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1월 6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덴마크의 청년 맷 홈우드가 연사로 초청되었다. 환경운동가이자 인플루언서(@anurbanharvester)인 맷 홈우드는 매일 저녁 7시 마트의 쓰레기통을 뒤진다. 벌써 3년째다. 오늘 구운 신선한 빵, 유통기한이 한참 남은 햄, 하나가 깨져 한 판 그대로 버려진 달걀 등 그가 ‘수확’한 음식들은 쓰레기통이 아닌 진열대가 더 어울릴 만큼 멀쩡한 모습이다. 바구니를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식재료는 맷(혹은 친구들까지)을 위한 근사한 저녁식사로 변신한다. “시스템의 광기예요. 트럭은 매일 새로운 식품을 싣고 마트에 옵니다. 진열대가 부족하면 유통기한이 남은 식품도 다 버리는 거죠.” 비단 슈퍼마켓만의 문제일까? 농업 과잉 생산, 저장과 유통 과정에서 망가진 식재료, 규격을 통과하지 못한 못난이 채소와 과일, 샌드위치 제조 공장에서 나온 자투리 토마토나 빵, 가정에서 먹다 남은 음식들까지. 음식은 생각보다 다양한 이유에서 가치를 잃는다.
풍요의 시대,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서는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1%, 대략 8억 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다. 독일의 영화제작자 발렌틴 투른은 자신이 쓴 책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가〉와 그 뒷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쓰레기를 맛보자〉를 통해 처참한 현실을 고발했다. 유럽에서 버려지는 음식의 양은 전 세계 기아들이 두 번 먹고도 남는 양이라는 거다. 이 얼마나 끔찍한 식량 불평등인가?
더 큰 문제는 음식물 쓰레기가 우리 모두에게 해롭다는 것이다. 처리 과정에서 온실가스 8%가 발생되고, 담수(강, 호수, 지하수) 21%가 사용된다. 또 매립지로 간 음식은 땅속에서 단단히 압축되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 채 메탄 가스를 생성한다.(이 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25배 해롭다.) 서서히 지구의 숨통을 조여오는 기후위기에 음식물 쓰레기도 큰 일조를 한다는 얘기다. 세계 곳곳에서 포착된 이상징후는 지구가 인류에게 보낸 일종의 경고 메시지. 그리고 케냐는 몇 년째 그 지옥 같은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건기와 우기가 뚜렷했던 케냐 북부 지역엔 3년째 비 소식이 없다. 기록적인 가뭄이 지속되면서 동물들이 죽어나갔고, 목축을 하며 자급자족하던 땅은 희망 없는 불모지로 변했다. 그런가 하면 케냐의 호숫가 마을 나이비샤는 정반대의 위기에 처했다. 화훼농장이 끝없이 펼쳐졌던 이곳은 10년째 계속된 폭우로 도시 전체가 물바다가 되었다. 호수는 집을 삼켰고, 그 불확실한 경계 속에 사람과 하마가 위험한 동거 중이다. 결과적으로 기후위기는 식량 부족을 야기한다. 아이러니한 건 탄소 배출을 거의 하지 않은 나라가 지구 온도 상승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를 직감한 전 세계는 음식물 쓰레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2013년, 프랑스 농림부 장관은 2025년까지 음식물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국민 협정에 서명했다. 또 프랑스 의회는 슈퍼마켓의 재고 식품 폐기를 금지하고, 이를 자선 단체와 푸드뱅크에 기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2019년부터 ‘식품손실감소 추진법’을 시행했다. 정부와 지자체, 기업, 소비자가 협력해 음식 쓰레기를 최대한 줄인다는 취지다.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바꿔 식품 폐기물을 감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EU에 따르면 한 해 유럽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 8천8백만 톤 중 약 10%가 유통기한과 관련이 있다고.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 해 1만4천 톤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는데 이 중 97%를 자원화하고 있다. 이물질 제거, 분쇄, 건조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사료나 비료로 재탄생한다. 문제는 이를 지자체에서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음에도 전염병과 악취에 대한 걱정으로 기피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기업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세븐 브라더스는 갖가지 이유로 탈락한 켈로그의 콘플레이크로 맥주를 만들고 자동차 회사 포드는 케첩메이커 하인즈와 토마토 섬유소 찌꺼기를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전환해 차량용 보관함을 제작하며, 맥도날드와 협업해 커피 찌꺼기로 차량용 헤드라이트 커버를 만든다. 한 사람의 노력이 큰 울림을 만들어낸 경우도 있다. 그 주인공은 식품 폐기물 감축 활동가 트리스트람 스튜어트다. 그는 2009년 버려진 음식으로 만든 요리를 수천 명에게 나눠주는 행사 ‘피팅 더 5000’을 진행했다. 이밖에도 남은 음식을 활용한 웨이스트-프리(waste-free) 요리책, 대형 마켓에서 폐기처분한 식품을 판매하는 안티 슈퍼마켓 매장, 제로 웨이스트 음식점, 식품 쓰레기를 추적하는 스타트 기업의 앱 등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부터 실천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된다면 ‘타일러의 지구를 지키는 20가지 제안’이란 환경부 유튜브 영상을 추천한다. 실생활에 실천하기 좋은 유용한 팁을 소개해주는데, 간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냉장고 다이어트하기, 식재료와 유통기한 확인하기, 장 보기 전에 미리 식단 계획하기, 꼭! 필요한 만큼만 사고, 딱! 적정량만 조리하기, 잘 버리기.
전 국민이 음식물 쓰레기 20%만 덜 버려도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간 1백77만 톤 줄일 수 있다. 이는 자동차 47만 대에서 나오는 배기량과 맞먹고, 소나무 3억6천만 그루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가 지구에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겠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시작임은 분명하다. 음식물 쓰레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은 간단하다. 적당히 사고, 남기지 말 것!

농가 수확량의 1/3은 못난이 농산물로 분류된다. 대부분 적절한 유통 경로가 없어 헐값에 처분되거나 폐기된다. 맛의 차이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흠마켓, 어글리어스, 프레시어글리 등 못난이 농산물을 다루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마켓이 생기고 있어 무척 반갑다. 불필요한 낭비도 줄이고, 구매도 간편하고, 가격도 저렴하니 1석3조다.
박서희(모델)
간단하게 퓌레
환경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선 먹을 만큼 구입하는 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버린 자투리 식재료는 간단한 퓌레 형태로 만들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버터나 올리브유를 두르고 남은 재료를 잘게 썰어 넣는다. 처음엔 강불에서 1분 정도 끓이다가 약불에서 뭉근해질 때까지 충분하게 끓여 블렌더로 갈아낸다. 이때 맛을 고려해 재료의 특정 맛을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달고 새콤한 맛이 특징인 사과 퓌레는 설탕이나 애플 사이다 식초로 감칠맛을 더하면 좋다.
신동휴(흠 마켓 셰프)
브로콜리 밑동 튀김과 해독주스
일단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팁에 눈과 귀를 번쩍 연다. 그 방법들 중에서 활용할 것이 있는지 일단 저장. 얼마 전 한 일본 유저가 브로콜리 밑동을 썰어 소금 간을 해 튀겨 먹으면 맛있다는 정보를 올린 적이 있다. 또 아무래도 채소를 손질하면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데 자투리를 모아서 한 번 끓인 다음 믹서에 갈아 해독주스처럼 마시기도 한다. 생각보다 맛있다!
박의령(〈바자〉 피처 디렉터)
친환경 농산물 껍질째 먹기와 퇴비함
우선 어떤 농산물과 먹거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 양이 달라진다. 친환경 농법으로 지은 농산물은 더 신선해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다. 특히 껍질째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 관행농법으로 자란 농산물보다 쓰레기가 훨씬 덜 나온다. 그 예로 귤, 감자, 고구마 등이 있다. 또 야채 뿌리 부분, 양파 껍질, 마늘 꼬투리를 푹 끓여 만능 채수를 만든다. 줄이고 줄여도 나온 음식물 쓰레기(염분이 들어가거나 조리되지 않은)는 퇴비 항아리에서 2~3주 동안 유기농 배양토와 함께 매일 저어주면 흙이 된다. 이 흙은 베란다 텃밭에서 또 다른 작물을 기를 수 있는 귀한 거름이 된다.
송정화(제로 웨이스트 숍 송포어스 대표)
신선하게 잘 보관하기
과일이나 채소는 저마다 적절한 보관법이 있다. 내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생명이 단축되기도 연장되기도 하니까. 요즘은 장을 본 뒤 반드시 보관법을 필독하고 실천한다. 예를 들어 꼭지를 떼서 냉장 보관한 토마토는 신선도가 60% 늘어난다. 또 버섯은 신문지에 돌돌 말아 습기를 제거한 뒤 냉장고에 넣으면 일주일이 넘어도 거뜬하다.
제혜윤(〈바자〉 디지털 에디터)
녹색 채소 페스토
쌈이나 샐러드용 녹색 채소는 금방 시들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땐 간단한 페스토 만들기를 추천한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녹색 채소(향이 나는 채소를 섞는 게 좋다), 통마늘, 레몬즙, 소금, 후추만으로도 맛있는 페스토가 완성된다. 올리브유와 채소의 비율을 1:1로 하되, 나머지는 취향에 맞게 가감해서 만들면 된다. 샐러드, 파스타, 빵에 곁들여 먹으면 좋다.
최윤기(점점점점점점 셰프)
남은 음식으로 먹는 몇 끼
“밥 한 톨은 곧 농부의 땀과 눈물이다.” 어릴 적부터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던 부모님 잔소리 덕분에 음식을 잘 남기진 않는다. 하지만 내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촬영장 케이터링. 부족한 것보다는 낫다는 오랜 경험으로 늘 넉넉하게 주문하고 나면 남는 음식이 어마어마하다. 예전엔 “궁상맞다”는 소릴 들을까 봐 죄다 버리곤 했는데 언제부터 손도 대지 않은 음식을 버리는 불편함이 더 커지더라. 그래서 이제 남 눈치는 보지 않는다. 촬영장에서 남은 음식을 집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네 식구의 몇 끼 식사를 해결한다.
정혜미(〈바자〉 뷰티 디렉터)
셀러리 잎 다시 보기
건강을 위해 반드시 챙겨 먹는 셀러리. 생으로 먹기 좋은 대 부분은 잘 씻어서 저장 용기에 모아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향이 특히 강한 잎은 버리곤 하는데, 먹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다진 잎을 볶음 요리에 곁들이거나 1분 정도 물에 데친 뒤 조물조물 나물로 무쳐도 좋다. 생잎을 쓸 땐 카레처럼 향과 맛이 짙은 요리에 얹어 먹으면 개운한 맛을 추가할 수 있다.
안아라(홈그라운드 셰프)
먹을 만큼만 사자
자취 경력 8년, 결혼 2년 차인 내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이다. 사실 팁이라고 할 것도 없는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사두면 먹겠지’라는 생각으로 잔뜩 장을 봐 두고 그대로 냉장고 안에서 썩힌 경험이 많다. 요즘은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당장 먹을 1~2일치의 식량만 구입한다. 적게 구입하고, 자주 장을 본다.
김예슬(〈바자〉 PD)
소분 용기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자 배달 음식 대신 집밥을 먹기 시작했건만 곧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호기롭게 구입한 양파, 당근, 감자, 오이 등의 식재료가 내 생각보다 금방 무르거나 상한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장을 보자마자 대부분의 식재료를 미리 손질해서 납작한 소분 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 놓는다. 미리 세척하되 물기를 최대한 제거하여 얼리는 것이 관건.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거니와 조리 과정도 훨씬 간편해진다. 잠깐의 수고로움을 견디면 일주일이 편안하다.
손안나(〈바자〉 피처 에디터)
자꾸 보아야 먹는다
냉장 보관할 필요가 없거나 냉장고 안에서 상하는 식재료는 눈에 보이도록 보관한다. 형형색색의 야채나 과일이 집 안의 장식 역할도 할 수 있거니와 자꾸 보이면 신경이 쓰여서 잊지 않고 먹게 된다. 대신 각각의 야채나 과일이 잘 지내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예를 들어 양배추를 낮은 접시에 얹고 밑동에만 닿도록 물을 주면 한두 달은 두고 먹을 수 있다. 다른 채소와 과일의 보관법은 인스타그램 @savefoodfromthefridge에서 확인해보길.
류지현 (〈제로 웨이스트 키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