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 속 우아한 터치를 더한 프라다, 보테가 베네타, 발렌티노의 뉴 포멀 룩도 주목할 만하다. “패션을 예술로 보지 않는다”며 패션과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쇼에 담은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는 그레이, 네이비 컬러의 심플한 니트에 섬세한 쿠튀르풍 스커트를 매치하거나 더플 코트에 우아한 포인티드 토 슬링백 슈즈를 더한 근사한 데일리 룩을 제안했다. 최근 공개된 발렌티노의 2023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룩이 눈에 띄었다. 오프닝을 장식한 모델 카이아 거버가 입은 오버사이즈 화이트 셔츠와 데님 팬츠 룩. 사실, 평범한 청바지처럼 보이는 이 팬츠는 실크 가자르 소재에 수천 개의 마이크로 비드를 빼곡히 수놓아 제작한 쿠튀르 피스였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건 웨어러블하고 베이식한 아이템이 전통적인 쿠튀르 무대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트롱프뢰유 기법을 활용해 얇은 가죽 소재로 제작한 심플한 파자마 룩과 화이트 탱크톱, 데님 스타일로 일상적인 룩에 특별함을 더한 보테가 베네타까지. “일상생활의 움직임과 이동을 고려한 실용성이 담긴 패션은 시대를 초월하는 스타일 그 이상이며, 현대사회의 조용한 힘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는 말한다.
팬데믹과 엔데믹을 거치며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밸이 더욱 중요해지고, 안전과 편안함이 우선시되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더불어 경기침체와 불황으로 오래 입을 수 있는 편안한 룩이 각광받고 있다. 한 섬유산업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캐주얼복의 성장률은 전년 대비 8.6%로 이는 전체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이며, 올해도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는 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실용성의 미학이 하이패션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든 셈이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화이트 탱크톱, 니트, 카디건, 후드, 데님 등 베이식한 아이템이 런웨이에서 재조명되어 더욱 다채롭게 등장한 것. 이처럼 이번 시즌 웨어러블한 무드에 빠진 유행은 단지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닌 사람들의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것일 터. 실용성이 패션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된 지금, 런웨이에 등장한 리얼리티 패션은 올가을 등굣길에서 혹은 출근길에서 흔하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