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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국가에서 산다는 건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는 1980~90년대생 작가 5인의 그룹전에서 유지인 작가와 거울을 바라보며 나눈 대화.

BYBAZAAR2021.03.25
 
〈The Star(별)〉, 2019, Mirror, stained glass and mixed media, 78x78x4cm.

〈The Star(별)〉, 2019, Mirror, stained glass and mixed media, 78x78x4cm.

 
화려한 골드 컬러 프레임, 완벽하게 맞춘 퍼즐 같은 거울, 붉게 새긴 단어의 조합인 이 작품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런던에서 유학할 때 BBC 채널에서 흘러나오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뉴스를 보며 처음으로 분단국가에서 살고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세계 정치, 전쟁 같은 단어가 실체감 있게 다가온 최초의 순간이었다.(웃음) 당시 숭고한 내부 인테리어를 감상하며 성당에 앉아 있는 일이 잦았는데 어느 순간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왔다. 중세시대 스테인드글라스는 사람들을 종교에 심취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아름다운 빛으로 현혹하는 최면적인 환각, 맹목적인 믿음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정치 체제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발상을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스테인드글라스 전문가에게 일 년 반 정도 기술을 배워 〈North〉 연작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북한 정치 체제의 종교성을 의미한다면 다양한 심벌과 텍스트는 그들의 언어를 직접적으로 삽입한 것이다.   
매일 북한 관련 자료를 보는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북한의 국기에도 들어가 있는 붉은 별과 갖가지 슬로건이었다. 오각형 별 모양의 〈The Star〉는 명징하게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의 별을 표현한 것이다. 슬로건 가운데 ‘세상 부럽 없어라’라는 말이 특히 신선했다. 북한에서의 삶이 비교불가하게 만족스럽다는 세뇌의 차원일 텐데 교실 안에 걸린 급훈에 등장하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상으로 주는 학용품에서도 자주 발견했다. 이는 〈No Envy in the World〉 〈Nothing to Ervy〉 혹은 〈Envy〉 작품으로 만들었다.
 
〈No Envy in the World(세상 부럽 없어라)〉, 2015, Mirror, stained glass and mixed media, 145x21cm.

〈No Envy in the World(세상 부럽 없어라)〉, 2015, Mirror, stained glass and mixed media, 145x21cm.

〈Flower_21_1〉, 2021, Mirror, mixed media, 65x74x4cm. 〈Flower_21_2〉, 2021, Mirror, mixed media, 84x151x3cm.

〈Flower_21_1〉, 2021, Mirror, mixed media, 65x74x4cm. 〈Flower_21_2〉, 2021, Mirror, mixed media, 84x151x3cm.

 
스테인드글라스와 거울을 조합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실에 무감각한 세태를 반영하기도 하고, 슬로건과 함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물성으로써 유리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유리판을 자를 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커팅 라인이 남북한의 갈라진 땅처럼 보인다는 관객도 있었다.
 
대부분의 현대미술가들이 저글링하듯이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North〉 연작 외에도 지금 머릿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무엇인가?   
10여 년 전에 친할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너무나 놀라서 “아빠, 왜 말 안 했어?” 물었더니 아홉시 뉴스를 보면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러셨다.“응? 안 물어봤잖아.” 알고 보니 나의 1/4이 일본인인 건데 황당했다.(웃음) 하나둘 단서를 모아 알게 된 사실은 할머니의 원래 이름은 후미코 오카무라, 해방 직전 무역업을 하던 부모님 따라 한국에 왔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길거리에서 일본어를 쓰는 사람이면 누구나 돌팔매질을 당하던 시절에 천성적으로 말을 못하는 사람인 척하면서 역동의 현대사를 거쳐오신 거다. 그런 할머니가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지난 생을 책의 형태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의 삶을 소설화하고 각 챕터마다 생애의 어떤 지점을 미술작품으로 만들어 싣고 한국과 일본의 역사 연대표를 작성해보려고 한다. 할머니의 삶은 개인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양국의 현대사를 담고 있고, 개인적인 뿌리를 좇는 일은 한국과 일본 여성들의 역사와 경험을 이해하는 일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 «제 3의 화법»전은 아뜰리에 아키에서 3월 27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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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박의령
  • 글/ 안동선(컨트리뷰팅 에디터)
  • 사진/ 아뜰리에 아키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