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예술가에게 끼치는 영향?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여행이 예술가에게 끼치는 영향?

마르셀 프루스트는 “여행,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 했다.

BAZAAR BY BAZAAR 2023.06.30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캔버스에 유채, 74.5x122.2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70.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캔버스에 유채, 74.5x122.2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70.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현대미술가 양혜규가 해외 미술무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게 된 배경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때마다 그녀는 시대 덕분에 가능했다고 운을 떼곤 한다. 양혜규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94년 독일로 유학을 갔고, 여전히 베를린과 서울을 근거지로 작업하고 있다. 지금이야 자연스럽게 여겨지지만, 평범한 한국인이 국경을 넘나들게 된 건 1980년대 초부터의 일이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둔 80년대 초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되고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는데, 이는 곧 전근대적 시대를 종식시키는 혁신적 사건이었음을 방증한다. 더욱이 1990년대부터는 해외유학까지 보편화되면서 신문물을 배우려는 젊은 예술가 지망생들도 대거 움직일 수 있었다. 말인즉슨,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현상, 인물, 사건 등을 국경과 시공간을 초월한 방대한 참조점으로 삼는 양혜규만의 시선도, 고유한 언어와 사유로 동시대를 표현하는 방식도, 그 출발점이 바로 ‘이동’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양혜규가 이방인으로 살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정체성에 대해 고투하는 작업을 내놓았을까? 각기 다른 문명을 관통하는 보편의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몰두했을까? 이토록 매력적인 혼성의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설사 그랬다 해도 다른 양상이었을 거라 확신하는 까닭은 지금도 양혜규가 자신이 만난 ‘신기한 사람’들과 이로써 발견한 ‘신기한 것’들을 얘기하는 데 기꺼이 인터뷰 시간의 절반 이상을 쓰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필리핀의 환경운동가나 쿠바의 수공예 ‘피냐’ 장인들, 로니 혼과의 멕시코 유카탄 여행기 등 실로 생소한 이야기들이 줄줄 쏟아진다. 이럴 땐 유심히 잘 들어놓는 게 좋은데, 단상 중 몇몇은 곧 새로운 작품이 되어 탄생하는 탓이다. 물론 움직임으로써 영감을 얻는 건 그녀만의 특권은 아니다.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가보지 못한 곳에 가는 것”이라 했고, 라틴아메리카 예술가인 솔 칼레로는 “여성으로서 예술을 하며 살 수 있는 기회는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데서 온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모든 예술가가 이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작가 자신 대신 작품에게 떠돌이의 역할을 맡기는 이도 있고, 작업실에서 영감을 힘차게 길어 올리는 경우도 존재한다.
어쨌든 여행이든 유학이든 현대미술가에게 이동 및 움직임은, 일요일 저녁마다 홈쇼핑 채널이 여행상품으로 도배되는 작금의 현상만큼이나 필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술사를 통틀어, 예술가들이 자신의 터를 떠나 낯선 곳에서 삶을 꾸리는 건 1600년대 이후에나 가능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요즘 의미의 유학 또는 이동을 한 최초의 예술가는 알브레히트 뒤러라는 설이 가장 믿을 만하다. 뒤러는 갖은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고 수차례 이탈리아 베니스로, 벨기에가 있던 플랑드르로 유학 혹은 여행을 떠났다. 여행이 그에게 끼친 영향은, 〈자화상〉 같은 자긍심 충만한 그림이 탄생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그림의 역할이 엄숙한 천상의 존재를 그리며 종교나 왕족에게 복무하는 것이라는 관습을 깨고, 산토끼를 그린다든가 여행길의 도시를 스케치하는 식의 현대적인 시도로 이어졌다는 게 중요하다. 뒤러 이후 “세계가 나의 집이다”라고 선언한 루벤스나 그의 조언으로 유학을 떠난 벨라스케스 등 ‘이동의 계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의 그림자〉, 1921. 에칭, 24.4x27.9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gift of Gertrude Vanderbilt Whitney 31.691.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 Licensed by SACK, Seoul

에드워드 호퍼, 〈밤의 그림자〉, 1921. 에칭, 24.4x27.9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gift of Gertrude Vanderbilt Whitney 31.691.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 Licensed by SACK, Seoul

현재 절찬리에 전시 중인 에드워드 호퍼의 개인전 《길 위에서》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예술가로 하여금 견문을 넓히고 영감을 얻어 작업세계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여행의 오래된 효능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호퍼 작업이 보는 모두를 시인으로 만드는 줄은 알았지만, 알고 보니 ‘여행하는 시인’으로 만들더라는 것이다. 작가의 생애를 관통하는 화업을 펼쳐놓기 위해, 전시는 ‘여정’의 키워드를 차용한다. 이것이 다소 전형적이긴 할지언정 호퍼 작품을 즐기는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꽤 의미 있다. 사실 고립, 단절, 소외, 허무 등 현대인의 정서를 적확하게 표현한 호퍼의 몇몇 대표작만 보면, 그가 일생 한 번도 뉴욕을 떠나지 않았을 것만 같다. 그 고독의 이미지가 너무나 거대해서 예컨대 그가 허구한 날 카페를 들락거리며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되거나, 〈맨하튼 다리〉 근처를 배회하거나, 〈도시의 지붕들〉만 하염없이 쳐다보거나, 남의 〈밤의 창문〉이나 훔쳐보거나, 영화관에 죽치고 앉아 〈통로의 두 사람〉을 관찰하기만 했을 거라는 선입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럴수록 파리 체류 때 그렸다는 그림에서 그 도시 특유의 풍부한 빛과 사람들의 활기에 작가가 매우 들떠 있음을 알아차리기 쉽겠지만 말이다.  
이번 전시는 호퍼 그림의 진실, 즉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내면에서 상상력과 통찰력을 더해 창조된 거라는 점을 충실히 뒷받침한다. 그가 아내인 조 호퍼와 함께 여행을 자주 다녔고, 그때 경험한 빛과 공기, 제스처와 뉘앙스를 그려내는 과정을 통해, 결국 뉴욕을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도시로 그려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뉴욕을 베이스로 파리,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호퍼 부부가 머물렀고, 이윽고 작품에 남게 된 이 장소들은 호퍼의 유명작을 ‘영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해’하도록 한다. 그가 뉴욕을 그리기 전까지, 과연 빛을 입은 건물을, 지붕을, 강변에 줄지어 선 아파트를 맹렬한 자본주의적 관점이 아닌 예술적 시점으로 인식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그가 〈파리의 계단〉을 그리기 전까지는, 그 집주인조차 제 집을 제대로 본 적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예술가에게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그들의 시선으로 발견, 구현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업의 대상이든 주체이든 매번 스스로를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 놓는 것, 그것이 예술가가 여행하는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퍼의 작업세계와 이동의 관계에 주목하는 다른 전시도 눈에 띈다. 2019~2020년 리치먼드의 버지니아미술관에서 열린 《에드워드 호퍼와 미국의 호텔(Edward Hopper and the American Hotel)》이라는 전시가 그 예다. 부지런히 여행을 거듭한 이들에게 길 위 안식처 역할을 했던 호텔, 모텔, 민박 숙소 등의 공간을 소재로 한 작업이 대거 전시되었는데, 이번 서울 전시와 마찬가지로 각 장소에 대한 조 호퍼의 (강박에 가까운) 꼼꼼한 메모, 지도, 엽서 등을 함께 소개했다.
특히 호퍼가 해석한 ‘환대’의 이미지가 인상적인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외로움과 단절의 이미지에 도전하는 동시에 확장하기 때문이다. 어느 여자가 호텔방에 혼자 있거나 로비에 남녀가 기다리는 듯한 장면에는 기묘한 설렘과 권태가 공존한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외롭기를 자처한 듯한 이들의 모습은 고독의 의미를 다시 쓰고, 떠나기 위해 머물고 머물기 위해 떠나는 여행의 본질을 일깨운다. 고립의 정서를 그리기 위해 움직임을 택한 호퍼의 역설인 셈이다. 게다가 창문 너머 보이는 자동차로 짐작할 수 있듯, 호퍼의 여행기는 그 이상이다. 삽화가로도 일한 그는 당시 우후죽순 생겨난 호텔들의 광고 이미지 작업을 꽤 했다. 이 ‘가장 미국적인 작가’는 1920~30년대 미국의 풍경과 사회상을 기록하고, 맹렬한 도시화와 대공황 와중에도 일시적인 일탈의 쾌감을 선사한 여행을 회화적으로 은유한다.
 
호퍼 부부가 관람한 연극 티켓 모음, 1925–36. The Sanborn Hopper Archive at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Frances Mulhall Achilles Library and Archives, New York; gift of the Arthayer R. Sanborn Hopper Collection Trust EJHA. 0754–.0900. Photographs by Hudson Archival, courtesy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호퍼 부부가 관람한 연극 티켓 모음, 1925–36. The Sanborn Hopper Archive at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Frances Mulhall Achilles Library and Archives, New York; gift of the Arthayer R. Sanborn Hopper Collection Trust EJHA. 0754–.0900. Photographs by Hudson Archival, courtesy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어렸을 때부터 선박, 기차 등에 유난히 관심이 많던 호퍼는 이후에도 뉴욕 항구에 정박한 배나 기차를 자주 그렸다. 1927년 중고차를 구입해 아내와 자동차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기차로 미국을 횡단하기도 했다. 휘트니미술관의 관장이었던 로이드 구드리치는 여행에 대한 호퍼의 의식적인 몰두를 언급하며 “호퍼는 운전을 할 때 그림 주제들이 떠오른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지만, 사실 기차야말로 화가에게 더없이 좋은 작업 공간이다. 비행기보다 다채로운 풍경을 펼쳐놓고, 자동차보다 관조적인 시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실제 세상을 볼 때와 가장 비슷한 시각을 제시하기에, 기차에서의 고독이야말로 가장 정제된 그것이다. 가만 앉아 있기, 계속 변하는 풍경 응시하기, 자신에게 집중하기. 예컨대 우아한 네이비색 모자를 쓴 여성이 기차에서 책 읽는 작업 〈293호 차량 C칸 객실〉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는 내부자의 시선에서 고독의 순간을 그려낸다. 이번 전시에서도 선보인 〈석양의 철길〉 역시 기념사진 속 그것이 아니라, 달리는 기차 안에서 삶을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의 시점으로 보고, 상상한 세상의 풍경이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되어간다는 느낌입니다.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사물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당신도 잘 알겠지요.” 그럼에도 호퍼가 ‘움직이는 사람’이었음을 간과하게 되는 까닭은 반대로 어마하게 견고한 작업세계 덕분이다.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감의 종류는 다양하겠지만, 호퍼의 여행에는 환상이 없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여행은 삶의 균열이자 연장선이며, 따라서 매우 이중적이다. 어떤 여행이든 항상 짧고, 나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내가 꿈꾸는 여행과 같을 수 없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다만 그의 작업은 설사 단절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해도 마냥 정적이지만은 않은데, 기이한 생동감이 이른 새벽의 안개처럼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머무는 상태와 나아가는 상태가 빚어내는 부조화, 보이지 않는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호텔이든, 기차든 그림에 내재된 움직임을 더욱 가속화한다. 사건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혹은 직후의, 어쩌면 무의미하고, 지루하고, 허무하며, 아무것도 아닌 덧없는 순간. 희망에 대한 절망과 절망에 대한 희망이 충돌하고 자리를 바꾸며 움직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호퍼의 고독은 완성되었다. 
 
에드워드 호퍼, 〈그랑오귀스탱 강둑〉, 1909. 캔버스에 유채, 60.2x73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73.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에드워드 호퍼, 〈그랑오귀스탱 강둑〉, 1909. 캔버스에 유채, 60.2x73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73.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여행이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끼친 영향은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얼마 전 알고 지내는 어느 미술가는 열대 원시림으로 가기 위해 3종의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작가가 이렇게 비일상적으로 움직일 땐 다 이유가 있고, 따라서 이런 소식은 자연스레 잠재적인 작업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간다. 현대미술이 이전 시대의 미술과 다른 점이라면, 여행 중에 만난 풍경을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필연적으로 이동을 전제하는 작업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즉 결과물로서의 작업이 이동과는 상관없다 해도, 애초에 예술가가 움직이지 않으면 작업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다. 바다 혹은 대륙을 넘나드는 긴 여정을 감수하더라도 자기 작업을 수행하겠다는 예술가들의 결연한 의지는 당연한 게 되었고, 그러므로 매우 동시대적인 것이다.
구본창의 사진집 〈백자〉 한정판을 봤을 때, 나는 백금 인화된 백자 사진보다도 맨 첫 페이지를 장식한 세계지도에 먼저 마음을 빼앗겼다. 수십 년 동안 구본창이 감행한 이동의 경로를 그린 이 지도는 오직 그의 것이다. 백자를 찍기 위해 전 세계 박물관만 스무 군데 이상 찾았고, 소장가들의 개인 공간에도 부지런히 갔으며, 그마저도 한 번의 방문으로 그치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 지도가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도 위 대륙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무수한 선들은 백자를 찾아다닌 구본창의 여정이자 동력의 증거다. 이 지도가 구본창의 노력을 자찬하거나 치하하기보다는 뿔뿔이 흩어져 돌아올 날을 기약할 수 없는 백자를 일일이 호명한다는 점에서, 이는 예술가의 의지와 성심이 그려낸 문화인류학적 지표다. 더구나 이 필연적인 움직임이 요컨대 역동적인 댄서가 아니라 본래 그 자리에 뿌리내린 듯 묵묵히 존재하는 백자를 위한 것임을 떠올리면 자못 뭉클해진다.
한편 프랑스 출신의 사진가 프랑수아 알라르의 사진전 《비지트 프리베》에서는 이런 식의 세계지도가 없다. 딱히 필요도 없는 것이, 그의 사진은 ‘그곳에 갔다’보다 ‘그곳에 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알라르는 전 세계 명사들의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해온 작가다. 취향의 집합체인 이브 생 로랑의 거실, 코코 샤넬의 화려한 아파트, 루이즈 부르주아의 영적 차원을 품은 듯한 작은 작업실, 텍사스 말파를 알린 도널드 저드의 기념관, 뮤지션 레니 크래비츠의 복잡한 정체성이 드러나는 아파트, 공간 디자이너이자 갤러리스트인 악셀 베르보르트의 고아한 집, 피터 린드버그가 작고한 후 남겨진 아파트, 한때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배우 모니카 비티의 사랑의 둥지였으나 지금은 광채를 잃은 라 쿠폴라, 그리고 알라르의 우상이자 롤모델인 화가 사이 톰블리의 집까지, 이 우아하고 보헤미안적이며 개인적인 사진들은 시대를 초월한 미감을 부려놓는다.
 
프랑수아 알라르의 뷰파인더에 담긴,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배우 모니카 비티의 공간 라 쿠폴라(La Cupola).

프랑수아 알라르의 뷰파인더에 담긴,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배우 모니카 비티의 공간 라 쿠폴라(La Cupola).

인생에서 닻의 역할을 하는 공간,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평생 떠돈 알라르의 움직임은 ‘그랜드 투어’라 할 만하다. 이 시대의 취향과 문화를 이끄는 이들의 지극히 사적인 장소와 이들의 영혼을 뷰파인더에 담은 그의 사진은 이동과 안착이라는 완벽한 대비에 힘입어 더욱 직관적으로 빛난다. 이들의 공간은 그 자체로 시대를 증언하는 문화 예술적 파편이고, 작가의 시선으로 포착된 공간의 부분부분은 미지의 전체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나의 목표는 내가 어떤 장소를 보고 느낀 감정을 사진을 통해 번역하는 것”이라던 그의 말처럼,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고, 훑어보고, 감탄하고, 대화를 나누는 공인된 관음의 상태를 즐기다 보면 이곳으로 이동하고, 도착해서, 짐을 풀고, 마침내 카메라를 꺼내어 셔터를 누르는 작가의 몸짓이 사진 속에서 자동 재생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예술가의 이동은 제한되었지만, 덕분에 새로운 개념의 이동이 생겨났다. 이를테면 줄리안 오피는 봉쇄 시기에 비로소 고향인 런던 풍경과 사람을 주제로 작업했고, 급기야 가상의 현실에 작업을 직조하기 시작했다. 우고 론디노네는 자기 스튜디오 앞 수평선에 뜨고 지는 해를 일기처럼 그렸다. 알라르도 다르지 않다. 이 수많은 집들 가운데에는 아를에 위치한 작가 본인의 집도 있다. 어린 시절 병약했던 알라르는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냈고, 남의 집을 찍으며 명성을 쌓았으며, 움직일 수 없게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집을 여행할 수 있었다. “2020년 봄, 알라르는 18세 이후 처음으로 아를의 집에서 장기간 머물게 되었다. 언제나 여행하며 타인의 집을 찍던 그에게는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봉쇄의 경험을 사진으로 찍어달라는 〈뉴욕 타임스〉의 의뢰를 받고, 그때부터 자신이 내면과도 같은 집 안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혼자 방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 그때의 물건들, 카메라에 빠져들었던 일 등을 떠올리며 집 안 곳곳을 촬영했고, 그것이 2021년 출간한 〈아를에서의 56일〉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가 집에서 하루에 하나씩 찍은 폴라로이드는 우리 모두가 경험했으며 또 공감하는 한 시대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백자 하나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간 구본창의 사진이나, 남의 집을 촬영하려고 어디든 날아간 알라르의 사진이 주는 묘한 감동의 정체는 어쩌면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탓에 오히려 잊어버린 움직임과 이동의 고전성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술 전시를 본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스스로 몸을 움직이고 이동해야 가능한 고전적 행위이며, 전시라는 시공간 역시 작품과 작가 이외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이 만들어낸 움직임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나를 움직여야만 무엇이든 보고, 느끼고, 사유하고,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흔해 빠진 동시에 시대를 초월하는 가장 혁신적인 진리다. 여행을 통해 마침내 예술가가 되었던 알라르의 말대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진짜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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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인생,예술> 저자)
    에디터/ 손안나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피크닉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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