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 룩소르에서 만나는 애거서 크리스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Lifestyle

나일강 룩소르에서 만나는 애거서 크리스티

초호화 여객선을 타고 나일강을 유람하다.

BAZAAR BY BAZAAR 2023.07.14
 
1921년부터 현재까지 항해하고 있는 SS수단호.

1921년부터 현재까지 항해하고 있는 SS수단호.

한때는 테베(Thebes)의 고대 도시였던 룩소르(Luxor) 나일강변에 조용히 정박해있는 SS수단(SS Sudan)호가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여행용 가방과 에르퀼 푸아로(Hercule Poirot) 스타일의 밀짚모자를 들고 판자를 건너며 황금시대의 영광에 발을 내디뎠다. 밤색의 페즈 모자와 동일한 색의 트라우저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유쾌한 60명의 크루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여전히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오리지널 형태의 우체통과 목재 패널의 다이닝룸을 지나면 화려한 황동 침대 프레임과 거대한 욕실이 있는 넓은 객실이 나타난다. 18개의 객실과 네 개의 스위트 문에는 이집트와 관련된 가상의 인물이나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 명패에 새겨져 있어 각 객실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그 중 한 객실의 명패는 애거서 크리스티에게 경의를 표했고, 바로 옆방에 배정받은 우리는 유능한 벨기에 탐정 덕분에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었다. 1930년대에 크리스티는 그녀의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인 〈나일강의 죽음(Death on the Nile)〉의 탄생에 영감을 주었던 전설적인 증기선을 타고 여정을 시작했다.(어느 저녁 크루들은 승객들이 이번 여행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나일강의 죽음〉의 가장 최신 버전 영화를 상영했다.) 
 
SS수단호 객실.

SS수단호 객실.

초호화 여객선의 결정체 같은 모습의 SS수단호는 토마스 쿡(Thomas Cook)의 의뢰로 1921년에 처음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SS수단호는 이 위대한 강을 항해하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증기선으로, 이 배를 탄 운 좋은 승객들은 과거의 영광스러운 여행을 체험할 수 있다. 룩소르의 시끄러운 부두를 벗어나자, 일상의 패턴은 우리 발 아래 흐르는 강물의 흐름과 같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육지에서의 아침 모험은 이집트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가이드 모(Mo) 박사가 능숙하게 이끌어주었다. 첫 이틀 동안 우리는 문명의 가장 위대한 공학적 업적을 대표하는 카르낙(Karnak)과 룩소르, 이드푸(Edfu) 그리고 콤옴보(Kom Ombo)의 거대한 신전이 있는 고지대를 탐험했다. 매와 코브라, 숫양 등 동물의 머리를 한 거대한 신상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별빛이 반짝이는 블루 & 골드 천장의 채광창이 비치는 아찔한 통로로 제비들이 들이닥친다. 모 박사는 벽의 모든 공간을 덮고 있는 여성 육체의 관능적인 곡선이나 아이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몸을 구부리고 있는 어머니의 부드러움, 속이 꽉 찬 포도와 묶여있는 닭 같은 세심한 상형문자를 판독해주었다. 
 
이드푸의 호루스 신전.

이드푸의 호루스 신전.

우리는 아프리카 열기가 시작될 무렵 시원한 안식처인 배로 돌아와 얼음처럼 차가운 핑크빛 히비스커스 주스 한 잔을 즐겼다. 그리고 속을 채운 포도잎과 타라곤(tarragon)으로 데친 나일강의 농어, 넥타로 채워진 바클라바로 이어지는 점심식사를 즐겼다. 엔진 피스톤이 마치 활강하듯 부드럽게 조용해질 때, 배 전체에 침묵이 찾아왔다. 우리는 꼭대기 데크에서 편안한 쿠션의 등받이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보곤 했다. 사탕수수와 갈대밭이 강둑을 따라 늘어서 있고, 사막의 붉은 모래 언덕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안개 속으로부터 떠올랐다. 당나귀는 시끄럽게 울고, 소들은 풀을 뜯어먹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왜가리는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배들은 물길을 따라 각자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페일 블루 컬러의 젤라바를 입은 젊은 청년이 강물을 따라 전속력으로 말을 타고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초록빛 물속에서 소리를 내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햇볕을 쬐며 상공을 맴도는 독수리와 과거로 항해하는 펠러커 배들의 펄럭이는 돛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 읽었던 신화와 미스터리가 현실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나는 부들 속에 숨겨진 아기 바구니나 눈부신 옥좌에 앉은 클레오파트라를 태운 보라색 돛의 황금 바지선이 저절로 떠올랐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여신 이시스(Isis)는 시스 드레스를 입은 채 모든 사원의 벽면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가의 암각화.

강가의 암각화.

넷째 날, 우리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 일찍 움직이기 위해 이른 새벽에 아침식사를 한 후 무지개 깃발이 달린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강을 건너 파라오의 시신이 묻혀 있는 둑 데드 사이드(Dead Side)로 향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금방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에 도착했다. 삭막하고 뜨거운 환경 속에 있는 이 놀라운 묘지는 다른 수많은 사원들과 마찬가지로 수천 년 동안 기원전 16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이집트를 통치했던 왕들이 미라로 안장된 무덤 입구를 덮은 표사에 의해 보존되어왔다. 그 후, 그들은 화려한 색상의 그림으로 치장되고 태양 전차나 은, 음식 그리고 샌들이나 악기 등 없어서는 안 될 물품들이 갖춰진 방으로부터 사후 세계로 보내졌다.기원전 1323년, 왕의 시신은 여러 개의 관 안에 안치되었고, 그의 얼굴은 눈부신 골드 & 블루 컬러의 마스크로 보호되었다. 정확히 한 세기 전,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는 보물로 가득 찬 투탕카멘(Tutankhamun)의 작은 무덤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계단 중 첫 번째 계단을 발견했다. 카터가 발견한 놀라운 보물들의 대부분은 8억 5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이집트 박물관(Grand Egyptian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비록 이곳에 남은 건 없었지만 이 장소, 이 깊은 공간에 완벽하게 고립된 우리는 지하 세계의 신비로움과 사후 세계의 약속 그리고 신들로부터 강한 에너지를 느꼈다. 1백 년 동안 세계를 매료시킨 무덤 안으로 들어가 하얀 시트 아래 누워있는, 수천 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검게 변하고 쭈글쭈글해진 19세 소년의 미라를 보니 마음이 겸허해졌다. 
 
콤옴보 신전.

콤옴보 신전.

SS수단호가 아스완(Aswan)에 정박했다. 이 매력적인 배로부터 하선해야 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올드 카타락트 호텔(Old Cataract Hotel)에 도착한 순간 그런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크리스티가 선상 생활로부터 떠나 나일강이 내려다보이는 방으로 은거했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1934년 여기서 그녀는 유명한 살인 미스터리를 썼다. 우리는 이 도시를 둘러본 후에 파슬리와 고수가 들어간 타불레(Tabbouleh)로 점심을 먹고 마지막 탐험을 준비했다. 누비안(Nubian)마을과 몇몇 웅장한 고대 사원들이 있는 엘레판티네섬(Elephantine Island)에 돛을 내렸다. 이후 우리는 본토로 돌아와 깨끗하고 악어도 없는,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강에서 수영을 할 준비를 했다. 크리스티는 나일강을 항해하면서 암울한 여러 살인 사건의 영감을 얻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시대를 초월한 삶의 기쁨이 이곳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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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Juliet Nicolson
    사진/ Zoe Fidji, Camille Lambrecq
    사진/ Fabrice Rambert, Oliver Romano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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