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인사동에 상륙한 프라다 모드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낸 프라다 모드 서울의 순간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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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공연, 아트 토크, 요리 등 독특한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프라다의 현대문화 프로젝트가 서울의 인사동에서 펼쳐진 것은 남다른 선택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인사동은 옛 전통과 문화가 담긴 물건들이 교류하는 공간으로, 전 세계 다양한 도시가 지닌 고유한 특성에 주목해온 프라다 모드의 취지와 맞아떨어진다. 이틀 동안 프라다의 무대가 된 코트는 1960년대 가구 공예품점으로 출발해 지금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동안 인사동길을 굳건히 지켜온 곳.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는 것이 특징으로, 현대예술의 가치와 공간적인 특색을 염두에 두고 다차원적 공간으로 변신하기 적합한 장소다. 프라다 모드의 메인 전시 «다중과 평행»에서는 ‘3인 3색’의 공간이 펼쳐졌다. 김지운, 연상호, 정다희 감독의 설치작품을 선보였는데, 각각의 공간 속에 감독의 세계가 어떻게 호응하는지 샅샅이 들여다봤다.


다중과 평행의 세계가 열리다
올해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인 이숙경 큐레이터가 기획한 «다중과 평행»이란 주제를 곱씹으면 세 감독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힌트가 된다. 이 주제가 자칫 난해한 미술계의 화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단어를 살펴보면 오늘날의 일상을 포착하는 감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중’은 대중, 군중을 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최근 영화계 이슈인 다중 우주(멀티버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슷한 모습을 지닌 또 다른 우주가 존재하고 그 우주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가정 말이다. 마블의 블록버스터를 연상시키는 키워드와 달리, ‘평행’은 고립된 채 존재하는 자아를 연상시킨다. 실존은 철학의 오래된 테마다. 현대인에게 고독은 일상 그 자체이고, 타자와 사물에 둘러싸여 있어도 고독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완전한 고독이다”라고 얘기했던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세계(<시간과 타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작품을 해석하는 열쇠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
먼저 9월 말, 신작 <거미집> 개봉을 앞둔 김지운 감독의 전시 작품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다. 한국 영화의 2000년대 장르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이 옛사랑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은 의외의 선택이다. 그는 반투명한 푸른 옷을 입은 전시장에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던 환대의 공간인 평상을 설치했다. 장기판, 말린 고추, 막걸리와 비빔국수처럼 평상 위에는 향수를 부르는 소품이 놓였다. 김 감독은 “저는 서울 토박이인데 서울이 빠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라져가는 것들이 너무 아쉬웠다”고 회상하면서 기억 속의 아스라한 것들을 떠올리다 평상을 주제로 잡았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 집 앞에 평상이 있었는데, 거기서 밥 먹고 게임 하고 잠시 쉬거나 자기도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동네의 크고 작은 일들, 경조사가 모두 평상에서 이뤄졌습니다. 평상이 동네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었죠. 동네의 사랑방이나 거실 역할을 했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지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의 대담집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에서 두 사람이 옴진리교 사건을 논하며 커미트먼트(헌신)와 디태치먼트(세상과 거리를 둔 상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흥미롭게 읽은 후 평상을 떠올렸다. 서로를 지켜보고 얘기를 들어주던 일상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고립되고 서로 무관심해지면서 최근 비극적인 불상사(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이야기하는 장을 만들었다.


유령을 환영(歡迎)하는 공간
두 번째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대주로 손꼽히는 정다희 감독의 전시 <종이, 빛, 유령>이 기다리고 있었다.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상영된 그의 대표작 <움직임의 사전>(2019)은 나무, 개, 인간 등 여러 캐릭터가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기발한 아이디어로 제시한 바 있다.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수상작 <의자 위의 남자>(2014)와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휩쓴 <빈 방>(2016)을 이번 전시에서 상영했다. 그는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형식으로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내러티브 없이 감상이 가능한 작품, 영화 자체를 분리해 볼 수 있는 작업으로 <빈 방>과 <의자 위의 남자>를 선택했습니다.” 독특한 제목에 대해서는 “영화는 빛이라는 재료가 없으면 구현 불가능합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커튼 위에 빛이 드리워진 모습과 종이 위의 그림을 볼 수 있죠. 그렇게 빛과 종이라는 매체를 활용했고, 영화라는 환영(幻影)이 곧 유령이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대로, 전시장을 들어가면 먼저 흰 커튼 위를 천천히 움직이는 빛(조명)과 줄줄이 벽 옆에 붙여놓은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이 빛이 마치 길잡이처럼 내부로 안내하는데, 바로 4개의 스크린이 사방을 둘러싼 공간으로 이어진다. 4개로 분할된 <빈 방>을 보고 스크린을 빠져나오면 그 뒤에는 서재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책꽂이 앞에 푸른 팬티만 입고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캐릭터가 조각으로 구현된 점이다. 정다희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그의 말을 빌리자면 ‘고정되지 않는 현실, 변화하는 자아’다. 영화의 카메라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자유로운 시점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물의 변형과 관점의 변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즉 고착이나 안주를 거부하는 그는 관객의 믿음을 깨뜨리기 위해 쉬지 않고 변화의 주사위를 던진다. 궁극적으로 <종이, 빛, 유령>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을 공간에 풀어놓은 전시이자, 작가의 의식이 머무르는 공간을 엿보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두 편의 애니메이션을 분리해 보여주는 방식이 새롭다. 사실 원작을 본 적 없는 관객이라면 작품의 순서와 상관없이 이를 부분적으로 보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합하게 된다. 프레임 속의 프레임, 일상이 반복되는 순환을 중요시하는 정다희의 영화세계는 얼마든지 또 다른 방식으로 읽힐 수 있는 다차원적인 가능성의 세계다.


지옥사자가 출몰하는 고시원
마지막 주자는 <부산행>(2016), <반도>(2020)로 이른바 K-좀비의 시대를 연 연상호 감독이다. 연상호는 최규석과 작업한 웹툰 <지옥>을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만들어 화제를 낳았다. 그의 설치작품 <지옥>은 극의 주인공이자 사이비 종교(새진리회)의 의장 정진수가 살고 있는 고시원을 재현했다. “고시원은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세상과 고립된 공간이죠. 고시원에서 완벽한 비일상성으로 진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라고 작업 의도를 설명했다. 고시원의 문을 열고 입장하면 고시원 총무가 아니라 커다란 괘종시계가 관람객을 맞이하는데, 복도를 따라 좌측으로 꺾으면 3층의 방들이 쭉 보인다. 어두운 부엌을 지나 305호에 이르면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다. 심하게 파손되어 있는 맞은편 벽은 이 방에서 잔혹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는 사인. 안을 들여다보면 방은 검은 지옥사자의 시연이 찍힌 수백 장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복도의 하이라이트. 마지막 방인 307호의 문을 열었을 때 눈을 의심하게 된다. 고시원을 벗어난 듯한, 마치 무중력 상태에 진입한 듯한 광경이 펼쳐진다. 천장과 벽, 바닥이 온통 새하얗게 빛나는 공간 속에 놀랍게도 시꺼멓게 탄 정진수의 시신 잔해(그렇게 추정 가능할 뿐)가 기다리고 있다. 드라마에서 정진수는 자신이 20년 전 예언을 들었던 폐쇄된 보육원의 어둠 속에서 처참히 죽지만 이 밝은 방은 또 다른 방식의 결말을 이끌어낸다. 웹툰이나 드라마로 <지옥>을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철저히 <지옥> 마니아들을 위한 서비스다. 전작의 좀비들을 활용했으면 보다 대중적인 요소가 많았을 테지만, 공간이 주는 폐쇄성이나 죽음을 앞둔 개인의 고독(잘나가는 신흥 종교의 의장이지만 홀로 고시원에 살고 있다), 특히 웹툰에서 드라마로, 전시로 변환되는 다중적인 작품세계를 고려하면 <지옥>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경계를 넘나들며 소통가능하다는 것이 연상호가 창조하는 콘텐츠의 힘이다. 또 하나를 뽑으라면 전염성이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전염성을 지니고 있다. 마치 이 고시원에서 최후를 맞이한 자의 비명처럼.
Credit
- 글/ 전종혁(프리랜스 에디터)
- 에디터/ 안서경
- 사진/ ⓒ Prada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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