(천일홍), Lygodium japonicum(실고사리), Saxifraga stolonifera(바위취)… 내가 알고 있는 지구상의 생명체가 극히 일부임을 자각하는 순간, 그 존재를 대면하기도 전에 사라지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멸종식물 156종의 이름을 또 다른 벽면에 정성스레 적어둔 작가의 의도를 알아차리게 된다(<이름 부르기(To Call by Name)>).
“호모 사피엔스들이 숱한 존재들에 마음을 열고 알아가려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 생각해요. 그들을 의식하고, 자각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게 공존이죠. 인간은 자연을 필요로 하지만, 자연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만한 우리는 알지 못해요. 멸시당하는 자연을 인간과 동등하게 대하고자, 시공간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주고자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싶었어요. 조만간 전시장에서 이름 부르기 퍼포먼스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최재은은 오늘날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심정으로, 들꽃을 가만히 앉힌 조명 작품 <Beacon Within>으로 전시장을 환히 밝혔다. 그 아래에는 쓸모를 다한 나무 판재와 함께 작가 스스로 나무가 되어 독백한 빛 바랜 종이가 놓여 있다. “I WANT TO BE A TREE AGAIN, IF I AM REBORN…(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다시 나무가 되고 싶다)” 들풀의 시간과 작가의 시간, 나의 시간과 나무의 시간이 서로 만나 순환하며 과거, 현재, 미래의 다양한 층위를 이루는 이 공간은 타자를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무와 들풀이라는 생명과 인간의 관계를 사색하는” 모두를 시인으로 만든다.
1986년부터 시작된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 시리즈인 <땅으로부터의 화답>.

1986년부터 시작된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 시리즈인 <땅으로부터의 화답>.

최재은의 작업은 특유의 미적 감각으로 간결하게 정제되어 이견의 여지없이 아름답지만 한 번도 이에 그친 적 없다. 특히 아름다움은 등을 맞댄 슬픔이라는 시적 감정으로 배가되는데, 우리가 만들고 처한 현실에 가려진 진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못 다 부른 채 사라진 이름들이 공명하는 <시인의 아틀리에>의 맞은편 전시장에는 미처 기억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존재들을 소환한 <하얀 죽음(White Death)>이 자리한다. 2022년 말 오랜만에 오키나와를 찾은 최재은은 하얗게 변해버린 채 해변으로 밀려드는 산호를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슬픈 일인데, 한편으로는 이 백화된 산호들의 모양이 놀라울 정도로 독특한 거예요. 아름다움 이면에 도사리는 문제들을 다루겠다고 생각하고, 오키나와 현에 편지를 썼어요. 30년 전에 본 그 곳의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 절박한 현재를 알려야 하는 이유를 솔직히 적었죠.” 오키나와 현에서는 조개 껍질 하나도 갖고 나오지 못할 정도로, 자연에 관한 한 매우 엄격하다. 최재은의 제안 역시 뜻을 함께 하는 예술가들 30명의 지지와 도움, 그리고 협력으로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무려 8톤 무게에 이르는 하얀 산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비애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렌초 피아노가 설계, 디자인한 긴자 메종 에르메스 건물의 특징 중 하나는 1만3천개의 유리 블록이 벽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전시장은 빛의 정도에 따라 시시각각 그 표정을 달리한다. 백화된 산호들은 낮에는 각각의 고유한 기하학적 패턴을 뼈처럼 훤히 드러내고, 해가 지면 서로가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숨어든다. 산호 더미 가운데에 놓인 깨진 유리 조각들은 자연과 인공의 기묘한 공존을 은유한다. 전시장이 어두울수록 거울 조각들은 더욱 선명하고 영롱하게 빛과 그림자를 사방에 흩뿌려 놓는다. 공간 전체를 찬연하게 가로지르는 광채 때문인지,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새 소리 때문인지, 죽음과 살아있음, 삶의 잠재적 폭력성과 아름다움, 슬픔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정경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처연하고 무참하다. 이 산호들은 모두 전시가 끝나는 대로 본래의 자리, 오키나와로 돌아갈 것이다.
“작가 입장에서 생태의 문제가 부담스러운 주제인 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하고 보니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하는 전시였구나 싶어요. 삶과 맞닿은 이야기인 만큼 추상적이기 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다큐멘터리처럼 풀고자 했죠. 예술가들은 세상의 움직임에 빠르게 반응하는 이들이지만, 이번에 더 많은 작가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언젠가부터 생태 이야기는 전형적이거나 구식이라 치부되죠. 예술가가 아니라 환경운동가의 일이라 단정해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요. 그 무엇도 변해가는 현 세상을 공유하고 실천하는 일보다 시급할 수는 없습니다. 한병철 교수가 저서 <땅의 예찬>에 썼듯, ‘행성 의식’을 바탕으로 이제는 자연과 다른 관계를 맺어야 하는 시점이에요.”
자연의 작은 존재들을 호명하고 기억하는 공간인 <시인의 아틀리에>.

자연의 작은 존재들을 호명하고 기억하는 공간인 <시인의 아틀리에>.

<시인의 아틀리에>와 <하얀 죽음>이 제안하는 성찰과 반성의 순간은 최재은의 작업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다. 수십 년 전부터 작가는 무한한 시간과 유한한 삶, 자연과 인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일관되게 표현해왔다. 특히 위의 두 신작 사이에 배치된 또 다른 작업 <월드 언더그라운드 프로젝트>는 생태에 대한 관심이 활성화되기 전인 1986년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인 대표작으로, 최재은의 작업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증명한다. 작가는 일본의 전통 종이인 ‘와시(Washi)’를 기반으로 별도의 종이를 제작했다. 그리고 한국, 일본,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 각 대륙의 땅에 이 종이들을 깊이 묻어 두었다가 오랜 후 다시 꺼내 보았다. 종이는 대륙의 지질학적 특성에 따라, 미생물의 영향으로 다른 색으로 변모하거나, 아예 땅의 일부로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부식되었다’고 표현하겠지만, 대지가 우주를 응축한 생명의 근원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실은 흙과 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결 견고해진 셈이다.
이번 전시는 그중 한국 경주와 일본 후쿠이 지방에서 꺼낸 ‘땅으로부터의 화답’을 소개한다. 대지의 시간성을 가시화한 작업, 땅이 그려낸 추상화가 전시장에서 고요한 자장을 만들어낸다. ‘당신의 작품 전면에 스며 있는 시간과 불안정성의 감각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게 있어 창조성이란 언제나 시간이 가진 건설적인 역할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전 과학에서 인정된 바와는 반대로 시간은 더 이상 환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역으로 시간은 인간이 자연에 속해 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일리야 프리고진이 직접 보냈다는 문장은 이 작업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DMZ 프로젝트’ 중 DMZ의 생태 복원 계획을 지도화한 작업.

‘DMZ 프로젝트’ 중 DMZ의 생태 복원 계획을 지도화한 작업.

“내게 일본 문화는 가볍고 섬세한 바람 같아요. 하지만 한국을 생각하면 늘 흙이 떠오릅니다. 어제는 친구들과 함께 죽은 후 어디에 묻히고 싶은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는 나무 아래가 좋겠다고 했어요. 도저한 생명력을 가진 흙이라는 존재만큼 아름다운 건 없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이후의 지층은 흙 대신 플라스틱과 닭뼈로 가득할 거라고들 하니 정말 슬픈 일이죠.” 흙은 최재은 작업의 모체나 다름없다. 그녀는 처음 목격한 부모의 죽음과 매장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가장 처음 배운 예술인 이케바나의 절제와 함축의 정신, 그리고 이를 스스로 전복한 전위의 정신은 그녀 작업의 요체다. 이사무 노구치가 도쿄 소게츠 빌딩에 만든 대규모 조각 <천국(Heaven)>(1985)에 최재은은 의식을 전환해 위대한 거장의 작품 일부를 흙으로 뒤덮은 <지구(Earth)>를 설치했고, 이는 새로운 의미의 탄생을 다룬 첫 개인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나는 언젠가 인간(Human)이 후무스(Humus), 즉 땅에서 온 존재라는 의미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는데, 그런 면에서 흙에 대한 존중과 경외의 마음을 간직한 최재은이야말로 후무스적인 작가다.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반영하는 작업이 놓인 위층 전시장에는 인류의 ‘오래된 미래’를 그린 ‘DMZ 프로젝트’가 자리한다. ‘DMZ 프로젝트’는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대지의 꿈(Dreaming of Earth)> 프로젝트로 시작되었고, 이후 <자연국가(Nature Rules)>(2020~2022)로 진화했다. 매설된 지뢰 사이에 숱한 영혼이 꽃나무로 피어나고 있는 곳, <인간 없는 세상>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이 말한 바 “비극이 기적을 낳은” 이곳 DMZ를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자생적인 꿈의 정원, 생명과 지식의 저장소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 내지는 희망이었다. 특히 평생 생명과 순환이라는 화두에 매진해온 최재은에게 DMZ의 생태 복원 지도를 완성해가는 프로젝트는 필생의 과업이나 다름없다. 정치적, 현실적 가능성보다 분단 상황을 태생적으로 체득한 채 50여 년 간 세계를 떠돈 예술가의 신념을 더한 동력 삼아 진화 중인 셈이다.
“전쟁으로 얼룩진 DMZ가 70여 년 지난 지금 아름다운 자연으로 환원된 건 우주의 본성이 생명과 미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토록 순수한 믿음은 많은 미술가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시게루 반, 승효상, 조민석, 정재승, 스튜디오 뭄바이, 가와마다 타다시, 이불, 이우환, 올라퍼 엘리아슨 & 세바스티나 베흐만 등이 합류했으며,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는 2021년 세상을 뜨기 전에 무려 20장 분량의 기획서를 보내왔다. 우리가 만난 날에도 최재은은 DMZ의 생태에 맞는 식물의 씨앗을 어떻게 그 곳에 심을 수 있을 것인지(‘종자 폭탄(Bomb)’) 내내 고민했다.
<시인의 아틀리에> 전시장은 일상에서 만난 들풀을 기리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멸종위기종 식물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름 부르기>, 들풀과 종이를 활용해 만든 조명 <Beacon Within>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의 아틀리에> 전시장은 일상에서 만난 들풀을 기리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멸종위기종 식물들의 이름을 기록한 <이름 부르기>, 들풀과 종이를 활용해 만든 조명 <Beacon Within>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예술가들의 영향력은 어쩌면 작업 이전에 삶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재은의 삶은 시간의 흐름과 대자연의 질서를 직시하고,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파괴되고 있는 생태를, 그리고 스스로의 역할을 자각하려는 노력으로 채워진다. 그들을 타자화 하지 않은 존중의 시선은 그 삶의 결과이자 세계의 원형에 한 발 다가선 작업으로 펼쳐진다. 인터뷰를 할 때에도, 차를 마시면서도, 심지어 보르헤스의 상상력과 디킨슨의 문학성을 향한 경외로 눈을 반짝이던 와중에도, 최재은의 목소리는 문득문득 단호해졌다.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생태계 앞에서 사물과 대상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삶, 새로운 형태의 생활 방식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작가는 이러한 바람과 의지를 담아 전시의 제목을 «A New Life»가 아니라 «La Vita Nuova»이라 지었다. ‘La Vita Nuova’는 단테가 이상향인 베아트리체를 향한 신비하고도 숭고한 사랑을 통해 얻은 진실과 그것이 바꾼 ‘새로운 삶’을 노래한 시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백 년 후 최재은은 파편화된 자연이 인류에게 보내는 절박한 외침을 전하며, ‘예술이 공감을 창조하고, 그 공감이 모든 것을 바꾸는’ 새로운 삶을 묵묵히 그려내고 있다.

Credit

  • 글/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인생,예술> 저자)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Kajita Akihiro(인물),Muto Shigeo(전시 전경)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