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스 바자〉의 27주년을 기념하며.27년 동안 매월 잡지는 얼굴을 남겼다. 성별과 인종을 넘나들고 때로는 특별한 기념을 하기도 하던 27개의 표지를 선별해 한 액자에 담았다. 흘러간 그날의 순간은 불변하는 인장처럼 남았다.
‘모리함’은 공방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곳만의 작업 방식을 뜻한다고 볼 수 있겠어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소중한 오브제나 기록하고자 하는 것들을 액자에 담아 하나뿐인 작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기술적으로는 한국 전통표구 기술을 기반으로 액자, 병풍, 족자, 화첩, 서책 등을 다뤄요. 이름은 기억을 뜻하는 영어 ‘memory’에서 ‘모리’를 따와 상자를 뜻하는 한자 ‘함(函)’을 붙였어요. 그리워할 모(慕), 다를 리(異)라는 한자를 써서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것들을 다르고 특별하게 담는다는 의미도 주었고요. 처음부터 표구집, 액자집이라고 간판을 걸지 않은 이유도 이곳에서 행해지는 작업이 ‘모리함 하다’나 ‘모리함’이라는 대명사로 불리고 싶어서였어요.
액자라는 기본 형식에 사진이나 그림이 아닌 ‘기억을 담는다’는 아이디어는 어디로부터 출발했나요?
모리함을 열기 전까지 10년 동안 카카오에서 일했어요. IT 회사다 보니 워낙 바삐 돌아가고 빠르게 변하는 사용자들에 맞춰 매일 다른 아이디어를 내야 했어요. 어느 순간 놓치고 있는 게 뭔지, 지속성과 영원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던 중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일을 그만두고 제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만 그럼에도 더 오래 간직하고 볼 수 있는 것들이 뭘까 고민하다 액자라는 결론에 닿았고요. 카카오 선물하기에서 메시지 서비스에 관련된 일을 했기 때문에 기념일이나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고 담는 일, 사람 사이의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 둘을 접목한 게 모리함의 시작이었어요.
4년 전 한남동 작은 작업실에서 지금 남산 아래 전시관을 갖춘 곳에 정착하기까지 여정은 어땠나요?
한남동 언덕배기의 열두 평짜리 공간에서 혼자 모든 작업을 했어요. 의뢰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데 가장 큰 시간을 할애했죠. 그러다 보니 두 시간만 자면서 일해도 의뢰인 중 누군가는 서너 달씩 기다려야 했어요. 소중한 추억을 빨리 되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2년 동안 열심히 해 팀원을 늘리고 공간도 넓혔어요. 짐을 싣고 오는 분들이 많으니 주차 공간도 확보하고 문턱에 걸리지 않도록 동선을 짜고 들어서자마자 의뢰한 작품을 볼 수 있는 벽도 만들었어요. 마치 갤러리에 걸린 작품처럼 감상하는 경험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기억을 저장하는 많은 방법 중에 한국적인 방법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한국적인 것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파리의 한 액자집에서였어요. 파리 한복판에 있는 1백50년이 넘은 액자집에 갔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가 있는 서울에서는 당연히 한국적인 것을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떠올랐죠. 미적인 것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물론 취향이 다르지만 모두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고 익숙한 것들이 더 오래가고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고고학과 교수님 퇴임을 앞두고 제자들이 의뢰해 만든 함. 작은 상자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이 엿보인다.
한국 전통표구는 익숙하지만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직접 배우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있다면요?
모리함의 구상을 마치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전통표구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놀랍게도 정식으로 배울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더라고요. 연관된 학과나 기관이 없어 인사동 표구집 문을 무작정 두드렸어요. 도제식으로 빗자루질 몇 개월, 다림질 몇 개월을 해가며 배웠어요. 한중일 표구 중에서 우리나라 표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뚜렷한 사계절로 인해 보존을 중요시 한다는 점이에요. 표면적으로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 아래 변질을 막기 위한 보강 기술이 많이 들어간달까요. 미적으로는 삼국이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아 비슷한 점이 많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족자는 풍대라고 해서 장식이 많이 달려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색과 구성이 단정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해요. 저 역시 보존성과 내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작업하는데, 다양한 환경에서 세월을 보낸 소장품들의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 숙제이자 연구이기도 하죠.
전문 기관이 없는 대신 오랜 개인의 경험을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얘기로 들려요.
마치 셰프에게 요리를 배우는 일 같기도 해요. 천연 풀과 한지를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동일한데 40~50년 된 각자의 노하우를 가진 분들이 존재하는 거니까요. 다행히 명맥이 끊긴 한국 전통 표구를 젊은 사람이 배운다니 여러 선생님들이 많은 걸 알려주세요. 이제는 일종의 세미나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케이스에 대해 노하우를 나누고 있어요.
어린아이 키만 한 국가무형문화재 유기장 이봉주 명인의 도구를 표구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추억을 담은 개인적인 작업이 첫 모리함으로 알고 있어요.
어머니의 유품인 진주 목걸이를 제대로 보관하고 싶어 목걸이와 함께 어머니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사진을 함께 놓았어요. 지금도 작업실에 걸려 있는데 서투른 작업이지만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요. 어머니와의 기억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표구 작업을 하면서 보냈던 힘든 과정이나 애틋한 감정이 저장되어 있거든요.
불특정 다수의 기억과 물건을 만나는 일은 어떤가요?
친구나 부모님, 할머니와 할아버지, 조카 같은 가족과의 기억이 대부분이라 덩달아 제가 겪은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도 상상이 될 때가 있어요. 그게 슬프고 쉽지 않은 기억이더라도 공감 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면에서 소중함을 느껴요. 마치 잘 써진 에세이를 한 장 한 장 읽는 기분이 들어요.
상담이 가장 첫 과정이에요. 소품이든 그림이든 가져온 것들을 펼쳐 놓고 이야기를 나눠요. 관련된 에피소드나 사연, 둘 공간에 관한 정보를 나누기도 하고요. 정확히 원하는 걸 모를 때는 평소 좋아하는 색이나 옷차림처럼 개인적인 취향을 파악하며 구조를 짜요. 사연도 중요하지만 만들고 나면 하나의 가구처럼 보이는 데 두거나 거는 용도라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해요. 크기나 부피에 따라 나무 틀을 수급하는 데 제작 기간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물건과 사연의 분위기에 맞게 부자재, 원단의 재질을 고르는 과정을 거쳐 완성돼요.
한국화의 전통 기법인 먹번짐과 몰골법을 바탕으로 재해석한 모리함의 병풍.
옷가지에서부터 지류 등 정말 다양한 물건을 담아요. 도전을 요하는 물건도 많았을 것 같아요.
97세 무형문화재 방짜유기장의 도구를 물려받은 손주분께서 그걸 담고자 온 적이 있어요. 불길과 최대한 멀어지고자 직접 만든 도구인데 초등학생 키만 한 크기의 쇳덩이였어요. 무거운 쇠를 고정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하는 게 가장 고민이었죠. 마침내 고정할 수 있는 새로운 와이어를 만들었고 전통문화유산에 걸맞게 손으로 짠 삼베를 바탕에 깐 작업이 기억에 남아요. 또 입구에 놓여있는 고사 북어도 저희에게는 뜻깊어요. 개업을 하면 고사를 지내고 고사에 썼던 것들을 매달아 놓잖아요. 어떤 의뢰인이 사업장을 이전하면서 고사를 지낸 다음 북어를 보관하고 싶어했어요. 실제 북어를 방부 처리하고 투명한 액자를 만들어 행잉 형태로 완성했더니 이후에도 지인의 개업 선물로 몇 개나 더 의뢰를 하더라고요. 재미있게도 선물 받은 분이 또 오면서 서서히 퍼져나가 나름의 시그너처가 되었어요. 서로에게 운을 가져다주길 바라는 마음을 느끼면서 참 행복했어요.
기억은 아무래도 시간과 연결되죠. 몇 년 동안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작업들도 있었을 텐데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8폭짜리 병풍을 해체해서 두 폭 병풍이랑 액자로 만들어 모든 자녀분들에게 나눠드린 적도 있고,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둔 아버지에게 아이가 만든 종이접기를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들어드린 적도 있어요. 커플 사진을 담으러 왔던 분들이 청첩장, 아이 돌 물건을 가져와 한 가족의 삶의 행로를 함께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자리에 오래도록 뿌리를 내려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죠.
스튜디오 위 전시 공간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모리함 전시관은 작품이나 액자를 감상하는 갤러리 기능에 갇히지 않고 액자에 담아내던 모리함의 형태를 공간으로 확장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일반적인 미술 전시를 기본으로 열되 칠순 잔치나 생일 기념 혹은 그냥 내 삶을 반추하는 전시를 열 수 있는 공간이요. 작년 오픈 공사를 마치고 연 «일생의례»는 제가 바라는 전시관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샘플 전시였어요. 2층 입구부터 아이의 탄생을 나타내는 함, 이어 청춘의 훈장과 같은 메달 등을 담은 함, 마지막에는 유품을 담은 함을 차례대로 보여주며 인생의 전반을 되짚어볼 수 있게끔 했어요. 의뢰인들의 모리함을 빌려 전시한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3층에서 연 «Celebrating the Life of SOOK»은 저희 어머니를 추모하는 새로운 장례식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를 다시 치른다고 생각하며 기획했죠. 어머니 영정 사진부터 제가 몰랐던 엄마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사진을 진열하고 어머니가 좋아했던 물건과 노래 부르던 취미를 의미하는 마이크도 놓고 저한테 남긴 편지도 전시했어요. 우리 집만의 레시피로 만든 음식을 푸드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전시에 관심을 갖고 함께 경험하길 바라고 있어요.
스튜디오 한편. 작업을 위해 필요한 도구가 한눈에 보인다.
〈하퍼스 바자〉의 27주년을 기념하는 모리함을 제작하면서 가장 담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요?
한 세기 이상 된 역사를 가진 최초의 매거진으로 패션과 문화, 예술적인 부분을 다뤄온 헤리티지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했어요. 한국판 27주년이라는 키워드 아래 방대한 정보를 어떻게 담을까도요. 재료에 방점을 찍고 ‘바자’의 얼굴인 스물일곱 개의 표지를 가장 전통 있는 한지에 프린트했어요. 결이 살아있는 닥나무 한지에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오래된 작품을 보존하면서 감상하기 위한 방법으로 영인본 제작이라는 걸 하는데 그걸 만드는 전문 기술을 가진 모사공이라는 문화재청의 문화재 수리기능자가 있어요. 그렇게 뽑아낸 표지를 표구하고 가장 견고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감이 생기는 호두나무를 깎아서 끼워맞추는 결구 방식으로 완성했어요. 기자 분들이 촬영할 때 유리 반사에 민감한 점도 캐치해 무반사 유리를 넣는 재미도 주었고요.
모리함의 역사를 함으로 만든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요?
«일생의례» 전시 때 방명록으로 걸어 놨던 액자처럼 모리함을 찾은 분들의 자취를 차곡차곡 쌓은 모습이 될 것 같아요. 아주 큰 바탕에 군더더기 없는 한지를 콜라주한 형태가 떠오르는데 시간이 흘러 실제로 만드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그 미래를 위해 넓혀가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통표구에 관해 학문적이거나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정돈된 부분이 거의 없어요. 모리함을 통해 전통을 계승하고 싶어요. 단기적으로는 우리 전통 한지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키기 위해 추진단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전통과 현대를 잘 엮어나가는 게 목표예요. 아주 긴 숙제가 될 것 같지만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