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Culture

팬데믹 속에서도 문을 연 광주비엔날레 탐방기

물리적인 거리감 속에서도 예술의 영역은 연대로 이어져 있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는 39일 동안 그 증명을 이어간다.

BYBAZAAR2021.04.27
 
나사4나사, 〈Suash〉, 2018, 온라인 영상 시리즈, 15분, 사진 루크 데프리테르,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션.우리나라의 유일한 단관 극장인 광주극장에서도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열린다.제13회 광주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 나타샤 진발라와 데프네 아야스.스위스 파빌리온 2021, 안나 안데렉,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 스틸 이미지, 2020. 사진 Nicole Pfister.
 
나에게는 명절이 다섯 번이다. 설날과 추석은 공식적인 명절이고 전주영화제, 부산영화제, 광주비엔날레가 나머지다. 서울에서부터 귀향하듯 각 도시로 달려가 작품의 세례를 흠뻑 맞고 일 년에 한 번이지만 꼭 들르는 단골집을 순회하는 일. 전주영화제는 반팔을 입었다 혼쭐이 나는 아직 봄, 광주비엔날레와 부산영화제는 산과 바다의 기운이 차가워져 얇은 외투를 여미는 가을이었다. 그렇게 계절을 가르고는 했다. 축제가 점점 축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장소를 옮기는 와중에 광주비엔날레는 두 번 연기 끝에 문을 열었다. 팬데믹이 시작되고 어느새 포기에 익숙해져버렸는데 포기를 모르고 활짝 연 광주비엔날레가 어찌나 반가운지! 이렇게 큰 전시는 일 년 반 만이었다. 세계 각국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나고 흩어진 장소들로 전시를 찾아다니는 묘미. 광주비엔날레는 잃어버린 듯했던 경험과 감각을 단번에 일깨웠다.
 
주거지 속에 모나지 않게 자리 잡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은 그대로였지만 팬데믹 이후의 풍경이 하나둘씩 추가되었다. 매표소가 제1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공동 예술감독인 데프네 아야스(Defne Ayas)와 나타샤 진발라(Natasha Ginwala)는 전시를 지휘하는 동안 주말마다 전시관 앞에서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을 봤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둘러보도록 처음으로 1층 공간을 개방했다. 광주 시민에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 전시 주제인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Minds Rising, Spritis Tuning)»을 그대로 반영한 여덟 명 작가의 작품이 무질서하게 펼쳐진다. 문경원 작가의 태피스트리 작품은 바닥에 널려 있고 존 제라드의 영상 패널은 가벽처럼 세워져 있다. 그 사이에 박물관에서 대여한 민화와 조각이 틈틈이 놓여 있고 전시장 한가운데는 오우티 피에스키의 〈함께 떠오르기2〉가 매달려 있다. 핀란드 사미족의 전통 매듭으로 만든 이 거대한 작품은 이름과 상승하는 모양으로 이번 전시의 증표가 되어준다. 한 바퀴 둘러보고 난 후 더 보려면 안쪽의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해 다음 전시실로 올라가야 한다.
 
아시아 출신 두 여성 감독의 스타일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서구 작가는 적고 아시아와 변방으로 불리는 국가의 작가들 작품으로 채웠다. 아시아의 대표라 여겨지는 일본이나 중국 작가의 이름도 적다. 전시장에서 보기 드문 무지개색이 벽을 채우고 태피스트리나 비정형의 작품들이 자유롭게 드리워져 있다. 전시를 보는 사이사이 로봇이 방역을 하고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난간을 이상한 기계로 훑으며 소독하고 있는 모습 또한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다.
 
메인 전시관과 가까운 국립광주박물관은 «온전히 죽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제목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깊게 연관을 맺는 작품들을 모아놓았다. 죽음과 사후 세계, 유물이라는 키워드를 내포한 테오 에쉐투, 트라잘 하렐의 신작이 자리하고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박물관 앞 정자는 그 앞에서 꼭 한 번 멈춰서야 한다. 외형은 다를 바 없는 정자이지만 세실리아 비쿠냐의 사운드 아트다. 스피커에서 비쿠냐가 부르는 노래가 나오는데 요절한 작가 차학경에 보내는 공명과 애도의 목소리다.
 
광주라는 도시이기에 가능한 전시도 있다. 현존하는 유일한 단관 극장인 광주극장에서는 극장이라는 정체성에 맞는 열화상 카메라를 통한 설치작품과 포토 몽타주를 전시한다. 멀티플렉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겨움에 넋을 잃고 복도를 구경하다 상영관에서 어렴풋이 흘러 나오는 영화 〈미나리〉의 삽입곡을 들은 일은 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민주화운동 당시 다친 학생과 시민을 치료했던 국군광주병원에서는 12명의 작가가 참여한 «메이투데이»와 «볼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 사이»전이 열리는데 오랜 시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처럼 내리는 붉은 실 작품으로 유명한 시오타 치하루는 검은 실로 기억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작품 〈신의 언어〉를 병원 안에 들였다. 실과 엉킨 한글과 영어, 일본어로 된 성경 창세기의 낱장은 불안정한 시대를 견딘 개인의 존재를 나타낸다.
금남로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은암미술관, 양림동의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소규모로 열리는 전시에 들렀다 동네 구석구석을 둘러보면 1박 2일 여정의 광주비엔날레 관람이 마무리된다. 장소의 특성과 전시 방식은 제각각 달라도 모든 전시에서 공동체와 지성,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한껏 부풀어 떠오른 마음을 넓게 품고 맞이해주었다.  
 
예술감독과의 대화
두 사람 모두 젊은 아시아 여성이며 여러 국가에서 활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그런 경험들이 녹아 들어 있는 듯 보인다. 
베를린, 타이베이, 베니스, 뉴욕, 로테르담, 콜롬보, 빌뉴스, 모스크바처럼 다른 규모와 수용력을 가진 곳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참여해왔다. 특정한 사회적 또는 지정학적 현실에 기반을 둔 모델과 이해의 층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 예술작품과 라이브 공연을 위한 역사적 수집과 연구 의뢰 과정을 신중하게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는 선조의 지혜, 샤머니즘, 특히 ‘무당’ 또는 ‘만신’으로 언급되는 여성 샤먼을 주제로 두고 샤머니즘, 신성시하는 유물, 종교적 그림에 집중한 개인 소장품 등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영적 세계로의 접근이 식민지 근대에 의해 형성된 선형적이고 계급적인 지식을 넘어설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광주는 한국 안에서도 특별한 시대적 배경과 정신이 있는 지역이다. 두 감독에게 이런 특징이 큰 영감이 되었을 것 같다. 
광주는 특별한 도시다. 광주는 오랫동안 저항과 집단 트라우마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광주와 광주 시민의 이런 움직임은 ‘치유’ ‘반대’ ‘회복’ 사이의 본질적 관계성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우리의 큐레이터적 의도는 역사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식 확장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었다. 덧붙이자면 샤머니즘 박물관과 가회 민화 박물관의 병풍, 부적, 제물, 그리고 런던 웰컴 컬렉션의 선별된 원고와 페인팅을 뒤섞어 광주와 광주의 정신이 세계를 가로지르게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목소리로 발언하는 작가들이 눈에 띈다. 이전 비엔날레와는 크게 다른 작가 선정이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으로 보인다. 
심미적이고, 활기차고, 역사적으로 의식적이고, 좀 더 포괄 적이고, 그리고 의식 확장적이며 ‘삶’에 대한 전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으면서 구형의 사고방식뿐만 아닌 과거와 미래의 삶의 형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예술가들을 참여시켰다. 이전에 비해 많은 69명의 예술가를 선정했고 몇몇 전문직 종사자들과 변혁적 대화를 시도했다. 아즈텍 우주론과 로봇공학을 끌어낸 멕시칸 원주민 아티스트 페르난도 팔마 로드리게스 (Fernando Palma Rodriguez), 게이밍, 라이브 액션 역할극, 종교적 철학, 가상세계 빌딩을 사회적 비판의 도구로 작업하는 두 아티스트 사헤지 라할(Sahej Rahal)과 아나 마리아 밀란(Ana Maria Millan)이 기억에 남는다.
 
공동 예술감독으로서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두 의견을 하나로 합치는 협업을 해야 했다. 그 과정은 많은 것을 남겼을 것이다. 
우리는 10년 전부터 알고 지냈고 2010년에 상하이에서 만났다. 로테르담에서 협업 작업을 했으며, 큐레이터로서 서로의 궤적, 탐구, 에너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2017년, 우리는 엉겁결에 같은 예술가들과 협업을 하게 됐다. 당시 나타샤는 컨투어 비엔날레 8(Contour Biennale 8)에서 큐레이터로, 나는 비테 데 비트(Witte de With)에서 디렉터로 일했다. 한 동료는 우리를 “같은 달의 양면”이라고 묘사했는데 놀라울 정도로 맞는 말이다.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은 서로에 대한 유대감과 신뢰를 높인 작업이다. 또한 박주원과 같은 멋진 큐레이터가 있는 큐레이터 팀, 박보나, 조한울과 같은 훌륭한 재단의 전시 코디네이터들과 함께 일하는 좋은 경험을 했다. 이번 일이 이토록 도전적일 줄은 몰랐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비엔날레의 유산에 대한 충성심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게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준비하는 동안 이전에 겪지 못한 어려움과 부딪혔을 것 같다. 작품이 방향성이 아예 바뀌는 일도 있었을 테고.  
준비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아주 많은 요소가 있다. 우리는 예술가들에게 40개의 새로운 작업 의뢰를 했다. 그리고 많은 부분이 대유행과 그것을 둘러싼 정치 상황 속에서 변화했다. 린 허쉬만 리슨(Lynn Hershman Leeson)은 하버드대 생체모방공학 비스연구소(Wyss Institute for Biologically Inspired Engineering)와 플라스틱을 먹는 박테리아와 효소를 개발하는 협동 작업을 했는데 이 연구는 캠퍼스가 폐쇄되면서 중단되었다. 펨케 헤레그라벤(Femke Herregraven), 시셀 톨라스(Sissel Tolaas)와 코라크리트 아루나논드차이(Korakrit Arunanondchai)는 제주 여행을 재차 계획하고 있었지만 비행 사정 등 현실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서로 다른 대륙의 각자 책상에 앉아 작업하는 수밖에 없었다.
 
두 차례 연기되다가 드디어 열렸다. 팬데믹 시대에 열리는 매우 의미 있는 비엔날레다. 물론 기획 단계에서는 예상하지 못했을 텐데 2019년부터 준비한 메시지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는지, 이 시대와 어떤 점이 부합한다고 생각하는가? 
지성의 진짜 본질은 무엇인가? 인공지능과 상호진화 과정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우리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 미생물로부터 생존 전략을 배울 수 있을까? 우리에게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이득인 건 무엇일까? 2년 전인 2019년 3월, 즉 코로나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제안했던 질문들이다. 지능의 모든 범위 특히 집단 지성의 개념과 오늘날의 두뇌 노동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것을 시초로 애도와 사후세계, 영혼의 대상을 탐구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팬데믹 시대와 상당한 관련이 생기고 말았다.
 
개막을 못 보고 돌아가서 아쉬울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에 다녀갈 사람들에게 멀리서 남기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팬데믹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개인적 및 집단적 경험을 지역화시켰다. 필연적으로 비엔날레를 방문하는 관객들은 모두 현지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 생태계는 현대미술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높기 때문에 긍정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39일밖에 진행되지 않지만 굉장한 시각적 축제가 될 것이다. 디오고 파사리노(Diogo Passarinho)와 함께 개발한 공간은 독단적인 화이트 큐브에서는 느낄 수 없는 더 많은 것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이 이 마법을 깨닫길 바란다.
 
광주는 특별한 도시다. 광주는 오랫동안 저항과 집단 트라우마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광주와 광주 시민의 이런 움직임은 ‘치유’ ‘반대’ ‘회복’ 사이의 본질적 관계성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도록 영감을 주었다. 우리의 큐레이터적 의도는 역사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의식 확장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었다.  
 
※ 광주비엔날레는 5월 9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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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사진/ 이차령, 광주비엔날레재단 제공
  • 어시스턴트/ 백세리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