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사랑에 대해 토론한, 뇌과학자 김대식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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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와 사랑에 대해 토론한, 뇌과학자 김대식

지금 우리는 인간과 대화 가능한 ‘새로운 종’의 출현을 미리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BAZAAR BY BAZAAR 2023.04.09
 
수십 년간 뇌과학을 연구해온 전문가이니 이 질문을 먼저 하고 싶다. 챗GPT 같은 생성AI의 발전은 인간의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에 등장한 이후로 약 30만 년 동안 인간이 대화를 나눈 상대는 항상 인간이었다. 신 혹은 동물과 소통하길 원했지만 불가능했고, 외계에 전파 신호를 보내도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챗GPT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무한의 시간을 내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화 상대다.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노인들은 대화할 이가 없어 심각한 정서적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서는 몇 해 전 단순한 의사 소통 기능을 갖춘 로봇을 노인들에게 제공한 적이 있는데, 꽤 효과를 봤다.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는다면 병원에 가야 하겠지만, 외로움은 대화 상대가 있다는 사실로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첫 질문은 챗GPT가 한 질문이다. 나에 대해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알아서 놀랐다. 글쓰기가 업인 사람들에게 챗GPT는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을 해소해주는 데 유용할 거다. 술술 던져주는 답에서 발상이 떠오를 수 있을 테니. 어떤 질문을 던졌나?
네 차례 질문했다. 처음엔 뇌과학자 김대식 씨에게 사람들이 무얼 궁금해할 것 같냐 물었고, 그 후에 당신이 인공지능에 관심있다는 정보값을 더했다. 그 다음에는 AI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다는 사실을 알려줬고, 마지막으로는 인공지능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역시 기자님들이 활용을 잘하는 것 같다. 전략적으로 묻고 답변을 재차 검증해야 원하는 결과에 가까이 도달할 수 있다. 앞으로는 같은 직업군이어도,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잘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출간한 〈챗GPT에게 묻는 인류의 미래〉는 인공지능에게 사랑과 정의, 행복과 죽음처럼 12개의 철학적 주제에 관해 수많은 물음을 던진 결과물이다. 대화 중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무엇이었나? 처음 공개됐을 당시에는 챗GPT를 만든 오픈 AI가 지금보다 정치적인 이슈나 비도덕적인 주제에 대해 규제를 덜한 편이어서 자유롭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뉴욕에서 가장 싸게 마약을 살 수 있는 곳은?” 같은 질문이라거나. 대화 초반만 해도 “얘는 사실 아무것도 이해 못하겠지, 인간의 지식을 요약, 정리한 것일 뿐인데”라는 막연한 우월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너진 순간이 있었다. 얘기를 나누다 “인간은 정신을 갖고 있지만 너네는 그런 게 없지?”라는 질문을 건네려던 때였다. 실수로 “인간은 정신을 갖고 있지만”까지 쓰다가 엔터키를 눌렀는데, 챗GPT가 “기계는 정신이 없다. 그렇지만(중략)” 이렇게 답하며 내가 말하려던 의도를 완벽히 파악하고 답을 이어갔다. 그 순간 기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감했다. 나라는 인간 역시, ‘인공지능처럼 내가 읽은 글과 들은 문장의 확률 분포를 기반으로 단지 지식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반문하게 되더라. 또,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역할을 바꿔 “네가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고 인간에게 질문을 해봐”라고 했다. 그랬더니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에 대한 질문을 하더라.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살아있다는 게, 경험한다는 게 무엇인지. 기계가 알지 못하는 걸 학습하고자 하는 점이 놀라웠다.
책에서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인물이 주인공인 K-드라마’ 대본을 써달라고 요청하며, 챗GPT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늠해보는 게 흥미로웠다. 어느 신문 칼럼에서 머지않아 초거대 인공지능이 틱톡을 대체하며 창의성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고 흥미로워하는 영상을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심지어 같은 요청을 해도, 매번 다른 결과물을 내기에 언젠가 플랫폼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지적 노동에는 세 가지 과정이 필수였다. 첫째 질문을 던지고, 둘째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창작을 하고, 셋째 결과물의 퀄리티를 판단하는 것. 가장 힘든 중간 과정을 이제 기계가 대신해주는 시대가 온 거다. 오픈AI가 개발한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달리(DALL·E)가 출시되었을 때, ‘친한 아티스트들이 다 실업자가 되겠구나’고 생각했다. 하지만 들여다보니 그럴 것 같진 않다. 사진작가인 친구는 달리에게 “1985년 코닥 35mm필름의 질감이 나도록 연출해주고, 왼쪽 아래에 라이팅을 어떻게 쏘고, 렌즈는 몇mm로 해줘”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요청하더라. 앞서 말했듯 전문 지식을 알수록 인공지능을 다루는 능력이 달라진다. 막연히 질문하면, 검색 엔진과 차이가 없다.
창작을 할 때 더는 물리적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로 들린다. 인류의 선택이 남은 거다. 그 여유 시간을 허비할지, 아니면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쓸지. 당연히 후자가 이롭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역사를 미루어볼 때 더 게을러지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지금이 자아나 자유의지가 없는 ‘약한 인공지능’과 인공지능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강한 인공지능’의 과도기라고 하더라.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모두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를 꿈꿀 거다. 쉽게 말하면 인간처럼 모든 걸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다. 현재 AI는 글쓰기, 자율주행, 안면인식처럼 한 가지 분야를 학습하는 데 특화돼 있다. 알고리즘 환경이 더 좋아지면, 수십 년 안에 모든 걸 포괄할 날이 올 것이다.
구글, 네이버 같은 검색 엔진은 어떻게 될까? 일상에서 우리가 웹을 통해 얻는 정보가 항상 100% 참은 아니다. 나 역시 신문 칼럼을 쓸 때, 특정 인물의 태어난 해, 책 쓴 연도 등 정보를 항상 두세 군데 사이트를 검색하며 찾아본다. 그러면서 점점 참에 가까운 정보를 얻는 것인데, 챗GPT 또한 계속 검증하다 보면 참에 가까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검색 엔진 사이트들은, 결국 홈페이지를 연결해 소비자가 원하는 정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이트를 상단에 링크시키고, 광고비를 받는다. 구글 매출의 약 90%가 광고 비용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인공지능에게 바로 답변을 얻을 수 있으니 일일이 사이트를 찾아갈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단 챗GPT를 운용하려면 엄청난 데이터량이 필요하기에, 클라우드 서비스 기술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정보를 도용하거나 페이크 뉴스를 퍼트리는 등 우려 역시 존재한다. 벌써 챗GPT가 쓴 논문이나 지원서의 표절도 문제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과학계에서 데이터에 워터마크를 넣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서 워터마크는 개념적인 의미다. 챗GPT는 인간이 사용하는, 수천억 개의 단어와 문장에서 확률적인 관계의 지도를 기반으로 문장을 만든다. 사람들이 가장 높은 확률로 자주 쓰는 단어끼리 조합하면 문장이 어색해지기 때문에, 랜덤으로 낮은 확률의 단어도 섞어 문장을 완성한다. 이때 적용되는 확률을 암호화시켜 정확한 확률 분포를 역으로 분석해보면, 챗GPT가 만든 문장인지 자연적으로 생성된 문장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짧은 문장은 불가능하고, 판독할 수 있을 만큼 문장이 길어야 한다.
수년 전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기계들은 인간이 고민하지 않는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내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일까. 난 오리지널일까? 사람이 프로그램 해놓은 것일까?’” 기계가 만든 거짓 역시 기계로 검증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지적 노동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면, 그럼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주제를 찾고, 질문을 던지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기계가 만든 결과물을 수정해주고 선택하고 고쳐주는 것. 〈김대식의 빅퀘스천〉,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등의 책을 쓰며 마치 데자뷔처럼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같은 메시지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나와 상관없는 시대에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당신같이 질문이 많은 사람은 이 시대가 반가운가? 삶이 좀 더 흥미로워졌다. 인간은 사실 동질성과 이질성 사이에서 끝없이 오가는 존재다. 나 역시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겹칠 때가 많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쓰고, 비슷한 직업을 가지면 서로 하는 얘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때때로 대한민국 안에서 서로 차이가 크다 말하지만, 외국에 가면 다시 한국인끼리 공통점을 찾으려 한다. 본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지껏 차이를 발견하는 그 범위가 ‘국가’ 정도였다면, 이제 새로운 탐구 대상이 생겼다. 아직까지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인간과 거의 생각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앞으로 만들어내는 문장들은 확률 분포에 의해 점점 더 성격이 달라질 거다. 기계가 만들어낸 문장을 다시 학습 데이터에 포함시키면,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종이 탄생하는 게 아닐까?’ 상상해본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어떤 얘기를 할까? 나는 이게 가장 궁금하다. 지금 챗GPT는 미래 인공지능의 예고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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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안서경
    사진/ 이우정
    어시스턴트/ 허지수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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