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탈서울'하고 행복을 찾았다

서울에서 허락받지 못한 ‘쉼의 미학’을 찾아서, 어떤 사람들은 교외에 정착했다.

BYBAZAAR2021.03.18
 
우상규 대표의 남양주 집.

우상규 대표의 남양주 집.

 우상규 대표의 남양주 집.

우상규 대표의 남양주 집.

 
힘들지 않으세요? 남양주에서 출퇴근을 한다고 말했을 때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나는 이럴 때면 되려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혹시, 힘들지 않으세요?
 
은평구에서 2년, 마포구에서 2년. 내 4년간의 서울 생활은 퍽 힘들었다. 단열재를 빠뜨린 건 아닌지 의심이 되었던 안방 벽체의 한기와 대부분의 끼니를 배달음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초소형 사이즈의 주방, 청소해도 티가 나지 않는 낙후된 욕실과 인간의 공격성을 드러내야만 지킬 수 있는 주차 자리. 고향에서는 이 돈으로 집을 산다는데…. 은행에서 1억5천만원이나 되는 큰돈을 빌려 가까스로 구한 집은 내게 잠만 자는 곳이었지, 휴식을 취하는 곳이나 나를 대변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내가 온전히 쉴 수 있고, 나에 관해 설명해줄 수 있는 곳은 내가 일하는 매장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나 술집이었고, 서울의 야경이 있는 한강이었다. 나는 이 화려한 것들이 주는 위로에 안심했나 보다. 일을 마치고 나면, 집 밖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는 씻고 잠자는 게 전부였고,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꽉 막힌 신촌, 공덕, 삼각지를 운전해 한남동 매장으로 향했다.
 
환기가 잘 안 되던 욕실의 벽타일이 습기를 너무 먹었는지 툭 하고 떨어져나왔다. 내 마음도 거기까지였으려나. 한남동을 기점으로 한 시간 거리의, 비슷한 금액대로 갈 수 있는 가장 넓은 집을 찾기 시작했다. 어떠한 연고도 없는 도시 남양주에서도 읍, 면, 리까지 들어가니 전세 2억 이하의 단독주택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예쁜 집을 선택했다. 미국식 주택 구조의 2층 집으로, 2층에 있는 방에는 다락까지 존재해 3층 집과 같은 구조였다. 화장실이 세 개에 마당과 창고까지 있는 9m 층고의 집. 둘이 살 건데 이렇게 큰 집이 왜 필요하냐는 주인아저씨에게 “좀 쉬고 싶어서요.”라고 말했던가.
아침에 눈을 뜨면 큰 창으로 빛이 쏟아졌고 새 소리가 집 안까지 들어왔다. 커튼을 열고, 커피를 내리고 소음 고민 없이 마음껏 음악 소리를 키웠다. 가끔은 흥에 겨워 춤을 추기도 했다. 서울까지 운전하는 한 시간도 길이 익숙해진 이후부터는 유용한 시간이 되었다. 평소 마음의 여유가 없어 하지 못했던 일들,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거나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통해 금융 지식을 쌓는 일들을 운전하며 해결했다. 일찍 퇴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해가 낮게 깔려 황금빛으로 변한 시골마을과 그 사이 사이에 위치한 집들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를 보고 있자면 운전을 멈추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산책하는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집 주변의 나무들이 계절별로 만들어가는 다양한 색깔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고, 히말라야에서 보았던 하늘 가득한 별들은 매일 밤 우리 동네에도 찾아왔다. 서울에서는 언감생심이었던,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했다. 집에서 직원들과의 1박 2일 회식을 하기도 했고, 에어비앤비로 손님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저녁식사를 같이 해야 한다는 이상한 조건을 내건 덕분에 그 시절 에어비앤비 손님들은 지금도 SNS로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물론 서울에 산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 느끼지 않을 감정도 있다. 마당의 잔디는 10만원대 잔디깎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빠르게 자라나고, 여름에는 벌집을 잘못 건드려 온몸이 벌집이 되기도 한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거실 소파에 새끼개구리가 있었다고 말한다면 믿을 수 있으려나. 이뿐이 아니다. 배달이 안 돼서 야식도 시켜 먹지 못하고, 편의점이라도 가려면 10분이나 운전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의 부재가 자유로움을 주기도 하지만, 세상에서 고립된 것만 같은 적막함과 외로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위 문제들을 보완하고자 그 성 같은 집에서의 2년을 다 채우고, 서울과 10분 정도 더 가까운 옆 동네 타운하우스로 이사를 왔다. 
 
10분만 걸으면 편의점도 있고, 이웃집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나 옆집 청소하는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폭설이 내린 날에는 동네 사람들과 시간을 정해 다 같이 눈을 치우기도 하고, 날이 좋은 주말에는 전을 부쳐 나눠 먹기도 한다. 집과 마당의 사이즈는 반의반으로 줄었지만, 그만큼 적은 비용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내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여름이면 마당에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피운다는 것과 겨울이면 코끝 시리도록 오랫동안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는 것.
 
겨울이 가고 있다. 다가올 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는 언제까지나 서울로 출근하는 사람이고 싶다.
 
글/ 우상규(카페 MTL 대표)  
 
정은영 감독이 사는 하남 미사 단독주택.

정은영 감독이 사는 하남 미사 단독주택.

정은영 감독이 사는 하남 미사 단독주택.

정은영 감독이 사는 하남 미사 단독주택.

 
질 들뢰즈는 〈소진된 인간〉에서 “소진된 인간은 ‘모든 가능한 것’을 소진한 자이며, 모든 피로 너머에서 결국 다시 한 번 ‘가능한 것’과 끝장을 본다.”라고 했다. 불과 몇 해 전, 나는 소진될 대로 소진되어 기진맥진한 자였고 동시에 무엇을 붙잡을 힘도 없이 피로할 대로 피로한 자였다. 삶을 지탱해주던 ‘모든 가능했던 것’이 하루아침에 불가능의 상태가 되었고, 경험하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극심한 상실의 고통을 겪었다. 사람들이 내민 위로의 말들과 손길조차 피로했다. 사방 벽이 꽉 막힌 답보 상태에 놓인 내가 겨우 생각해낼 수 있던 것은 의도치 않은 삶의 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 내 것으로 소화할 것인지, 이 시간이 내게 왜 주어진 것인지 곱씹는 것이었다. 하지만 곁을 내주다가도 만지려 들면 쓰윽 빠져나가는 고양이의 꼬리처럼 어떤 생각이나 다짐, 지난 시간조차도 내게 속한 것은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있었지만 나만 멈춘 상태였다. 리셋이 필요했지만 버튼이 없었다. 그저 텅 빈 상태 같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그리 오래 끌고 싶지는 않았다. 인간의 사는 힘은 강해서 모든 것을 소진했다고 느꼈을 때, 회복에의 열망도 함께 왔다.
 
우연히, 아니 어쩌면 우연치 않게 3년 전 나는 하남 미사 신도시에 처음 발을 디뎠다. 20여 년 넘게 홍대를 벗어난 적 없는, 홍대 앞이라면 눈을 감고서 (연도별로) 세세한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내가 실로 오랜만에 낯설면서도 낯익은 설렘과 편안함을 느꼈다. 그건 좀 이상한 감정이었는데 예의 신도시가 가지는 황량함과 매끈한 풍경이 나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너도 무엇이든 새로 시작해보라고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언덕이라고는 없는 편평한 땅 위에 골고루 공평히 내리쬐는 햇살 때문이었을까? 뺨을 스치는 부드럽고 미지근한 바람 때문이었을까? 새 땅에 이제 막 뿌리를 내리는 어린 식물들의 생기 때문이었을까? 무엇보다 그것들을 느슨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 간의 여유 있는 거리 때문이었을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묵은 기억과 감정이 곳곳에 즐비한 홍대 앞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허를 물리치고 가능의 세계를 열기 위해 이제는 떠나도 될 때였다. 게다가 방 두 개에 작은 거실과 주방이 있는 12평 남짓 되는 서교동의 월세는 오를 대로 올라 있었고 주차할 때마다 이웃과 신경전을 펼쳐야 했고, 창을 열면 보이는 고작 한 뼘의 하늘과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밤낮 없는 소음은 내게 더 이상 ‘응시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끌고 하남으로 갔다. 러시아워를 피하면 서교에서 미사까지 30분가량 걸렸다. 수개월 동안, 내가 가진 누추하지만 최선인 조건을 단단히 주머니에 지닌 채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집을 찾아다녔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 2년 전 이맘때 겨울, 드디어 이 집을 찾았고 발견했다. 집은 미사 R3 주택구역이라 불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2백 년 된 신앙공동체 구산성지가 구역 초입에 있었고 예쁜 단층 주택들이 여유롭고 단정하게 형성된 곳이었다. 미사수변공원과 한강공원으로 연결되는 공원 산책로가 동네를 빙 둘러 감싸고 있었으며 풍성한 나무들 너머에 말끔한 아파트들이 가로등인 양 서 있었다. 무엇보다, 세 계절 동안을 찾아 헤매다 발견한 이 집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로지르면 주인집과 현관을 따로 둔, 별채로 지은 3층짜리 단독이었다. 이중문이 있는 1층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오르던 순간, 내가 잃었다고 생각했던 꽤 괜찮은 나와, 내가 그려낼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그림들과, 거대 캣타워가 될 계단을 오르내리는 고양이들의 기쁜 반복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올랐다. 2층은 화장실과 주방 겸 거실이 있고 계단을 더 오르면 또 다른 화장실과 작은 거실, 기울어진 천장이 매력적인 넓은 방이 있었다. 사방으로 나 있는 넓은 창으로 온종일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고 마음껏 하늘과 나무들이 보였다.
 
이곳에서 세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금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하염없다. 문득,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맞이했던 눈 내리던 날이 떠오른다. 거센 눈발에 금세 창밖의 모든 풍경은 흰 눈으로 뒤덮여 고요했다. 사람들의 흔한 발자국도 새겨지지 않아 적막함마저 감돌았다. 순간 예전에 느낀 적 없는 어떤 고립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쓸쓸하거나 외로운 것이 아니었다. 온전히 혼자인 채로 맛본 그 고립의 감정이 내 안에 꺼져 있던 리셋 버튼을 꾹 눌렀다. 세상은 멈췄는데 나만 작동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나 자신의 맨 얼굴과 마주했다. 붙잡기 위해 놓치고 산 것들, 불가능하리라 어림잡고 외면했던 것들. 나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나 잊고 있던 것들에 대한 목록을 하나하나 들춰보기 시작했다. 봄이 왔을 때, 달리기 시작했다.  운동화 끈을 묶고 문만 열면 달리기 코스가 여러 갈래 펼쳐져 있는 이곳에서 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5킬로에서 10킬로씩 뛰었다. 내 자신의 작업에 몰두할 에너지가 생겼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지난해, 내 영화를 만들었다. 아무 때고 한잔하자는 친구들의 심심한 전화는 뜸해졌고, 대신 친구들은 좋은 날을 잡아 우리 집으로 여행을 왔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니 관계의 밀도가 높아졌다. 어떤 친구는 “와, 마치 유럽의 고급 에어비엔비에 온 것 같아.” 라고 했다. 그렇다. 지치고 소진된 것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났었다. 매일 같은 아침이지만 다른 날들, 똑같은 매일을 다른 습관으로 튜닝해보는 것. 
 
여행자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충만히 충실하고, 맘껏 게으를 것. 공허를 거둬낸 명징한 눈으로 계절의 변화를 응시할 것.
 
이것이 내가 가진 가능의 버튼이자 내가 끝장낼 ‘가능한 무엇’이다. 집이라는 세계의 구석에서 즐거운 고립을 자처한 난, 언제나 여행자이다. 떠나기도 돌아오기도 하는.
 
글/ 정은영(미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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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디터/ 손안나
  • 글/ 우상규(카페 MTL 대표)
  • 글/ 정은영(미술감독)
  • 웹디자이너/ 한다민