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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비통 만두부터 구찌 오스테리아까지, 지금 서울은 ‘명품 미식’ 전성시대

청담과 성수에 몰려든 럭셔리 브랜드, 서울 미식 신의 새로운 실험실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9.15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2025년, 명품 브랜드가 서울에 새 식당을 열고 미식 신의 새로운 장을 연다.

✓ 패션, 공간, 경험, 그리고 창의적인 비스트로가 도시의 맛을 다채롭게 한다.

✓ 브랜드의 세련됨과 작은 키친의 서사가 섞이며 서울은 무한한 미식의 무대가 된다.


올해 서울 청담과 성수 등지에 명품 브랜드의 식당이 속속 문을 열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은 2025년 9월 청담동 메종 서울 건물에 국내 첫 상설 레스토랑 ‘르 카페 루이 비통 서울’을 공식 오픈했고 구찌는 불과 며칠 뒤 같은 거리에 위치한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5층에 이탈리아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다 마시모 보투라 서울’을 리뉴얼해 새롭게 열었다. 국내에 본격 진출한 명품 브랜드 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서울 미식 신에 모두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르 카페 루이 비통_루이 비통 제공

르 카페 루이 비통_루이 비통 제공

구찌 오스테리아_구찌 제공

구찌 오스테리아_구찌 제공


패션과 미식, 공간과 체험이 교차하는 지금, ‘명품 브랜드가 내세운 레스토랑 붐’이 보여준 전환은 서울이라는 도시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왜 하필 이 도시로 몰리고 있는 걸까.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 소박하고 일상적인 식문화를 지향하는 흐름 또한 계속해서 조용히 힘을 키우고 있음을 발견해볼 수 있다.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풍경을 들여다봤다.




Scene #1.
루이 비통의 시그니처 패턴인 모노그램을 식기와 음식에까지 새긴 ‘비프 만두’ 3개가 접시에 담겨 나온다. 표면에 LV 모노그램 문양이 새겨져 있다. 루이 비통이 오픈한 레스토랑의 풍경이다.

루이 비통 만두_루이 비통 제공

루이 비통 만두_루이 비통 제공

명품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식기와 인테리어, 브랜드 헤리티지를 반영한 메뉴를 갖춘 공간은 패션을 넘어 미식으로까지 확장된 럭셔리 경험을 제공한다. 미식 디렉팅은 윤태균 셰프가 맡았다. 한국 전통 식재료를 동양적 방식으로 재해석한 프렌치 코스는 예약제 한정으로 제공된다.

르 카페 루이 비통_루이 비통 제공 르 카페 루이 비통_루이 비통 제공 르 카페 루이 비통_루이 비통 제공

명품 브랜드의 외식업 진출은 그리 새롭지 않다. 에르메스는 지난 2006년 서울 신사동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지하에 ‘카페 마당’을 열어 국내 명품 F&B 진출의 포문을 열었고, 디올 역시 지난 2015년 강남구 하우스 오브 디올에 ‘카페 디올’을, 비교적 최근인 2022년 성수동 컨셉스토어에는 팝업 형태의 카페 디올을 선보였다. 올해 오픈한 루이 비통구찌의 공간은 팝업 형태가 아니라 상설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만하다. 매장 형태의 외식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건 명품업계가 미식 그 자체를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 진지하게 보고있다는 의미다. 이 때 레스토랑은 패션 하우스가 오랜 시간 벼려온 미학, 철학, 소비자와의 ‘세계관 공유’를 위한 도구가 된다. 이들이 식탁 위에 올린 것은 단순한 음식을 넘은 취향과 고도화된 고객 경험에 더 가깝다. 따라서 패션 브랜드의 외식 진출은 ‘브랜드 확장’이라는 전략적 목적을 분명히 한다. 도시 점유 전략으로까지 확장되는 모습도 보이는데, 루이비통은 청담을, 구찌는 성수를 자사의 실험적 감각을 실현하는 새 거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패션 브랜드들이 서울에 레스토랑을 낸다는 건 “서울이라는 도시를 브랜드화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가격은 의외로 합리적이다. SNS에 공유하기 좋은 경험을 제공하면서 가격대는 명품 라인 제품보다 훨씬 낮은 선을 유지한다. 일반 음식점에 비해 가격은 높지만, 수백만 원짜리 가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사치”로 여겨지며 부담을 낮춘 전략을 보여준다. 루이 비통의 만두(4만 8천원), 유자 시저 샐러드 이클립스 치킨(4만 원), 페어 샬롯(2만9천 원) 선이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은 점심 4코스 테이스팅 메뉴가 약 13만 원, 저녁 6코스는 약 18만 원이며, 샐러드 같은 에피타이저는 2만 원대, 파스타는 3만 원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픈 전부터 큰 화제가 되었고 초반 예약 경쟁은 꽤나 치열했다. 2020년대 들어서 전 세계 Z세대의 명품 소비가 눈에 띄게 감소했는데,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MZ 세대를 잡기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루이비통 만두나 디올 카페의 커피는 ‘작은 사치’로 낮은 진입장벽으로 럭셔리 브랜드를 가벼이 소비한다는 만족감을 안겨준다.

구찌 오스테리아_구찌 제공 구찌 오스테리아_구찌 제공 구찌 오스테리아_구찌 제공

두 메가 브랜드가 앞다투어 ‘서울’에 진출한 풍경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현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동시대 서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민감하고 세련된 소비자들을 가진 도시다. “가장 잘 (챙겨) 먹고, 가장 빠르게 인증하고, 트렌디함을 추구하고 신랄하게 판단하는” 소비자들이 이 도시에 있다. 서울의 미식 신은 ‘하이-로(High-Low)’가 극단적으로 교차하는 도시다. 세련된 럭셔리와 소박함, 로컬과 역사, SNS 를 중심으로 한 트렌디한 감각이 동시에 교차하는 지금의 서울은 럭셔리 브랜드가 보여주고자 하는 새로운 얼굴을 실험하는 완벽한 무대가 되어준다. 하이엔드 급의 글로벌 브랜드가 더는 무시할 수 없는 브랜드 실험실이 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명품 브랜드의 F&B 사업 진출에 따라 미식 신에 크고 작은 파문이 일거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맛을 뛰어선 다양한 체험들이 미식을 완성하는 요소로 완전히 통합된 것이다. 실제로 르 카페 루이 비통의 내부는 돔 형태의 천장 아래 한쪽 벽면을 도서관처럼 꾸몄고, 북 큐레이터가 엄선한 책과 루이 비통 에디션으로 출간된 여행·패션 서적 등이 진열되어 있다. 인테리어, 메뉴, 서비스 전반에 걸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녹여내고 있으며, 고객은 브랜드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오감으로 체험한다. ‘무엇을 먹느냐’ 만큼이나 ‘어디에서 먹느냐’의 감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움직임은 기존 서울의 미식 신을 이끌어가는 셰프들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하이엔드 미식의 기준을 재설정하고 서사적 감각을 넓혀주는 반면, 셰프 개인의 창의성과 로컬성의 자리를 위협하기도 한다. “이제는 미식도 브랜딩 없이는 불가능하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Scene #2.
작은 간판 하나가 달린 강남의 좁은 골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픈 키친이 전부 보이는 20석 남짓한 공간이 나온다. 메뉴판 첫 줄엔 ‘오늘 농장에서 온 채소’가 적혀 있다. 채소와 허브는 셰프의 아버지가 길러 보낸 것. 제철 버섯을 올린 뢰스티, 제주산 생선을 숯불에 구워 낸 메인 요리는 7만~9만 원대 코스로 구성된다. 손님들은 긴장 없이 와인을 곁들인 채 셰프와 직접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간다.

후제_@fuje_restaurant

후제_@fuje_restaurant

2024년에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신생 비스트로노미 레스토랑 ‘후제’의 풍경이다. 김종근 오너 셰프가 운영하는 이곳처럼, 한편에서는 하이엔드 미식 공간의 붐과 완전히 다른 결의 움직임이 꾸준히 있어 왔다. 이들은 소탈하면서도 창의적이고 편안함을 주는 요리를 꿈꾼다. 파리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 ‘네오 비스트로(neo bistro) 운동’과도 궤를 같이 한다. 비스트로노미는 ‘비스트로(Bistro)’와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의 합성어다. 독립성을 강조하는 셰프를 중심으로, 작은 규모의 키친을 꾸려가며 지역적이나 계절을 살린 식재료를 사용하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아늑한 공간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파인다이닝의 고급 메뉴를 캐주얼한 분위기 속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공통의 목표다. 국내도 지난 10여 년간 이 개념이 서서히 뿌리내리며, 두각을 나타내는 셰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후제_@fuje_restaurant 후제_@fuje_restaurant 후제_@fuje_restaurant 후제_@fuje_restaurant 후제_@fuje_restaurant

시작을 연 이충후 셰프의 제로 콤플렉스(Zero Complex)는 캐주얼한 분위기 속 정교한 요리를 선보여 꾸준히 미식가들의 입소문을 탔다. ‘팜 투 테이블(Farm-to-Table)’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워 2023년 미슐랭 그린스타를 따낸 기가스, 명맥을 유지하는 렁팡스, 편안한 와인바 뮤땅도 여기에 해당한다. 과하게 브랜드화되지 않은 식문화의 힘은, 명품 브랜드 식당의 위용과는 대조적으로 로컬과 계절, 생산자나 요리하는 개인의 서사를 담는 일에 보다 집중한다. 이 흐름은 새로운 미식 커뮤니티 문화를 적극 형성하기도 한다. 주변 와인 바, 갤러리, 스몰 브랜드와 편집숍 등과 긴밀히 협업하여 새로운 형태의 팝업 레스토랑을 여는 등 색다른 실험을 거듭한다.

제로 콤플렉스_업체 제공 제로 콤플렉스_업체 제공 제로 콤플렉스_업체 제공

흥미로운 점은 상반된 두 흐름이 충돌하기보다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현상이다. 루이 비통 카페에서 럭셔리한 브런치를 즐기다가도 작은 비스트로에서 셰프와 대화를 나누며 제철 요리를 음미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 다층적 미식 경험의 스펙트럼은 취향과 상황에 따라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폭넓은 선택지를 제안한다. 소비자에게 옵션이 많다는 건 당연하게 장점으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식문화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발전 가능성 또한 무한하다. 글로벌 명품 레스토랑에서는 정통 프렌치 스타일 퀴진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된장이나 유자, 한우, 참기름 등 한국 전통 식재료나 요리 기법을 적극 도입한다. 반대로 작은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셰프들은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협업 제안을 받아 협업 이벤트나 팝업 행사를 열기도 한다. 쉬이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분야가 활발히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미식문화는 한국의 미식 신의 역동적 미래를 상상해보게 한다. 한국의 미식 신은 브랜드 헤리티지와 지역의 정체성, 글로벌 트렌드와 로컬 창의성이 어우러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명품과 미식, 창의성이 공존하는 서울의 식탁은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거침없이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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