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큐레이터들의 큐레이터,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 니콜라 부리오와의 대화

올해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흔치 않은 해다. 물결과 물의 힘을 주제로 내건 지난 전시와 달리, 두 비엔날레는 ‘판소리’와 ‘해적’ 그리고 ‘불교’라는 쉬이 짐작할 수 없는 단어들로 전시라는 방대한 이야기의 궤를 잇는다. 축제가 열리기 전, 분주히 전시를 준비하는 예술감독들의 말을 들었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4.09.03
에메카 오그보(Emeka Ogboh), <엘렉브라의 눈1>, 2022, Photo: 작가 제공

에메카 오그보(Emeka Ogboh), <엘렉브라의 눈1>, 2022, Photo: 작가 제공

소리는 풍경이 되고, 풍경은 곧 소리가 된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을 진두지휘하는 예술감독이자 미학비평서 <관계의 미학>을 쓴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는 한국의 ‘판소리’를 빌려 개별 소리로 공간을 감각하는 ‘사운드스케이프’ 형식의 전시를 완성했다. 이주, 국경, 사회적 거리, 기후변화로 인한 거주지 변화 등 오늘날 중요하게 떠오른 ‘공간’의 지평을 동시대 예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려낸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니콜라 부리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니콜라 부리오

이번 비엔날레 타이틀에 전통적인 한국의 소리 양식을 내건 이유는 무엇인가? ‘판소리’는 사실 이번 비엔날레의 콘셉트라기보다 일종의 이미지이자 정신적 사운드트랙이다. 전시를 구성할 때 일반적인 아이디어를 특정 맥락에 고정시키고, 토속적인 표현을 찾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음악 장르로 보면 판소리는 미니멀 오페라다. 북을 치는 이와 소리꾼의 목소리만 있는 오페라. 의미 있는 모든 전시는 항상 오페라적인 특성과 차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을 하나로 연결 짓는 대본이 있고, ‘노래하는’ 개별 목소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주체들이 ‘Space(공간이자 장소)’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수십 년 전 당신이 정립한 ‘관계의 미학’과 연결될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주제가 동시대에 유효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맞다, 관계의 미학에 공명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핵심적인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기후위기가 오늘날 예술가들이 공간(space, 장소)을 바라보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들의 비전이나 표현, 실천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이 질문을 꺼낸 결정적인 이유는, 이제 예술가들이 낭만주의 시대 때처럼 세상을 마주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지구를 중립적인 무대라 여기지 않고 같은 배를 타고 떠 있다고 느낀다. 대기, 지질학적 지반, 위협받는 동식물의 문제 등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 예술에서 부상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주제는 비인간과 인간과의 상호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컨테이너가 아니라 다른 종과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살아 있는 현장인 것이다.
일찍이 ‘인류세’에 대해 논한 타이페이비엔날레 등 지난 전시에서 당신이 천착해온 기후변화와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확장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2014년 타이페이비엔날레에서 인류세가 우리 사고방식과 예술에 미치는 영향을 일련의 전시로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인류세’가 무엇인지 모두에게 설명해야 했다. 이어서 2018년에는 «충동 테스트(Crash Test)»라는 전시를 통해, 입자, 기체,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성된 걸 묘사하는 ‘분자적 시선’을 가진 신진 작가 30명을 모은 적 있다. 이번에는 공간이라는 매우 광범위한 질문을 제기하고, 이를 소리와 연결해 이 모든 풍경을 사운드스케이프로 바꾸는 새로운 시도다. ‘판소리’가 이 두 특성을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광주정신은 순응의 거부이자 반항이다. 미지의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추진력이다”라고 말한 적 있다. 광주라는 도시와 이 주제를 연결 짓기 위해 어떤 점에 유의했나? 20여 년 전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부터 많은 아이디어가 샘솟았고 파리로 돌아간 뒤에도 언제든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광주비엔날레는 독재에 맞선 항쟁에서 탄생했고, 현대미술은 광주 시민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비슷한 예시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핀추크가 키이우(Kyiv)에 예술 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정한 날은 터키가 EU에 가입한 날이자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의 개관일이기도 했다. 예술은 타자에 대한 개방성과 관용을 의미하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생태적 인식과 깊이 연결되고 있다.

마르게리트 위모, <휘젓다>의 사전 스케치, 2023, 종이에 잉크. Photo: 작가 제공

마르게리트 위모, <휘젓다>의 사전 스케치, 2023, 종이에 잉크. Photo: 작가 제공

30개국 73명의 아티스트들이 ‘우리가 사는 공간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개막식 날 상영될,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비디오 에세이에도 여러 아티스트의 작품이 등장한다. 그중 이번 비엔날레의 방향성과 맞아떨어진 신작을 몇 선 소개해준다면? 놀라운 프로젝트를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품들을 꼽자면, 권혜원이 소리를 이용해 제주도의 동굴을 탐험하는 프로젝트, 사다네 아피프가 양림동 술집에서 현대적 판소리 공연을 여는 것, 전시장을 여는 긴 터널을 에메카 오그보가 라고스에서 녹음한 사운드 작품으로 꾸민 것은 소리와 공간의 관계라는 주제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또, 도미니크 놀스가 구현한 30m 길이의 회화, 맥스 후퍼 슈나이더의 거대하고 악몽 같은 설치작품, 판소리를 원시적 삶의 형태와 혼합한 마르게리트 위모의 야심 찬 프로젝트도 떠오른다.
당신과 수차례 예술적 비전을 공유한 아티스트인 필립 파레노, 리암 길릭 등도 참여한다. 이들이 해석하는 이번 주제에서 어떤 새로운 시각을 발견했나? 마치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만난 것 같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던 사이고, 이번 전시 주제를 그들이 어떻게 해석할지 나 또한 매우 궁금했다. 파레노는 팬데믹 기간 동안 뉴욕 MOMA를 위해 제작한 설치작품을 선보이는데, 의식이 있는 기계가 환경 데이터에 반응해 소리를 내는 작품이다. 길릭은 작년 포고섬에서 촬영한 영상을 상영하고, 안젤라 블록은 음악을 형태로 변환하는 장치를 설치해두고, 방문객들이 곳곳에 놓인 QR코드로 아티스트의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배치할 예정이다.
“예술의 기능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발붙이도록 만드는 것. 그래서 거기 머물게 하는 것이라 믿었다.” 비디오에서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는데, 이번 전시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큐레이터로서 자신을 정의하는 데 그의 작품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인류학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팀 잉골드가 말했듯 인류학은 ‘사람과 함께하는 철학’이며 관계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은 인류세를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 예술을 일련의 사물로 보지 않고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한다고 본 예술관도 인상 깊다.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각각의 사물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성향, 특정한 배열, 사물 간의 특정한 연결에서 비롯된다. 언어의 단어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는 의미가 매우 모호하고 거의 공허하며 문맥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의 세 가지 전시 테마는 소리의 형식을 따른다. 두 가지 이상의 소리가 밀접한 ‘부딪침 소리(Larsen Effect)’, 중첩되는 ‘겹침 소리(polyphony)’, 분자와 우주 등 근원을 탐구하는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라는 낯선 개념으로 3개의 섹션을 이룬다. 특히 전시 공간을 구성할 때 집중한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번 전시를 제대로 보려면 관람객은 귀를 열어야 한다. 새가 노래로 자신의 영역을 구분하듯이, 공간을 동시대적으로 표현하는 게 나의 주된 과제였다. 소리는 공간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부딪침 소리’ 섹션에서는 ‘피드백 효과’라는 두 발신자 사이에 공간이 부족해 생기는 잡음에 대해서도 다룬다. 밀실공포증이나 밀도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 이런 주제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소음으로 이루어진 ‘오페라’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각각의 섹션에서 비물질을 주제로 삼거나 디지털 기술을 다루는 작품보다는 유독 감각을 곤두세워야 할 작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다. 비물질 같은 단어는 환상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물질성을 갖고 있으며 메타버스는 무엇보다 우리 주변에 있다. 특히 마지막 섹션은 새로운 종류의 공간을 탐구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 우주의 힘에 관심을 두고, 영적 세계로의 진입을 탐구하는 샤머니즘을 다루는 예술가들이 포함된다. 또한 무한히 작은 입자나 분자의 구성에 초점을 맞춘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오늘날 역사는 바이러스, 이산화탄소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요소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섹션은 매우 동시대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늘 현미경으로 사회를 바라보거나 현실에서 벗어나 광활한 야외로 뛰어드는 예술가에게 관심이 있다.
양림동에서 선보이는 프로젝트는 소리라는 감각을 한층 전면에 드러낼 예정이다. 빈집이나 과거 경찰서로 쓰인 공간에서 전시의 주제는 어떻게 증폭되나? 총 8개의 장소에서 12명의 작가가 전시를 한다. 작년에 판소리의 기원을 찾아 여행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참여 작가인 미라 만은 집 전체를 설치미술로 탈바꿈시킨다. 광주 출신 작가 김자이는 동네에서 자라는 식물들로 특별한 음료를 준비하고, 내가 생각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운드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마리나 로젠펠드의 신작도 볼 수 있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로서 당신에게 이번 전시의 핵심적인 키워드인 ‘공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예술은 누군가 들여다볼 때만 존재한다. 내 친구 리암 길릭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건 냉장고의 불빛과 같다. 열어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관계 미학은 예술작품이 공동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관객을 포함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니라 무언가를 경험한다. 이번 비엔날레와 같은 전시장을 방문하면 현실의 여러 버전과 마주할 수 있고, 결국 우리의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

※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은 9월 7일부터 12월 1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및 양림동 일대에서 열린다.

Credit

  • 글/ 안서경
  • 사진/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