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ffa Lam, 〈Trolley Party〉, Recycled fabrics and Industrial trollies,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 Axel Vervoordt Gallery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움켜쥐는 두 손. 빅토리아 항구를 마주한 M+ 뮤지엄의 거대한 파사드에서 피빌로티 리스트의 신작 〈Hand Me Your Trust〉가 축제가 막을 내린 지금도 송출되고 있다. 아트 바젤과 M+가 공동 커미션한 이 작품은 온라인으로 열리던 페어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기에 이보다 적절한 대안은 없을 만큼 홍콩의 야경과 조화를 이룬다. “올해 홍콩을 찾는 이들은 분명 페어뿐만 아니라 풍부한 예술 신에 만족할 거예요! 팬데믹 동안 홍콩은 더 깊어진 예술 생태계를 갖게 되었죠.” 프리뷰 데이 첫날, 미디어 오프닝에서 만난 아트 바젤 홍콩의 디렉터 안젤라 리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주저함이 없었다. 프리즈 서울의 군집한 인파와 달리, 상대적으로 차분한 공기 속에 입장이 시작됐다. 미국, 유럽 출신 컬렉터보다는 한국과 중화권, 중동의 젊은 컬렉터들이 곳곳에서 여유롭게 작품을 고르는 분위기. 올해는 한국의 11개 갤러리를 포함해 아시아 갤러리가 전체 1백77개 갤러리 중 2/3를 이룬 만큼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 갤러리스트들이 삼삼오오 대화 나누는 광경으로 북적였다. 부스 한편을 야심차게 주제전으로 바꾼 ‘캐비닛’ 섹터에는 지난해 프리즈 서울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 참가한 뒤 올해 서울에서 그룹전을 앞둔 자카르타 기반의 갤러리 로 프로젝트가 소속 화가 아구스 스와게가 그린 인도네시아인의 초상화를 부스 프레임에 두르듯 펼쳐놓아 눈길을 끌었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캐비닛 섹터에 실험미술의 선구자 김순기 작가가 1999년 제작한 복권을 골판지로 만든 건물들에 부착한 〈복권 마을〉을 전시해 주목 받았고, 조현화랑은 부스의 반을 이배 작가의 〈스트로크〉 시리즈를 완판시키며 호응을 받았다. 프리즈 서울 기간 팝업 전시를 한 데이비드 코단스키는 마일러 필름 위에 실크 스크린을 더한 애덤 펜들턴의 솔로 부스를 꾸려 이튿날 완판 소식을 전했고, 니콜라 사모리, 네오 라우흐 등 소속 작가들의 작은 사이즈 회화로 국내 아트 마켓을 검증했던 베를린 기반의 갤러리 아이겐+아트는 팀 아이텔의 2m가 넘는 거대한 회화 〈Mexican Window〉로 벽을 채우며 전시장을 사색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아트 바젤 홍콩에 처음 참여한 런던 갤러리 유니온 퍼시픽의 이사 그레이스 스코필드는 “올해 처음 참가한 페어에서 첫날 부스의 모든 작품이 판매되었고, 홍콩과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방글라데시의 새로운 컬렉터를 만날 수 있었죠. 분명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페어였어요”라고 말했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한다는 말처럼, 오랜만에 홍콩을 찾은 이들은 달뜬 마음으로 예술과의 접촉을 맘껏 즐기는 듯했다. 오픈 전부터 경쟁하듯 작품을 선점하던 프리즈 서울의 과열된 분위기와는 달리, 페어 마지막 날까지 8만6천 명의 참석자를 불러들였고, 각 갤러리들은 만족할 만한 세일즈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작품이 대부분이라며 ‘뮤지엄 피스’가 없다고 논하는 아쉬움은, 한 주 동안 기존 센트럴의 메가 갤러리와 K11 뮤제아, 타이퀀, 웡축항과 틴완의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와 아티스트 토크, 강연 등으로 상쇄됐다. 주말 M+ 뮤지엄의 입장 대기줄은 무려 한 시간이 넘었다. 안젤라 리 디렉터의 말처럼 홍콩을 찾은 이들은 곳곳에서 동선이 겹치며, 도시의 탄탄한 기반을 갖춘 아트 신을 즐긴 것이다. 국제적 아트페어를 서울에서 경험한 우리의 눈에 다시 마주한 홍콩 예술 신의 면면은 분명 더 새로움으로 가득했다.

Trevor Yeung, 〈Mr. Cuddles Under the Eave〉, Pachiras, straps, Installation size variable Edition of 3,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Blindspot Gallery. Photo Credit: South Ho
지금과 여기, 인카운터스
김홍석 작가의 〈침묵의 고독〉은 배우, 난민, 청소부, 태권도 사범 등 평범한 이웃을 묘사한 마네킹을 무대에 등장시켜 현대 사회의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의 불확실한 상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알렉시 큐레이터는 “2020년 며칠 간의 격리를 마치고 서울에서 이 작품을 처음 보았는데, 마스크를 벗은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을 보니 기분이 색다르다. 우리는 변화했지만, 여전히 예술을 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베이스 작가들의 작품 또한 시선을 붙들었다. 재활용된 직물을 활용해 마치 페어장의 소음을 막아주는 아늑한 셸터를 만든 듯한 자파 람의 〈트롤리 파티〉가 단연 인기를 끌었다. 1988년생 홍콩의 젊은 예술가 트레버 영은 뿌리째 뽑힌 돈나무 13개를 끈에 매단 〈Mr. Cuddles Under the Eave〉를 선보였다. 식물을 의인화해 감정과 관계의 복잡한 레이어를 드러내는 작업을 펼쳐온 그의 작품은 얼핏 보기에 눈을 시원하게 틔워주는 자연친화적 작품 같지만, 이면에 홍콩의 지난한 시간을 은유한다. 거꾸로 질서 없이 매달린 식물들은 매해 홍콩을 덮치는 태풍에서 착안해 2019년 격동의 정치 변화를 맞은 상황을 표현했고, 돈나무는 번영과 행운을 위한 중국 문화를 상징한다. 이외에도 베트남 난민 출신의 덴마크 작가 단 보의 나무 조각을 포함해, 마치 몇 발짝 떨어져서 보면 수평선처럼 페어장 통로에 유연한 곡선을 만드는 작품들이 배치됐다. 사람들이 직접 작품을 만지고 조각 사이사이를 지나가며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배치해 좀처럼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Etsu Egami, 〈Rainbow-Ice Cold Girl〉, 199x142cm ,Oil on canvas, 2022. Courtesy of the artists and Tang Contemporary Art, Beijing, Bangkok, Hong Kong, and Seoul

유코 나사카의 작품으로 구성된 악셀 페르부르트의 인사이츠 섹션. © JanLiégeois
페어와 전시의 연결고리

Moka Lee, 〈Dark Ray 02〉, 194x157.5cm, Oil on cotton, 2023. © Moka Lee, Photo Credit: OnArt Studio
한국의 젊은 여성 작가들

Jes Fan, 〈Wounding〉, Glass, aqua resin, metal, wood, silicone,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Empty Gallery

아트 바젤 홍콩 키앙 멀랭 부스.
홍콩 예술의 현재진행형
아트 바젤 홍콩 마지막 날, 컨벤션 센터 정문에서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 위성 페어인 ‘아트 센트럴’을 방문했다. 에디션 판화와 아트 피겨처럼 소장하기 좋은 작품을 지나치던 중 만난, 2021년 문을 연 신생 갤러리 오즈앤엔즈의 디렉터 나탈리는 올해 키아프 참가를 신청해둔 상태라고 했다. 런던과 홍콩을 오가는 추상회화 작가 삼미막의 솔로 부스를 꾸린 그는 막 학업을 마친 로컬 신진 작가를 발굴해왔는데, 이를 서울에서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M+는 수차례 어워드에서 수상한 아티스트나 중견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죠. 진짜 홍콩의 젊은 작가들을 보려면 로컬 갤러리를 일일이 찾아야 해요.” 완차이에서 자신의 화랑 스탠리 갤러리를 이끄는 팝아티스트 어니스트 창은 서울의 로컬 갤러리들은 어떤지 궁금해 프리즈 서울 기간에 맞춰 방문할 계획이라 말했다. PHD 그룹, 영 소이 갤러리 등 팬데믹 기간 오픈해 주목 받고 있는 신생 갤러리와 견고한 큐레이션을 선보이는 패러 사이트 또한 미술계 관계자들에게 호평 받은 곳들로, 동시대 홍콩 예술의 현재진행형을 목격하고 싶다면 방문하길 권한다.
안서경은 〈바자〉 피처 에디터다. 아트 바젤 홍콩 기간 동안 방문하지 못한 갤러리들과 시간 관계상 미처 다 보지 못한 M+의 나머지 층을 보기 위해 조만간 홍콩행 티켓을 예매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