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크루즈 컬렉션을 수놓은 별자리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구찌의 크루즈 컬렉션을 수놓은 별자리

패션과 철학이 교차하고, 현실과 비현실이 꿈처럼 공존했던 구찌 2023 크루즈 쇼 현장 속으로.

BAZAAR BY BAZAAR 2022.12.15
 
구찌 2023 크루즈 쇼가 열린 카스텔 데 몬테의 전경.

구찌 2023 크루즈 쇼가 열린 카스텔 데 몬테의 전경.

신화에 우아함을 더해줄 만한 곳을 찾고 있었어요. 이 공간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치수와 비율이 교차하고 있죠. ‐ 알레산드로 미켈레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새로운 크루즈 쇼를 선보이기로 마음먹은 곳, 바로 이탈리아의 남쪽 풀리아의 중심 도시 바리(Bari)에 자리한 고딕 양식의 성 ‘카스텔 델 몬테’다. 언제나 풍부한 시각적인 요소와 더불어 그와 연결되는 역사적인 장치들을 컬렉션 속에 버무려내는 패션계의 철학자, 미켈레다운 공간이었다. 13세기경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지은 카스텔 델 몬테는 엄격하게 느껴질 만큼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팔각형의 왕관 모양을 한 이 장엄한 요새에는 팔각형의 보루와 팔각형의 안뜰이 자리해 있으며 건물 두 개 층에는 각각 여덟 개의 사다리꼴 형태의 방이 존재한다. 이곳에 강박적으로 사용된 숫자 8이 전하는 불가사의한 힘에 미켈레 역시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고. “신화에 우아함을 더해줄 만한 곳을 찾고 있었어요. 이 공간은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치수와 비율이 교차하고 있죠. 칼라(Collar)와 재킷의 치수를 변주해 마법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과 닮아 있어요.” 
 
다채로운 캐릭터가 공존한 코스모고니 컬렉션의 피날레.

다채로운 캐릭터가 공존한 코스모고니 컬렉션의 피날레.

미켈레는 이번 컬렉션에 ‘코스모고니(Cosmogonies)’ 즉 ‘우주기원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에게 영감을 준 건 독일의 사상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별자리(Constellation)식 사유’라는 개념. 미켈레는 벤야민의 역사 속 서적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그의 인용문을 수집해 쇼 노트에 활용했다. 또 “과거가 현재를 조명하거나 현재가 과거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형상은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 현재와 갑작스럽게 연결되면서 별자리를 형성하는 어느 지점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 벤야민의 사상에 찬사를 보냈다. “별자리식 사유란 현재의 특정한 순간과 과거의 특정한 장소 사이에서 동시성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에서 별자리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는 양극단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특정 과거 시점과 특정한 현재 시점을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의 지점을 관통하는 생생한 시사적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벤야민은 전통적 제약을 깨고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현실의 형태를 보여주면서 새로운 접근의 코스모고니, 우주기원론으로 세상에 반향을 일으켰고요.” 미켈레가 말했다. 아울러 이번 컬렉션은 1930년대에 유대인으로서 망명이라는 운명을 공유한 벤야민과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깊은 우정과 열정적인 지적 교류에도 주목했다. 작가이며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미국으로의 망명이 좌절되면서 오랜 시간 수집한 서적 및 인용문을 모두 잃어버리자 스페인 국경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벤야민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룬 바 있다. 
 
초상화 속 목걸이를 연상케 하는 앤티크한 느낌의 목걸이.별자리 모티프가 수놓인 가운. 피날레에 등장해 존재감을 빛냈다.다채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었던 구찌 크루즈 컬렉션.그래피컬한 패턴과 별자리를 연상케 하는 시퀸 장식이 시선을 사로잡는 드레스.피날레의 한 장면. 카스텔 델 몬테를 수놓은 은하계와 별자리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흑백의 강렬한 대비가 인상적인 부르주아 룩.키치함과 클래식함이 공존하는 닥터 백.역사적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드레스.옵티컬 프린트 수트에 고글 선글라스, 머리에 새긴 GG 로고가 조화롭다.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레이스업 사이하이 부츠.
결론적으로 장엄하고도 신비로운 카스텔 델 몬테의 구조는 별자리의 상징성을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던 것. 또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결코 단편적인 생각으로 컬렉션을 완성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는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에는 다른 이들이 지닌 생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로, 그동안 그가 창작한 컬렉션은 시각적으로도 다양하지만 때론 쉽게 해독할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곤 했다. 이번에도 미켈레는 벤야민의 풍부한 인용과 상호 참조를 이용해 마치 바다 깊은 곳에서 귀중한 진주를 캐내듯 흩어진 파편들을 서로 연결했다. 과거와 현재의 지점을 관통하는, 새롭고 창의적인 ‘코스모고니’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벤야민과 미켈레의 비전은 서로 닮아 있는 셈이다.
자, 그 결과로 탄생한 컬렉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쇼가 시작되자 붉은 보름달이 뜨는 밤하늘 아래 웅장한 현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성 외곽을 따라 모델들이 걸어 나왔다. 마치 우주선에서 지구로 메시지를 보내듯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우주론의 개념은 옵티컬 및 그래피컬한 패턴의 룩, 그리고 별자리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엠브로이더리 장식이 돋보이는 가운으로 등장했다. 여기에 성주(城主)를 떠올리게 하는 퍼 케이프를 걸친 중성적인 여인, 고고장에 놀러온 듯 반짝이는 드레스 혹은 자수 장식의 데님 점퍼를 입은 소녀들, 클래식한 모자에 투피스를 입은 부르주아 귀부인 등 다양한 캐릭터의 인물들이 혼재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패션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그 중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은 건 초상화 속 목걸이, 십자군 망토, 기차, 중세 크리놀린 등 역사적 참고 자료를 바탕으로 한 섬세하고도 키치한 디테일들! 물론 구찌 특유의 페티시적인 요소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클라이맥스로 이어진 피날레에서는 성 꼭대기 8개의 모서리에서 푸른색 빔이 쏟아져 나오며 별의 형상을 드러냈고, 성 전체가 거대한 은하수와 별자리, 별자리 이름으로 수놓였다. “성이 정적에 휩싸인 채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성이 지어졌을 때처럼 살아서 기념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곳은 당시의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와도 같은 곳이죠.” 미켈레의 말대로 성벽에 쏘아 올린 별자리와 은하수의 이미지는 카스텔 델 몬테에 어떤 생명력을 불어넣는 듯 느껴졌다. 절로 카메라를 꺼내 들게 만드는 황홀한 장관 아래로 체크 셔츠에 헐렁한 면 바지, 여기에 검은색 볼캡을 눌러쓴 미켈레가 밝은 미소를 띠며 걸어 나왔다. 자신이 꿈꾸고 계획한 코스모고니를 현실 속에 완벽히 재현해내는 데 성공한, 동시대를 대표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런웨이의 마술사, 패션 철학가의 걸작에 모두가 환호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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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진선
    사진/ ⓒ Gucci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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