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유홍준 교수가 추천하는 꼭 가봐야 할 문화유산 7
유홍준 교슈가 <바자 아트> 독자들을 위해 전해온 기행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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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덕궁

서울 창덕궁
“서울의 상징은 5대 궁궐이고, 그 중에서도 조선 궁궐의 멋을 한껏 품은 곳이 바로 창덕궁입니다. 돈화문(敦化門) 앞 월대(月臺)부터 후원까지 차례로 산책하면서 우리 건축 미학의 다양성을 음미해보십시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즉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우리 고유의 미학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창덕궁은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3문 3조의 기본 틀을 유지하지만 공간 구성이 사뭇 다릅니다. 창덕궁은 돈화문, 진선문, 인정문을 거쳐 인정전(仁政殿)으로 이어지는 동선이 ㄱ자, ㄴ자로 꺾여있어 긴장감 없이 편안하죠. 궁궐 전체의 중심 건물이자 창덕궁의 하이라이트인 인정전 앞에 서면 비로소 궁궐에 들어와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인정전은 정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으로, 품위 있고 듬직하고 잘생겼습니다. 월대가 2단으로 되어있고 건물의 크기도 약간 작아 검박하지만 궁궐의 품위는 잃지 않고 있습니다. 창덕궁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후원 덕분입니다. 후원으로 발길을 옮길 때마다 부용지(芙蓉池)가 어떤 모습으로 맞이할지 기대에 부풉니다.

설악산 선림원터
“서있던 건물의 흔적이란 온데간데없고 덩그러니 석탑 하나만 서있는 폐사지(廢寺址)의 정취를 아시는지요? 걷고 걸어서 찾아가야 하는 황량하고 텅 빈 설악산 선림원터는 꿈에도 못 잊을 답사 장소입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층석탑과 홍각선사 사리탑비 앞에서 조용히 유물과 대화를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56번 국도상의 황이리에 하차해 응복산 만월봉에서 내려오는 미천계곡을 따라 걸어가면 선림원터가 나옵니다. 선림원터는 미천계곡이 맴돌아가는 한쪽 편에 산비탈을 바짝 등에 지고 자리 잡고 있는데, 그 터가 절집이 들어서기엔 좁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보다 넓은 평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선림원은 스님들의 수도처였는데 바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어느 날 산사태로 통째로 흙에 묻히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게 되었네요. 선림원터의 복원된 삼층석탑은 힘찬 기상을 품고 이곳의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는 산증인처럼 오롯이 서있지만 안타깝게도 상처받은 유물, 홍각선사 사리탑은 기단만 남고 팔각당은 오간 데 없습니다. 탑비의 돌거북 받침대와 용머리 지붕돌은 완연하건만 비석은 박살이 나서 잔편만 수습되었습니다.

영주 부석사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항아리 모양의 기둥)을 볼 수 있는 부석사의 절정이지만,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을 향해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특히 안양루에 오르면 불쑥불쑥 치달아있는 소백산맥 전체를 끌어안듯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눈길이 닿는 모든 산자락을 한껏 가슴에 품으세요. 뒤편에 소박하게 세워진 선묘각을 보고 가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부석사 진입로의 비탈길은 현대인에게 침묵의 충언과 준엄한 꾸짖음 그리고 포근한 애무의 손길을 던져주는 조선땅 최고의 명상로입니다. 하지만 제가 늦가을 부석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은행잎 카펫길보다는 사과나무밭 때문입니다. 저는 잎도 열매도 없는 마른 가지의 사과나무를 무한대로 사랑하고 그런 이미지의 인간이 되기를 동경합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무량수전을 위해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습니다. 오묘하고 장엄한 화엄세계의 이미지를 건축이라는 시각매체로 구현한 것입니다. 무량수전에 이르면 자연의 장대한 경관이 펼쳐집니다. 남쪽으로 치달리는 소백산맥의 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며 그것은 곧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서막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은 위대한 자연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안동 병산서원
“산사가 우리 불교 1천 년의 문화유산이라면 서원은 유교 5백 년의 문화유산입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지요. 특히 병산서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원 건축입니다. 만대루(晩對樓)의 누마루는 강산의 경관을 온통 끌어안은 탁월한 구조를 보여주는데, 매년 건축가 꿈나무들이 주변 경관과 건물이 조화와 통일을 이루는 병산서원을 견학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풍산 들판의 꽃뫼라 불리는 화산 뒤편의 병산서원은 건축 그 자체로도 최고이고, 자연환경과 어울림에서도 최고이며, 거기에 다다르는 진입로의 아름다움도 최고입니다. 병산서원은 주변의 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이 빼어난 강산의 경관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배치되어있다는 점에서 건축적·원림적 사고의 탁월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병산서원에 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만대루에서 보내면서 이 공간의 슬기로움에 감탄하곤 합니다. 만대루의 성공은 병산서원의 중정(中庭)이 갖는 마당의 기능을 이 누마루가 차출함으로써 건물 전체에서 핵심적 위치로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주 불국사

경주 불국사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의 문화유산만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불국사를 꼽을 겁니다. 불국사에 가시면 경내만 한 바퀴 돌고 오거나, 다보탑과 석가탑만 눈에 담고 돌아오지 마시고 석축(石築)을 유심히 보십시오. 인공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룬 현란하고 정연한 구성이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돌들을 하나하나 깎아 끼워 맞춘 석공의 인내심도 헤아려볼 만합니다.”
전장 300자, 약 90미터의 석축은 복잡하고 현란한 구성이지만 정연한 인상을 줍니다. 자연석 기단 위로 인공석을 얹으면서 목조건축의 그랭이법을 본받아 그 자연석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인공석 받침들을 모양에 맞춰 깎아낸 솜씨는 기교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엄청난 공력의 수고로움을 감당해낸 석공의 인내심은 거의 영웅적입니다. 불국사의 대석단(大石壇)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범영루 발밑에 쌓인 자연석 돌각담이죠. 우람스럽게 큰 기둥이 의좋게 짜여서 이 세상 태초의 숨소리들과 하모니를 아낌없이 들려줍니다.

담양 소쇄원
“소쇄원에 가시면 계곡 가까이에 있는 광풍각(光風閣)이라는 단칸 정자에 앉아보십시오. 초보 답사객은 정자 바깥에서 건물을 유심히 살피겠지만, 중요한 건 그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을 세운 위치입니다. 옛사람이 되었다는 마음으로 정자 누마루에 걸터앉아 계절의 빛이 서린 소쇄원 계곡을 차분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정자는 누구든 머물다 가라고 세운 것이니까요.”
소쇄원 원림(園林)은 자연의 풍치를 그대로 살리면서 곳곳에 인공을 가하여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 공간을 창출한 점에 그 미덕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길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자연을 경영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연 속에 행복하게 파묻히고자 하는 온정을 심어놓은 모습이기에 조선시대 원림의 미학(미적 규범)을 배우고 감탄하게 됩니다. 소쇄원에 처음 가보는 이들은 길이가 50미터나 되는 기와지붕을 얹은 긴 흙돌담의 아이디어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흙돌담은 소쇄원을 더없이 아늑한 공간으로 감싸주는 기능을 합니다. 소쇄원을 조영한 양산보(1503~57)는 어린 시절에 미역 감으며 뛰놀던 계곡 가까이 누정을 세우고 광풍각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은 겨울철 난방을 고려함이고, 사방으로 두른 마루는 여름날을 위함이죠.

한라산 영실
“‘한라산 영실을 안 본 사람은 제주도를 안 본 거나 마찬가지다.’ 제주도에서 ‘허’ 번호판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제주 허씨’ 여행자들(렌터카 여행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한라산은 제주의 산이면서도 한라산 자체가 제주섬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나는 언제나 한라산을 무한대로 사랑하고 무한대로 예찬하고 싶습니다.”
한라산 영실 한라산 윗세오름에 이르는 길은, 어리목 코스와 영실 코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왕복하면 8킬로미터, 한나절 코스로 국내에서 가장 환상적이면서 가장 편안한 등산길입니다. 답사든 등산이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게 으레 원칙입니다. 그러나 저는 나이 들면서 영실로 올라가서 영실로 내려오곤 한답니다. 영실 코스는 윗세오름을 올려다보며 오르다 보면 백록담 봉우리의 절벽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는 감동이 있고, 내려오는 길은 진달래밭 구상나무숲 아래로 푸른 바다가 무한대로 펼쳐지는 눈맛이 장쾌하기 때문입니다.
전종혁은 가을맞이 여행에 몹시 집착한다. 곧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홀로 단풍 구경을 떠날 생각이다.
Credit
- 글/ 전종혁
- 사진/ 김연제(창덕궁,병산서원),창비(선림원터)
- 사진/ Getty Images(부석사,불국사,소쇄원,영실)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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