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초멍 하는 법 #랄라밀랍초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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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초멍 하는 법 #랄라밀랍초

굳은살처럼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던 걱정거리도 초처럼 녹아 사라진다.

BAZAAR BY BAZAAR 2023.02.20
 
제주 180년 된 작은 돌창고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해 보내는 시간.
 
 
제주 애월읍 신엄리 귤밭 한 가운데 자리한 랄라 밀랍초의 아뜰리에 촉은 초와 함께 진한 몰입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다. 180년 된 돌창고 중앙에는 나이테를 그대로 드러낸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놓여있고 천장에는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모를 유목이 서까래처럼 걸려 있다. 신비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돌창고 초멍 공간과 작업실은 랄라 밀랍초를 이끄는 두 사람, 룰루와 랄라가 버려진 자연물을 가지고 직접 꾸민 공간이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제주의 자연을 담아 밀랍초를 만드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밀랍초를 알리고 초멍의 평온의 세계로 안내한다.
 
제주 180년 된 돌창고에서의 초멍 ⓒ 랄라 밀랍초

제주 180년 된 돌창고에서의 초멍 ⓒ 랄라 밀랍초

 
밀랍초를 만드는 것이 자연과 인간, 개인과 이웃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랄라는 원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고 들었어요. 제주에는 어떻게 오게 됐나요?
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언젠가부터 결국 모든 일이 회사의 선택과 결정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큰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여러 곳을 여행하며 주체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고, ‘자급자족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살아보자 결심한 뒤 제주로 오게 되었죠. 작정 캐리어 하나만 끌고 제주행 편도 티켓을 끊고 온 상황이라 숙소를 옮겨가며 저와 맞는 지역을 찾아보고자 했어요. 아마 6번째 숙소였을 거예요. 꽤 마음에 든 그곳에 한 달 정도 머무르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제주에서 어떻게 살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때 생각한 방법이 한 달간 팝업 바를 열어 최대한 많은 제주 사람을 만나고 그들은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는 거였어요. 룰루는 함덕 바다에서 캠핑을 하며 지냈는데, 잠시 태풍을 피하고자 제가 있던 게스트 하우스로 오게 되어서 만났어요.
 
 
룰루와 랄라,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이름이에요.
당시 제가 운영했던 팝업 바의 규칙 중 하나가 모든 게스트가 이름 대신 닉네임을 쓰는 거였어요. 그때 룰루의 닉네임이 룰루였죠. 제가 “왜 룰루예요?”라고 물었을 때 “랄라 찾으러 왔어요~”라고 말한 룰루의 대답으로 저희가 연인이 된 후 저는 랄라가 되었고, 저희가 만든 밀랍초는 ‘랄라 밀랍초’가 되었죠. (웃음)
 
밀랍에 담갔다 굳히는 작업을 반복해 완성되는 담금 초 ⓒ 랄라 밀랍초

밀랍에 담갔다 굳히는 작업을 반복해 완성되는 담금 초 ⓒ 랄라 밀랍초

 
밀랍초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루와 함께했던 공간에는 늘 초가 있었어요. 어느 날인가 룰루와 초에 관해 대화하게 되었는데, 룰루가 다도 자리에서 한 선생님이 태우셨던 밀랍초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촛농의 흐름 없이 오롯이 연소하여 사라지는 밀랍초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요, 그 밤에 우리가 더 아름다운 밀랍초를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맞추게 되었죠. 처음 제주에 왔을 때부터 환경에 무해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룰루와 저는 그러한 삶의 지향점이 같았죠. 천연 밀랍은 사람에게도, 자연에도 무해한 재료예요. 게다가 꿀을 채취하고 버려지는 재료로 만드니 양봉농가에도 도움이 되고요. 밀랍초를 만드는 것이 자연과 인간, 개인과 이웃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랄라 밀랍초의 독특한 디자인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요.
라 밀랍초의 모든 디자인 초는 시중에 판매되는 몰드를 구매해서 만든 초가 아니에요. 제주에 머물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여러 영감을 디자인으로 녹인 작품 초이죠. 오브제로서도 아름답지만, 초의 본질에 충실해 태울 때 더 아름다운 초를 만들고자 했어요. 저희는 초 작업을 할 때, 초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빛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해요. 장 아름다운 빛을 만들기 위해 초가 타는 전 과정을 상상하며 디자인하죠. 그런 부분이 랄라 밀랍초만의 색이라고 생각해요. 양봉농가에서 밀랍을 가져와 거르는 일부터 모두 직접 수작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전 과정에 대해 저희 스스로 믿을 수 있기도 해요.
밀랍초 디자인에는 제주의 자연에서 머물며 얻은 영감이 녹아 있다. ⓒ 랄라 밀랍초

밀랍초 디자인에는 제주의 자연에서 머물며 얻은 영감이 녹아 있다. ⓒ 랄라 밀랍초

 
초를 만들며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초를 만들지 않는 시간의 저희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손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것에는 만드는 사람의 에너지가 깃든다고 믿거든요. 밀랍초를 처음 시작하게 된 마음처럼 자연과 인간에게 해롭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요. 무농약 재배를 하는 자연 농부 선생님들과 매주 토요일 농부 마켓에 참여하기도 하고, 해양 쓰레기를 줍는 #지구집청소 캠페인도 진행하고요. 무참히 잘려진 삼나무와 훼손된 비자림로를 보호하기 위한 시민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어요. 그리고 밀랍초는 저와 룰루가 기분과 컨디션, 이 모든 것이 좋은 날에만 만들어요! 밀랍초에 좋은 기운만 담고 싶어서요. (웃음)
 
쓰레기를 줍는 랄라 ⓒ 랄라 밀랍초

쓰레기를 줍는 랄라 ⓒ 랄라 밀랍초

 
처음 밀랍초를 접하는 사람에겐 어떤 초를 권하고 싶나요?
역시 디자인 초를 추천하고 싶어요. 랄라 밀랍초의 시그니처이기도 한데요, 빛, 시간, 길, 별, 나무 등 디자인 초에는 제주에서 느낀 여러 감정이 녹아 있어요. 초를 태우면서 빛이 변화하는 그 아름다운 과정을 지켜봐 주세요.
 
어둠을 밝히는 등대의 빛을 표현한 디자인 초 ‘빛’과 담금 초 ‘촉’ ⓒ 랄라 밀랍초

어둠을 밝히는 등대의 빛을 표현한 디자인 초 ‘빛’과 담금 초 ‘촉’ ⓒ 랄라 밀랍초

 
이 공간은 바다에 떠내려와 방치된 유목, 빛바래 버려진 감귤 박스 등 자연물 또는 물물교환이나 중고 거래를 통해 구한 물건들로 채워져 있어요.
 
‘촉’이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
촉(燭)은 한자로 ‘촛불’을 뜻해요. 광도를 나타내는 단위인 칸델라는 양초 한 개의 밝기를 기준으로 삼는데요, 1촉은 1칸델라와 같고 촉은 초 하나의 밝기를 의미해요.
 
번화가에서 먼 외진 곳에 작업실이 있어요.
밀랍초는 온도에 굉장히 민감해요. 제작 과정에서 온도나 습도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없는 고요한 환경에서 작업하고 싶었어요. 작업 중 손님이 찾아오면 애써 맞춰 둔 작업 온도가 달라지고, 그러다 보면 초를 만드는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거든요. 그래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이 어디 없을까 하며 찾아 다니다가 발견한 곳이 지금의 작업실이에요.
 
작업실 ⓒ 랄라 밀랍초

작업실 ⓒ 랄라 밀랍초

  
공간의 첫인상이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처음 이 공간을 발견했을 때의 모습을 설명하자면, 지붕은 다 부서져 있고 집과 화장실 안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을 만큼 지저분하게 방치된 상태였어요. 하지만 아무도 찾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위치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둘이 이 공간을 직접 고쳐 보기로 마음을 먹었죠.
 
어떤 작업실을 만들고 싶었나요?
어떻게 고칠까 이야기를 나누며 ‘절대 이 공간을 위해 또 다른 쓰레기들을 만들지 말자’고 기준을 정했어요. 그래서 이 공간은 바다에 떠내려와 방치된 유목, 낡고 빛바래 버려진 제주 감귤 박스 등 저희가 주운 자연물 또는 물물교환이나 중고 거래를 통해 구한 물건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어요. 둘이 꼬박 3개월을 이 공간에 매달렸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작업실을 만들었고 사람들과 함께 초를 통한 여러 경험을 나누고 싶어 작업실 밖에 있던 다 무너져 가던 작은 돌창고를 개조해 초멍 공간으로 오픈하게 되었어요.
 
초멍 공간 ⓒ 랄라 밀랍초

초멍 공간 ⓒ 랄라 밀랍초

이곳에선 모든 것을 잠시 내려 두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길 바라요. 내면에 귀기울이고, 그래서 이곳을 떠날 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해요.
 
초멍은 어떻게 체험할 수 있나요?
예약을 해야만 방문할 수 있어요. 저희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예약한 후 이곳에 오면 밀랍초에 관해 간단한 설명을 듣고 초멍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해요. 그곳에서 1시간 정도 초의 불빛을 바라보며 저희가 선정한 음악들과 함께 고요히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각자의 여정을 떠나죠. 혼자 와서 글을 쓰는 분들도 있고, 어머니와 따님이 같이 오시는 분들, 결혼을 앞둔 커플,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분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본인만의 시간에 집중해요.
 
과거 랄라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초멍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우리는 너무 바쁘잖아요.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매일 같이 생겨나는 핫 한 공간들도 다 가봐야 해요. 그러는 사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나의 마음과 몸은 현재 어떤 상태인지, 나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요. 이곳에선 모든 것을 잠시 내려 두고 자신에게만 집중하길 바라요.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래서 이곳을 떠날 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해요.

석양과 불빛이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 랄라 밀랍초

석양과 불빛이 근사하게 어우러진다. ⓒ 랄라 밀랍초

 
초멍을 진행하며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요?
“감사하다”, “행복하다”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기억에 남고, 반대로 무서워하시는 분들도 기억에 남아요. 이곳은 밤에만 문을 열어요. 초의 빛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낮이 아니라 밤이잖아요. 간혹 도시에서 오신 분 중에는 작업실까지 오는 돌담길이나 초멍 공간 안의 차분한 분위기 자체를 낯설어 하며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도시는 너무 밝잖아요. 밝은 형광등이 언제나 우리를 각성시키고 깨우죠. 그런 빛에 익숙한 분들은 처음 이곳을 찾으며 종종 무서워하시죠. 하지만 대부분 몇 분 후 금세 어둠에 익숙해지며 편안함을 느껴요. 사실 밤은 어두운 것이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자연의 흐름대로라면 너무 밝은 밤보단 조금 어두운 밤이 우리 몸에도 훨씬 편할 수밖에 없어요.
 
작업실에 방문하기 좋은 계절이나 시간이 있을까요?
이곳에서는 사계절 귤나무를 볼 수 있어요. 귤을 수확하는 계절에 오시면 제주에서 가장 맛있는 귤을 맛보실 수 있을 거예요. 초멍 공간에서도 창문 너머로 귤나무가 보여요. 꽃이 핀 계절도, 귤이 익어가는 계절도, 귤이 주렁주렁 열린 계절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워요. 그리고 이곳은 제주 서쪽 마을이라, 해가 지는 시간에 온다면 멋진 석양까지 덤으로 볼 수 있답니다.

작업실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석양 ⓒ 랄라 밀랍초

작업실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석양 ⓒ 랄라 밀랍초

 
랄라 밀랍초 아틀리에 촉 인스타그램 @lala_beeswax_atelier_ch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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