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버킨백도 샤넬 클래식백도 '이것'이 가능하다! 수선가능한 럭셔리의 세계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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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버킨백도 샤넬 클래식백도 '이것'이 가능하다! 수선가능한 럭셔리의 세계

리페어(Repair), 수선은 더 이상 절약의 이미지가 아니다. 친환경적이고 스마트하며 세련된 소비 태도가 된 수선가능한 럭셔리 제품이 지속가능성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BAZAAR BY BAZAAR 2022.01.05
적어도 패션 산업에서의 지속가능성은 ‘더 나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덜 나쁜’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패션의 지속가능성은 크게 생산, 사용, 폐기 3단계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 모든 과정에서 환경파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전 세계 농약 소비의 22%가 면화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며, 우리가 갖고 있는 옷(80%가 넘는 옷이 플라스틱 소재다)은 세탁할 때마다 미세 섬유플라스틱을 바다에 흘려보내고, 소비되지 못하거나 버려진 옷들은 대부분 저개발국가로 넘어가 소각되고 매립되는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 게다가 패션 산업은 2050년까지 세계 탄소 예산의 25%를 소비해 석유 다음으로 가장 오염이 심한 산업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쯤 되면 “옷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환경에 이로운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덜 나쁜’ 패션 제품을 선보이기 위한 디자이너들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다양한 유기농 혹은 친환경 소재를 개발하고,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한 작업 공정을 도입하는가 하면 지난 시즌의 제품을 매력적으로 재활용한 업사이클링 컬렉션을 선보이는 등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MZ세대는 보다 개념 있는 소비, 이유 있는 소비를 하기를 원한다. ‘소비의 창피함(buying shame)’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로 높은 환경의식을 갖추고 있기에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한 것이다.
 
 Hermès ©Chris Paine

Hermès ©Chris Paine

“가장 지속가능한 옷은 이미 옷장에 있는 옷입니다.” 해답은 윤리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오르솔라 드 카스트로의 명언 속에 있다. 덜 사고 오래 쓰는 것만이 패션의 지속가능성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이다. 낭비 및 자원 행동 프로그램(The Waste and Resources Action Program, WRAP)에서도 의복을 보관하고 수명을 9개월 연장하는 것만으로도 탄소 배출량을 30% 줄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으니. 한편 녹색성장전략(Green Strategy)의 안나 브리스마는 보다 지속가능한 패션 생산과 소비의 7가지 주요 형태를 소개하며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의 고품질 의류를 구입하고, 세심한 관리와 수선을 통해 옷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렴한 SPA 브랜드 옷을 여러 벌 사는 것보다 질 좋은 럭셔리 브랜드 옷을 한 벌 사는 게 지구를 살리는 길이야.” 나의 과소비를 비난하는 친구에게 늘 해왔던 이 얘기는 실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패션 에디터라는 직업 덕분에(?) 경험한 다채로운 소비로 인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 세일 기간에 마주하는 2만9천원 혹은 1만9천원대의 옷은 절대 구매하지 말 것, 값이 저렴한 니트와 울 제품은 반드시 소재를 확인할 것, 마지막으로 가죽 제품은 최상품이 아니면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저렴한 티셔츠와 니트는 한 시즌을 채 넘기지 못한 채 쓰레기통이나 옷장 구석으로 물러났고 착한 가격에 혹해서 구매한 가죽 핸드백은 금세 라이닝이 벗겨지더니 2년을 채 버티지 못했다. 그 무엇보다 양질의 제품을 신중하게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제게 ‘럭셔리는 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이 수리하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1960~70년대에 그는 제게 말했죠. 오늘날 우리는 그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 가방이 수리할 수 있고 계속 저와 함께할 수 있을 때, 그게 비로소 멋진 거니까요.” 에르메스의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창업자의 6대손인 피에르 알렉시스 뒤마가 이야기했다. 아울러 그는 이 화두를 대외에 강조함으로써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패션 하우스의 이미지를 더욱 굳건히 했다. 실제로도 에르메스의 제품들은 가죽 제품부터 의류, 시계와 주얼리, 실크 제품, 홈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이 수리가 가능하다. 전 세계에 있는 3백여 개의 매장에는 매년 약 10만 건의 수리 요청이 들어오며 놀랍게도 그 중 3분의 1은 상태가 매우 훌륭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프터서비스 부서의 워크숍은 프랑스와 해외 전역에 퍼져 있는데, 가죽 제품은 장인들이 전 세계 10여 개 도시에 파견되어 현지 고객들이 맡긴 제품들을 관리하고 있다.
 
캐시미어의 명가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리페어 서비스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서는 물건을 구입한 직후의 모든 수리가 무료이며 수선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의 작은 도시인 솔로메오의 공방에서 이뤄진다. 이는 말 그대로 단 한 벌의 옷을 평생 입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우리에게 리페어는 심오한 의미를 지닌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우리의 창조물을 돌보는 것은 그것을 만든 모든 장인에게 전하는 사랑과 감사의 표시죠.” 창립자인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말했다. 덧붙여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을 만드는 데 평생을 바친 모든 이들의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에는 수선(repair)이라는 최고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수선은 관행일 뿐만 아니라 상징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물이 결함이 있는 즉시 버려진다면 기억을 버리는 것과 같죠. 왜냐하면 사물에는 우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순환가능한 창조성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는 루이 비통은 제작의 모든 단계, 그리고 제품이 생애 주기 동안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2020년에 제품 카테고리의 33%가 수명 주기 평가(LCA)를 거쳤고 루이 비통의 고객 관리 및 수선 서비스 담당 공방은 모든 루이 비통 제품이 평생 유지될 수 있도록, 심지어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품질을 보장한다. 또한 한 아이템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노력은 디자인 첫 단계부터 고려되는데 이를 위해 공방에서는 제품 수선에 필요한 자재를 새로 사용하지 않고 예비 부품의 필요성을 미리 예측해 추가적인 원자재 사용을 줄이고 있다고. 한편 샤넬은 2021년 4월부터 ‘샤넬 & 므와(Chanel & Moi, 샤넬과 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샤넬 피스들이 시대에 걸쳐 전해질 수 있도록 맞춤 서비스와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선보일 계획이며 모든 핸드백 또는 체인 지갑에 대해 구매 일로부터 5년 수선 보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코닉한 블랙 레더 백을 시작으로 전 세계 하우스 부티크에서 점차 다양한 서비스를 받아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 부티크에서는 복원 전문 케어 공간도 만나볼 수 있을 것. 이와 같은 수선 서비스를 접하고 나면 결국 모든 럭셔리 브랜드들이 새 것을 덜 사고, 가진 것을 오래 잘 관리하고 고쳐서 쓰는 것이 쿨하다는 메시지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게 된다. 아직은 몇몇 브랜드만이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환경의 가치를 소비에 반영하는 패션 하우스들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기에 이 움직임도 분명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지속가능한 옷은 이미 옷장에 있는 옷입니다. ‐ 오르솔라 드 카스트로 
또 하나의 반가운 사실은 영국의 리스토리(The Restory)나 클로즈 닥터(Clothes Doctor)처럼 국내에도 럭셔리 제품 수선에 특화된 디지털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 2021년 여름에 오픈한 ‘럭셔리앤올(luxurynall.com)’은 핸드백부터 선글라스까지, 수선할 제품의 사진을 전송하는 것만으로도 각 분야 검증된 명품 수선 장인들의 견적을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로, 합리적인 가격은 물론이고 발송 및 수령을 택배로 진행하고 있어 편리하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패피스(fapis.io)’ 역시 진행 과정은 동일하다. 럭셔리앤올 앱의 실제 사용후기를 찾아보니 회원가입 후 제품 사진과 상태 설명 몇 줄이면 무료 견적을 받아볼 수 있고, 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미리 알려준다고. 여기에 서울 지역만 가능한 ‘버틀러 서비스’를 이용하면 직원이 직접 방문해 제품을 픽업해가고 수리 후 전달받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명품 가방 수선과 리폼으로 유명한 ‘월드리페어(blog.naver.com/world_repair)’, 슈즈에 특화된 ‘슈닥터(shoedr.co.kr)’ 등 인터넷상으로 미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수선 플랫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 리페어는 심오한 의미를 지닌 예술의 한 형태입니다. 우리의 창조물을 돌보는 것은 그것을 만든 모든 장인에게 전하는 사랑과 감사의 표시죠. ‐ 브루넬로 쿠치넬리 
패션산업에서의 과잉생산은 지구 수명을 단축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인구가 70억 명인 것에 비해 한 해에 생산되는 의류는 무려 1천5백억 벌에 달하니 말이다. 그 중 매년 3백억 벌이 넘는 옷들이 버려지고 있다. 재활용이나 업사이클링도 좋지만 애초에 과잉생산을 막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덜 버리려면 덜 사야 하고 이는 가진 것을 더 오래 입고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품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공을 들여 만들고, 누군가의 추억과 정신을 담을 수 있도록 섬세하게 수선된 럭셔리 하우스의 제품들은 이를 실천하는 가장 완벽한 연장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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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진선
    사진/ ⓒ Hermes,Chanel
    사진/ Brunello Cucinelli,Getty Images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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