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뛰어난 지능과 신체 조건을 갖춘 범고래는 수명이 다하지 않는 이상 어떤 해도 입지 않고 유유히 바다를 지배할 것 같은데, 요사이 부고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2020년에는 영국의 홀비치 인근 해안에서 길이 4.5m의 수컷 범고래의 사체가 발견돼 충격을 주었다. 올해 초에는 브라질 동부 해변에서 새끼 범고래가 죽은 채 발견됐다. 범고래 구조재단 ORF(Orca Rescues Foundation)에 따르면 새끼 범고래의 사인을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을 삼킨 것으로 추정한다고. 폐사한 범고래의 배 속에는 80cm 길이에 달하는 플라스틱 조각도 존재했다. 직접적인 사인이라 단정하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플라스틱 뭉치가 소화장애를 일으켜 먹이를 섭취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고래의 몸이 매우 가냘팠다는 점도 이같은 추정을 충분히 뒷받침한다. 더욱 마음이 아파오는 대목은 죽기 전 사람들에게 SOS를 요청했다는 사실이다. 유튜브 쇼츠 영상을 통해 공개된 장면에는 범고래가 죽기 직전 다이버들이 탄 보트 근처에 다가와 사람들이 쓰다듬는 손길을 피하지 않는 모습이 담겨있다. 한 해양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그저 귀여운 장난으로 여겼을 이 순간이 사실은 간절히 도움을 청하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는 것. 사정을 알 리 없던 사람들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와 범고래의 사투가 뒤틀린 시공간에 함께 있는 것처럼 서로를 비껴간다. 올해 초에는 하와이 카우아이섬 인근의 한 암초에서 좌초된 향유고래가 발견됐다. 길이가 17m나 돼 중장비를 동원해 해변으로 운반하는데 15시간 걸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몸집이었다. 부검 결과 이 거대한 향유고래의 뱃속에는 통발, 낚싯줄, 비닐봉지 같은 수많은 플라스틱이 있었다. 바닷 속 최강자를 가릴 때 항상 라이벌로 등장하는 범고래와 향유고래를 쓰러뜨리는 건 다름 아닌 인간이 버린 쓰레기. 고래를 멸종 위기에 처하게 하는 생명체가 다름아닌 우리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자꾸만 망각하고야 만다.

고래의 부고를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정신을 차리고 하루를 복기해본다. 아무리 숨만 쉬어도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나라는 인간 한 명이 만들어낸 플라스틱 쓰레기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방금 전에도 다이어트 식단을 한다는 명목으로 즉석 현미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었다. 일할 때 집중이 안 된다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에너지 음료를 사 먹었다. 커피숍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도 사 왔고 지금은 막 플라스틱 용기에 든 과자를 뜯으려던 참이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편리해서, 그냥 거기에 있어서 등 우리는 오만 가지 이유로 쓰레기를 만들어낸다. ‘임신한 고래의 배 속에서 쓰레기 더미 발견’, ‘살려달라고 사람에게 다가온 범고래’ 등 충격적인 헤드라인을 볼 때마다 의식적인 소비를 실천하곤 하지만 또 며칠, 몇 주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습관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고래의 처참한 배 속은 고작 이런 존재인 인간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경고를 전하는 듯하다.

올해 1월 하와이 국토천연자원부가 부검한 향유고래의 사체에서 발견된 통발, 낚시줄, 부표, 비닐봉지.
개체수가 점차 감소해 멸종위기에 놓인 고래의 사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우리가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이외에 다른 문제도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수의학 교수 스테판 래버티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2004~2013년 사이에 북미 태평양 연안에 좌초된 53마리 범고래를 조사했는데 선박과 충돌하거나 그물에 걸린 것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었다. 세계동물복지기금의 연구에 따르면 2003~2018년 사이 폐사한 북대서양 고래 43마리 중 16마리는 선박 충돌로, 22마리는 폐어구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자원방어위원회(NRDC)는 매년 해양 포유류 65만 마리가 어구에 의해 죽거나 다친다고 밝혔다. 폐어구는 전 세계 해양 쓰레기의 10분의 1을 차지한다고. 플라스틱 빨대보다 어업으로 인해 버려지는 각종 장비들이 범고래에게 훨씬 더 해롭다는 결론이다.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전 바다에 투기된 유해 물질도 고래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2016년, 영국 스코틀랜드 해안가에서는 범고래 ‘룰루(Lulu)’가 숨진 채 발견됐다. 룰루는 영국에서 마지막 남은 범고래 무리 중 하나로 20년 넘게 새끼를 낳지 못해 더욱 안타까움을 더했는데 부검 결과 체내에서 폴리염화비페닐(PCB) 농도가 기준치의 1백 배 넘게 나왔다. 과거 변압기나 플라스틱 가소제에 주로 쓰인 PCB는 환경운동의 성과로 1970년대 이후 사용이 금지됐지만 지금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지구의 정화조라 불리는 바다이기에 과거 매립한 물질도 오랜 세월을 거쳐 흘러들어오는 것. 그렇게 모여든 미세플라스틱은 작은 물고기의 입으로, 최상위 포식자인 범고래에게로, 동시에 인간의 몸에도 차곡차곡 쌓이고야 만다. 그러니까 고래의 안타까운 사정은 곧 우리 인간의 사정인 것이다. 뒤틀려 보이는 시공간 속, 인간도 고래와 같은 운명을 향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플라스틱 빨대를 안 쓰는 것보다 어업이 고래에게 더 해롭다” 같은 논쟁보다는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편이 훨씬 더 현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