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켄들 제너
전혀 예상치 못할 때 놀라움은 배가된다. 지난가을 켄들 제너가 타이츠만 입고 거리를 누비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가 선택한 룩은 보테가 베네타 2023 S/S 컬렉션. 늘 미니멀을 외치던 그였지만 하의까지 벗어 던질 줄이야. 이 사진은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고, ‘팬츠리스(pantsless)’ 스타일의 시작을 알렸다. 사실 옷을 거의 입지 않는 트렌드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최근 보디수트와 마이크로 미니스커트, 슬립 드레스, 란제리 룩 등이 런웨이와 레드 카펫을 지배해왔으니까. 더 새로운 것이 있을까 싶던 찰나, 하의를 벗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바자〉 3월호에 실린 ‘밖으로 탈출한 란제리’ 칼럼은 란제리의 등장이 팬데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격동의 시기에 란제리 패션이 답답한 몸과 마음을 해방해줄 돌파구로 작용했다는 것. 또 타인을 위해서가 아닌, 내 몸을 온전히 표현할 때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느낀다는 문화적 관점의 해석을 더했다. 신체가 자아 표현 수단이라는 영국 사회학자 크리스 실링(Chris Shilling)의 주장은 여기에 힘을 싣는다. 말하자면, 개인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잘 가꾼 ‘몸’은 외적 영역의 자아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팬츠리스 트렌드가 새로운 미(美) 의식으로 떠올라 마땅하다. 한국패션비즈니스학회에서 발행한 이성희, 조규화의 논문 〈속옷의 겉옷화 현상의 미적 특성과 사회문화적 의미〉는 크리스 이론을 인용해 속옷의 겉옷화 현상이 육체를 가시화하는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속옷과 겉옷 간 경계를 허물어 드러난 신체 부위가 스타일링 요소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1990년 장 폴 고티에가 마돈나의 ‘블론드 엠비션(Blonde Ambition)’ 월드 투어를 위해 선보여 화제를 몰았던 ‘콘 브라(원추형 브라 디테일 톱)’의 탄생 또한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한다.

“너무 좋다! 내가 더 젊었더라면 나는 팬티만 입고 외출했을 것.” 미우치아 프라다가 2023 F/W 쇼가 끝나자 이렇게 말했다. S/S에 이어 F/W도 팬츠리스 아이템으로 물들 때 직감했다. 쉽게 저물 트렌드가 아니라고. 이 페이지 내 모든 활자가 한 목표를 향해 주장한다. 패션은 단순히 겉으로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고, 안을 보여줌으로써 비로소 완성할 미(美)와 이를 통해 우리를 해방하자고. 그리고 하의를 벗어 던진 이미지를 모아 소개한다. 당장 집 밖에 나갈 때 하의를 입지 말자고 강요하는 대신, 표현을 멈추지 말라고 격려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