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생긴 미술 공간들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새로 생긴 미술 공간들

새로운 미술 공간이 생겨나며 아트 지형도가 꿈틀거린다.

BAZAAR BY BAZAAR 2023.05.01
사진/ 유동룡미술관, © Kim yong kwan

사진/ 유동룡미술관, © Kim yong kwan

유동룡미술관  
유이화 관장
 
포도호텔, 수·풍·석 미술관,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제주도는 건축가 유동룡의 작품을 테마로 아트 투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건축이 곳곳에서 숨쉬는 지역이다. “사람의 온기와 생명을 밑바탕에 두고,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을 어떻게 건축물에 담아낼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라는 그의 말처럼 대지를 어루만지고 자연과 사람을 보듬는 바람은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유동룡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마침내 저지예술인마을에 유동룡미술관이 문을 열게 되면서 제주에 가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생겼다. 미술관의 장소로 제주를 택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제주는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자 대표작들이 있는 곳이라 다른 지역에 관한 고민은 거의 없었어요. 생전에 남은 여생은 제주도에 살고 싶다는 말씀을 늘 하셨죠.” 유동룡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이자 유동룡 선생의 딸 유이화 관장의 말이다. 생전에 유동룡 선생이 남긴 유언은 강력한 동기가 됐다. “유언을 남겨 놓았으니 나 죽으면 서랍 한번 열어보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했어요. 나중에 서랍을 열어보니 정말 유언장이 있더라고요. ‘이타미 준 건축문화재단과 기념관을 만들어라. 모든 책임은 내 딸 유이화에게 있다’는 내용이 써 있었어요. 물론 그 말씀을 안 남기셨더라도 추진했겠지만, 그 유언 때문에 더욱 강력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10년 동안 틈만 나면 땅을 보러 다니다 저지예술인마을을 택하게 됐는데 마침 아버지의 청년 시절 절친한 친구 김창열 선생의 미술관이 옆에 있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은 한림해수욕장도 근처에 있어 더욱 좋았다고.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는 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만큼 말이다. 
긴 담을 따라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은 유동룡미술관을 방문하는 여정의 시작. 외부의 어떤 장소를 다녀왔든 전이될 수 있는 지점이자 기대감을 갖게 하는 장치가 된다. 돌담길을 만들 때는 야생적인 소재인 돌을 모던한 스테인리스 동판과 함께 사용했다. 모던함과 자연스러움을 대비시키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은 유동룡의 건축 방식이기도 하다. 돌담을 지나 미술관의 문을 열기 위해 잡은 나무 손잡이에 달린 금속은 유동룡이 젊은 시절 디자인해놓은 것으로 그 손잡이의 크기와 소재를 재해석해 그대로 재현했다. 마침내 미술관에 들어서면 햇살을 담뿍 받고 있는 라이브러리와 계단이 보인다. 이 계단을 오르면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유이화 관장은 대지를 매입한 후 대지 중앙에 제주도의 형태인 타원을 그려놓고 1층에는 라이브러리를, 2층에는 상설 전시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로 주변에 부대시설을 붙여나가는 작업을 해나갔다. 미술관을 지을 때는 1백 년은 보고 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행을 타지 않는 소재를 고민하다 외벽은 노출 콘크리트를 택했다. 미술관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하기에 재료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건축 사상을 철저히 의식하면서, 주변의 자연 풍광을 거스르지 않게 수평적으로 형태를 잡아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그러다 보니 만족할 만한 천고를 확보하면서 외부의 프로포션도 맞게끔 안팎의 조율을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해야 했죠.”
유동룡의 사상과 철학이 베이스가 되는 미술관이니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진 건축가였는지를 삶과 예술관을 통해 알게 하는 게 목적. 유 관장은 한 건축가의 삶을 통해 각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현대사회에서 더 옅어지기 쉬운 개인의 오리지낼러티, 이를 회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분이었어요. 만약 그때 SNS가 있었다면 SNS 활동을 전혀 하시지 못할 성향이었죠.(웃음) 일본에서 데뷔를 하고 활동했을 당시는 호황기여서 현대건축의 대부분은 굉장히 화려하고 해외에서 비싼 소재를 수입해 와 쓰는 것이 주류이던 때입니다. 그런 시대의 흐름이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본인의 작품을 통해 최선을 다해 메시지를 남겼어요. 자연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건축가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대지를 잠시 빌려오는 마음으로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죠. 본인만의 오리지낼러티를 만든 것이죠. 건축가뿐만이 아닌 어떤 분야의 누구든지 자신만의 독창성을 잃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미술관을 통해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전시 관람 후 ‘바람의 노래’라는 이름의 티라운지에서는 제주의 다원에서 엄선한 유기농 티를 정성스럽게 내려주는데 차를 마시며 사유의 시간을 갖도록 구성한 것이다. 생전에 늘 차와 함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즐겼고 손님에게 정성스레 차를 내리곤 한 유동룡 선생의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술도서실
최현아 주무관
 
그곳은 분명 있었지만 없던 곳.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미술도서실은 언제나 로비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관람객의 눈에 잘 띄지 않던 공간이다. 1981년 덕수궁관 미술자료실로 운영을 시작해 1986년 과천관 개관과 함께 이전해 운영해온 미술도서실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매우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지만 좋은 책들이 아까울 만큼 이용하는 사람이 적었다. 소장하고 있는 약 5만3천여 권의 도서 중 85%가 미술 분야 도서로, 특히 당대 국내외 미술관, 작가 전시 도록을 꾸준히 수집해와 현재는 구하기 어려운 1960년대 이후 다양한 전시 도록을 만날 수 있다. 조선미술전람회(영인본), 대한민국미술대전, 미술분야별 미술전, 국내외 비엔날레 도록, 〈계간미술〉(전권 소장) 등 미술 연구자들의 연구 활동을 돕는 귀중한 자료가 이곳에 있다. 그럼에도 미술도서실이 위치한 곳이 두 개의 방으로 막혀 ㄱ자로 꺾어 들어오는 골목길 형태라 일반 관람객에겐 장벽이 있었다. 수십 년간 사서들이 끊임없이 수집하고 정리해온 양질의 도서가 많은 사람들과 만나 가치 있게 활용되길 원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술도서실 사서 최현아 주무관이 공간 변화의 필요성을 느껴 윗선에 리모델링 제안을 한 것이 1년간 대대적으로 진행된 미술도서실 개편의 시작. 프로젝트의 의미에 공감한 건축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와 함께 이 숨은 공간은 환하고 밝은 곳으로 탈바꿈했다.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살리기 위한 공간의 변화가 절실했어요. 도서관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지식의 결과물이 모여 있는 곳인데 도서들이 활용되어야 그 가치를 발휘하게 되죠. 미술도서실은 오랜 기간 운영되면서 시설이 낡아 전기, 냉난방 등 모든 것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고 책이 많아지다 보니 열람석이 줄어들고 서가와 서가 사이가 좁아 책을 찾기도 어려웠어요. 책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답답해져만 갔죠. 마치 도서관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느낌이었습니다.” 최현아 주무관의 말이다. 도서실 옆 작은 방들로 나뉘어져 있던 서고의 벽을 허물어 실제 면적을 확장했고 도서실 앞을 막고 있던 사무실을 철거해 작은 로비를 만들었다. 창문을 덮고 있던 불투명 시트지를 벗겨내 외부에서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서실 내부에서도 과천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따스한 햇살과 함께 책을 즐길 수 있다. “‘숨어있는 미술도서실의 존재를 드러내자!’ 개방성과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동안 미술도서실은 쉽게 찾아올 수 없는 숨어있는 공간이었기에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도서실로 접근할 수 있는 동선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도서들이 돋보이고 관심 있는 작가, 도서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기 위해 서가의 배치뿐만 아니라 서가 측판, 북엔드의 사이니지까지 소소해 보이는 것들에도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죠.” 미술도서실 전체를 화이트로 통일하고 인테리어 요소로 연한 회색을 활용한 이유는 도서실의 핵심인 좋은 도서들이 가장 돋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개방성만큼이나 조도에도 신경을 썼다.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천장에 간접조명을 설치했고 채광이 좋은 열람석은 창밖 사람들의 시선과 강한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미술도서실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도서실 안에서만 열람이 가능하고 대출은 불가능하다. 입구에 위치한 큐레이션 서가에는 전시 관련 도서를 선별해서 비치하는데, 전시 관람 후 이곳에 있는 책들을 보며 전시 주제와 작가에 대한 지식을 확장할 수 있다. “입구 전면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 발간 도록을 둘러보고 서가를 따라 걸으며 눈에 띄는 책들을 훑어만 봐도 책을 통해 전시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측판과 북엔드에 쓰여 있는 미술 분야의 주제들을 따라가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를 주죠. 열람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 풍경을 보는 것도 좋고요. 미술 연구를 위해 방문하셨다면 미술관 안쪽까지 들어와 중정이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아보세요. 원문 열람석과 가까이 있어 도서와 디지털 자료를 오가며 편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는 사람들만 찾아온 이전과 달리 더 많은 사람들이 도서실에 와 미술 연구를 활발히 한다면 이용자들의 요구에 따른 연구정보서비스도 점점 더 발전될 것이란 기대가 있어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강소정 총괄 디렉터  
 
“끼워지지 않은 퍼즐 같은 것이었어요.” 아라리오갤러리 강소정 총괄 디렉터는 현 아라리오뮤지엄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겨 재개관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 관해 이렇게 운을 뗀다. 사람들이 전시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공간이나 문화를 여유롭게 즐겼으면 하는 것이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의 철학. 소격동에 자리하고 있던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미술관, 레스토랑, 공원이 위치한 원서동에 새롭게 둥지를 틀게 된 건 언젠가는 한번 일어나게 될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일본 스키마타 건축(Schemata Architects)의 대표이자 세계적인 건축 디자이너 조 나가사카는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기존 건물의 구조와 재료를 유지하면서 바로 옆에 위치한 김수근 건축가의 옛 공간 사옥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역사성을 가지고 간다는 철학이 아라리오와 잘 맞았어요. 90년대 건물을 때려부수지 않고 끌고 올 수 있는 건축가가 작업하는 것이 중요했죠. 그에게 원하는 건 심플했어요. 갤러리로서의 기능인 화이트 큐브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레노베이션 방식으로 해달라는 것이었죠.”
갤러리 부지에 도착하면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는 어디가 입구인지 미로처럼 느껴진다. 사이니지를 통과해 ‘여기가 맞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될 때쯤 여름이면 초록 아이비 담장이 우거지는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궁금증을 가지고 이곳저곳으로 발걸음하게 한 것이 콘셉트 중 하나. 갤러리는 각각의 층이 촘촘하게 분리되듯 나뉘어져 있는데 관람객은 건물을 수직으로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화이트 큐브가 계단에서 마주하는 건물의 재료와  어우러지고 그 바깥으로 도심과 자연의 풍경이 펼쳐지는 광경은 오직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갤러리 이전과 함께 전시 운영에 변화를 준 부분도 있다. “아라리오는 전속 작가와 장기적으로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갤러리입니다. 큰 전시는 기존대로 유지하되 4개 중 1개 층은 연 3~4회 정도 전속이 아닌 젊은 작가들과 함께 신선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항상 2개의 개인전을 동시에 개최하는 것도 재개관과 함께 달라진 점이다. 강소정 디렉터는 전시장을 이동할 때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해볼 것을 추천한다. “엘리베이터로만 이동하면 아름다운 뷰를 완전히 다 놓치게 돼요. 특히 3층과 4층을 이동할 때는 반드시 계단으로 걸어보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바깥으로 보이는 은행나무의 모습이 계절마다 달라질 테니까요. 건축도 내 몸으로 경험하면 시퀀스가 바뀌잖아요. 걸어가면서 변화하는 뷰를 천천히 느꼈으면 좋겠어요.” 
 
 
뮤지엄한미
김지현 학예연구관   
 
이쪽에서 작품이 피어나고 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아카이빙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하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삼청동에 새롭게 문을 연 뮤지엄한미의 역사는 사진을 위한 공간이 전무했던 2003년 11월,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으로 출발한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시작된다. “사진가들과 사진작품들은 넘쳐나지만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사진의 위상은 약했던 것이 개관 당시의 상황입니다. 전시나 컬렉션을 할 기관도 부재했죠. 사진계는 이를 아우르고 테두리가 되어줄 기관이 필요했고 한미사진미술관은 나름의 기준으로 사진의 역사를 정리하고 중요한 전시를 기획했어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사진사에서 중요한 작품들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사진계의 외연을 넓혔나갔습니다” 뮤지엄한미 김지현 학예연구관의 말이다.
뮤지엄한미는 유영호 작가의 작품 〈Bridge of Song〉이 자리한 물의 정원을 중심으로 세 개의 동이 펼쳐지는 형태다. 외부에서 보면 각각의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전부 연결된 구조. 기오헌의 민현식 건축가는 관람객이 미술관 곳곳으로 흘러 들어 자유롭게 순환토록 설계를 했다. 후원에서 보이는 맨 뒤 세 번째 동이 뮤지엄한미로의 재개관에 가장 큰 이유가 된 수장고다. 기존 미술관에서도 항온항습 시스템을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빈티지 프린트들의 수명을 약 5백 년 이상 보장하는 사진 전용 냉장 수장고는 국내에 전무했기 때문이다. “본사 건물에서 독립해 단독 건물로 뮤지엄한미 신축을 계획하면서 전시 기능 외에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수장의 기능입니다. 20년간 약 2만여 점의 사진작품을 소장했고 그 중 40%가 역사 사진과 빈티지 작품들이죠. 알부민 프린트와 젤라틴 실버 프린트는 물론 유리 건판과 솔라리제이션 등 사진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냉장 수장고의 설계가 필수적이었습니다.” 뮤지엄한미는 빈티지 소장품들의 보존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이기 위해 국내 최초로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설계했다. 한미약품의 노하우를 수장고에 적용했는데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 수준의 수장고를 찾아 보기란 쉽지 않다. “이미 한계수명에 근접한 뮤지엄한미의 빈티지 소장품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15℃에 상대습도 35%를, 냉장 수장고는 약 5백 년의 수명을 보장하는 온도 5℃에 상대습도 35%를 편차 ±5% 이내에서 유지합니다. 사진 프린트, 필름과 접촉하는 모든 자재는 pH7~7.5의 중성아카이벌 용품을 사용했고, 수장고의 외장재는 유해가스를 방출할 수 있는 도색을 피하고자 스테인리스스틸을 채택했습니다. 제약 회사인 본사의 스마트 제조 공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높이 7m에 달하는 전자동 작품 분류와 이동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수장고 내에 설비했죠.” 일반 관람객은 한쪽 벽을 유리로 만든 복도 형태의 개방 수장고를 통해 한국 최초의 여성 사진가인 이홍경, 고종의 초상 등 역사 속 진귀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개관전으로 한국의 사진사를 되짚어 보는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 1929-1982»전을 선보인 데 이어 지난 9월 작고한 사진작가 윌리엄 클라인의 회고전을 준비하고 있다. 뮤지엄한미는 사진을 매체로 삼는 랜드아트나 개념미술 등을 사진 예술의 확장으로 받아들이고 뉴미디어 아트와 같은 이미지 기술을 활용하는 작업들도 사진 예술의 확장으로 수용하려 한다. 사진과 함께하는 예술에서 사진을 기원으로 발전한 뉴미디어의 영상까지 전시 대상도 확장할 계획이다. 기존 송파구에 위치한 한미사진미술관도 새롭게 단장해 2025년 뮤지엄한미 방이로 개관할 예정. 이곳에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지난 20년간 수집해온 사진과 미술 관련 도서를 열람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 뮤지엄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과 정유진 과장
 
세월이 흐를수록 감가상각되는 것들이 즐비한 세상 속, 시간이 쌓일수록 오히려 귀해지는 것들을 모아 놓은 장소가 문을 연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분관 중 하나로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 자료와 기록을 수집·보존·연구·전시하는 아카이브 전문 미술관이다. 미술관이 위치한 곳은 오랫동안 버스 차고지로 사용되던 곳으로 2014년 가스충전소가 들어서는 계획이 발표된 적이 있다. 당시 평창동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연대해 문화시설 유치운동을 적극 벌이게 된 것이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개관을 준비하면서 2017년부터 현재까지 5만7천여 건에 이르는 자료를 수집해 소장하고 있어요. 그간 쉽게 공개되지 않았던 작가 노트, 드로잉, 육필 원고, 일기, 서신, 메모, 사진, 필름 같은 창작자 아카이브로 개념미술, 현실주의, 자연미술, 공공미술 등 1980~90년대 한국의 다양한 창작 현장을 보여줍니다. 미술비평가, 전시기획자, 미술행정가 등의 매개자 아카이브는 창작과는 또 다른 미술의 매개 영역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주력하는 분야인데요. 특히 의욕적으로 수집한 대안공간 컬렉션은 상업 갤러리 및 미술관의 대안으로 등장해 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담론 생산을 이끌었던 대안 공간의 활동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과 정유진 과장의 말이다.  
미술아카이브는 주요 기능에 따라 모음동, 배움동, 나눔동의 세 개 동으로 조성했다. 모음동은 미술아카이브의 보존과 연구,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1~2층에는 두 개의 전시실이 자리하고 있어 일반 관람객은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통해 아카이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현재 개관 기획전으로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우리 글로 읽게 해준 번역가이자 미술비평가로 잘 알려진 최민의 컬렉션으로 꾸려진 «명랑 학문, 유쾌한 지식, 즐거운 앎»이 열리고 있다. 최민 컬렉션은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가 주력하는 수집 분야인 매개자 아카이브의 전형으로, 미술에서 작가들의 창작 활동만큼이나 중요한 매개 활동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시로서 기획되었다고. 학제·언어·문화권의 경계를 초월한 최민의 아카이브를 통해 감상하고 향유하는 미술에서 읽고 이해하는 미술을 경험할 수 있다.
로비를 따라 넓게 자리하고 있는 레퍼런스 라이브러리를 지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김용익, 김차섭, 임동식 세 작가의 자료를 엄선해 보여주는 «하이라이트»전을 통해 창작자 아카이브의 여러 형태와 내용을 경험해볼 수 있다. 3층은 예술 자료를 열람하고 연구하는 공간인 ‘리서치랩’이 자리한다. 경사로에서 이어지는 옥상은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조각작품들이 함께 어우러진 정원으로 조성되어 미술관의 내부와 외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미술아카이브가 수집한 귀중한 자료를 보관하는 보존서고는 2~4층에 걸쳐 위치해 있다. 최민의 컬렉션은 3층 리서치랩과 배움동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공간이 단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건축 의도를 반영하듯 전시 또한 공간을 따라 흐르듯 전시장 바깥에 펼쳐져 있다. 배움동에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배움 활동이 이루어지는 ‘모두의 교실’이, 홍제천을 마주한 나눔동에는 카페와 다목적홀이 자리한다. “미술을 경험하는 방식이 참으로 다양해졌습니다.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작품을 감상하고 느끼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작품 혹은 작가의 전체적인 작업 세계가 만들어지는 데는 작품이라는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작가 본인이 수행하는 연구, 기획, 아이데이션, 시뮬레이션 등 무수한 과정과 활동이 숨어 있습니다. 작품 혹은 작업이 전시로 만들어져 관람객을 맞게 될 때는 더 많은 매개자가 관여합니다. 하나의 거대한 세계, 생태계가 만들어지지요. 이제 미술을 더욱 다양한 측면과 층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료’들이 여기 미술아카이브에 모입니다. 이 공간은 미술을 그저 아름다운 완전체로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보다 다양한 방식과 관점으로 보고 읽고 이해하는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희성은 프리랜스 에디터다. 봄을 기다리며 오후의 많은 시간을 미술관에서 보냈다. 작품마다 온 마음을 다해 감상하느라 전시를 보고 온 날은 다른 일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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