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배 작가의 드로잉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재훈.
한남동 대사관로 언덕 위에 위치한 사진가 김재훈의 집. 풍수지리와 양지의 기운을 중요시한다는 그의 공간에 들어서자 (지상 1층이지만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큰 창을 통해 펼쳐진 이태원과 용산을 가로지르는 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매일 아침 거실의 LC2 소파에 앉아 볕이 드는 창밖을 보며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을 좋아해요. 차를 마시며 잠시 멍하게 앉아 있다 보면 마음도 편해지고 정신도 맑아지거든요.” 수선스럽지 않고 고요하게 자리 잡은 구조적인 가구들과 여러 요소들이 그의 사진과 닮아 있었다. 사진을 시작하기 전 토목공학과 구조역학을 배운 김재훈에게 공간과 건축적인 요소는 삶과 작업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유년 시절부터 트러스와 교량, 현수교 등 건축 구조물이 미학적으로 아름답다 생각했어요.” 그가 말했다. “사진을 하며 이런 특성들이 자연스럽게 작업과 생활에 반영된 듯해요.” LC체어부터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책상과 의자로 사용했다는 애플 박스까지. 10여 년 전, 사진 스튜디오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그곳에 놓인 디자인 가구들을 보고 지금의 공간을 꿈꾸었다고. 그 중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들은 김재훈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을 찾아보며 다양한 건축가들도 알게 되었어요. 미스 반 데어 로에, 알바르 알토, 페터 춤토르 등. 모두 빛의 움직임과 동선 같은 건축의 언어로 구현하는 작업들이 저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그의 공간에 자리한 디터 람스의 작업 테이블, 비초에 책장, 카스틸리오니의 토이오 플로어 램프 등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는 다르지만 마치 하나의 컬렉션 피스처럼 느껴진다.
LC체어와 애플 박스, 관련 도서까지 거실 곳곳에 자리한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들.
1886년부터 1969년까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주요 작업들이 담긴 포스터 위에 거치한 로드바이크와 집 안 곳곳에 놓인 차(茶)와 다도 용품들도 시선을 모은다. “30대 중반을 넘고 일에 집중할수록 집이 주는 의미가 더 커지는 듯해요. 하루 종일 많은 생각과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인지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의 시간이 점점 중요해졌거든요.” 그는 요즘 더욱 온전한 쉼과 건강을 위해 다도와 사이클에 빠졌다. 지난가을에 구입했다는 로드바이크는 평소 규칙적으로 운동할 시간이 부족한 터에 아침 저녁 틈틈이 근처 남산을 한두 시간만 다녀와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라 매력적이라고. 고향이기도 한 부산의 한 다실에서 우연히 알게 된 보이차는 술을 즐기지 않는 그에게 요즘 가장 좋은 힐링 포인트다. 옷장 역시 심플하고 간결하다. “직업적인 특성상 실용적이며 편안한 오버사이즈 피트를 선호해요. 대신 소재와 디테일은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낙낙한 실루엣과 독특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아워레가시와 스투시를 즐겨 입는 그. 작은 드레스룸 한편에는 평소 작업할 때 즐겨 신는 나이키의 에어포스와 조던 시리즈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해넘이 시간의 적당히 어두운 조도가 되자 공간은 더욱 고요해진다. 패션 사진가이자 다채로운 협업과 개인 전시로 아트 신에서도 주목받는 작가인 김재훈이 집 안의 모든 동선을 관통하는 곳에 자리 잡은 이배 작가의 드로잉 앞에 서며 말한다. “최근 함께 활동하는 사진가들과 사진의 오리지널리티를 알리고 전달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그 매개체가 책과 잡지가 될 수도 있고, 전시 형태로 진행될 수도 있고요. 꾸준히 개인 전시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노을빛에 비친 그의 눈빛이 더욱 선명히 보였다.
거실과 서재를 잇는 벽에 걸린 로드바이크와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포스터 액자.
거실 한편에 간결하게 놓인 프리츠 한센의 닷 스툴과 비트라 트롤리.
어린 시절부터 모았다는 마이클 조던 카드와 그의 취향이 묻어나는 향수와 시계.
어린 시절부터 모았다는 마이클 조던 카드와 그의 취향이 묻어나는 향수와 시계.
서재 벽을 장식한 디터 람스의 비초에 선반에는 권철화 작가의 작업과 다양한 책이 장식되어 있다.
이배 작가의 드로잉 아래 브롬튼 자전거가 마치 하나의 설치 작업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