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민, 환각을 그리는 페인터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Art&Culture

이근민, 환각을 그리는 페인터

이근민은 경계선 인격장애를 앓는 동안 경험한 환각의 이미지를 우리 눈앞에 끄집어낸다.

BAZAAR BY BAZAAR 2022.05.03
 
〈Matter Cloud〉, 2021, Oil on Canvas, 248.5x999cm.

〈Matter Cloud〉, 2021, Oil on Canvas, 248.5x999cm.

절단된 신체 일부나 적출된 장기 같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거대한 캔버스에 초현실적으로 널려 있다. 이근민의 작업이 액셔니즘류의 시각적 충격이나 에로틱한 폭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심장과 생식기가 한데 엉켜 있는 형상(〈심장과 남근〉)은 진단 코드로 타자화된 작가 자신의 병리적 경험을 바탕으로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비이성이라는 이분법적 폭력성에 저항한다.
전시의 제목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의 시 ‘그날’의 마지막 문장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앞에 생략되어 있는 ‘모두가 병들었는데’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문구인지도 모른다. 이근민은 병들고 정의되었지만 ‘자기 삶까지 솎아내’고,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와 이를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의 이면을 집요하게 헤집는다. 상처가 아니라 가능성을 찾기 위한 긍정의 시도로서.
〈Injured Dumber(다친 바보)〉, 2021, Oil on Canvas, 227.3x181.8cm.

〈Injured Dumber(다친 바보)〉, 2021, Oil on Canvas, 227.3x181.8cm.

파편화된 신체와 장기의 형상이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다음 감각하게 되는 것은 촉각이다. 끈적이고 미끌거리며 축축하다. 〈아트 포럼〉은 당신의 작업을 “It can be purely visual or experienced as touch”라고 언급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불쾌한 냄새를 떠올리기도 한다. 당신이 경험한 환각의 정체는 무엇인가?
일반인들도 가끔 뼈가 간지럽다거나 피부 위로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내 경우엔 그런 뇌의 착각이 정신증과 어우러져서 증세가 심했다. 환시는 물론이고 환후도 있었다. 이를 테면 시체가 썩는 듯한 지독한 냄새가 풍겨올 때도 있었다. 다만 그 경험이 아주 불쾌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이걸 그림으로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나의 작업은 시각, 촉각, 후각을 표현하는 데에서 나아가 환각의 느낌을 보는 이에게 대리 경험하게 하는 의도도 깔려 있다. 요즘엔 끈적이는 내장보다 상처 자국을 더 많이 그린다. 아파하고, 당하는 사람의 감각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끈적임이 능동적인 질감이라면 상처는 수동적인 질감일 테니까.
〈문제 구름(Matter Cloud)〉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같은 고전 명화를 닮은 구도에 가로 폭만 10미터에 이르는 트립틱 작품이다. 이 야심찬 아이디어는 어디서 출발했나?
2016년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질 때 지금보다 크기는 조금 더 작은, 같은 제목의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전시 전체를 통찰하는 작품이기도 했고 나의 의식 구조를 가장 잘 설명하는 작품이었다.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 이 작품을 다시 크게 그리고 싶었다. ‘Matter’라는 단어에는 문제라는 뜻도 있지만, 물질이라는 뜻도 있다. 뇌 덩어리는 ‘물질’이고 거기에 축적된 기억, 사고, 고민 거리는 ‘문제’다. 뇌 덩어리 안에 기억과 상처가 쌓인다. 피가 나기도 하고 딱지가 앉기도 한다. 그렇게 생긴 퇴적물이 거대한 ‘구름’을 이루고 그 사이에서 기생체가 자라난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치면 버그나 에러다. 이로 인해 기억이 왜곡되고 망상이 일어나고 뇌 질환이 발병한다. 때때로 이러한 변수를 통해 작가로서의 창조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문제 구름〉은 이 모든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Heart and Penis〉, 2021, Oil on Canvas, 45.5x45.5cm.

〈Heart and Penis〉, 2021, Oil on Canvas, 45.5x45.5cm.

당신의 인스타그램에서 재미있는 소식을 접했다. 이번 전시에서 익명의 관람객으로부터 임파스토 기법으로 두껍게 바른 물감 사이에 작가의 머리카락이 파묻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일반 관객으로부터의 예상치 못한 피드백이 작가에게 얼마나 흥미진진한 영감이 될지 짐작해보건대 당신의 표현대로 꽤 ‘아티스틱한’ 발견이었으리라. 이번 전시를 통해 어떤 흥미로운 피드백을 접했나?
철학이나 동시대 이론에 관심 있는 분들이 쓴 글도 몇 개 읽었다. 의사를 통해 병리적 진단을 받고 무언가로 정의된 개인적인 경험이 내 작업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런 타자화 개념은 철학이나 사회학에서 오랫동안 사유된 주제였더라. 신선한 개념은 아니지만 내게는 굉장히 고무적인 피드백이었다.
당신과 똑같진 않더라도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정의되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마다의 해석을 곁들여 작업에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방금 말한 것처럼 진단 코드로 정의되어진 경험이 당신의 작업을 부추겼다. 이를테면 심장과 생식기가 한데 엉켜 있는 형상의 〈심장과 남근(Heart and Penis)〉은 하나의 인간을 의료 기록 정보와 동일시하는 현상을 다룬다.
내 진료 기록을 열람한 적이 있는데 거기엔 내가 의사를 만날 때 가방을 어떤 자세로 안고 있었는지까지 적혀 있더라. 나의 사적인 제스처나 습관까지 의료 기록으로 문서화되고 범주화되는 것이다. 나같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는데 이는 성격의 차원이기도 하지만 정도가 심해지면 의사 입장에서는 병증이다. 이것이 부정행위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회 시스템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 또한 존중한다. 다만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사회의 이면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당시 나는 급성 환자였지만 지금의 나는 작업을 위해서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존재다. 이런 이유로 나 역시 나의 방관자가 되기도 하고 관음증이 있는 또 다른 현대인이 되기도 하고 병증 환자를 관찰하는 의사가 되기도 한다.
환각을 끄집어내는 작업이지만 당신은 매우 즐거이 그린다고 알고 있다. 캔버스 공포증 없이 자동기술법으로 거침없이.
본능적으로 그림을 좋아하게 태어난 것 같다. 작품성을 떠나서 이번 전시에도 큰 만족을 느낀다. 예전보다 더 집중하고 더 즐겁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림은 원시적이고 직관적이다. 보통 언어와 그림을 대조되는 개념으로 보는데 내 생각에 그림은 또 다른 차원의 언어이고 나름 효과적인 언어다. 또한 영원성을 가지고 있다. 보통 미디어아트나 영상미술을 보면 타임라인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거기에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영화관도 잘 안 간다. 인터랙티브의 순간을 잡아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달까. 그림은 마주하는 순간에 바로 스캔이 되지 않나. 반대로 수년 동안 계속 두고 보면 별로였던 작품이 좋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 내 그림을 어렵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자체는 쉬웠지 않나. 다른 미디어와 비교한다면 훨씬 빠르고 직관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회화라는 미디어가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향으로 매우 재미있다고 느낀다.
 
〈Oral Communication(구두 소통)〉, 2021, Oil on Canvas, 227.3x181.8cm.

〈Oral Communication(구두 소통)〉, 2021, Oil on Canvas, 227.3x181.8cm.

IDM(Intelligent Dance Music) 장르의 전자음악을 만드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아와 그림을 그리는 페인터로서의 자아는 어떻게 같고 또 다른가? 음악이 당신의 작업을 이해하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까?
그림과 음악이 같은 연장선에 있다. 실제로 내 그림과 내 음악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다. 소리에 민감하고 실험적인 음악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전자음악을 하게 됐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고트 앤 멍키(Goat and Monkey)라는 원맨 밴드로 음원을 낸 적도 있다. 정신건강은 그때가 더 나빴던 것 같다. 160, 200 비트를 일일이 다 찍고 편집증적으로 작업했다. 일부러 지하철역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을 때 사운드가 얼마나 묻히는지 실험해보고 거기에 맞춰 마스터링하는 식이었다. 이럴 시간에 그림을 그리자라는 생각으로 그만두긴 했지만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 그림과 연결되는 차원에서 다시 음악 작업을 하고 싶다. 특히나 이런 종류의 음악은 회화와 닮은 구석이 있다. 이를테면 이 신의 팬들은 사운드의 질감에 매우 민감하다. 특유의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일부러 최신식이 아닌 단종된 옛날 신시사이저를 찾아서 쓰기도 하고. 이 또한 원시적이다.
인종이나 젠더뿐만 아니라 아픈 이들 또한 소수자라는 당신의 메시지에 공감한다. 우리 사회는 아픈 사람들을 안 보이는 방 구석 한쪽으로 치워버리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을 감는 일에 능숙하다.
결혼을 하고 장인 장모에게 내 병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씀을 못 드리겠더라. 특히 경계선 인격장애는, 일전에 어떤 프로파일러가 살인범 고유정이 경계선 인격장애라고 인터뷰한 것처럼 미디어를 통해 오해가 생긴 병명이니까.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을 숨기던 시절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나야 작가이기 때문에 어드밴티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참고 아닌 척하고 살아간다. 그게 소수자 아닌 소수자인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마이너리티에 비해 정치적 올바름 추세나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매력이 없기 때문에 힘이 실리지 못한다. 외국에서는 작가로서 미학적인 측면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사조에 대한 탐구 정도는 있을지언정 작가들을 발굴하지 않는다. 애초에 불편한 그림을 소개하는 전시는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동정이나 응원 차원의 접근이 대부분이다. 미학적으로 분석 받아야만 옳다는 건 아니지만 동등한 작가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음지에 있는 사람들. 햇빛이 있는지도 모르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그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로부터 ‘바보’ 혹은 속된 말로 “쟤 병신이야.” 같은 말을 듣거나 혹은 듣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대학에서조차 ‘미친 놈’ ‘컨셉쟁이’ 같은 뒷 말을 들은 적 있다. 경험자로서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나의 그림은 그런 ‘불쌍한’ 존재로 정의되었던 사람들을 환각에 비유하고 작가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정의를 하는 작업이다.
 
〈Paranoia Sequence(피해망상의 배열)〉, 2021, Oil on Canvas, 200x200cm.

〈Paranoia Sequence(피해망상의 배열)〉, 2021, Oil on Canvas, 200x200cm.

전시 타이틀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의 시 ‘그날’의 마지막 문장에서 따왔다.
큐레이터의 아이디어였는데 시와 관련된 배경 지식이 없음에도 이 문장이 주는 느낌 자체가 좋았다. 내 작품에서 ‘완치’ ‘극복’ ‘치유’는 별로 중요한 메시지가 아니다. 병자로 정의되었지만 작가는 그걸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아프지 않았다’고 해석하고 싶다. 사회가 뭔가를 진단하고 규격하고 포장해서 최대한 빈 공간이 남지 않도록 처리한다면 작가들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 보고 새로운 무언가를 부여하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는 구시대 미디어에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가능성을 지닌 매체일 테고. 나는 환각이란 것을 단순한 병증이 아니라 진단에 저항하는 예술적인 에너지로서 은유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나의 작업을 상처가 아닌 가능성으로 지켜봐달라.
 
※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And then none were sick)»전은 스페이스K에서 3월 10일부터 5월 18일까지 열린다.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에디터다.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에 매료되는 편이며 화면에 도사리는 모호한 가능성을 추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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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글/ 손안나
    사진/ 스페이스K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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