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부안의 숨은 비경을 찾아 떠나는 여행

부안의 안쪽 기슭으로 들어서자 내변산의 깊은 숨구멍으로 미끄러진다. 낯설고 신비로운 내변산의 숨은 비경들.

BYBAZAAR2021.10.01
vol.26 부안 내변산 여행
#진주의바깥생활
 

바다로 통하는 수직 동굴, 바위굴

부안에서 마주친 현지인은 부안의 민낯을 보려거든 바다 주름 언덕(채석강)에서 벗어나 산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겹겹 능선으로 둘러싸인 남서쪽 내변산으로 들어가자 이끼처럼 몽글거리는 청록 숲 사이로 육중한 바위 그림자가 휙휙 지나간다. 
굴바위 올라가는 길

굴바위 올라가는 길

내변산으로 들어가는 길 자체가 낯설고 새롭다. 태조 이성계가 머물며 심신을 단련하고 도를 닦았다고 전해지는 성계골 건너편으로 언뜻 코끼리를 닮은 바위가 보인다. 우신마을의 굴바위로 불리는 거석이다. 마을 사람들은 도 닦는 수행터 중 하나라고 귀띔한다. 작은 사찰인 대불사 뒤편에 굴로 진입하는 샛길이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갔을까, 대나무를 헤치며 지나자마자 수직으로 길게 찢은 듯한 검은 구멍이 얼굴을 드러낸다. 
덩굴과 수풀로 우거진 굴바위의 얼굴

덩굴과 수풀로 우거진 굴바위의 얼굴

고래가 옆으로 주둥이를 가늘게 벌리고 있는 듯한 형태다. 거대한 구멍 앞에서 입구의 서늘한 공기에 휘감긴다. 용기를 내 빛이 떨어지는 안쪽으로 발을 들였으나, 암흑으로 이어지는 경계선에서는 금세 뒤통수가 주뼛거린다. 굴은 깊게 이어지진 않지만, 이곳에서 불을 때면 그 연기가 변산반도 북쪽 바닷가로 빠져나온다고. 모든 병을 고친다는 ‘전설 속 참샘’은 발견하지 못했고, 암벽에 흐르는 물에 혀를 대보니 텁텁하고 비릿한 흙내가 났다. 굴바위는 접근성이 좋고 안전하고 느리게 둘러보기 좋지만, 이곳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아 보인다. 
햇빛이 들어오는 동굴에는 녹색 지의류가 자라는 중이다

햇빛이 들어오는 동굴에는 녹색 지의류가 자라는 중이다

내변산에서 꼭 한 곳을 가야 한다면 굴바위를 놓치지 않기를!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반계로 187-1 대불사에서 10분 거리
 
 

고승의 수행터, 원효방

우금바위가 병풍처럼 서있는 개암사

우금바위가 병풍처럼 서있는 개암사

해가 지기 직전에 개암사에 도착했다. 내변산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음을 잊고 있던 것이다. 신비롭고 낯선 풍경 속을 헤매다 보면 늘 벌어지는 일이고 내변산이 그러했다. 원효대사 수행터가 개암사 뒤편 우금바위에 있다고 했다. 이토록 낮은 구릉 산지에 수행터가 많이 흩어져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우금바위 중턱에 자리한 굴실

우금바위 중턱에 자리한 굴실

‘원효방’으로 가는 길은 굴바위와 달리 오르막의 연속이다. “동서남북에 굴이 있는 곳으로 가려는 게지요? 곧 해가 질 테니 서둘러야 할 겁니다.” 개암사를 지키는 중년 거사가 손목시계를 연신 바라보며 말했다. 지그재그로 난 산길은 잘 관리된 편이지만, 비가 온 직후라 축축하고 물컹거렸다. 조선시대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은 한겨울에 가마꾼을 데리고 부암을 유랑했는데, 가마를 타고 이 가파른 우금바위까지 올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가마꾼은 산중 승려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비탈을 오르내리며 얼마나 위험한 순간이 많았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30분가량 헉헉거리며 올라갔을 무렵, 우금바위 아래 자연바위 수행터인 원효방에 이르렀다. 본래 우금바위에는 남과 북, 서쪽에 굴실 3곳이 있고, 원효방은 빛이 오래 머무는 양면한 자리에 있다. 너럭바위를 쌓은 작은 단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많은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동행한 스님은 굴 옆의 작은 굴이 수행을 위한 최소한의 음식을 만드는 작은 부엌이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산중 고요로 뒤덮인 원효방 안에서 작은 소원을 빌어보았다. 햇빛에 몸을 말리러 등장한 뱀 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원효굴 안에서 바깥을 바라 본 풍경

원효굴 안에서 바깥을 바라 본 풍경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14 개암사 뒤편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약 30분 소요
 
 

내소사 전나무 숲과 직소폭포 가는 길

내변산의 아름다운 사찰, 내소사

내변산의 아름다운 사찰, 내소사

거칠고 날 선 벼랑길의 외변산과 달리 수평의 부안호를 품은 내변산에는 낚시꾼 몇 명만 익숙하게 어슬렁거릴 뿐이다. 해발 510m 의상봉이 최고봉으로 나지막한 젊은 산들이 굽이치고, 우뚝 솟아오른 기암과 수직 거벽에서 시선을 거두기 힘들다. 내변산 비경 중에서 내소사 전나무 숲길과 실상사지에서 직소폭포로 가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추천했다. 내소사 숲길은 한 번도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 적 없다. 600m 길이에 늘어선 전나무 수백 그루에서 폭발하듯 내뿜는 청량한 산소는 온몸 깊숙이 각인 된다. 화려한 자태의 상사화밭은 내소사 들머리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150년 수령이 넘은 전나무가 늘어선 내소사 숲길

150년 수령이 넘은 전나무가 늘어선 내소사 숲길

내소사 들머리에서 만난 붉은 상사화

내소사 들머리에서 만난 붉은 상사화

직소폭포는 두말할 것 없는 부안의 대표 명소지만, 폭포로 향하는 2.3km 길에서 만난 작은 샘물과 대나무 숲길, 키 작은 야생화에 더 마음을 빼앗긴다. 울창한 나무와 암벽 사이로 분옥담, 선녀탕 등 시원한 물길이 이어지고, 그 길 끝에 30m 높이에서 하강하는 새하얀 물줄기가 우렁차다. 가을에는 붉고 짙은 단풍으로 둘러싸이고, 북서계절풍이 부는 한겨울이면 용소로 떨어지는 함박눈이 환상적인 그림을 만들 것이다. 그러니 어떤 날이든 상관없이 지금 떠나야 하는 것이다.
물이 마르지 않는 한여름의 직소폭포 (c)부안군

물이 마르지 않는 한여름의 직소폭포 (c)부안군

*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직소폭포까지 2.3km, 약 4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