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일 월요일 오후, 파리 샹젤리제 103번지 앞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2024 S/S 루이 비통 런웨이 쇼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프레스와 바이어, VIP, 그리고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제스키에르의 프렌즈들(젠데이아 콜먼, 클로이 모레츠, 케이트 블란쳇, 레아 세이두, 시어셔 로넌, 퍼렐 윌리엄스를 비롯해 한국에서는 스트레이 키즈의 필릭스와 뉴진스의 혜인, 태연과 배두나가 참석했다), 여기에 이들을 보기 위해 모여든 팬과 관광객이 운집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샹젤리제 103번지는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엘리제 팰리스 호텔(Élys´ee Palace Hotel)이 자리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장소다. 루이 비통이 최근 이곳을 인수해 화제가 된 바 있으며 레노베이션 중인 건물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니콜라 제스키에르(사마리텐 백화점, 방돔 광장의 부티크에서도 쇼를 개최한 바 있다)는 이번에도 건설 현장에서 쇼를 진행했다. 혼잡한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공간 전체를 뒤덮고 있는 눈부신 오렌지 컬러가 시선을 압도했다. 이는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제임스 친런드(James Chinlund)가 구상한 것으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그에게 풍선을 활용한 임시 설치물을 제작하는 페니크 프로덕션(Penique Productions)이 만들 드레이프 형태의 열기구를 디자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스키에르는 열기구를 재해석함으로써 루이 비통의 DNA와도 같은 ‘여행의 정신’을 환기시키고 싶었음을 전했다. 그 결과 여름의 태양빛을 머금은 이색적인 세트가 탄생하게 된 것.
독특한 음색을 가진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자호 드 사가잔(Zaho de Sagazan)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쇼가 시작되었다. 이전 시즌에 비해 가볍고 부드러운 무드,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루스한 실루엣의 룩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건 오프닝을 장식한 오버사이즈 보머 재킷과 찰랑거리는 샤르무즈 스커트, 이를 가로지르는 큼직한 벨트의 조합. “루이 비통은 럭셔리 브랜드이지만 기능성을 중시하고 더 나은 여행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옷에 있어 이동성은 매우 중요하죠.” 제스키에르가 말했다. 파자마를 연상케 한 버튼 다운 셔츠 드레스에는 카메라 가방을 목에 걸어 여행의 무드를 더했고, 바람에 하늘거릴 넉넉한 실루엣과 부풀린 소매의 실크 블라우스는 여행의 낭만을 품고 있는 듯했다. 여기에 그래피컬한 스트라이프가 돋보이는 룩은 빈티지한 스타일링과 어우러져 시대를 넘나드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기존 루이 비통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맥시멀함도 컬렉션 전반에 짙게 배어있었다. 구조적인 어깨와 볼륨감 있는 소매, 레이어드된 나이프 플리츠 스커트, 코르셋 보디스, 얼핏 트위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날카롭게 레이저 커팅된 특수 소재로 완성된 재킷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옷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백과 슈즈, 액세서리도 눈길을 끌었다.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눈을 즐겁게 한 가방 컬렉션은 시그너처 엠블럼을 확대했고 LV 로고로 장식한 투톤 컬러의 스타 백도 등장했다. 가죽을 구겨 놓은 듯한 디테일과 매듭 장식이 돋보이는 펌프스, 엄지발가락이 드러나는 샌들 등 슈즈 컬렉션에서 아티스틱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뿐인가. 컬렉션에 감초 같은 역할을 한 액세서리도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단추들, 여러 번 감아 연출한 체인 목걸이, 수트에 드라마틱함을 더해준 모자, 얼굴의 절반을 덮는 고글 형태의 선글라스 등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스테이트먼트 피스들이 가득했다. 결론적으로 일상적인 것에 주목했으나 역시 제스키에르는 ‘특별함’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는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