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지금 주목해야 할 지수 백

지난 시즌 파리 오트 쿠튀르에서 데뷔한 백지수는 혁신적인 옷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로필 by BAZAAR 2023.10.06
디자이너 백지수.

디자이너 백지수.

2023-24 F/W 오트 쿠튀르 시즌을 통해 첫 데뷔 컬렉션을 선보였다. 소감은? 또 데뷔로 쿠튀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감개무량하다. 그리고 쿠튀르를 선택한 이유는 내 스타일이나 옷을 만들 때 항상 웨어러블함보다는 실루엣을 위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브제에서도 많은 영감을 받는 편이라 늘 내 옷이 기성복보다는 아트워크적인,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옷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또 쿠튀르에 대한 존경이 있어 리서치나 영감을 받을 때도 대부분 오래된 아카이브를 참고한다. 그게 쿠튀르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름다움의 변화하는 본질’을 컬렉션에 담아냈다고 밝혔다. 어떤 의미인가?
옛 쿠튀르 아카이브에서 찾을 수 있는, 그 시대의 실루엣과 장인정신에서 비롯한 아름다움의 본질을 현대에 가지고 와 나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현하고자 했다.
마치 조각상처럼 보이는 실루엣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는 어떤 과정을 통해 구현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작업을 시작할 때 스케치를 하지 않는다. 즉흥적으로 스톡맨(Stockman, 마네킹)에 와이어와 원단을 이용해 옷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그 옷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지는 것을 굉장히 즐기며 작업을 하는 편이다. 때문에 결과물에서 좀 더 오브제나 건축적인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제작에 있어 가장 까다로웠던 룩은 무엇인가?
작업하기 가장 까다로웠던 옷은 금색 쇼트 드레스. 그 의상의 셰이프를 잡는 것이 힘들었다. 지지대 없이 드레이핑이 올라가서 옷 자체가 무거웠기 때문이다. 여러 필딩(fielding)을 대며 시도를 해보다 결국에는 아주 다른 자재를 사용하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뷔스티에 와이어를 사용해 세울 수 있었는데, 과정에서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테크닉을 알게 돼 기뻤다.
당신의 디자인 철학을 3개의 단어로 표현해달라.
가벼움(Light), 조각적(Sculptural), 공기 같음(Aerial). 이것이 내가 현재의 쿠튀르를 보는 시각이고 새로운 실루엣을 찾는 철학이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드레이핑 작업을 하는 편인데, 내 드레이핑은 샤프하고 촘촘한 스타일이다. 내가 만든 의상은 몸에 밀착되면서도 한편으론 몸에서 떨어져 있다. 그 두 가지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이다. 드레스들은 몸의 굴곡을 관능적이게 드러내면서도 몸을 보호한다. 지수 백(Jisoo Baik)의 미적 목표는 누군가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고, 그가 제일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구조적인 볼륨감이 돋보이는 쿠튀르 드레스.

구조적인 볼륨감이 돋보이는 쿠튀르 드레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IFM(Institute Francais de la Mode)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런던과 파리 두 곳 모두에서 공부를 한 셈인데 각각의 학교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두 학교 모두 창의성을 길러주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서로 다른 점이 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은 학생의 잠재된 창의력과 그들의 스타일을 끌어주는 곳이고, IFM은 좀 더 전문적인 디자이너 양성을 위한 학교인 것 같다. 패션 업계에서 종사했던 분들이 선생님으로 있기 때문에 졸업한 뒤 실제 현장에 나가서 어떤 식으로 일해야 할지 보다 전문적으로 가르쳐준다.
졸업 이후 발렌시아가, 생 로랑, 뮈글러에서 일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어떠했나?
발렌시아가는 나의 첫 직장이었는데 너무 좋았다. 학생 시절의 나는 언제나 패션계의 전통을 깨고 혁신적인 시도를 많이 하는 뎀나의 발렌시아가에서 일하고 싶었다. 오프화이트 같은 스트리트 웨어를 하이패션 수준으로 끌어 올렸지 않나. 놀랐던 건 일을 할 때 마치 학교에서 공부하듯 할 수 있었다는 거다. 리서치라든지 실험적인 것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정말 자유롭게, 제약 없이 말이다. 어떤 디자이너는 갑자기 니트를 마당에서 태우기도 했다. 생 로랑은 그 반대였다. 그러나 솔직하게 세 개의 브랜드 중 생 로랑에서의 경험이 가장 좋았다. 그곳에 있을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드레이핑밖에 안 했는데 그게 나한테는 명상처럼 느껴졌다.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루 종일 해서 좋았고 정말 값비싼 원단도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굉장한 아카이브를 가진 하우스라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뮈글러에서는 즐겁게 지냈던 것 같다. 케이시 캐드월라더의 아메리칸 스타일, 그리고 그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 일을 열심히 했다.
데뷔 쇼 이전에도 당신의 졸업작품을 아리아나 그란데와 비요크와 같은 유명 셀러브리티가 입고 매거진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의 기분은?
‘내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됐다. 왜냐하면 졸업작품이 끝나고 난 뒤 스타일리스트들로부터 좋은 제안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언제 또 새 컬렉션이 나오는지도 궁금해했다.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고 당장 계획이 없는데 계속 물어보니까 자연스레 ‘내 것을 만들어야 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도 커스텀 제작을 의뢰받아 몇 번 했었는데 그러다 보면 내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생기고 욕심이 났다.
젊은 쿠튀리에라는 것도 그렇고, 한국 태생이라는 사실을 그곳에서도 흥미롭게 받아들였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 되려 어려움은 없었는지?
정말 어려운 점은 없었다. 운이 좋게도 파리에 디자이너 친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도 있고, 좋은 팀을 만나 국적이나 인종에 대한 차별을 느껴보지 못했다. 일을 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딱히 인식해보지 않았고, 팀이 잘 꾸려지고 모든 팀원들이 나를 믿어주어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 이번 컬렉션도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도와주었다.
왠지 평범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다.
어머니가 페인팅 작업을 하신다. 그것을 보고 자라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원래는 플루트를 전공하려고 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그만두고 미술계로 전향했다.
 
폴 쿠이커(Paul Kooiker)가 촬영한 첫 캠페인 이미지와 룩북 촬영장에서의 비하인드 사진들.

폴 쿠이커(Paul Kooiker)가 촬영한 첫 캠페인 이미지와 룩북 촬영장에서의 비하인드 사진들.

1990년 알렉산더 맥퀸의 쇼 영상이 어린 시절 당신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고 들었다. 어떤 면이 놀라웠나?
중학교 때 영상을 보고 나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일단 그 쇼 자체가 패션으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게 다 결합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지향적 시도라든지, 모델의 퍼포먼스, 분위기 그 모든 게 다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것이 놀라웠다. 패션이 옷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문화적 쇼크도 줄 수 있는, 어떤 문화의 결합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너무 인상적이어서 패션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롤모델은 누구인가?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내가 세인트 마틴에 있을 때 비비안 웨스트우드 팀과 같이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중 한 분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시즌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옷을 만들 때 일단 자기가 영감을 받은 것을 토대로 즉흥적으로 디자인을 하고, 커머셜 팀에서 디자인을 나누어 시즌별 전략을 세운다고 했다. 또한 굉장히 성공했음에도 걸어 다니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고 자기 소유의 고급 맨션이나 차를 소유하지 않았다고. 그녀는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새로운 패션 스타일을 선보이고, 때론 충격을 주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패션계에 존재감을 떨쳐왔다는 것. 그 자체로 굉장히 인상적이고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협업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사실 의자 제품을 매우 좋아한다.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는 내가 존경하는 실내장식가 겸 가구 디자이너인데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계획했던 차에 그녀가 만든 저택이 복원되었다고 해 곧 방문할 예정이다. 패션을 넘어 오브제나 가구 디자인 쪽과 협업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최근 가장 당신을 가슴 뛰게 만든 일은?
좋아하는 뮤지션의 커스텀 문의를 받았다. 안타깝지만 아직 밝힐 수는 없다.(인터뷰 일주일 뒤 지수 백 공식 SNS에 비요크의 투어 의상을 맞춤 제작했다는 뉴스가 업로드되었다.)
 
10월에 론칭하는 레디투웨어 슈즈 컬렉션의 스케치.

10월에 론칭하는 레디투웨어 슈즈 컬렉션의 스케치.

디자인을 하지 않을 때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좀처럼 시간을 낼 순 없지만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즐긴다. 마레 쪽 갤러리들을 방문하는 것도 좋아한다.
다음 컬렉션은 어디까지 완성되었나? 어떤 콘셉트인지,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작업 중인지 귀띔해준다면?
이번엔 좀 화려하게 만들어보려고 한다. 셀러브리티로부터 제안을 많이 받게 된 것이 영향을 주었고, 케이팝 뮤지션들과도 협업해보고 싶다. 또 지난 시즌까지는 시간이 없어 자수 작업을 할 여유가 없었는데 이번 시즌부터는 비즈나 크리스털 자수를 더할 생각이다. 실루엣도 확장시켜 더 풍부하고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쿠튀르 컬렉션을 전개하는 만큼 세일즈에 대한 고민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 또 계속 쿠튀르 컬렉션을 만들 계획인지, 레디투웨어로 전향할 생각은 없는지도 궁금하다.
정말이지 판매가 쉽지 않다. 나의 친한 친구 중 비즈니스 파트너가 있는데 그와 2~3시즌 정도 쿠튀르 작업을 하고, 세컨드 라인으로 레디투웨어를 만드는 건 어떨지 논의 중이다. 그리고 지난 쿠튀르 기간에 선보였던 레디투웨어 슈즈 라인을 곧 론칭한다. 두 가지 스타일인데 세일즈 에이전트와 미팅 후 10월 초 판매할 생각이다. 그 결과를 지켜보고 난 후 어떻게 할지 방향성을 정할 생각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패션이 주는 판타지가 점점 희미해지는 요즘, 쿠튀리에로서 당신이 추구하는 패션 판타지는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떠다니는 건축물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화려하고 수많은 디자인 중 혁신적인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신선한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싶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  

Credit

  • 에디터/ 이진선
  • 인터뷰/ 이승연(파리 통신원)
  • 사진/ Julien Weber(인물),ⓒ Jisoo Baik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