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츠앱으로 소통 중인 버질 아블로(2019).
이 전시는 2019년 시카고에서 베일을 벗은 뒤 애틀랜타, 보스턴, 도하를 차례로 찾았다. 원래 이 전시는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그리고 창조적인 팔방미인으로서 경계를 허문 아블로의 작업에 대한 회고전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지난 11월, 아블로는 희귀 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겨우 41세. 그 후 이 전시는 자신의 비전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동시에 함께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 길을 공유한, 위대한 창조자의 작품을 기념하는 목적으로 변형되었다. 앤트원 사전트가 큐레이팅한 브루클린미술관의 새로운 버전은 벽 대신 테이블 위에 작품을 진열했다. 전시는 아블로가 일구고자 애써온 공동체 의식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사회적 조각’을 주제로 한다.
공동체 의식. 이는 아블로의 특별한 작업 방식이다. 그는 지루한 회의와 이메일 대신 활기차고 자유분방한 와츠앱(WhatsApp)의 그룹 채팅을 명민하게 활용했고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창의적인 시스템을 통해 연결된 많은 아이디어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상당수는 루이 비통 남성복과 오프 화이트 2023 S/S 컬렉션으로 구현될 것이다. 이 밖에도 오프 화이트의 메이크업 라인 론칭과 영화, 그리고 기타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V’라고 불린 남자, 버질 아블로. 그의 동료 16명이 그와 함께 무엇을 창조하고자 했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속할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앤트원 사전트(Antwaun Sargent, 브루클린미술관 전시 큐레이터): 한마디로 버질은 컬래버레이션 아티스트였어요.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는 그의 작업 방식을 두고 ‘포스트 미디엄 컨디션(Post-medium condition)’이라고 칭합니다. 아티스트, 건축가, 패션 디자이너, 산업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 뮤지션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죠. 이는 곧 전통적인 경계로부터 무척 자유로운 사람이었음을 의미해요.
마푸즈 술탄(Mahfuz Sultan, 아블로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키텍처(Architecture)와 영화 스튜디오 아키텍처 필름(Architecture Films)의 설계자이자 공동설립자): 버질의 시작은 예술가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스템 구축자’라고 할 수 있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디자이너 같은 명칭으로 그를 설명하기엔 너무 단순하고 제한적이에요. 버질은 토목공학과 건축을 전공했으며 옷뿐만 아니라 물병, 운동화, 영화까지 모든 것을 창조해냈어요.
사미르 반탈(Samir Bantal, 건축 연구소 및 디자인 스튜디오 AMO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든 것에 질문을 던져라.” 버질이 가장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예요. 건축가로서 우리는 모든 일을 질문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가령 도서관을 짓는다면 아마 이럴 거예요. “도서관은 무엇일까? 현재 구상 중인 아이디어가 옳은 걸까? 너무 구시대적이니 다시 생각해봐야 할까?” 버질은 자신의 건축 프로세스가 만국 공통어처럼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헤론 프레스톤(Heron Preston, 전 돈다(Donda) 아트 디렉터): 버질은 돈다(래퍼 예(Ye, 칸예 웨스트)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버질이 본인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몸담았던 곳이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어요. 예는 자신과 함께 일할 근사한 사람들을 물색했고, 버질은 그 중 한 명이었죠. 매튜 윌리엄스(Maathew Williams), 저스틴 손더스(Justin Saunders), 제리 로렌조(Jerry Lorenzo)가 모두 돈다에 속했어요. 우리는 예의 요청을 팀으로서 접근했어요. 예를 들면 “이봐, 신보가 곧 발매될 거야. 앨범 커버는 뭘로 해야 하지?” 혹은 “코첼라에서 공연할 예정인데 무대 디자인은 어떻게 할까?” 같은 것들요. 그럼 모두들 포토샵에 뛰어들어 바이브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죠.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아티스트): 우리는 패널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가 말했어요. “루이 비통 시카고 부티크에서 무라카미 다카시 컬래버레이션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예술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을 느꼈어요. 당시 시카고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예술을 경험할 만한 공간이 없었거든요. 다카시의 멀티 컬러 모노그램도 전시되어 있었어요.” 나와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싶은지 묻자 단번에 답하더군요. “당연하죠. 언제 할까요?”





케빈 매킨토시 주니어(Kevin Mcintosh Jr., 전 오프 화이트 홍보 담당): 오프 화이트 컬렉션을 대하는 V의 접근 방식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모든 사람의 관점을 깊이 이해하려 하고, 또 패션을 포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점이에요. 우리가 어떤 잡지사에 갔을 때 그는 편집장뿐만 아니라 어시스턴트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어요. 요즘 무엇에 빠져 있고, 어디서 여가생활을 즐기는지에 대해서요.
클로이 술탄(Chloe Sultan, 아키텍처와 아키텍처 필름의 공동설립자): 201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오노 요코의 1960년대 퍼포먼스 작품 중 하나인 〈모닝 피스(Morning Piece)〉의 50주년을 기념하고 이를 재해석하는 특별 전시를 공동 작업했어요. ‘모닝 피스 2015’라는 이름으로 24시간 진행된 라이브 공연이었죠. 버질은 새벽 4시30분부터 8시까지 DJ를 담당했는데, 일출이 떠오르자 요코가 즉흥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니 행사 전날,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쇼 큐레이터들이 묻더군요. “요코가 무척 흥분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까요? 50명 정도 될까요?” 버질의 공연을 앞둔 깜깜한 새벽. 폭우 속에서 사람들이 건물을 끝도 없이 둘러싸고 있더군요. 무려 1천5백 명이 넘는 사람이 말이죠! V에겐 사람을 끌어 모으는 강력한 힘이 있어요.
벤지 B(Benji B, 루이 비통 음악감독): «피겨 오브 스피치» 전시의 시카고 오프닝을 위해 모두 세계 각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어요. 우린 V가 했던 모든 프로젝트가 같은 문장의 맥락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하나의 거대한 비전을 창조해내기 위해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할까요? 전 위대한 협업들이 여전히 살아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거예요.
마이클 달링(Michael Darling, 시카고 현대미술관 전시 큐레이터): 음악, 디자인, 패션까지. 저는 버질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히 패션 측면에 대해 강조해 깊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죠. 하지만 버질은 정말로 이런 범주 간의 계층 구조를 평평하게 만들고, 또 평등하게 다루는 사람이었어요.
마푸즈 술탄: 이전과 달리, 이번 전시는 일종의 테이블 쇼로 재구성했어요. 아이디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거죠. 벽에 걸려 있던 거의 모든 물건들이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여졌어요. V가 디자인한 스피커, 그 옆에 놓인 스니커즈 등.
타완다 치웨셰: 모래로 덮인 매우 긴 합판 테이블이에요. 길이가 1미터에 달하죠.
앤트원 사전트: 우린 뮤지엄 기준 관행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물건과 교감할 수 있도록 했어요.
마푸즈 술탄: 뮤지엄 아트리움 한가운데는 ‘사회적 조각’이 놓여 있어요. 버질은 그 중심이 그의 커뮤니티가 와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되길 원했어요. 여러 이벤트를 통해 전시를 활성화하고, 대화를 나눌 아티스트들을 초대할 계획이었습니다.
S.M.(오프 화이트 여성복 디자인 디렉터): 저는 밀라노에 살고 있어요. 버질은 항상 전 세계를 누비고 있기 때문에 함께 작업을 시작했던 6개월 동안은 실제로 만나지 못했어요. 그러다 2016년 봄, 오프 화이트 첫 런웨이 쇼의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처음 대면하게 되었죠. 우린 늘 같은 방식으로 일합니다. 와츠앱, 와츠앱, 와츠앱. 낮이든 밤이든 우리는 언제나 아이디어와 스케치,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어요. 저희에게 와츠앱은 일종의 ‘가상 워크숍’이었어요.
마푸즈 술탄: 와츠앱은 V의 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식이에요. 우리는 모든 장소에 기반을 두고 있죠. 2022 S/S 루이 비통 쇼를 위해 제가 제작한 단편영화 〈The Team for Amen Break〉를 예를 들어볼게요. 저와 제 아내 클로이 그리고 아블로가 공동설립한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키텍처와 세트 디자이너 플레이랩(PlayLab)은 L.A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스튜디오 템프(Studio Temp)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르코 파솔리니(Marco Fasolini)는 이탈리아 베르가모, 버질의 모든 음악을 담당한 벤지 B는 런던, 그리고 루이 비통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당연히 파리에 있어요. 우리는 채팅을 통해 아주 빠르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관련자들을 즉각 대화에 참여시켜요. 어떨 땐 거의 3백 개의 와츠앱 대화 창이 활성화되어 있기도 하죠. 아주 거대하고 개방적이며 협력적인 팀이죠. 즉, 상하관계가 없는 공간이에요. 그 누구도 누군가의 보스가 될 수 없어요.





벤지 B: 와츠앱은 효율적인 창의력을 가능하게끔 만들어줍니다. V는 영화의 각 장면에 적합한 배우가 누구인지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어요. 자신이 존경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 이것이 V의 컬래버레이션 정신의 핵심이죠. 루이 비통의 2020 S/S 시즌을 위한 플레이리스트에 대해 그가 말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최고예요. 이 목록은 마치 당신 그 자체처럼 느껴져요.” 그 쇼는 어린아이 같은 궁금증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바운스 캐슬과 땅에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높은 의자가 설치되었어요. 우리는 아르카(Arca), 막스 리히터(Max Richter), 슬럼 빌리지(Slum Village)와 영국 그라임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래를 편곡했습니다. 여기에 현악 오케스트라의 라이브가 곁들어졌어요.
클로이 술탄: 생애 마지막 해, 영화는 버질에게 매우 고무적인 활동이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런웨이 쇼 대신 비디오 작업을 시작했고, 거기서 좋은 생각이 떠오른 거예요. 저와 마푸즈는 버질과 함께 아키텍처 필름을 설립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에 중점을 두고 영화 제작 인재를 육성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어요. 첫 프로젝트는 단거리 육상선수 샤캐리 리처드슨(Sha’Carri Richardson)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이자 개념예술영화 〈Sub Eleven Seconds〉입니다. 바픽(Bafic)이 디렉팅을 맡았죠.
바픽(Bafic, 영화제작자): 영화 〈Sub Eleven Seconds〉는 항상 최단 기록을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시간에 대해 명상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V가 살아 있을 때 마무리되었고,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했죠. 그는 아주 행복해했어요.
마푸즈 술탄: 와츠앱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으로 시작되었고, 그 자체로 방법론이 되었어요. 버질은 더 이상 채팅 창에 없지만 이제 우리 모두가 사용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벤지 B: 버질은 사람들을 조합하는 큐레이팅의 절대적 마스터였어요. 그리고 전 버질 덕분에 여전히 그들과 함께 협업하고 있어요. 버질의 작업은 우리를 통해 계속 이어질 거예요.
마푸즈 술탄: 그와 작업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이분법적 결정을 내리기 시작해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말이죠. 그 방식에 익숙해지고, 그의 논리 안에서 작업하다 보면 제법 오랜 기간 함께 일 할 수 있게 돼요.
데이비드 데 질리오(Davide De Giglio, 뉴가즈 그룹(New Guards Group) 설립자): 버질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에요. 우리는 그를 선택받은 자라고 불렀죠. 1백 년에 한 번 태어나는 천재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유니콘이랄까?
안드레아 그릴리(Andrea Grilli, 오프 화이트 CEO): V가 창조해낸 유산을 기반으로 충실히 오프 화이트를 이끌어가는 것이 제 목표예요. 여러 프로젝트 사이를 오가며 민첩성을 유지하고 현실화시키는 거죠. 가장 흥미로운 360도 사고 개념은 늘 ‘틀에서 벗어나자’라는 목적으로 탄생했고, 오프 화이트의 기반이 되었어요. 우리는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지식과 재능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집단 ‘더 컬렉티브(The Collective)’가 될 거예요.
이브라힘 카마라(Ibrahim Kamara, 오프 화이트 아트 및 이미지 디렉터 & 루이 비통 스타일리스트): 버질은 믿기 없을 정도로 착한 심성을 지녔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었죠. 그는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길을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S.M.: 저에게 와츠앱은 성경과 같아요. 지난 7년간 버질이 제게 말해준 모든 것이 담겨 있죠. 우리 팀은 두려움이 없어요. 오프 화이트의 새로운 컬렉션은 자연스럽게 완성되고 있어요. 버질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