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제 내 집이 있는 섬으로 돌아가야 해. 엄마를 묻어드리러.”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어느 날 이 말을 남기고 고향으로 간 보모 글로리아를 만나기 위해, 여섯 살 클레오가 파리를 떠나면서 시작된다. 아빠의 반대에 맹렬히 저항한 뒤 감행한 인생 최초의 자발적 여행.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클레오에게 가족과 함께한 추억은 곧 글로리아와 보낸 시간이고, 그 세계는 그에게 전부나 다름없다. 미지의 섬에 도착한 클레오의 눈에 비친 건 각양각색의 관계이자 사랑이다. 손주를 낳은 글로리아의 딸 페르난다와 유년시절 엄마와의 시간을 빼앗긴 어린 아들 세사르까지.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독점하던 관계에는 균열이 나기 시작하고, 클레오는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통증을 앓게 된다.
2023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개막작으로 초청된 영화는 감독 마리 아마슈켈리(Marie Amachoukeli)의 자전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원제는 <Àma Gloria>. 9년 전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연출한 <파티 걸>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던 감독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돌아온 것.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나 클레오의 꿈을 표현할 때는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한 애니메이션을 더해 유년의 향수를 극대화시킨 점이 눈에 띈다. 감독은 지금도 안부 전화를 나누는 보모와의 기억에서 각본을 쓰기 시작했고 실제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출신 보모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주연 배우인 일사 모레노 제고(Ilça Moreno Zego)를 캐스팅하게 된다. 생애 첫 연기에 도전한 클레오 역의 루이스 모루아-팡자니(Louise Mauroy-Panzani)의 꾸밈 없이 대담한 눈빛과 생활 속에 드러나는 일사 모레노 제고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굳이 영화의 행간에서 읽히는 제국주의와 경제논리 같은 프레임을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감독이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없이 동등하며, 영화는 나이, 국적과는 상관없이 서로를 위하는 순수한 마음을 그려낸다. 열병을 앓듯 긴 여름이 끝나고 두 사람의 작별 인사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건, 사랑이라는 이름의 용기다. 지극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때론 놓아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서로를 떠나 행복할 수 있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아 갈 클레오가 보여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