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괴짜 혹은 천재로 불렸던 백남준의 노스탤지어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백남준의 예술세계’ 입문으로 손색이 없다. 괴짜 혹은 천재로 불렸던 비디오아트의 아버지, 백남준의 다채로운 면모를 제시한다. 우리가 잠시 잊었던 거장이 TV와 레이저를 품고 귀환한다. 그는 새로운 혁명이자 예술의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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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졸린 눈을 억지로 비비면서 기다렸던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었다. 1984년 1월 1일, 한밤중에 펼쳐진 쇼(한국 시간 1월 2일, 국내에서 무려 6백80만 명이 봤다는 전설적인 방송)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풍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종일 설레었던 것은 분명하다. 바로 그해 34년 만에 백남준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TV를 통해 금의환향한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를 볼 수 있었다. 민족의 영웅, 예술가의 초상은 그런 것이었을까.(빛나는 존재였던 그가 체포될까 두려워했다는 것은 훗날 알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이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미국에서 왔다는 선구자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앗, 어눌한 말의 연속! 심지어 한국어가 아닌 줄 알았다. 그후 백남준의 예술이 사기가 아니라는 것(“예술은 사기”라는 백남준의 명언이 유행처럼 퍼졌다)을 깨닫는 데 한참이 걸렸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세운 비디오 타워 <다다익선>이나 1986년에 죽은 요셉 보이스를 위해 1990년 7월 20일(백남준의 생일날) 현대화랑에서 추모굿을 펼치는 모습을 TV와 사진으로 보고 나서 그의 작업을 진지하게, 그러나 난해한 카오스로 받아들였다.
2023년에 갑자기 UFO처럼 백남준에 관한 영화가 출몰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2006년에 백남준이 홀연 우리 곁을 떠난 걸 고려하면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그의 사후 17년,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다소 늦게 도착했다. 영화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비디오아트를 잘 모르는 MZ세대를 위한 백남준 입문으로 손색없는 작품이다. 2023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으로 7년 전, 어맨다 킴 감독은 백남준의 1974년 작품 <TV 부처>를 본 후 연구를 시작해 첫 장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처음 들어본 감독이었다. 사실 초짜의 작업은 어딘가 꺼림직했고, 21세기에 백남준에게 영향받은 사람이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가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의 원동력을 오슨 웰스 감독의 <거짓의 F>(1973)에서 얻었다고 하는 걸 읽고 나서야 내 의심은 무장해제되었다. 웰스의 진정한 걸작을 알고 사랑하는 이라면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도 쉽게 길을 잃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극장에서 혼자 신나게 웃고 말았다. 백남준의 조카 하쿠타 켄이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 순간이었다. 백남준이 20개 국어를 한다고 하지만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놀라운 간증(?)이 이어진다. 그는 어떤 언어를 해도 엉터리로 들렸다고 다들 한목소리를 냈다. 바로 백남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그랬다. 괴팍하지만 익살스러운 모습. 그런 석연치 않은 느낌은, 저런 사람이 어떻게 비디오아트의 창시자가 되었을까 하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영화는 백남준의 전기를 완성하듯 연대기 순으로 경쾌하게 진행된다. 쇤베르크의 음악과 사랑에 빠져 무작정 뮌헨으로 간 젊은 한국인은 1958년 존 케이지와 만난 후 인생이 송두리째 변해버린다. 그는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면서 행위음악 작곡가로 새롭게 출발한다. 고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늘 이방인이었던 백남준이 도발적인 예술을 무기로 서구 중심의 헤게모니를 전복시키며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1963년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에서 TV를 도입한 첫 개인전을 열었고, 비디오아트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1964년 뉴욕으로 향하면서 그의 시대가 시작된다. 캔버스 대신 브라운관(음극선관)을 선택한 그는 과격하게 TV를 망가뜨리고 개조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물을 창조해냈다. 영화는 친절하게 그의 정체성(일제강점기에 특권층 집안에서 태어나 좌파적 성향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림)을 비롯해 플럭서스를 함께한 동료 예술가들, 그리고 미래를 예견하는 많은 작업들(그가 인터넷과 유튜브를 꿈꾸었다는 증거들)을 보여주는데, 이런 시점과 접근은 백남준의 예술세계와 소통하는 첫걸음으로 부족함이 없다. 덧붙이자면 백남준이 빈털터리 예술가(보헤미안의 삶)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본능과 욕망, 그의 천재성을 단숨에 알아보고 전자예술의 탄생에 동참한 친구들과의 교류에 집중하면서도 오늘날 예술가들의 증언처럼 백남준의 작업이 새롭게 해석되고 재발견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즉 서구의 아웃사이더로 생존하기 위해 그에게 필연적인 것은 적극적인 소통과 미래에 대한 태도였다. 그의 엉터리 언어부터 훗날 전자 초고속도로에 이르기까지, 궁극적으로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하거나 개개인이 모두 각자의 채널로 소통하는 방법을 추구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제시하고자 했던 백남준의 온기와 낭만을 영화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진행형으로 다가온다. 어맨다의 다큐멘터리를 ‘입문’이라고 칭한 것은 그저 미사여구가 아니다. 영화의 체험이 곧 백남준의 방대한 예술세계와 접속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1월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1993년 작품 <거북>을 선보였다. 대전시립미술관은 1993년 대전엑스포를 기념하면서 제작했던 <프랙탈 거북선>을 2022년 10월 열린 수장고를 오픈하면서 원형 복원시켰다.(백남준과의 인연은 진행 중이다. 필자가 <바자 아트>에서 수장고를 소개하며 거북선을 다룬 바 있다.) 백남준 효과는 계속되었다. 문화역서울284에서 2023년 12월 13일까지 진행된 페스티벌 «Unfold X»에서는 프로젝트 40여 대를 활용한 비디오 설치작품 <시스틴 채플>을 선보였는데, 미술관이 아니라 기차 승객이 대기하던 고풍스러운 서울역의 옛 대합실 벽에 요셉 보이스, 샬럿 무어먼 등의 모습이 펼쳐지는 것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더욱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2023년 12월 3일까지 진행된 전시 «트랜스미션: 너에게 닿기를»에서는 9·11 테러 이후 2002년 여름, 뉴욕에서 열린 치유의 작업 <백남준 트랜스미션>을 20년 만에 재연했다. 백남준아트센터 뒤편에 세워진 트랜스미션 타워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를 직접 볼 수 있었다.(만약 백남준이 살아있다면 국내에서 참사를 당한 이들을 위해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연주했으리라 상상해봤다.) 이 야외 레이저 설치작품은 백남준의 말년 활동과 관심사를 대표한다. 2002년 당시, TV가 싫증이 나서 새로운 매체인 레이저를 연구한다고 밝힌 백남준은 “향후 20년은 레이저로 작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1990년대 한국을 방문한 후 찾아온 뇌졸중이 그를 괴롭혔고 4년 뒤 귀천을 맞이했다. 반면 영화는 <시스틴 채플> 모습을 잠시 보여준 후 구겐하임미술관에서 폭포수와 함께 레이저를 선보인 작품 <야곱의 사다리>에 방점을 찍으며 마무리된다. 레이저 작업에 깊게 포커스를 맞추지 않은 점이 마음속 어딘가 허전한 구멍을 남겼다.
영화의 엔딩, 쿠키 영상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어맨다에게 이 영화의 제목을 존 케이지의 우연성 음악에 따라 정하고자 제안하는 장면이 나온다.(결과는 이 영화의 제목을 보는 순간, 이미 알고 있다.) 퍼포먼스의 제왕 마리나가 너무나 현명한 선택을 하는 것과 달리, 우둔한 나는 백남준이라는 위대한 선각자가 남긴 퍼즐을 40년째 계속 완성하려고 (영화와 미술에 대해 글을 쓰며)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극장에서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를 관람한 후 여운을 유지하고자 해 질 무렵,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으로 불리는 창신동의 백남준기념관을 찾았다. 큰 대문 집(백남준 옛 집터)을 지키는 이가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오래전 추억을 외면하지 못하고 화답하는 심정으로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안타깝게도 최근 기념관 폐쇄 논란이 벌어졌다.) 노면에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백남준의 모습(1963년 <걸음을 위한 선>)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구 아니, 우주를 품은 백남준의 비전과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었던 그의 이상을 엿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 삶 주변에서 그의 숨결과 만날 수 있다. 202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이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3월 21일부터 관련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백남준이 조지 오웰의 암울한 미래에 반기를 들며 전 지구적인 흥을 추구한 잔치 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머지않아 40년 전의 나와 다시 조우할 생각이다. 뉴미디어아트의 신화이자 낙천주의 미래학자, 백남준의 가르침은 디지털 세상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Credit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 사진/ ⓒ ㈜엣나인필름
- 프리랜스 에디터/ 전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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