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해킹? 아님 스왑? 확 달라진 컬래버레이션 트렌드 || 하퍼스 바자 코리아 (Harper's BAZAAR Korea)
Fashion

협업? 해킹? 아님 스왑? 확 달라진 컬래버레이션 트렌드

최근 패션계에 붐처럼 일어난 거대 하우스 간의 공동 작업은 단순 협업이 아닌, 해킹 혹은 스왑(Swap)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컬래버레이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패션 하우스들의 파격적인 행보.

BAZAAR BY BAZAAR 2021.12.05

THIS IS NOT A COLLABORATION

 Versace by Fendi-Fendi by Versace

Versace by Fendi-Fendi by Versace

과장을 좀 보태어 하루에 하나꼴로 새로운 컬래버레이션이 발표되는 요즘이지만 이 단어가 생경하게 느껴지던 시절도 있었다. H&M이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 컬렉션을 선보였던 2004년을 떠올려보라. 당시만 해도 그와 같은 하이(High)-로(Low)의 조합은 굉장히 파격적인 뉴스거리였으니 말이다. H&M의 이러한 행보가 소위 “패션계의 물을 흐려놓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으나  1천여 개의 매장에 풀린 제품들이 몇 시간 만에 완판을 기록했을 정도로 협업은 대성공을 이뤘다. 이는 발맹, 이자벨 마랑, 지암바티스타 발리, 모스키노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협업의 왕’으로 자리매김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널드 슈나이더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패션계는 약간의 거품이 있어요. 이 협업은 럭셔리와 매스 마켓의 장벽을 허물었습니다. 오늘날 어디에나 존재하는 컬래버레이션, 드롭 및 리미티드 컬렉션의 전조가 된 셈입니다.” 로널드가 말했다.
 
피날레의 모델 군단과 킴 존스 그리고 도나텔라 베르사체.

피날레의 모델 군단과 킴 존스 그리고 도나텔라 베르사체.

이후 17년간 패션계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협업을 쏟아냈다. 하이-로는 물론이고 영향력 있는 셀러브리티, 촉망받는 아티스트, 자선 단체 혹은 사회적 기업 등 협업의 대상도 다양해졌다. 그리고 올해 4월, 이탈리아의 거대 패션 하우스 구찌는 100주년 기념 컬렉션 아리아를 통해 같은 케어링 그룹 산하에 있는 발렌시아가와 손잡은 파격적인 피스들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두 브랜드의 이름이 한데 뒤섞인 크리스털 수트가 등장했고 2017년 S/S 시즌에 뎀나 바잘리아가 선보인 아이스 스케이팅 톱과 레깅스 부츠에 구찌의 심벌이 더해졌으며, 발렌시아가 특유의 아워글라스 수트와 오버사이즈 아우터가 구찌식으로 재해석돼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것이 협업이 아닌 ‘해킹(Hacking)’임을 강조했다. 이는 발렌시아가의 동의 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이긴 하나 상호 간의 어떠한 협력도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통을 이어받듯 지난 6월엔 발렌시아가가 2022 스프링 컬렉션을 통해 ‘해커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뎀나는 좀 더 교묘하게, 그리고 자신만의 위트를 가미한 해킹을 시도했다. 구찌의 더블 G 로고를 더블 B 로고로 바꾼 것이 그 대표적인 예. “우리는 완벽하고, 세련된, 한마디로 포토샵을 거친 필터를 통해 세상을 봅니다. 더 이상 편집되지 않은 것과 변조된 것, 진품과 위조품, 유형과 개념, 사실과 허구, 가짜와 딥 페이크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죠.” 그는 두 하우스의 코드를 융합한 아이템을 선보임으로써 패션 산업에서의 진정성은 무엇이며, 모방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를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11월 15일부터는 전 세계 74개 팝업 스토어를 통해 해커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선보이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곳 역시 발렌시아가의 시그너처 건축 요소(로고 셰이빙 카펫, 벨벳 무대 커튼, 부식된 금속으로 만든 구조물)를 그대로 가져왔으나 구찌 스타일의 더블 B 로고로 장식돼 색다른 느낌을 준다. 단정한 간판 아래로 자유분방하게 자리한 ‘GUCCI’라는 낙서에서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뎀나의 관점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구찌와 발렌시아가는 같은 그룹 소속이기에 상표권에 대한 복잡한 법적 분쟁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이 사례는 실제로 기존의 마케팅 방식에 피로감을 느낀 MZ세대와 이들 브랜드에 충성도가 높은 중국 시장에 매력적으로 작용했고, 전문가들 역시 모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찬사를 보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하나의 제품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 두 개의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게 된 셈이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이유는 충분하다.
 
(왼쪽부터) Gucci, Balenciaga

(왼쪽부터) Gucci, Balenciaga

한편 지난 9월, 2022 S/S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에 이뤄진 펜디와 베르사체의 컬래버레이션은 ‘펜다체(Fendace)’라는 신선하고도 흥미로운 결과물을 완성해냈다. “2월에 기성복 쇼가 끝난 후 저와 실비아는 도나텔라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실비아와 도나텔라는 정말 사이가 좋았고, 우리는 즐거운 작업을 함께 해보기로 했죠. 저는 베르사체를 디자인하고 도나텔라는 펜디를 디자인하기로 한 겁니다. 그러나 우린 같은 그룹에 속해 있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해요. 단지 친구로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존중에서 이번 컬렉션을 완성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기획한 것이 아닙니다.” 쇼가 끝난 후 킴 존스가 말했다. 컬렉션의 타이틀은 펜디와 베르사체의 이름을 결합한 ‘펜다체’. 각각 ‘베르사체 바이 펜디-펜디 바이 베르사체’로 선보인 합동 컬렉션은 스왑(Swap, 서로 다른 자원을 일정 기간 교환한다는 의미)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킴 존스와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가 25개의 베르사체 룩을,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25개의 펜디 앙상블을 선보인 것인데 이를 위해 각자의 하우스를 방문,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아카이브들을 즐겁게 둘러보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킴 존스는 1990년대에서 영감을 얻어 펜디의 모노그램 패턴과 베르사체의 키 모티프를 조화롭게 매치한 룩들을 완성했고, 오프닝에 그 유명한 안전 핀 드레스를 펜디 스타일로 재해석한 블랙 드레스를 등장시켰다. 도나텔라는 펑크 록을 베이스로 젊고 반항적인 이미지가 깃든 펜디 우먼을 그려냈다. 펜디의 더블 F 로고는 베르사체의 바로크 프린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피카부와 바게트 백에는 황금빛 메두사 잠금 장식이 더해졌다. “여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두 왕조가 함께하고 있어요. 칼 라거펠트는 지아니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칼은 친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 둘이 웃고 말하고 농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이 순간은 패션 역사상 최초의 시도입니다. 우린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우정을 바탕으로 창작에 대한 진정한 대화를 나누었어요.” 도나텔라가 말했다. 두 가문의 막강한 파워는 런웨이에 등장한 모델 군단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케이트 모스와 앰버 발레타가 함께 걸었고 샬롬 할로가 전성기를 떠올리게 하는 워킹을 선보였으며 나오미 캠벨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여기에 카렌 엘슨, 크리스틴 맥메나미, 지지 하디드, 최소라, 아두트 아케치, 빅토리아 세레티…. 하나의 쇼에서 절대 볼 수 없을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펜다체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 10월 25일, 펜디는 또 하나의 협업 소식을 발표했다. 두 킴(킴 존스와 킴 카다시안)의 만남으로 탄생한 ‘펜디×스킴스’ 컬렉션이 바로 그것. 두 브랜드의 미학 코드를 하나로 합친 언더웨어와 액티브웨어 및 가방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카다시안 특유의 보디컨셔스 라인에 펜디의 로고 플레이를 더했다.
 
발렌시아가의 ‘해커 프로젝트’ 팝업 스토어 전경.

발렌시아가의 ‘해커 프로젝트’ 팝업 스토어 전경.

동시대의 패션 하우스들은 정체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하우스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스타일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앞서 로널드 슈나이더가 언급한 ‘패션계의 거품’을 걷어내기 위해 각자의 방도를 물색하고 있는 것이다.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의 우정 어린 협업에서 한 단계 진화한 해킹과 스왑 컬렉션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건 그 희귀함과 압도적인 신선함 때문일 것. 또한 구찌, 발렌시아가, 펜디, 베르사체 모두 명징한 로고를 가진 거대 하우스로 그로 인한 엄청난 카피 제품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진품과 모조품의 경계를 허무는 이들의 로고 플레이가 일순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이것마저 복제품이 등장하겠지만.) 유례없는 팬데믹을 경험하며 패션의 진정성을 돌아보는 디자이너들이 늘어나는 지금, 컬래버레이션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이들의 행보에 뜨거운 박수를!  에디터/ 이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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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이진선
    사진/ ⓒGucci,Balenciaga,Fendi
    웹디자이너/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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