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개를 마당에 묶어 키우죠? CCTV를 설치하는 게 더 합리적인데? 요즘 값싸고 좋은 영양제가 많은데 왜 강아지로 영양을 채우려는지 모르겠어요. 키우는 자격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올해 초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 등 제주의 상징인 온갖 감귤 품종의 이름을 단 강아지들이 ‘반려견 데뷔’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SNS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털 색이 하얀 아이, 까만 아이, 갈색인 아이 모두 시그너처 컬러인 주황색 옷과 머플러로 꾸몄는데 자세히 보니 모자가 귤 모양이 아니라 당근 모양이라 나도 모르게 풉 웃었다. 입양 공고도 “누나들의 심장을 저격하러 왔다!”는 아이돌 연습생 콘셉트라 단번에 이름을 외웠다. ‘제주탠져린즈’. 이들은 귤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귤엔터는 ENFP라고 반드시 소개하는 구낙현 대표와 INFP라 대외적인 활동은 하지 않는 그림자 대표 김윤영, 연습생들의 사회화를 돕는 이사 강아지 금배가 이끈다. 좀 더 빨리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아이돌 콘셉트를 빌려왔는데 말 그대로 터져버렸다. 천혜향과 영귤을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면 유닛이 만들어지냐며 과몰입하는 팬들도 생겨나 제주와 서울에서 팬미팅도 열었다. SM과 하이브 못지않은 세계관이 착착 쌓인 덕분에 6개월 만에 일곱 마리 모두 가족을 찾았다. 보호하던 이도 지켜보던 이도 해피엔딩…. 일 뻔했으나 1기 멤버가 모두 데뷔길을 걷기도 전에 2기 멤버가 생겼다. 드라마는 시즌 2, 영화도 속편이 나오면 경사이지만 ‘제주만다린즈’의 출범은 마냥 기뻐하기만 할 일은 아니었다.
1기 멤버와 쏙 닮은 2기 멤버가 등장한 전말을 듣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만다린즈 역시 1기와 이름과 멤버 수가 같다. 귤엔터 제주 지부에 있는 라임과 오렌지, 유자, 서울로 간 포멜론과 스위티, 대구에 있는 레몬, 경기도로 간 리더 베르가못. 멤버 수가 늘어나면서 매니저를 모집했다. 인터뷰를 위해 귤엔터의 세 구성원 외에 서울지부 매니저와 멤버들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워너원처럼 소속사가 다 다른 거잖아요.(웃음) 프로젝트 그룹 같은 거니까. 한 컷이라도, 원 샷이라도 더 받아야 하니까 왔죠. 내일부터 연휴 시작이라 비행기표도 비싸고 렌터카도 비싼데 그래도 왔어요. 어떻게라도 가족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어서요.” 해방촌에서 온 포멜론의 매니저 곽민지 씨가 말했다. “스위티가 만다린즈의 비주얼 멤버라고 생각하거든요. 절대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연차를 냈어요.” 스위티 매니저 유지영 씨도 어필을 빼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조금은 부끄럽게 바라보고 있는 두 대표들. 덕질에 무척이나 빠삭할 것 같은 예상과 달리 유행어도 밈도 잘 몰라 엔터를 차리고 나서는 늘 공부 중이라고 했다.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며 벌어놓은 돈으로 3년은 대차게 놀며 제주 생활을 즐기려 이주했다. 비싼 카메라도 사서 작품 활동 좀 해봐야지 하던 차에 공터에서 강아지들을 만났다. “카메라에 강아지 사진만 2만 장이에요.(웃음) 홍보나 디자인, 사진 관련한 일을 한 적도 없고요. 몇 년 전에 서울의 한 숲에서 금배를 만나면서 삶이 크게 바뀌었어요. 같이 제주도에 여행을 온 적이 있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만 살아보자 한 거죠.” 유기견을 들인 경험으로 무작정 강아지들을 데려왔다. “모견은 폐냉장고에 묶여 있고 깨진 거울 조각이 나뒹굴고 대변을 안 치워 가루처럼 부식되어 있었어요. 그 처참한 곳에 도저히 놓고 올 수가 없었어요. 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던 거죠.” 반려견도 유행을 따르고 혈통을 따지는 시대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15kg을 훌쩍 넘겨 자랄 ‘시고르자브종’을 일곱 마리나 들인 건 그들 말마따나 ‘미친 짓’에 가까웠다. 모색이 다양한 멤버들 중에서 하얀색 털을 가진 멤버가 가장 먼저 가족을 찾았다. 검은색 털을 가진 멤버는 가장 인기가 낮다. 강아지들 사이에도 신분과 계급이 존재한다. 더 큰 어려움은 제주에 너무나도 많은 마당개와 들개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이라면 길에서 몰티즈나 푸들을 마주치죠. 여기에서는 20kg 나가는 진도믹스를 하루에 세 번 이상 마주치거든요. 농장에서 잃어버린 강아지들을 아무도 중성화시키지 않으니 얘네들이 돌아다니면서 마당개를 만나 계속 새끼를 낳아요. 왜 개를 마당에 묶어 키우죠? CCTV를 설치하는 게 더 합리적인데? 요즘 값싸고 좋은 영양제가 많은데 왜 강아지로 영양을 채우려는지 모르겠어요. 개인이 구조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키우는 자격을 더 촘촘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다린즈는 바로 탠져린즈를 낳은 같은 마당개와 떠돌이개에게서 나온 아이들이다. 더 이상 강아지들이 버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진도 및 믹스 유기견 입양 단체인 트레져 진도의 도움을 받아 중성화 수술을 마쳤다. 2기 멤버들을 데뷔시키면 다음 순서는 모견들로 구성된 ‘노지감귤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서 이들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
“오렌지는 정말 잘 먹어요. 안 그러면 떠먹여줘야 하고 상전 대접 하느라 힘든데 다 잘 잡수십니다. 그리고 이마에 주름이 있는데 쓰다듬으면 그게 활짝 펴져 귀여워요. 라임이는 눈썹 라인과 네일 같은 발 털이 특징인 아이예요. 치대는 강아지를 좋아한다면 분명 사랑에 빠질 거예요. 유자는 ‘유자 유니버스’라고 모두가 자기를 귀여워할 거라는 걸 알고 즐기는 친굽니다. 레몬이는 귀여운 ‘억울상’이에요. 억울상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베르가못은 노는 것도 일등 먹는 것도 일등이어야 하는 아이이고 머리가 완벽한 원이에요. 사진 편집하다 누끼 따기 좋은.(웃음) 은근한 수요가 있는 상이죠. 스위티는 별명이 뽀뽀공주랍니다. 용기가 있고 반려인의 발치에서 자리를 잘 지키는 아이고요. 포멜론은 해방촌에서 개를 많이 키워본 ‘해방촌 강형욱’님이 인정한 양반견입니다. 작은 개들에게 관대하고 큰 개들에게 예의 바른 사회생활 잘하는 아이죠.”
데뷔가 더뎌 조급한 순간 〈바자〉와 만나 어떤 인연을 느꼈다는 귤엔터. 나 역시 서울에 돌아와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도 수시로 인스타그램 @imkeumbae 계정에 들락거리며 비행기를 같이 타고 올라온 색색의 털들, ‘꼬수운’ 냄새를 복기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만다린즈와 노지감귤즈의 전원 데뷔 절대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