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뮈글러에 몸담고 있다. 5년이 되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브랜드를 부활시키는 데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흘러갔다.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고, 모든 프로젝트를 즐기고 있다.
코넬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어떻게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는가?
나는 언제나 유동적인 방식으로 살아왔다. 아주 어렸을 때는 동물을 좋아해서 해양생물학자가 되고 싶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에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다. 12살부터 작은 주얼리 가게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20살까지 주얼리 디자인을 하기도. 그러다 건축자재 관련 일을 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건축가를 꿈꾸게 되었다. 코넬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는데 굉장히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마크 제이콥스에서 인턴십을 시작했고 그 박진감에 바로 매료되었다.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게 주얼리든, 신발이든, 건물이든 상관없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의 영향도 큰 것 같다.
요즘 당신의 컬렉션은 완전 물이 올랐다. 우리를 애슬레저 스타일로부터 벗어나게 했고, 새로운 제너레이션은 당신의 하이퍼 섹시 스타일에 열광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 즐긴다. 사람들을 신나게 만들고 싶다. “입으면 괜찮겠네”가 아닌 “와! 이게 뭐지? 꼭 입어보고 싶어”란 호기심이 들도록 말이다. 뮈글러의 옷은 마치 몸을 꼭 껴안는 느낌이 드는 동시에 몸매를 보정하고 자세를 바로잡아준다. 셰이프 웨어(shape wear)라고 할까? 애슬레저의 편안함과 활동성, 테크닉적 요소는 물론 시크함과 패셔너블함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뮈글러에겐 인종, 연령, 성적 취향 그리고 어떤 보디 셰이프를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당신 스스로를 멋지게 느꼈으면 한다.
킴 카다시안, 카디 비는 레드 카펫을 위해 1970~90년대 아카이브 의상을 착용하고 비욘세, 두아 리파 역시 무대의상을 위해 뮈글러를 찾는다. 특히 코르셋의 인기는 상당하다.
아카이브를 살펴보면 코르셋이 정말 많다. 나 역시 이 멋진 요소를 사랑한다. 하지만 내 클라이언트들은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슈퍼스타가 많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편하게 공연을 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결과 새로운 테크닉을 통해 활동성을 제한하지 않으면서도 쿠튀르적이며, 몸매를 보정할 수 있는 코르셋을 완성할 수 있었다.
티에리 뮈글러가 작고한 지 1주년이 되어간다.
내가 브랜드에 들어 온 3년 반 동안은 그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뮈글러의 다섯 번째 후예였고, 미스터 뮈글러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어느 날 내 작업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보자고 하더라. 당시는 정말 무서워 죽을 뻔했다.(웃음) 그는 매우 자상하게 여러 조언과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령 “그래 얘야, 열심히 하렴(Ok Kid go for it).” 그 후 우리는 몇 번의 만남을 가졌고, 쿠튀리심(Couturissme) 아카이브 전시에서 축배를 나누었다. 또 이번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 함께 진행해보기로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2022년 1월,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번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남다른 기분일 것 같다.
그렇다. 초기 단계에 미스터 뮈글러가 참여했다는 사실 자체로 특별하다. 이 컬렉션을 통해 하우스의 유산을 기념하게 되어 자랑스럽다. 1973년 설립된 뮈글러는 보디 포지티브, 젠더 유동성, 변화와 자신감 등 오늘날 패션계를 지배하고 있는 테마를 누구보다 먼저 선보여왔다. 하우스의 역사와 현재, 미래를 결합시킨 다양한 뮈글러 클래식과 시그너처를 보여줄 생각이다.
H&M과 첫 작업이다. 어떤 점을 염두에 두면서 컬렉션을 제작했나?
패션 하우스가 대중적인 지지를 받으려면 밸런스가 중요하다. 뮈글러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브랜드지만, 협업을 통해 좀 더 대중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부분은 좀 더 가리고, 얇은 끈을 두껍게 하는 방식으로 노출을 줄였다.
이번 협업을 통해 뮈글러 의상을 처음 접하는 고객이 많을 것 같다. 그들이 이번 옷을 통해 어떠한 감정을 받길 원하나?
뮈글러는 시크하고 세련된 테일러링과 재미있는 부분이 믹스된 브랜드다. 특히 젊은 세대가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는데, 그들의 일상에 함께할 수 있는 의상을 만들고 싶었다. 이브닝 파티를 위한 크리스털 룩부터 일할 때나 데이트를 위한 옷들까지.
이번 협업은 어떤 콘셉트의 의상으로 구성되어 있나? 〈바자〉 코리아 독자들에게 살짝 귀띔해달라.
컷아웃 보디수트는 몸매를 보정하고 가려야 할 부분은 가려지는 디자인이다. 오직 한 장의 천으로 이루어졌으며 바느질도 없다. 스파이럴 진은 뮈글러의 스페셜 피스다. 다리가 길어 보이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특히 엉덩이 바로 밑을 두 겹으로 하여 엉덩이를 ‘웁’하게 올려 붙여주는 효과가 있다.(웃음) 당신의 엉덩이가 작든 크든, 무조건 더 예쁘게 만들어준다. 이게 우리가 청바지에게 원하는 바가 아닌가? 코르셋 재킷은 뼈대가 스트레칭 원단 안에 들어가 있는데 재봉 대신 몰드로 제작된다. 거의 스니커즈를 만드는 테크닉이라고 보면 된다. 뮈글러 드레스는 뒤쪽에 브라 스트랩이 있는데, H&M 버전은 더 심플하게 만들어서 입고 벗기 더 쉽다. 아카이브 중 하나인 뱀파이어 드레스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아트 디렉터 토르소 솔루션(Torso Solution)과 제작한 2022 S/S 시즌의 대담한 패션 필름은 컬렉션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당신의 오랜 지지자인 클로에 세비니가 젠더 댄서 바비 스웨이(Barbie Swae)로 변하고 샬롬 할로와 앰버 발레타가 키스를 나눈다. 이번 협업을 통해 이런 파격적인 비주얼도 만나볼 수 있을까?
H&M은 끊임없이 뮈글러를 원한다고 외쳐왔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더 포괄적인 대중을 위한 뮈글러를 보여줄 생각이며 거기에는 어린아이들도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과하지는 않을 예정이다. 우리는 과감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모든 것은 때와 장소가 있고 이 프로젝트에는 해당되지 않으니까.
H&M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 앤-소피 요한슨(Ann-Sofie Johansson) 올해 게스트 디자이너 브랜드로 뮈글러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요즘 시대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 브랜드다. 모두들 하나쯤은 소장하고 싶어 하지 않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요새 어떤 브랜드가 가장 핫하냐”고 묻자 다들 뮈글러가 대세라고 얘기하더라. 1970~90년대의 과거 아카이브는 물론 케이시가 만든 뉴 뮈글러까지. 그리고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부활할 점도 마음에 들었다. 또 뮈글러의 DNA인 포괄성과 다양성은 H&M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모두를 위한 브랜드이고 싶다.
그와 작업하면서 당신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나?
여러 디자이너들과 일하면서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신선한 경험이다. 그들을 촉발시키는 것은 모두 다 다르다. 특히 케이시는 건축적인 면을 많이 보였는데 라인이나 각, 디테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모든 것이 오류가 없어야 했고 그로 인해 어려운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알맞은 원단을 찾는 것. 그는 데님부터 스트레칭 원단, 뻣뻣한 원단 등 여러 가지를 주문했다. 이 원단은 몸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척 중요했고, 케이시에게 번번이 퇴짜를 맞기도 했다. 결국에는 알맞은 것을 모두 찾을 수 있었고 결과에 만족한다.
엔데믹으로 마케팅, 홍보전략 등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이번 협업을 위해 어떤 마케팅이나 홍보를 펼 계획인가?
빅 플랜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은 물론 로컬 이벤트도 많이 마련해놓았다. 엑셀 파일에 빽빽히 데드라인을 써 내려가고 있다. 특히 컬렉션의 정신을 요약하고 뮈글러의 음악, 공연, 서브 컬처와 오랜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뮤직비디오도 선보였다. 아마레(Amaarae), 샤이걸(Shygirl), 어스이터(Eartheater), 아르카(Arca)와 같은 라이징 스타가 출연했고, 스타더스트의 1998년 히트곡 ‘Music Sounds Better with You’를 함께 레코딩했다. 뮈글러 H&M 컬렉션은 5월 11일 론칭될 예정이니 기대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