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신드롬, 부커상이 뭐길래?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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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신드롬, 부커상이 뭐길래?

이달 <바자>가 서점에 깔릴 즈음이면 영국의 문학상인 더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 수상작이 발표된다. 지금까지 떠들썩했던 <저주토끼>의 수상 여부에 몇 명, 혹은 몇 개 회사의 운명이 움직인다.

BAZAAR BY BAZAAR 2022.06.18
 
올해 더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의 쇼트리스트(최종 후보)에 오른 여섯 작품 중 한국 작가의 작품이 있다. 정보라의 〈저주토끼〉다.(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롱리스트에 올랐지만 최종 후보에는 선택되지 못했다.) 혹시 다른 작품은 궁금하지 않으신지. 나는 궁금했다. 노르웨이의 욘 포세(Jon Fosse), 아르헨티나의 클라우디아 피네이로(Claudia Pĩneiro), 인도 작가 기탄잘리 슈리(Geetanjali Shree), 일본 작가 가와카미 미에코(川上未映子),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가 각자의 작품으로 쇼트리스트에 올랐다. 더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는 쇼트리스트에만 올라도 2천5백 파운드의 상금을 준다.
작가의 책이 나온 출판사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창비, 〈저주토끼〉는 아작에서 출판했다. 아작은 SF라는 전문 영역을 다룬다. 〈저주토끼〉가 더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 후보에 오르자마자 재빠르게 사업적인 결정을 내렸다. 기존 책을 3월 15일부로 절판시키고 리커버판을 출간했다. 리커버판의 판매지수는 2022년 5월 12일 알라딘 기준 86940이다. 종합 톱 100에도 7주 연속 올랐다. 후보에 올라도 이 정도인데 상을 받으면 무척 기쁠 것이다.
창비도 충분히 설렐 수 있다. 행복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다. 한국에 더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가 알려진 계기도 이 책이다. 〈채식주의자〉는 2007년 발매되었으나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는 더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의 후보 등재다. 후보 등재 후 2만 권이 팔렸고, 2016년 수상 후 50만 권이 팔렸다. 부커 재단이 있는 영국에서도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는지 해당 소식은 부커 프라이즈 홈페이지의 프레스 릴리스에도 적혀 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부커상이라고 하지, 왜 헷갈리게 더 인터내셔널 어쩌구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더 인터내셔널 부커 프라이즈’가 정식 이름이기 때문이다. 흔히 ‘부커상 후보 지명’이라고 적혔으나 부커상과 인터내셔널 부커상은 다르다. 공식 홈페이지에도 따로 분류되어 있다. 부커상은 영어로 쓰인 소설에, 인터내셔널 부커상은 영어로 번역된 소설에 주는 상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부커국제상’ 정도 될까. 연합뉴스에서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 원고에선 부커국제상으로 적겠다.
부커국제상은 영어로 번역된 소설에 주므로 번역가도 중요하다. 번역가에게 보내는 예우도 알아챌 수 있다. 부커국제상 공식 홈페이지의 작품 설명에는 작가와 작품 이름과 함께 번역가 이름이 들어가 있고, 작가 페이지처럼 번역가 페이지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 시상식이 번역가에게 보내는 예우는 돈으로도 드러난다. 부커국제상 수상자가 되면 번역가도 상금을 받는다. 총 상금 5만 파운드 중 작가와 번역가가 50%씩 나눠 받는다. 번역가 입장에서는 전 세계의 작품을 번역해 영미권 출판사에 소개할 만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
각자의 동기가 확실하니 수상과 후보를 둘러싼 흥겨운 기운이 느껴진다. 책이 많이 팔리면 서점에게도 이득이다. 교보문고는 박상영과 정보라의 소설이 부커국제상 후보에 오르자 동반 마케팅을 시작했다. 출판계나 저자 입장에서는 돈 안 들이고 내 물건 알려주니 좋은 일이고, 서점 입장에서도 마케팅 포인트가 생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출판사 역시 이 흐름에 화답해 아작은 〈저주토끼〉 리커버를 출시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결과도 안다. 〈채식주의자〉가 있으니까.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영어판을 낸 출판사는 영국의 틸티드 액시스다. 틸티드 액시스의 창립자는 데보라 스미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찾아내어 번역해 부커국제상(당시는 맨부커국제상)을 받은 그 사람이다. 틸티드 액시스는 홈페이지에 비영리 출판사라고 적었으나 책이 좋은 상을 받아서 알려지고 팔리는 게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울러 〈저주토끼〉와 〈대도시의 사랑법〉 영어판은 한 사람이 번역했다. 외국에 오래 산 ‘한국계 한국인’ 번역가 안톤 허다. 번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겨 안톤 허에게 인터뷰 혹은 코멘트를 요청했으나 안톤 허는 일정을 소화하기 너무 힘들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아무튼 한국계 한국인이 쓴 소설이 부커국제상 후보에 오른 데에는 이런 사람들과 단체의 노력 및 활약이 있다.
한국계 한국인이 쓴 한국어 소설이 영어로 번역되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 사이엔 몇 가지 사소하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부커국제상은 세계 3대 문학상인가. 나머지 2대는 무엇인가. 연합뉴스는 노벨상과 공쿠르 상이라고 적었으나 출처는 없다. 부커국제상은 훌륭한 상이지만 문학은 스포츠가 아니고 부커국제상은 테니스 4대 오픈 같은 게 아니다. 게다가 부커국제상은 부커상의 국제 부문으로 2005년부터 만들어졌고 2005년부터 2015년까지는 격년간 수상되다 2016년부터 매년 수상으로 변경됐다. 앞서 말했듯 무엇보다 부커국제상은 부커상이 아니다.
부커국제상을 ‘세계 3대 문학상 수상작’이라 치면 그 중요한 수상작들이 한국어로 꾸준히 번역 출간되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부커국제상이 매년 수상으로 바뀐 첫 해인 2016년 수상작이 〈채식주의자〉다. 그 다음 해인 2017년 수상작은 이스라엘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의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2018년 수상작은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비행〉. 2019년 수상작은 오만 작가 조카 알하르티의 〈천체〉. 2020년 수상작은 네덜란드 작가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의 〈그날 저녁의 불편함〉. 2021년 수상작은 세네갈계 프랑스인 다비드 디옵의 〈밤에는 모든 피가 검다〉. 이 중 한국어로 번역된 건 고작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와 〈그날 저녁의 불편함〉뿐이다. 서유럽 백인의 작품만 번역되고 동유럽인, 아프리카인, 흑인의 책은 번역되지 않았다. 한국 시장의 현재다.
애초부터 이런 질문을 해볼 수도 있다. ‘왜 한국인이 만든 문학작품이 제1세계에서 인정받아야만 자랑스러운가? 그 역시 사대주의적 콤플렉스 아닌가?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 상 하나로 마케팅 이벤트를 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나 이 모든 사실들은 한국형 양꼬치의 양 냄새처럼 지워지고 남는 건 ‘세계 3대 문학상 최종 후보 선정’이라는 매끈한 문구뿐. 이런 마케팅 문구가 만들어지면 어느 출판사의 책이라도 판매가 폭등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광고비 1백억원을 태워가며 조회수를 만들어낸 한국 관광 동영상의 이름은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다. 부커국제상을 둘러싼 열기에서 ‘리듬 오브 코리아’를 느낀다. 이 역시 한국 시장의 역동성일 것이다.
마지막 잡담. 이 상은 왜 맨부커상이었다가 부커상이 되었을까. 1969년 이 상을 만든 회사가 부커 그룹이라 부커상이 되었다. 부커 그룹은 영국의 식재료 유통회사고 지금은 테스코에 인수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쌓여 부커상 자체가 일종의 브랜드가 되었는지 영국의 맨 그룹이 문학상을 후원하며 맨 부커상이라 이름 붙였다. 맨 그룹의 후원이 2019년 끝나고 크랭크스타트라는 재단이 부커상을 후원한다. 크랭크스타트는 세쿼이아 캐피털 파트너까지 한 벤처투자자 마이클 모리스와 그의 아내 헤리엇 헤이먼이 만든 재단이다. 그는 홈페이지에서 “우리 둘 다 책을 읽지 않는 날을 하루도 상상할 수 없”고, “나는 영문학에 의해 양육받았”고, “세계 최고의 소설을 다 함께 축하하는 시상식에 후원하는 걸 행운이라 느낀다”고 했다. 멋진 생각이다.
뭐가 됐든 이 상으로 누군가 좋은 걸 얻는다면 좋은 일이다. 수상을 하든 마케팅 포인트를 얻든 심적 응원을 받든, 이 상과 관련된 사람들이 결실을 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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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박찬용(자유기고가)
    에디터/박의령
    사진/ 이현석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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