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닳아 해진 소파도 멋이 되는 곳, 서울 오래된 카페 5
서울의 오래된 카페에 앉아. 닳아 해진 소파와 반질반질해진 테이블의 나이를 가늠하는 사이 들려온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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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61 2층
1985년, 브람스를 사랑한 젊은 부부는 안국역 근처에다 클래식이 흐르는 카페를 열었다. 조영희 대표가 그 바통을 이어받은 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의 일. 잠깐씩 거쳐 간 아르바이트생들과 지난 주인들은 지금도 종종 얼굴을 비춘다. 하도 닳아 교체해야만 했던 의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그대로다. 나무 바닥은 밟을 때마다 요란하게 삐걱댄다. 칸마다 소리가 다른 것이 꼭 파이프 오르간을 닮았다. “뭘 바꾸고 싶어도 못 그래. 여기 얼굴 모르는 주인이 얼마나 많은데. 십수 년째 오는 단골들은 절대 뭐 뜯어 고치지 말라고 올 때마다 난리야. 내가 볼 땐 여기에 뭔가가 있어요. 계속 마음이 가고 생각나게 하는 뭔가가. 겨울이면 더 그렇지 아마.”

서울시 동작구 흑석로 101-7 지하1층
“여기서 파는 커피는 다 2백 년 전부터 내려온 레시피 그대로 만든 거야. 전통이 있다는 거지.” 한바탕 몰려든 손님을 응대한 뒤 조국현 대표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여기서 나가자마자 오른쪽 건물 2층에 치과가 있어요. 60평짜리. 거기가 최근까지 프랜차이즈 카페였어. 그게 들어설 때만 해도 여기 중앙대 학생들이 ‘터방내 이제 망했다’ 했거든? 근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잖아. 왜겠어. 유행 같은 거 안 따라가고 내 갈길 열심히 갔으니까 그렇지 뭐.” 저녁으로 향하는 어둑한 시간에도 진한 커피 향이 자욱하다. 카운터 옆에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설거지거리가 잔뜩 쌓여있다. 서두를 법도 하지만,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면 시간은 바깥보다 느리게 흐른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14
‘따-따-따-따-’. 이따금씩 가스레인지에 불 붙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운다. 오전 11시, 영업 준비에 한창인 목영선 대표는 문을 활짝 열어두고 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우리 집은 자기더러 시인이라는 손님이 너무 많아. 그럼 그냥 그런가 보다 해. 모르긴 몰라도 웬만한 문인들은 다 왔다 갔다고 보면 돼요.” 고모부인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찻집의 이름으로 내걸고 한자리를 지킨 지는 20년이 다 됐다. 그 사이 인사동은 쉼 없이 바뀌었지만 주전자에 끓인 물과 직접 담근 청을 써 차를 내는 방식엔 변함이 없다. 12시가 가까워오자 첫 손님이 얼굴을 비춘다. 문을 여는 순간에도 대화를 멈출 생각이 없는 중년 여성 셋을 향해 주문을 받는다. “점심을 왜 이리들 일찍 먹었대. 오늘은 뭐 드시게. 대추차? 쌍화차?”

서울시 서대문구 명물길 18 2층
칵테일부터 커피, 맥주, 양주까지. 없는 게 없었던 카페가 진정한 ‘원두커피 전문점’으로 거듭난 건 현인선 대표가 새 주인이 되었던 2002년부터다. “여긴 옛날에 술 팔고 그랬을 때부터도 미팅하고 소개팅하러 온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대요. 지금도 그 추억 갖고 오는 손님들이 왕왕 있어요. 이상하게 그런 말 들으면 사명감 같은 것도 번쩍 하고 생기더라고.” 멋쩍은 웃음 뒤에 숨은 건 분명 자부심이다. 한국에 들어온 스타벅스가 본격적으로 몸집을 부풀려갈 때도, 코로나 때도 끄떡없었다고, 그래서 1975년 오픈 이후 단 한 번도 문을 닫았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그렇다. 목요일 오후 3시. 한산한 신촌 거리와는 달리 카페 안은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을 찾는 손님들로 복작하다.

서울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34 2층
밖에서 사 마실 수 있는 홍차라고는 맥도날드에서 립톤 티백을 우려 파는 것이 거의 유일했던 시절도 있었다. 새천년 바람이 기세좋게 불던 2001년. 일본에서 나고 자란 진수수 대표가 이대 근처에 자리를 잡고 티앙팡의 문을 열었을 때가 그랬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하나둘 사 모은 홍차로 벽장 선반을 빼곡히 채울 정도가 됐을 즈음이다. 4백여 종류의 차 중에는 몇 달 동안 주문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는 메뉴도 있다지만, 묵직한 메뉴판 두께는 몇 년째 그대로다. 12시 오픈과 동시에 앳된 얼굴을 한 대학생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고민 없이 자리를 택하고 겉옷을 한 겹씩 벗어두고는 곧장 카운터에서 밀크티를 주문한다. 늘 마시던 게 익숙한 단골손님은 아무래도 메뉴판에는 별 관심이 없다.
Credit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 사진/ 김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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