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전시 4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5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전시 4

5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전시 4

BAZAAR BY BAZAAR 2023.05.08
어윈 올라프, 〈나무 아래에서〉, 2020. ⓒ Erwin Olaf

어윈 올라프, 〈나무 아래에서〉, 2020. ⓒ Erwin Olaf

 

자연 앞에 우리는

아름답고 거대한 경관을 마주했을 때 경외감을 넘어 공포심마저 느끼곤 한다. 어윈 올라프가 2021년 독일 뮌헨미술관 개인전을 앞두고 제작한 ‘숲속에서’ 연작은 자연 앞에서 실감하게 되는 인간의 연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 크기가 3m나 되는 〈폭포 앞에서〉는 압도적으로 낙하하는 포말을 넋 잃고 바라보는 사람의 모습이 자그마하게 담겨 있다. 알프스의 끝도 없는 산맥이 눈을 가로막는 장막처럼 보이는 〈절벽 앞에서〉도 인물의 뒷모습은 위축되어 있다. 선천성 폐기종을 앓고 있는 작가 본인이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며 셀프로 촬영했다. 이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연출되었다. ‘〈호수에서〉는 관광하는 히잡을 쓴 여인이 유명 브랜드의 핸드백을 들고 있다. 〈안개 속에서〉에 등장하는 소년은 19세기 복장을 하고 21세기의 산물인 페트병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문명과 자연이 충돌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위트 있는 연출이다. 주로 컬러로 작업해왔지만 이 작업만은 완전히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흑백의 강렬한 명암 대비는 자연의 위대한 힘과 냉담함을 표현한다. 어윈 올라프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 미문의 사건을 겪으며 인간의 거만함을 뒤돌아보고자 했다. 팬데믹은 불완전한 종식에 접어들었지만 그 영향은 작품으로 남았다. 5월 4일부터 6월 3일까지 공근혜갤러리. 
 
 
 김환기, 〈영원의 노래〉, 1957, 캔버스 유채, 162.4x130.1cm. ⓒ Whanki Foundation Whanki Museum

김환기, 〈영원의 노래〉, 1957, 캔버스 유채, 162.4x130.1cm. ⓒ Whanki Foundation Whanki Museum

 

김환기의 운율

“부드러운 양털 같은 그의 화풍은 과격하지 않은 형태를 보여주면서도 마치 시인이 운율을 가지고 시구를 맞추어나가듯 세심하고 정확하게 구성을 이루어간다.”(〈Le Penintre〉(1956) 中.) 김환기가 항아리, 매화, 산월 같은 기물이나 자연을 그렸건 점·선·면으로 화면을 채웠건 그의 작품에는 시가 깃들어 있다. 죽기 전 일기에 쓴 것처럼 미술을 철학이나 미학의 범주에 두지 않았다. 꽃의 이름과 개념이 생기기 전은 막연한 추상일 뿐이며 하늘과 바다처럼 존재하는 것이라 믿었다. 아침에 뻐꾸기가 울었다는 친구의 편지를 떠올리며 종일 푸른 점을 찍은 일화 또한 사물을 관찰하고 현상을 이해하는 데 천착하던 면모를 보여준다. 호암미술관은 그의 집요한 탐구과정을 망라하는 회고전을 재개관 첫 전시로 연다. 5월부터 7월 예정.
 
 
백남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피아노와 편지〉, 1960(피아노) / 1962-1980(편지), 분해된 피아노, 백남준이 보낸 사진, 문서, 편지. ⓒ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마리 바우어마이스터, 〈피아노와 편지〉, 1960(피아노) / 1962-1980(편지), 분해된 피아노, 백남준이 보낸 사진, 문서, 편지. ⓒ 백남준아트센터

 

예술과 소통의 씨앗

1980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기획한 강연, ‘임의 접속 정보(Random Access Information)’에서 백남준은 서로의 면이 겹쳐지는 두 개의 둥근 원을 그리고 한쪽에는 ‘예술’, 다른 한쪽에는 ‘소통’이라고 쓴다. 그리고 두 원이 겹치는 가운데 부분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이 씨앗은 예술과 소통이 교차하여 전에 생겨날 수 없던 가능성에 대한 비유이며, 당시 새로운 매체이자 시간의 기록인 비디오가 가진 잠재력을 이야기한다. 〈사과 씨앗 같은 것〉은 백남준이 풀어낸 연산이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보여준다. 마리 바우어마이스터가 사용하던 피아노와 백남준과 주고받은 서신을 통해 그들의 우정과 예술을 말하는 〈피아노와 편지〉를 비롯해 〈달은 가장 오래된 TV〉, 〈바이바이 키플링〉 등 대표작이 전시된다. 그의 동료이자 당대 예술가 16인의 인터뷰 영상은 그 자체로 백남준의 연대기이다. 전시는 시공간의 한계 없이 언제든지 접속이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백남준의 사과 씨앗을 싹틔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2024년 2월 12일까지 백남준아트센터.
 
 
 줄리안 오피, 〈Walking in Busan 5.〉, 2023, Auto paint on aluminium, 210x290cm. ⓒ 국제갤러리

줄리안 오피, 〈Walking in Busan 5.〉, 2023, Auto paint on aluminium, 210x290cm. ⓒ 국제갤러리

 

Walk Together

담배를 물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년 남자, 좀 더 나이가 든 할아버지의 옷차림이 익숙하다. 디테일이 생략되어도 어떤 인물인지 훤히 보이는 듯하다. 부산에서 전시를 앞둔 줄리안 오피가 해변의 산책로를 지나는 보행자를 촬영한 후 만든 〈Walking in Busan〉 시리즈 중 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퍼포먼스와 VR 체험 등 다채롭게 구성된다. 전시 기간 동안 직접 커미션한 댄스 음악과 틱톡(TikTok)을 활용한 프로젝트도 시도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선보이는 것들이다. 줄리안 오피의 작품과 함께 발맞추어 걸을 기회다. 5월 3일부터 7월 2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
 
 
 노은님, 〈하얀 눈의 황소〉, Bull with White Eye, Mixed media on paper, 1986, 139.1x216.8cm. ⓒ 가나아트센터

노은님, 〈하얀 눈의 황소〉, Bull with White Eye, Mixed media on paper, 1986, 139.1x216.8cm. ⓒ 가나아트센터

 

치열한 날개의 궤적

작년 타계한 노은님 작가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내면의 고독과 싸우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전시 제목인 «내 짐은 내 날개다»는 그가 발표한 동명의 수필집 제목과 같다.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얻기까지 현실적으로, 또 내면적으로 겪었던 고난 곧 ‘짐’이 결국은 ‘날개’가 되어 스스로를 흐르는 물이나 공기와 같이 가볍고 자유롭게 한다고 회고한 바 있다. 노은님은 1970년 파독 간호사로 함부르크 이주 후 병원에서 우연한 기회로 전시를 열며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되고 요셉 보이스 같은 거장과 비엔날레에서 나란히 설 만큼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겉보기에는 화려한 이력이지만 여자로서 외부인으로서 누구보다 자유인이길 갈구했다. 그 치열함은 작품 속 일필휘지의 붓놀림과 강렬한 생명의 에너지 안에 녹아있다. 평생 자연의 힘을 좇은 그의 작품은 5월 28일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박의령은 프리랜스 에디터다. 매달 좋은 전시를 찾는 것을 몸에 좋은 제철 음식을 먹는 일과 같이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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