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TAINABILITY

"친환경?"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실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지구를 위한 선택이 맞을까?

프로필 by BAZAAR 2023.12.10
 
 태그호이어의 파트너사 루식스(Lusix), 다이아메이즈(Diamaze) 등이 제조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태그호이어의 파트너사 루식스(Lusix), 다이아메이즈(Diamaze) 등이 제조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지난해 취재차 방문한 스위스 제네바 워치스 앤 원더스 현장에서 가장 화제였던 피스 중 하나는 단연 태그호이어의 까레라 플라즈마. 다이아몬드라면 자고로 지구가 수억 년 동안 품은 보석이어야 할진대, 까레라 플라즈마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실험실에서 탄생한 것이라니. 최근 몇 년간 계속 들어왔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실물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광산에서 채굴하는 천연 다이아몬드가 아닌 실험실(lab)에서 배양한(grown)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아주 작은 천연 다이아몬드 씨앗(seed)을 인공적으로 키우는 방식으로, 천연 다이아몬드와 물리·화학·광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성분으로 이뤄졌다. 쉽게 설명하자면, 일반적으로 천연 다이아몬드 원석이 지하 2백km 맨틀에서 수억 년에 거쳐 탄생한다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불과 몇백 시간으로 이 과정을 압축한 것이다. 실제로 이 둘은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대표적인 합성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탄소 파우더에 철과 니켈 등 금속 촉매제를 넣어 고온·고압으로 합성해 다이아몬드 씨앗을 성장시키는, 실제 지구에서 다이아몬드가 생성되는 환경 그대로 모방한 HPHT(고온고압법), 고온에서 수소와 메탄가스를 주입해 탄소 원자를 분리, 이후 기존 시드 위에 탄소가 필름 형태로 계단을 이루듯 차곡차곡 쌓이며 천연 다이아몬드 원석과 동일한 결정 구조로 자라나는 원리의 CVD(화학기상증착법)가 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본래 대부분 공업용으로 쓰였지만 2010년대 들어 연마와 세공 기술이 급성장하면서 주얼리 시장에서도 주목받았다. 특히 2018년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채광 회사인 드비어스가 돌연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주축으로 한 주얼리 브랜드 ‘라이트박스’를 출시하며 긍정적 인식이 더욱더 늘어났다. 
 
프레드의 ‘프레드 어데이셔스 블루’ 제조・세팅 과정.

프레드의 ‘프레드 어데이셔스 블루’ 제조・세팅 과정.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인기가 날로 치솟는 이유는 단연 가격이다. 천연 다이아몬드 가격의 20~30% 수준에 불과하며, 최근 시장 경쟁이 과열돼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금액 부담이 덜하니 브랜드들도 배양 사이즈나 커팅 디자인 면에서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다. 실제로 모 브랜드 관계자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디자인하는 데 한계가 없다”며 “앞으로 천연에서 볼 수 없는 ‘사이즈’, ‘컬러’를 ‘대량’으로 구현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아니나 다를까, 태그호이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이를 활용한 신제품을 공개했는데 천연에선 아주 희귀하다고 알려진 핑크 다이아몬드를 세팅하는 깜찍한 행보를 보였다. 프레드는 ‘프레드 어데이셔스 블루’라는 아이코닉한 스톤을 발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천연에선 1만 캐럿을 세공해야 단 1캐럿의 선명한 블루 다이아몬드를 얻어낼 수 있는 데 반해 프레드는 수년간의 연구 끝에 약 36캐럿의 스톤을 배양해냈다. 이는 정교한 세공 끝에 미국보석감정원(GIA) 인증까지 마쳐 무려 8.88캐럿으로 마무리됐다.
 
그로운 브릴리언스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그로운 브릴리언스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만드는 과정이 윤리적이라는 주장 덕이다. 천연 다이아몬드를 광산에서 채굴하는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노동 착취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지 않았는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채굴 방식이 아니므로 이 논란에서 자유롭다는 것. 천연 다이아몬드 1캐럿을 채굴하려면 물 5백 리터가 필요하고 6.5톤의 지면을 깎아내야 하는 반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캐럿당 약 18.5리터의 물만 소비하고 탄소 배출이 미미해 친환경적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그러나 소비자는 이처럼 보이는 수치만으로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된다. 한양대학교 보석학과 윤성원 교수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에 대해 “천연 다이아몬드보다는 친환경이지만 100%는 아니다”라고 확언했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합성 과정에서 높은 온도가 필수라 이때 막대한 양의 전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례별로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맥락이다. 또 그는 일부 업체의 제조·생산 라인이 추적 불가능하다는 점을 짚었다. 다이아몬드를 성장시키고 절단, 폴리싱하는 전 과정이 실제로 정말 작업자를 안전하게 보호하는지,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지 투명하게 알 수 없다는 의미다. 다수 브랜드가 과장한 ‘그린 워싱’을 경계하라고도 강조했다. 환경을 위해 큰 공헌이라도 한 듯 ‘녹색 분칠’하는 것은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21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친환경으로 포장한 8개 업체에 경고장을 보낸 바 있다. 일각에서는 천연 다이아몬드 씨앗 자체가 친환경·윤리적으로 채굴됐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태그호이어가 ‘까레라 플라즈마 3’에 세팅한 핑크 컬러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태그호이어가 ‘까레라 플라즈마 3’에 세팅한 핑크 컬러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지난달 국내 다이아몬드 전문 기업 KDT다이아몬드가 2천 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국내 소비자 10명 중 4명이 향후 다이아몬드를 구매할 때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를 선택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천연 다이아몬드 채굴 과정에서 환경 오염이나 노동 착취 등 논란이 있는 것 역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구매 의사에 영향을 미쳤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6.5%가 그렇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천연 다이아몬드를 대체하기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주얼리 카테고리로서, 서로 다른 시장을 형성하며 각각 성장해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조금 더 착한 가격’과 ‘대자연이라는 출처’ 사이의 선택이다. 더불어 천연 다이아몬드를 활용하는 브랜드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 역시 뒤지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티파니, 까르띠에, 부쉐론, 쇼메, 타사키 등 많은 브랜드에서 킴벌리 프로세스(분쟁 지역 다이아몬드를 공급망에서 차단하는 국제인증제도)를 준수하며, 주얼리 산업관행책임위원회(RJC) 회원사로서 채굴부터 판매 과정에 이르기까지 환경적, 사회적, 윤리적 규범 확립에 앞장서고 있어서다. 소비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핵심은 투명성이다. 랩그로운 다이아몬드 업계가 지속가능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저절로 그 가치가 보증될 순 없다. 기업은 이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와 함께 투명하게 소통해야 하며, 관련 국가들의 유기적인 연대와 협조가 필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핵심 열쇠는 바로 소비자의 판단이다.   
 
프레드의 ‘프레드 어데이셔스 블루’ 제조・세팅 과정.

프레드의 ‘프레드 어데이셔스 블루’ 제조・세팅 과정.

 

Credit

  • 에디터/ 윤혜연
  • 사진/ ⓒ Fred, Grown Brilliance, Tag Heuer
  • 도움말/ 윤성원(주얼리 칼럼니스트 &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