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네온사인이 작품이 되면? 마룬5, 안토니 바카렐로가 사랑한 아티스트 이정

이미지로서의 언어를 탐구해온 이정은 황량한 공간에 놓인 네온사인의 문장을 통해 우리를 낯선 곳으로 인도한다. 이번엔 생 로랑이 그 여정에 동행했다. I WISH YOU WERE HERE. 모든 건 이 문장에서 출발했다.

BYBAZAAR2021.05.02
 
 
생 로랑의 2021 여름 컬렉션에서 모티프를 따온 작품 〈I Wish You Were Here〉를 선보였다. 생 로랑과의 협업은 어떤 경험이었나?
나의 작업은 항상 ‘말’에서 출발한다. ‘말’이 주인공이고 ‘말’이 모델이다. 생 로랑 역시 무엇보다 ‘I Wish You Were Here’라는 이 ‘말’에 집중하고 싶어했다. 나도 작가지만 생 로랑의 그 방향성이 특별하고 아티스틱하게 느껴졌다. 개인 작업을 할 때 나는 문장에 감정을 가득 담아서 주관적으로 임하는데 이번 협업도 다르지 않았다. 작가에 대한 존중과 신뢰랄까. 작업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덕분에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가 당신의 팬이었고 그래서 이번 협업을 제안했다고 들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안토니가 내 작업을 좋아해왔고 나를 선택했다니. 작가로서 너무나 멋진 경험이다.
 
Wish You Were Here〉의 네온 설치작품은 생 로랑 서울 플래그십 부티크에서 만나볼 수 있다. 〈I wish you were here〉, Artwork by Jung Lee Project Management by CAVA LIFE Copyright ⓒ Saint Laurent All Rights Reserved

Wish You Were Here〉의 네온 설치작품은 생 로랑 서울 플래그십 부티크에서 만나볼 수 있다. 〈I wish you were here〉, Artwork by Jung Lee Project Management by CAVA LIFE Copyright ⓒ Saint Laurent All Rights Reserved

 
패션쇼 피날레에서 사막 한복판에 떠오른 ‘I Wish You Were Here’라는 문장을 보고 가슴이 찡했달까. 그 순간을 지켜본 이들은 크든 작든 감정적인 동요를 경험했을 거라 믿는다. 이 문장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가고 싶었나? 
거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당신이 찡하다고 말한 것처럼 나도 그 쇼를 보고 무언가 ‘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서치를 통해서 그 말이 어떻게 다양하게 소비되는지도 봤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그 사막 영상이 참 좋았다. 특히 마지막에 사방이 어두워지면서 그 문장이 나왔을 때 무언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느낌으로 작업했다. 생 로랑만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었고 몽환적인 미지의 장소에 놓인 ‘I Wish You Were Here’라는 네온 문장을 통해 ‘결속’에 대한 갈망을 담아내고자 했다.
 
의도한 대로 아주 낯설고 이국적인 장소에 문장이 놓였다.
 이국적이다, 어디인지 모르겠다 같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이번에도 거짓말처럼 한국에서 그런 장소를 찾았다. 게다가 촬영하는 날 유난히 습도가 낮았다. 바람도 많이 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작용하여 새로운 결과물이 나왔다. 즐거웠다.
 
〈Hold Me Tight〉, 2014, from the Series ‘Aporia’, C-type Print, 170x136cm ⓒ Jung Lee

〈Hold Me Tight〉, 2014, from the Series ‘Aporia’, C-type Print, 170x136cm ⓒ Jung Lee

 
문장에 대한 사감이 있었나?
개인적으론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1)를 연상했다. 그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비극이 담겨 있지 않나. 같은 말이라도 어떤 음악이나 이미지에선 비극이 담기기도 하고 희극이 담기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I Wish’라는 말에 대한 애정이 컸다. 재작년쯤부터 ‘I Wish’ 뒤에 무언가 다른 말을 붙여서 작업을 하려고 시도했는데 잘 안 됐다. 그런데 마침 생 로랑으로부터 이번 제안을 받은 거다. 이 우연과 필연이 놀라울 따름이다. 더이상 ‘I Wish’에 대한 여한이 없다. 이보다 더 잘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웃음)
 
댄 플래빈의 작품이 빛 자체가 아니라 그 빛이 물들이는 공간까지 포함하는 것처럼 당신의 작품에도 공간이 중요한 위상을 갖는다. 당신에게 네온이 놓이는 장소는 어떤 의미인가? 
일단 댄 플래빈과 같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사람들은 대개 내가 장소를 먼저 보고 거기에 네온을 넣는 순서로 작업할 거라 생각하는데 정반대다. 아까도 말했듯 출발점은 늘 문장이고 그 후에 문장이 놓일 자리를 찾는다. 예를 들어 ‘I Wish You Were Here’를 작업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문장이 내 마음을 건드려야 한다. 그 다음, 말이 놓이는 장소를 상상한다. 무엇보다 나는 문장이 여행을 하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한다. 네온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혼자 어느 장소에 놓여 있다는 것 자체가 실은 판타지다. 관객에게 이 이미지를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네온이 놓이는 공간 자체가 사실적이지 않아야 한다.
 
〈I am Lost in You〉, 2017, from the Series ‘Aporia’, C-type Print, 160x200cm ⓒ Jung Lee

〈I am Lost in You〉, 2017, from the Series ‘Aporia’, C-type Print, 160x200cm ⓒ Jung Lee

 
어떤 이들은 당신을 제니 홀저와 비교한다. 제니 홀저의 작품에서 김혜순 시인의 문장으로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나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자각한다면 당신의 작품 중 가장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Bordering North Korea’ 시리즈를 통해 상기하는 것은 근원적인 고독이다. 비슷한 매체를 쓴다는 점에서 종종 다른 작가들의 이름을 언급하더라.
인지도나 파급력은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럴 땐 내가 생각하는 차이점을 분명히 말하는 편이다. 한때는 트레이시 에민과 비교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분도 사랑과 언어에 대한 작업을 한다. 결정적으로 다른 건 내가 네온이라는 매체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의 작업은 네온이 낯선 곳에 놓임으로써 그 자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장소에 어떤 문장이 네온사인으로 있는 것과 네온사인이 어떤 풍경에서 같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사실 내 작품의 문장들도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지 않나. 내 작품의 텍스트는 모두 일상생활이나 대중매체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말들이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건 메시지가 아니다. “‘I Wish You Were Here’라고 말할게요, 내 말을 들어주세요.” 이건 내가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메시지로 당신의 작품을 보는 건 오독이라고 말하는 건가?
그렇다. 나는 메시지로 작업을 하는 작가가 아니며 내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것 또한 메시지가 아니다.
 
〈Take Me Away〉, 2016, from the Series ‘No More’ C-type Print, 128x161cm ⓒ Jung Lee

〈Take Me Away〉, 2016, from the Series ‘No More’ C-type Print, 128x161cm ⓒ Jung Lee

 
영국 유학 시절을 “언어가 모든 것을 구현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시기”라고도 말한 바 있다.
이방인,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지금의 당신을 만든 셈인데. 새로운 문화권에 가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대상화가 되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그래서 많은 유학생들이 정체성을 주제로 작업을 하는 것일 테고 나 역시 거기서 출발했다. 영국에 있을 땐 외국인이 바라보는, 조용하고 신비롭고 순종적이고 요리를 잘하고 부지런하고 연약한 동양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에 관심이 많았다.2) 정체성으로 시작해서 영어라는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게 지금의 텍스트화에 관한 작업으로 이어졌다. 운이 좋았다. 대상화의 경험은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관찰자의 시점을 갖게 되었달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어디서든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면에선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마룬5의 5집 앨범 재킷 〈V〉로 주목받은 이래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는 점이 의외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심 속에 있으면 자연이 그립고 자연 속에 있으면 도심이 그립다. 작업을 위해 열악한 장소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따듯한 곳에서 마시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이 그렇게 간절하다. 내 작업에는 이중적인 요소가 있고 나 역시 그런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이다. 또한 한국은 초현실적이다. 어디에나 커다란 붉은색 십자가가 보이고 아름다운 자연경관 위에 뜬금없는 모텔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빨간 글씨로 ‘장어’라고 쓰인, 높이 2~3미터쯤되는 거대한 간판이 있다. 아주 멀리서도 보이는. 사인과 빛에 대한 작업을 하다 보니 이런 경험들이 내 안에서 연관을 짓는다. 거기서 느낀 어떤 기이함이 작업하는 데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Bordering North Korea #15〉, 2008, C-type Print, 102x127cm ⓒ Jung Lee

〈Bordering North Korea #15〉, 2008, C-type Print, 102x127cm ⓒ Jung Lee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마그리트 뒤라스의 일기,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단테의 신곡, 퀸의 노래 가사까지 다양한 텍스트가 당신의 작품이 된다. 최근 뇌리에 각인된 단어나 문장은 무엇인가?
발터 벤야민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만큼이나 사진과 미술 분야에서 많이 언급되는 이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분의 마지막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엄청나게 앞서간 깨어 있는 지식인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밥벌이 능력이 없었다. 더군다나 전쟁을 겪으면서 유대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의 삶이 더욱 비참해졌다. 교수 임용에도 떨어지고 해보려고 하는 것마다 다 실패했다. 어쩜 평생 동안 이렇게 운이 없었을까 싶을 정도로 불운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역사의 결말을 알지만 그 속의 인물은 한 치 앞을 못 보지 않나. 1차대전이 끝나기 직전이었는데, 도피 중에 결국 자살했다. 내일이나 모레가 되면 다 해결되는 건데 그걸 몰랐다. 그 불안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좌절했다. 그 부분이 내 마음을 건드렸고 나라는 개인과도 연관지을 수 있었다. 우리는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작가로 살면서 또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은 것은 시간이란 절대로 순차적으로 흘러가지 않을뿐더러, 그건 마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어른이 되지 않은 것과도 같다는 점이다. 다소 장황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나의 작업들, 초기작부터 현재의 협업까지 모두 다 ‘나’라는 말이다.
 
 
“작업은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다. 예컨대 눈을 보고 싶다면 눈을 간절히 바라야 한다.”는 당신의 작업 철학이 인상 깊다. 네온이야말로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크고 깨지기 쉬운 네온을 제작하고 설치하고 사진으로 담아내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까다로운데 그럼에도 네온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순서를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이유로 네온이 나에게 소중하고 무엇 때문에 앞으로도 네온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현재 네온을 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 이유가 된다.
 
외로움은 당신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코로나 위기를 통해 당신의 작업에 대해 상기한 지점이 있나?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내 작업에 대해서 돌아보고 여러 번 자문했다. 이동도 자유롭지 않은 시기에 누군가가 내 작업에 대해서 생각해주고 언급해주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내 작업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자세가 ‘거리 두기’다. 도시 안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한 흔한 말을 낯선 곳에 두고 그 말들이 거기 외롭게 서 있는 모습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내 작업이 그렇게 외로움을 되새겨보는 경험이 되길 바란다.
 
1) 핑크 플로이드의 전 리더 시드 배럿은 밴드의 음악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박과 마약 중독으로 정신병을 앓고 팀을 탈퇴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Wish You Were Here〉에 수록된 동명의 곡 ‘Wish You Were Here’는 훗날 멤버들이 시드 배럿을 그리워하며 만든 곡이다.
2) 초기작 ‘클럽 겐키’ 시리즈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작가의 주제의식을 담은 포트레이트 작업이다. 
 
손안나는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내면의 대화가 갈급하다고 느낄 때면 갤러리로 도피한다. 이미지가 말을 건네는 순간의 마법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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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손안나
  • 사진/ 이정, 생 로랑 제공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