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aint Laurent 2023 Man Collection

Acne Studios
패션쇼는 여러모로 막대한 자원이 들어가는 이벤트다. 최근 피지컬 쇼가 부활하는 추세인데, 영국의 비영리단체 ‘패션 레볼루션’의 공동설립자인 오르솔라 데카스트로는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리는 20분짜리 이벤트는 지속 불가능하다”라는 비판적인 성명을 내놓았다. 업계 전반에 걸쳐 패션쇼의 효용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최근 모로코 마라케시의 아가파이 사막에서 생 로랑의 2023 스프링 남성복 컬렉션이 열렸다.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마치 커다란 고리 형태의 빛나는 오아시스를 연상시키는 런웨이가 펼쳐졌다. 이는 북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폴 바울스의 소설 〈마지막 사랑〉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되었다. 디자이너 안토니 바카렐로는 런던 기반의 예술가이자 무대 디자이너 에스 데블린과 함께 마라케시 아가파이 사막에 패션쇼를 위한 세트를 선보였는데, 이 무대가 더욱 화제를 모은 이유는 탄소 중립 이벤트이기도 했기 때문. 사전에 미리 탄소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도록 계산해 최대한 줄였고, 세트의 재료와 장비를 대부분 대여했다. 임대가 불가능한 아이템은 재사용하거나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탄소발자국을 줄였다. 또 거대한 패브릭은 마르케시 여성 협력단에 기증해 재생 카펫으로 제작해 판매할 예정이며, 인공 호수에 쓰인 물은 아가파이 지역에서 자라는 올리브나무 재배를 위해 재활용한다고 밝혔다. 이뿐 아니다. 프라다의 2022 F/W 런웨이 쇼의 세트와 의자에 사용된 올리브 인조모피 카펫 역시 재활용해서 재판매했다. 또 아크네의 2022 F/W 컬렉션은 침몰한 살롱에서 영감받은 좌석들을 덮고 있던 인조 모피를 다음 컬렉션에서 재활용하기로 하고, 일부는 파리 패션 스쿨인 ‘스튜디오 베르소’에 기부했다. 클로에의 A/W 22 쇼 세트는 지속가능한 건축 자재에 투자하는 프랑스의 신생 기업 사이클 테르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다. 사이클 테르에서 토양을 대여해 사용했는데 이 토양은 또 다른 프로젝트에 재활용했다고. 쇼에 사용된 접이식 의자들 역시 위러브그린페스티벌에 기증되었다.

Prada

Chloé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세계 섬유산업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12억 톤에 이른다고 발표했고, 미국 복스 미디어에서는 패션산업이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1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패션산업은 기후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을 통해 패션 브랜드들은 새로운 ‘기후 행동을 위한 패션산업 헌장’을 발표했다. 이 헌장에 서명한 LVMH, 나이키, H&M 등 1백30여 개의 패션 브랜드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은 올해부터 기업의 ‘그린 워싱’ 단속에 나섰다. 경쟁시장청인 CMA가 첫 조사 대상으로 삼은 건 패션 브랜드들이다. 단속 원칙으로 삼은 6가지 ‘그린 클레임스 코드’는 친환경 의류의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재활용 섬유를 사용하거나 친환경 소재의 정확한 함유 비율에 대한 설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만약 설명이 충실하지 못하거나 기업의 허위 주장이 적발되면 소송까지 당할 수 있다. 클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가브리엘라 허스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바로 ‘리와일딩(Rewilding)’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리와일딩은 자연이 자생력을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진보적인 솔루션이다. 파괴된 생태계가 자생력을 회복함으로써 야생성과 다양성이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다. 허스트는 〈리와일딩-영국 농장으로 귀환한 자연〉의 저자 이사벨라 트리와의 대화를 통해 웨스트서식스의 농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도전적인 리와일딩 프로젝트를 전해 들었다. 트리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방법을 묻는 허스트에게 “일상을 솔루션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클로에 2022 A/W 컬렉션의 클라이밋 석세스 라인에 산불과 녹아내리는 빙하, 가뭄과 같은 재해의 모습과 기후변화 대응에 성공한 모습을 함께 담는 아주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이미지는 프린트, 재생 캐시미어를 사용한 니트 인타르시아, 액세서리의 핸드 페인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컬렉션에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