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방돔광장은 하이주얼리의 근원지이자 현재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부쉐론은 방동광장의 첫 번째 주얼러다. 1858년 파리 팔레 루아얄에 프레드릭 부쉐론(Frederic Boucheron)이 첫 부티크를 오픈했으며 1893년에 방돔광장에 컨템퍼러리 주얼러 중 최초로 부티크 문을 연 것. 현재까지 부쉐론은 메종의 헤리티지와 가치를 바탕으로 장인정신에 의해 재창조된 대담하면서도 영속적인 디자인을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
이번 시즌 새롭게 선보인
하이주얼리 컬렉션 ‘뉴 마하라자(New Maharajahs)’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192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부쉐론은 방돔광장 역사상 가장 대규모인 데다 특별한 주문을 의뢰받게 된다. 1928년 8월 2일, 방돔광장은 파티알라의 국왕, 부핀다 싱(Bhupindar Sing)의 도착으로 떠들썩했다. 그는 40명의 신하와 함께 파리를 방문했고,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리츠호텔 내 35개의 스위트룸이 예약되어 있을 정도였다고. 국왕은 주얼리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었고, 그가 어떤 주얼러를 찾아가게 될지는 사전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 다음 날, 부핀다 싱은 철제 금고를 든 시크(Sikh) 교도의 호위를 받으며 방돔광장을 가로질러 메종 부쉐론의 문을 열었고, 프레데릭 부쉐론의 아들 루이 부쉐론(Louis Boucheron)은 그를 환대했다. 그가 가져온 금고에서 루이 부쉐론은 수천 단위의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그리고 진주를 발견했다. 이 보석들은 국왕을 위해 디자인되어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목걸이, 다양한 진주 목걸이, 진귀한 보석들로 덮인 벨트 등 1백49가지의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 부쉐론에서 탄생한 이 특별한 주얼리들은 역사적 아이콘으로 당대까지 전해져 내려왔고, 이번 시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Claire Choisne)에 의해서 새롭게 재해석된 것. “이 컬렉션에 대한 영감을 얻은 1백49개의 원본 디자인이 부쉐론 아카이브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 디자인들을 21세기로 옮겨와 오늘날의 마하라니(Maharanis)와 마하라자(Maharajas)를 위해 재창조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여성, 남성들을 위해서 말이죠.” ‘뉴 마하라자’ 컬렉션을 위해 연꽃, 터번 장식, 웨딩 브레이슬릿과 같이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상징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돌을 조각하는 예술인 글립틱(glyptic)과 같은 전통적인 기술이 차용되었다. 클레어 슈완의 창조적이고 현대적인 상상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백색과 투명성을 활용하여 순수함을 표현하는 급진적인 디자인이 시도되었다. 한 세기 이전에 디자인된 남성 주얼리였던 마하라자 컬렉션. 젠더리스가 메가 트렌드이자 자연스러운 시류로 자리한 지금의 감성에 어쩌면 더욱 와닿는 주얼리가 아닐까.
역사적인 순간에 경의를 표하는 이번 컬렉션에서 각각의 작품은 착용자의 개성을 여실히 반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컬러가 아닌 보다 단조로운 톤으로, 그리고 대담한 형태에서 섬세함으로 옮겨 간 ‘뉴 마하라자’ 컬렉션은 부쉐론의 새로운 역사와 스타일을 대변하고 있다.
INTERVIEW WITH CLAIRE CHOINE 디자인만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주얼러이자 부쉐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슈완과 〈바자〉가 나눈 이야기.
한국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부쉐론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10년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쎄뻥 보헴 컬러 스톤, 기존의 링에 더해진 새로운 콰트로 컬렉션, 그리고 세 번째 주얼리 아이콘인 잭 드 부쉐론까지. 보다 스타일리시하고 영하면서도 접근하기 쉬운 라인들을 선보이는 동안 가장 주요한 변화는, 부쉐론 하우스가 매년 두 가지 하이주얼리 컬렉션을 선보인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이스뚜아 드 스타일(Histoire de Style)’ 컬렉션. 부쉐론의 역사에 현대적으로 접근하여 재해석하며, 메종의 엄청난 아카이브 피스들을 보여준다.
총 40캐럿의 콜롬비아산 에메랄드 9개가 세팅된 브로치 겸 네크리스.
부쉐론의 주얼리에 부여하고픈 가장 동시대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가장 중요한 변화로 꼽을 수 있는, 스타일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부쉐론의 최근 컬렉션과 캠페인에서 눈치챌 수 있듯 주얼리를 보다 창의적이고 스타일리시하게 연출할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디자인보다는 성별에 관계없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포괄적인 스타일을 지향하는 것. 이러한 철학이 주얼리에 대한 여러 접근 방식과 디자인의 기초에 자리한다. 이것이 또한 하이주얼리의 경계를 뛰어넘는 원천이 된다고 믿는다.
당신은 부쉐론의 락 크리스털을 재창조하고 여러 방법으로 착용가능한 멀티 웨어 디자인을 고안해냈다. 지극히 동시대적인 디자인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혁신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늘 꿈으로부터 시작한다. 2020년에 만들어진 ‘콩텅플라시옹(Contemplation)’ 컬렉션은 여성들에게 궁국의 주얼리를 제공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서 기존의 하이주얼리에 전혀 사용된 적 없는 새로운 소재나 혁신적인 기술을 테스트하고 경험해보곤 한다. 부쉐론에는 이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R&D 팀이 있다. 작년 7월 발표한 ‘올로그라피크(Holo-graphique)’ 컬렉션을 위해 개발된 테크니컬 코팅이 대표적인 예다. 홀로그램 효과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적용되었다.
1928년 파티알라 마하라자의 주문을 받아 그린 드로잉.
하이주얼리에 모래나 대리석 같은 이색적인 소재를 사용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부쉐론에서 누리는 창조의 무한한 자유 때문에 가능하다. 가장 좋아하는 소재가 특별히 없는 데다 아이디어나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선택하곤 한다.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경계를 넓히는 데 열정을 쏟으며, 재창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래서 ‘블루 드 조드푸르(Bleu de Jodhpur)’ 하이주얼리 컬렉션의 나가우르 펜던트에 타르 사막의 모래를 사용했고, 콩텅플라시옹 하이주얼리 컬렉션의 구뜨 드 씨엘 네크리스에 에어로겔과 같은 특이한 재료를 도입했다. 이는 다른 주얼리 메종에서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새로움과 자유를 갈망하고 도전하는 동료들과 함께여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연꽃을 모티프로 한 ‘뉴 마하라니’ 네크리스.
어린 시절부터 창의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굉장히 현실적인 편이라 창작만을 위한 창작을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예술가를 꿈꾸진 않았던 것 같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주얼리 장인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그가 주얼러로서 본인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덕분에, 주얼러라는 직업의 기술적이고 복잡한 측면을 이해할 수 있었고,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것이 주얼러가 되기로 결심했던 계기였다. 기술적인 관점으로 주얼리에 접근을 하였고, 오늘날까지도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다. 주얼러들이 완벽함을 위해 한 피스에 수천 시간을 쏟아붓는 그 헌신과 열정 말이다. 그것은 비범함 그 자체다.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갖춰야 할 요건이 있다면?
무엇보다 주얼리를 대하는 창조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은 창조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라고 생각한다.
보호의 징표로 여겨지던 ‘뉴 추리얀’ 브레이슬릿.
일과 사생활의 균형은 내게 매우 중요하다. 가족, 친구들 그리고 스스로가 내 삶에서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리스본 콤포르타 근처에 집을 소유하고 있는데, 바다로부터 몇 킬로미터 떨어진 소나무 숲에 위치하고 있다. 전면이 통유리로 이루어져 있어 밖을 내다볼 수 있는데, 이는 마치 거대한 예술작품 같다. 종종 나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또한 명상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록다운이 시작되기 직전에 그곳으로 갔다. 록다운은 정말 힘든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돌보고자 노력했다. 매일 밤 5분씩 명상하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돌 위에 조각하는 글립틱 기법이 적용된 ‘뉴 마하라니 크리스털’ 이어링.
부쉐론의 본거지인 파리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파리의 건축물, 그리고 문화를 사랑한다. 자주 팔레 루아얄을 산책하며 아름답게 조경된 정원을 걷는다. 이곳은 내 마음속 소중한 두 가지를 기념하는 장소다. 바로 건축과 자연. 그곳의 벤치에 앉아 파사드, 화단과 나무를 보며 명상하거나 통로 아래를 거닐며 오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또한 튈르리정원을 사랑하는데 고전적인 파사드를 배경으로 전 세계의 치어리더들이 운동을 하러 오는 숨겨진 잔디밭을 특히 좋아한다. 나는 이러한 대비를 사랑한다. 좋아하는 또 다른 장소는 물랑 드 라 비아쥬(Moulin de la Vierge)의 작은 테라스로, 딸과 종종 아침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예전에 생토노레 시장 근처에 살았을 때부터 메종 플리송(Maison Plisson)과 그곳의 제철 상품들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 밖에도 파리의 많은 곳을 사랑하는데, 리츠호텔의 콘서바토리 라운지에서 잉글리시 티를 마시는 것이나 크리용호텔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도 포함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착용하는 부쉐론의 주얼리는 무엇인가?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매우 힘들긴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피스는 2018년에 만들어진 이터널 플라워다. 이 컬렉션을 위해 3년간 작업을 했으며, 10년 이상 꽃잎 안정화 연구를 직접 수행한 꽃잎 전문가와 협력했다. 이 모든 경험이 정말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완성되기까지 숱하게 밀려오는 복잡다난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현실로 구현되는 경험은 가장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인도에서 순수함을 상징하는 연꽃, 파드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뉴 파드마’ 이어링.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하이주얼리 컬렉션 ‘뉴 마하라자’에 대해 설명해달라.
10년 전 부쉐론에 처음 들어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말해줬던 첫 번째 이야기가 파티알라의 마하라자의 특별한 주문에 대한 것이었다. 그 스토리는 하나의 동화와 같다. 이는 방돔광장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주문으로 남아 있다. 당시 원본 드로잉을 살펴보면서 엄청난 매력을 느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2m 키의 남성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의 엄청난 스케일과 볼륨이었다. 크리에이티브 팀과 함께 2020년부터 컬렉션의 콘셉트 작업을 시작했다. 메종의 아카이브는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미학과 디자인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컬렉션을 하나의 디자인에 집중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보고 싶었다. 이 특별한 주문의 목적을 이해하고, 부쉐론과 인도의 주얼리 메이킹 예술 사이에서 알맞은 균형을 찾고자 했다. 특히 마하라자가 주문했던 팔찌인 바주밴드(bazuband) 속의 연꽃 패턴에는 희귀한 기술인 ‘글립틱’이 적용되었다. 이 작업의 전문가는 프랑스 내에 단 세 명밖에 없다. 그들의 금손에 의해서 매우 연약한 스톤인 에메랄드를 부수지 않고 세공할 수 있다. 고칠 수 있는 드로잉과는 달리,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글립틱 기술이 더욱 정교함을 준 것 같다.
다이아몬드, 마더 오브 펄, 진주가 세팅된 ‘뉴 추리얀’ 브레이슬릿.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뉴 마하라자’ 하이주얼리 컬렉션처럼 메종의 풍부한 유산을 변형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이 궁금하다.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과 우려한 점은 무엇인가?
프레데릭 부쉐론의 비전을 충실히 이어나가는 것이 메종의 역사에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다. 부쉐론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메종의 철학을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 전체를 살펴보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풍부함이었다. 동시대의 주얼리에 다양한 심미성을 부여할 수 있는 아카이브는 정말 풍부했다. 부쉐론의 철학이 여성에게 착용의 자유를 주기 위한 기술, 소재 그리고 테마에도 집약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프레데릭 부쉐론은 락 크리스털을 사용하고 이를 다이아몬드와 조합한 첫 번째 인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대담한 결정이었다. 이러한 창조의 자유를 이어가며 혁신과 도전의 전통을 영속화하고자 한다. 나 또한 대담한 주얼리 착용 방법을 찾아내고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는 내게 주어진 미션과도 같다!
뉴 마하라자 컬렉션은 굉장이 이국적이고 존재감이 대단하다. 고객이 이 컬렉션의 자유로움과 대담함을 어떻게 이해하고 착용하길 바라는가?
뉴 마하라자는 인도의 스타일을 복제한 컬렉션은 아니다. 1928년에 있었던 실제의 이야기에 담긴 정신을 계승하여 현대적인 터치를 가미하고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 것이다. 당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주얼리가 오늘날의 마하라자를 위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여 스타일과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총 13가지의 멀티 웨어 옵션, 여성과 남성 누구나 착용이 가능한 점, 디자인에서 소재까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번 컬렉션은 지극히 부쉐론의 아이덴티티에 충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