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좋은 창작물은 그저 작가의 삶이 남긴 흔적이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신의 삶이 불타고 있다면 당신의 작품은 재가 될 것이고 그것들은모두 당신이 떠난 후에도 남아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인대도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멀리서 본 관점이 유일한 척도이다. ‐ 2017년 〈바자 아트〉
〈무제〉,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에폭시 유리섬유, 스테인리스 스틸, 머리카락, 옷, 가변크기.
“회고전은 항상 결혼만큼 공식적으로 들린다: 어떻게든 피해야 할 훌륭한 제도인 것이다.(웃음)”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2017년 〈바자 아트〉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17년 키아라 파리시(전 모네 드 파리 디렉터)가 회고전을 제안했을 때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구작을 세상에 수십 점이나 내보이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문했다. 마침내 그가 찾은 대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보여져야 한다는 것. 색다른 환경과 맥락 안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다는 것. 그렇게 실현된 회고전이 2017년 모네 드 파리에서 치러진 ≪Not Afraid of Love≫였고 2021년 UCCA 현대미술센터의 ≪최후의 심판≫이었다. 중국에서의 두 번째 회고전이 팬데믹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유령 같은 전시가 된 것을 감안한다면,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WE≫는 그가 아시아라는 낯선 지형에서 시도하는 새로운 예술 실험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하여 조각, 설치, 벽화 등 38점으로 자신의 아카이빙을 총동원했다. 수십 마리의 비둘기 박제 〈유령〉과 등산복을 입은 노숙자 〈동준과 준호〉를 비롯해 피보다 붉은 카펫 위에 놓인 아홉 구의 시체 〈모두〉가 2023년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새로운 맥락을 획득한다. 작가는 언제나 그렇듯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아티스트 토크나 대면 인터뷰도 없다. “절대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듣지 말라”는 그의 충고에 따르기로 한다. 대신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부관장과 그의 작업에 대해 논하며 감상의 지평을 넓혀보고자 했다. 결국, 모두 그의 뜻대로 되었다.
〈노베첸토〉, 1997, 박제 말, 가죽 마구, 밧줄, 196x192x55cm.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치고 전시 제목이 다소 얌전하다. 카텔란의 얼굴을 한 쌍둥이가 장례식처럼 짙은 색 정장을 입고 나란히 누워 있는 동명의 작품 〈우리〉에서 가져온 것일 텐데. 이 제목은 어떤 대표성을 띠는가?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개인전의 제목을 자신의 작품명에서 채택하곤 한다. 이번 전시 제목 ≪WE≫는 작가와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 결과물인데, 농담조로 너무 착한 제목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우리끼리의 ‘우리’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회적 소수를 포함하는 포용과 연대 그리고 공감으로서의 ‘우리’다. 사실 포용, 연대, 공감이라는 키워드는 너무 보편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카텔란이기 때문에, 나쁜 작업에 착한 제목 혹은 못된 작업에 착한 제목이 의미를 갖는다.
UCCA 현대미술센터에서 열린 ≪최후의 심판≫이 자연사 박물관 같았다면 이번 전시는 흡사 지하철 역사를 연상케 한다. ‘고고한 미술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인데.
오히려 조금 더 어수선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작가는 처음 리움에 왔을 때 이곳을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극단적으로 정적이고 안정적이며 차분한 공간이라고 느꼈고 활력이 도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그는 자신의 의도를 결코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는다. 갤러리스트 마시모 드 카를로를 회색 덕테이프로 벽에 붙였을 때(〈무제〉)도 특별한 설명이 있었던 게 아니다. 작가는 그저 툭 던질 뿐이고 그 의미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건 갤러리스트의 몫이다.
〈무제〉, 2007, 박제 말, 300x80x170cm.
이 공간을 지하철 역사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등공신은 〈일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다. 카텔란이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아페르토 섹션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공간을 향수 브랜드에 임대한 작업이다. 이번 전시에는 코오롱과 NC소프트의 광고로 대체되었다. 작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관여했나?
그 작업의 핵심은 임대한다는 개념에 있으므로 누구에게 임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1993년 당시에 임대를 희망한 세 개의 브랜드 중에서 향수 광고가 채택된 건 그것이 가장 ‘광고’였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광고 에이전시에 의뢰하고 후보군을 선정하는 등 절차가 있지만 작업의 개념에 맞추어 최대한 의도성을 배제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왜 그 광고들인지 묻는다면 가장 먼저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노란색 바나나를 회색 덕테이프로 고정한 〈코미디언〉의 설치 작업은 예상만큼 간단한가?
바나나를 벽에 붙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개념미술의 경우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지침이 존재하며 지침서 자체가 작업이기도 하다. 〈코미디언〉도 마찬가지다. 바나나를 어떤 각도로 놓는지, 회색 덕테이프를 어떤 방식으로 붙이는지. 다만 바나나를 교체하는 주기에 대한 지침은 따로 쓰여 있지 않다. 갈변하기 시작하면 바꾸는데 평균 2~3일에 한 번 꼴이다.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작가는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전시 오프닝 첫째 날 관람객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를 발견한 누군가가 〈코미디언〉의 바나나를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먹어도 좋다. 다만 미술관은 싫어할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던데. 정말 그런가?
첫 번째가 중요하다. 이미 마이애미 아트바젤에서 누군가 시도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바나나를 떼어 먹는 것에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우리 입장에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조금 귀찮아질 뿐이다.
카텔란의 얼굴을 한 침입자가 바닥을 뚫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무제〉를 구현하기 위해서 멀쩡한 미술관 바닥을 뚫는 대공사를 벌였다.
꼭 선보이고 싶었던 작업이 두 개였는데 하나는 〈무덤〉이고 나머지 하나가 〈무제〉다. 〈무덤〉의 경우 전시장 바닥이 시멘트여야만 했기 때문에 도저히 시도할 수 없었지만 〈무제〉는 포기가 안 됐다. 리움미술관의 설계도면과 실제 건축 상태를 확인하면서 어느 구역을 안전하게 뚫을 수 있는지 찾아다녔고 네 개의 구역을 발견했다. 현재의 위치는 최종적으로 카텔란과 함께 결정했다. 만약 이 작업을 설치하지 못했다면 나로서도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동훈과 준호〉, 2023, 나무, 스티로폼, 스테인리스 스틸, 옷, 신발, 소품, 가변크기.
박제 비둘기 〈유령〉, 박제 다람쥐 〈비디비도비디부〉, 박제 말 〈노베첸토〉, 박제 당나귀 〈가족〉 등 동물 박제는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한다. 작업의 맥락을 이해하기보다는 일단 섬뜩하고 징그럽다며 불쾌감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합법적 방식으로 제작된다는 건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거치나?
자연사한 동물만을 구입한다. 또한 구입 전에 이 동물이 합법적으로 죽었는지, 이를테면 자연사했는지 식용을 목적으로 죽임을 당했는지 역추적할 수 있는 검사가 선행된다. 서구권에서는 동물의 진화 과정을 배울 때도 자연사 박물관의 동물 뼈나 박제를 보면서 공부하는 게 자연스럽고 그것을 무섭다거나 끔찍하다고 인식하진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낯설기 때문에 지레 겁을 먹는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면 동물 입장에서는 미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게 더 행복한 일 아닐까. 미술관 안에서 관람객에게 사랑받고 유구하게 존재할 수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카텔란의 작업에 대한 동물보호단체의 문제제기 또한 결과적으로 인간이 식용을 위해서 얼마나 불법적인 도살을 자행하고 있는지 화두를 건드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작가의 의도대로 2023년 서울 한남동 리움에서 그의 작업이 새로운 맥락을 가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시뻘건 카펫 위에 놓인 아홉 구의 시체를 연상케하는 〈모두〉는 지난해 우리에게 벌어진 대형 참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카텔란의 힘이 바로 거기에 있다. 아주 개인적인 이미지로 출발하지만 작업을 통해 그 이미지가 단숨에 보편성과 특수성을 획득한다. 작가들 중에는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동어반복하거나 과도하게 보편적이라 와닿지 않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두 개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카텔란은 그런 작업이 가능한 작가다.
〈동훈과 준호〉, 2023, 나무, 스티로폼, 스테인리스 스틸, 옷, 신발, 소품, 가변크기.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 구겐하임이 ‘편집하지 않은 민주적 방식’의 전시였다면 이번 회고전은 어떤 방식의 전시일까?
구겐하임의 전시가 민주적인 이유는 회고전을 통해 그 작가의 가장 실패한 작업부터 가장 성공한 작업까지 1백여 점이 넘는 모든 작업을 미니어처로 만들어서 동등하게 매달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작, 대표작, 훌륭한 작품이 중심일 때 비로소 미술관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번 전시는 가장 미술관다운 전시인 셈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가장 대표적인 작업, 꼭 봐야 하는 작업을 선정해 한자리에 모아놓은 아주 고전적인 방식의 전시.
엘레나 쿠에가 마우리치오 카텔란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의 간결한 프로필을 만들어보라”고 하자 그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지루한 사람이다. 나 자신을 정의하려고 노력하다가 잠이 들 것이다.” 한동안 근거리에서 작가를 지켜본 입장에서 당신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간결한 프로필을 어떻게 완성하겠나?
뼛속까지 작가인 사람. 작가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 그에 대해 여전히 감탄하는 한 가지는 그가 너무나도 진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스처나 작업 방식은 흡사 불량 학생 같은 자세지만 그 결과물만큼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더없이 진지하다. 하지만 끝끝내 거기에 대해서 일언반구하지 않는다. 이미지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 ≪마우리치오 카텔란: WE≫는 리움미술관에서 7월 16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